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96)
검은 머리 영국 의사-96화(96/505)
96화 광견병 [2]
“어어!””형님!”
아무리 그래도 병원에서 개를 도살할 수는 없지 않겠나?
근처에 있던 이들 모두가, 나까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일단 뜯어말렸다.
그제야 리스턴도 이게 살짝 부적절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는지, 칼을 슬그머니 내렸다.
물론 그래 봐야 개가 살아날 길은 없었다.
부우웅.
런던 인근에 리스턴이 별장으로 쓰고 있는 별장에 도착하자마자 칼이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저거 수술할 때 쓰는 칼이고, 이거 광견병 걸린 개라는 말을 해 봤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닦으면 되지 않나?
딱히 또 틀린 말은 아니긴 했다.
감염 환자들이라고 일회용 칼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물론 현대 의학에서는 일회용 블레이드를 어떤 환자건 간에 쓰고 있기는 하지만…….
하여간 나머지 기구는 소독 돌려서 쓰니까 뭐.
“끕!”
하여간, 리스턴이 휘둘러서 다행이긴 했다.
개가 작은 편이기는커녕 사람 먹을 것도 부족한 런던에서 대체 뭘 먹고 자란 건지 궁금해질 정도로 거대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단칼에 죽었지 않나.
광견병 걸린 개라고 해서 쓸데없이 고통을 줄 필요는 없으니, 그렇게 간 게 서로를 위해서 잘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자, 근데…… 여기서 뇌와 연수를 어떻게 분리해 낼 참인가?”
이제 남은 건 내 몫이었다.
리스턴도 난감하다는 얼굴이었는데, 직접 갈라야 하는 나는 어떻겠나.
‘으음…… 진짜 존나 하기 싫다…….’
해부학의 천재니 뭐니 하면서 치켜세워 주긴 했지만, 그거야 내가 워낙에 많이 했던 거라 가능했던 일 아닌가.
개의 해부는 대체 어떨까?
알 게 뭐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이거 하다가 손에 찔리기라도 하면 진짜 큰일이었다.
광견병에 옮을 거라고.
약도 없어, 그거.
“하하, 지켜보시죠.”
근데 내가 하도 조선 천재 노릇을 해 와서 그런가 입은 생각과 달리 청산유수였다.
시발…….
왜 자꾸 구라를 치냐.
“딱 보니까 여기를 째고 들어가면 될 거 같군요.”
솔직히 털 때문에 뭔가 보이는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내 입은 복화술이라도 익혔는지 끊임없이 구라를 생산하고 있었다.
찌이익.
하여간, 입은 구라를 쳐도 조심은 해야 했기에 나는 일단 장갑부터 챙겼다.
여기서 개 해부하다가 뒤지면 진짜 이런 게 개죽음이지 않겠나.
“으음.”
그런 나를 따라 조수 역을 맡고 있는 조지프와 앨프리드가 장갑을 꼈다.
얼굴 표정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개 뇌와 연수를 따야 하는 마당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마 내가 이거 감염 위험도 있다고 하면 더 안 좋아지긴 할 텐데…….
‘굳이 그럴 건 없지?’
모든 것이 열악할 수밖에 없는 19세기이지만, 장갑의 튼튼함만큼은 21세기와 비교해도 우월할 정도로 대단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엄청 두껍거든, 이거.
그만큼 미세 수술에 있어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지만…….
내가 개를 살리려고 뭘 하려는 건 아니니까 상관은 없을 터였다.
지이익.
하여간 나는 병원에서 챙겨 온 해부용 메스로 개의 뒷목 주변을 노리다가, 이내 생각을 바꿨다.
가끔 보던 유튜브에서 뉴트리아 퇴치 운동 겸 요리했던 것이 기억이 나서 그랬다.
털 달린 동물을 가지고 뭘 할 때는 기본적으로 가죽을 벗겨야 한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까 진짜로 그럴 거 같기는 해서 등 줄기 옆을 따라 절개선을 넣었다.
이 고기를 가지고 뭘 할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기도 하거니와 실제로 내가 칼질에 익숙한 것도 있고 해서 속도가 아주 느리진 않았다.
티디딕.
왜냐?
