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95)
검은 머리 영국 의사-95화(95/505)
95화 광견병 [1]
개물림 사고.
대한민국에서도 이따금 발생하는 사고긴 한데…….
여기만큼 빈번할 수는 없을 거 같았다.
들개가 어찌나 많은지…….
특히 빈민가 쪽으로 가면 거기에 미쳐 버린 게 확실해 보이는 개들이 꽤나 많이 보였다.
내가 그쪽 집을 벗어나 앨프리드 선배네 눌러앉게 된 이유 중 하나가 개였다니까?
“으, 으아아아!”
그렇다 보니 하루에도 이 병원에만 몇 명씩 개에 물려서 오는데…….
내가 여태 이런 환자를 눈여겨보지 못한 건 순 우연이라는 얘기였다.
아니, 그렇게만 보기엔 내가 너무 바쁘기도 했다.
생각해 봐라.
한눈팔면 그 새를 못 참고 이상한 짓들을 해 대잖아.
머리 아프다고 사람을 죽인다니까?
“가만히 있게!”
“그래, 치료해 주려고 하는 거 아닌가!”
이럴 때 당연하다는 말을 써야 한다는 게 서글프기는 한데, 하여간에 지금이라고 해서 딱히 예외는 아니었다.
“끄, 끄아아악!”
어어 하는 사이에 벌써 개한테 물려서 왔던 환자 상처를 인두로 지져 대고 있었다.
사람 지지는 데 쓰는 인두냐고 하면, 물론 이런 게 있다면 그것도 큰 문제긴 할 텐데…….
심지어 그것도 아니고 우리 의료진들 옷 다릴 때나 쓰는 인두였다.
다시 말하면 다리미로 사람 살을 지지고 있다는 건데…….
“옳지! 피 멎는다!”
순식간에 매캐한 살 타는 냄새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희한하게 사람 살 타는 냄새는 일반적인 고기 굽는 냄새랑은 다르게 역한 느낌을 주었다.
“으.”
하여간 사람들은 그 꼴을 보면서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 그래? 피 멎어?”
“어어. 자네는 이제 살았네.”
“휴우.”
환장할 일은 환자마저도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는 점이었다.
저런다고 광견병이 막아지면 역사에 남았을까?
쉽지 않았을 터였다.
‘그래, 이제야 생각나네.’
뭐가 되었건 처절하게 울려 퍼지고 있던 비명이 멎자 내 머리도 비로소 돌아가기 시작했다.
보다 빨리 돌았으면 저 환자를 구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했지만, 떠오르는 지식을 헤집어 보니 역시나 그건 무리였다.
광견병 치료라는 게 쉬울 수가 없는 일이거든.
애초에 세균도 아니고 바이러스잖아.
항바이러스제라는 건…….
‘이야…… 그게 언제 처음 나오지?’
기억도 안 난다, 진짜.
아마 항생제보다 훨씬 뒤의 일이지 않을까?
애초에 항바이러스제 중에 알맞은 세균에 항생제 썼을 때만큼 효과가 있는 애도 없었다.
허나 광견병 치료제가 나온 건 파스퇴르 시절이니 19세기의 일이었다.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이 1929년의 일이니 이게 훨씬 빨랐단 얘기였다.
심지어…… 바이러스라는 존재를 알아내기도 전에 이룩한 일이었다.
‘백신의 형태였지. 어차피 약독화된 백신을 주면 항체가 빠르게 형성이 되고…… 질환이 너무 경과되기 전에 사용한다면 치료제로 쓸 수 있었을 거야. 100% 안전하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이렇게 생각을 해 보니까 루이 파스퇴르라는 인간이 진짜 괴물 같은 위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21세기에 공부하던 내가 봐도 쉽지 않을 거 같은 일을 이 야만의 시대에 해냈다는 소리 아닌가.
물론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는 시절이니만큼 몇십 년 지난 다음에는 확실히 더 수월해졌을 거 같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대단함에 빛이 바랠 수는 없는 법이었다.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고 있나?”
“네? 아, 아뇨. 음. 저 개…… 개는 어떻게 할 건가요?”
“개? 죽여야지. 광견병에 걸렸는데 저걸 어찌 살리겠나.”
그렇지.
죽이겠지.
사실 이건 21세기에도 하던 일이니만큼 합당한 조치라고 할 수 있었다.
여전히 진행한 상태의 광견병은 불치의 영역에 있지 않은가.
증상의 끔찍함을 감안해 보면…….
죽여서라도 예방이 가능하다면 하는 게 나았다.
“제가 좀 볼 수 있을까요?”
하지만 죽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 같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방금 물린 곳, 그러니까 팔뚝 인근을 지져 버린 환자를 돌아보았다.
저 사람은 살아날 수 없을 터였다.
저 방법이 통하는 건 광견병이 아니라 그냥 단순 개물림에 대해서만일 테니까.
사실 사람 무는 모든 개가 광견병에 걸린 건 아니잖아?
-크르르르르.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이 개는 어떻게 봐도 광견병에 걸린 것으로 보였다.
일단 이 질질 흘러내리는 침의 양이 심상치가 않았다.
광견병의 증상 중에 이런 게 있거든.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나름 외과다 보니 개물림 상처는 필연적으로 보게 되는데…….
그때 감별을 위해서 나름 집담회나 컨퍼런스에서 광견병을 다루게 되어 있었다.
하여간 앞으로 다른 환자를 살릴 방도는 찾아볼 수 있을 거 같았다.
“이걸 보겠다고?”
물론 리스턴 박사님은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이었다.
-끼잉.
그 얼굴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또 더없이 험악한 인상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광견병에 걸린 개, 그러니까 다시 말해 미친개조차 쫄아서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참으로 놀라운 위업이었다.
“지금은 그렇게 위험해 보이진 않는데요?”
“말이 되나! 물리면 죽어!”
“아까는 그럼 왜 지졌어요?”
“병원까지 왔는데 그럼 아무것도 안 한단 말인가. 게다가 일단 피는 멈추지 않았나.”
“아.”
와 이번에는 진짜 놀랐다.
지들도 아는구나?
이거 지진다고 다 되는 건 아니라는걸.
그럼에도 사람의 살을 주저 없이 인두로 지질 수 있다니.
나는 아직도 19세기 사람 되려면 멀었나 보다.
“근데 이걸 왜 보겠다는 거야? 뭐 방법이야 여럿 있는데…….”
그렇게 멍하니 있으려니, 리스턴이 자기 칼 손잡이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이제 개는 조용해져 있었다.
여기서 잘못 깝쳤다가는 리스턴 칼에 반 토막이 될 거라는 걸 알게 된 모양이었다.
병에 걸려 미쳐 가는 와중에도 분노 조절을 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이라니.
이 사람이 내 형님을 자처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말씀하신 대로 광견병 이거…… 아직 못 고치잖아요?”
“그렇지. 도리가 없지. 물리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야. 애쉬리온이라는 약도 있기는 하지만, 그게 효과가 있었다면 벌써 없어졌겠지.”
“조선에서는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하여간, 나는 또 구라를 치기 시작했다.
처음엔 진짜 입이 잘 안 떨어졌는데 이제는 벌구가 따로 없었다.
입만 벌리면 구라가 그냥 쏟아져 나와.
“침을 질질 흘리는 개가 사람을 물어 도축을 진행했고, 이를 원래는 태워 없앴어야 했으나 도축한 사람이 고기를 먹기 위해 보관했다고 합니다.”
“허어, 깡도 좋지.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그걸 먹어?”
“그치도 찜찜했는지 그냥 먹지 않고…….”
파스퇴르가 어떻게 했더라.
정확히 말하면 약독화 백신을 어떻게 만들었더라…….
딱히 뭐 복잡한 공정을 거치진 않았을 터였다.
아니, 못 했을 터였다.
1890년대라고 해서 뭐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겠어?
‘아, 그래.’
기억났다.
맞아.
듣고 되게 황당했던 기억이 있었다.
“햇빛에 말려 놓았다고 합니다.”
“으음…… 그게 도움이…… 되나?”
되지.
암, 되고말고.
소금에 절이면 살균 효과야 훨씬 강하겠지만, 그딴 식으로 처리를 했다가는 광견병 바이러스고 나발이고 다 뒤질 테니 약독화 따위는 노리기 어렵고, 햇빛에 말리는 건 충분히 되지.
온도 때문에도 비실비실해질 테고…….
해도 자체적으로 살균효과가 있고.
무엇보다 개가 죽었으니 당연하게도 바이러스 생존에 불리한 환경이 되었을 터였다.
정확한 원리야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렇게 했다니까, 해 본 사람 말이 맞겠지.
“들어 보세요.”
“어, 그러지.”
이제 개는 나를 보면서도 잔뜩 쫄아 있었다.
대화를 나누는 꼴이 어째 나와 리스턴 박사가 대등해 보여서 그랬을 터였다.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미쳤는데 뭐 눈에 제대로 뵈는 게 있겠어?
“그 물린 사람이 이제 몸이 아프기 시작할 때쯤, 도축한 사람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저 아픈 게 혹시 고기라도 먹으면 낫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 말입니다.”
“어허, 그래서?”
리스턴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내 말에 귀를 쫑긋 기울이고 있었다.
조지프, 앨프리드, 콜린 등등.
지금 내가 하는 말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구라라는 걸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궁금하기는 한데 그거 하나 알겠다고 칼 맞을 생각은 없어서 그냥 하던 구라나 계속 치기로 했다.
“물린 사람도 뭐 고기는 먹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뭔 고긴지는 얘기를 안 했으니 그럴 수밖에요.”
“허어. 뭐 그런 사람이…….”
“놀라기엔 이릅니다. 그 인간이 글쎄 고기를 머리 부분을 주었다고 합니다. 다른 맛있는 부위는 막상 주려니까 아까웠던 모양이에요.”
“개새낀가?”
리스턴은 여러 면에서 공정한 편인데 특히 먹는 것에 있어서 더 그랬다.
많이 먹는 사람이라 그럴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겉으로는 전혀 티를 내지 않은 채 말했다.
“놀라운 건…… 그다음에 벌어진 일이에요. 저도 의과 대학에 와서 뭔가 읽어 보기 전에는 대체 왜 그랬을까 싶었습니다. 그냥 우연이겠거니 싶기도 했고요.”
“뭔데. 뭔데 그렇게 변죽을 울리나.”
“그 사람, 살았습니다. 그 고기를…… 정확히 말하면 자기를 물었던 개의 머리 부분을 먹고 살았어요.”
“으음……? 어찌? 자네 말대로 우연 아니겠나? 아닌 게 아니라 원래 광견병에 걸린다고 해서 100% 다 죽는 건 아니긴 하네.”
말마따나 치사율이 100%인 것은 아니었다.
예로부터 존나 강한 인간들이 있지 않던가.
심지어 에볼라도 걸렸는데 그냥 살아남는 사람이 있는 법이었다.
광견병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는데…….
지금 내가 고작 그런 얘기나 하려고 구라친 건 아니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다가, 여기 와 보니…… 17세기에 한 실험이 있었더구만요.”
“어떤?”
“광견병 걸린 개의 혈액을 뽑아서 다른 개의 핏줄에 넣었더니만 광견병이 걸렸더라. 이런 실험 말입니다.”
“음…… 아, 나도 어렴풋이 기억이 나네. 그런 일이 있었지. 근데 그게 뭐?”
“그 말은 곧 광견병을 일으키는바…… 아니, 무언가가 혈액이나 뭐 하여간 체액에 있다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그렇겠지. 침에도 있을 것이고?”
리스턴은 내 바 어쩌구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잔뜩 쫀 채 침이나 질질 흘려 대고 있는 개를 보고 있었다.
그래, 그 말도 맞았다.
침에도 많지.
하지만 결국에는 머리를 침범하게 된다, 이 말씀.
그리고 침은 말리면 진짜로 다 말라 버려서 써먹을 수가 없었다.
“제 생각에는 아마 개의 머리…… 즉 뇌와 연수에 있던 무언가가 해에 의해 마르면서 약해지고, 그 약해진 것을 먹은 환자가 살아나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체 뭔 소린가.”
이렇게 상세히 말했는데 뭔 소리냐니? 하면서 상처받지는 않았다.
항원 항체 얘기를 빼먹었더니 말한 내가 봐도 뭔 소린가 싶어서 그랬다.
“저도 정리가 완전히 되지는 않는데 아무튼요. 중요한 건…….”
“저 개를 죽여서 뇌와 연수를 말리고 그걸 저 사람에게 먹이고 싶다는 거지?”
“어…… 그렇죠. 요약하면 그렇게 됩니다.”
“그럼 그렇게 하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형임을 자처하는 리스턴 박사님은 칼을 높이 쳐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