사실 포유류의 구조라는 게 각 종류마다 드라마틱하게 다를 수는 없는 법이거든.
일단 박리의 원리도 다 같았다.
해서 나는 꽤 빠르게, 물론 도축업자가 보기엔 답답할 만한 속도로 개의 가죽을 벗겨 내고는 다시 개의 뒷목을 마주하게 되었다.
빠각.
다음부터는 자세히 묘사해서 좋을 게 없을 만한 행위의 연속이었다.
뼈를 최대한 정밀하게 잘라 내면서 동시에 연수와 뇌는 보존해야 했기에 그랬다.
그 사이사이에 조금씩 망가지는 부위가 있기는 했지만 뇌척수액 자체는 거의 다 온전한 모습으로 모아 둘 수 있었다.
“이걸 이제…… 햇빛에 말리죠.”
나는 그 결과물을 트레이에 올려놓았다.
루이 파스퇴르가 어찌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면 더 좋을 텐데, 내가 기억하는 건 태반이 족보 수준이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
뭐가 되었건 해로 말리면서 약독화되기를 꾀했을 터였다.
얼마나 말려야 할까?
‘부패가 진행되기 전일 테니…… 기껏해야 3일 정도가 아닐까?’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프랑스의 해와 런던의 해는 꽤 다를 거라는 점이었다.
그나마 교외로 빠져나온 덕에 그 자욱한 연기는 보이지 않았지만…….
여긴 그냥 애초에 해가 약했다.
오죽했으면 일론 머스크한테 영국에서도 태양열 발전이 되겠냐고 물었겠나.
물론 여기도 식물이 꽤나 잘 자라는 만큼 태양 에너지는 잘 전달이 되는 거 같기는 한데…….
‘모르겠다…… 어차피 광견병 걸린 개가 이거만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곰팡이 기르는 것보다 이게 더 쉬울 수도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광견병 걸린 개 찾는 건 정말 극히 어려운 일이겠지만, 여기서는 지천에 널린 게 들개고 태반이 광견병 위험에 노출이 되어 있거든.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마음이 좀 느긋해졌다.
“후우.”
한숨 한 번에 나머지 근심도 털어 내고는 트레이를 리스턴에게 건네주었다.
내가 조지프, 앨프리드와 함께 낑낑대는 동안 술이나 홀짝거리고 있던 그는, 월등히 큰 키를 이용해 한 번에 트레이를 지붕 위에 올려다 놓았다.
“이거 근데 비라도 오면 어쩌지?”
“아.”
그러곤 섬뜩해지는 소리를 해 댔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적어도 여기서만큼은 걱정해야 할 소리이기도 했다.
영국은 섬나라라 그런가, 비가 진짜 자주 오기에 그랬다.
‘약독화…… 비에 젖으면 그 정도로 안 끝날 거 같은데…….’
아마도 썩지 않을까?
습기는 부패에 있어 가장 문제가 되는 소인이다 보니 그럴 거 같았다.
“뭐…… 기도라도 해 보게.”
얼굴이 바로 썩어들어 가기 시작한 나와는 달리, 리스턴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이미 취해서 그렇기도 할 테지만.
별다른 기대가 없어서 그럴 수도 있었다.
지금껏 내가 보여 온 기적들을 감안한다면 저렇게 나오는 게 약간 빡치긴 하지만…….
‘광견병은 정말 오랜 시간 불치병이었지.’
광견병의 위엄을 생각해 보면 무리도 아니긴 했다.
사실 21세기에도 정도 이상 진행해 버린 광견병은 못 고치잖아?
이 시기에는 운이 억세게 좋지 않으면 반드시 죽는 병이었다.
“네, 기도해야죠.”
게다가 리스턴은 설득이라는 게 먹힐 만한 사람도 아니어서 나는 더 말을 섞지 않았다.
방법이 기도밖에 없기도 했다.
망할.
명색이 과학자가 되어서 이런 꼴이라니.
그렇다고 해 말고 달리 쓸 만한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외선 소독기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상식적으로 그런 게 있겠어?
전구도 없는 마당이었다.
“일단 마시게. 썩은 빵으로 매독을 치료하게 될 줄이야. 나 원 참. 두 눈으로 봤는데도 믿기지가 않네.”
“저도 그래요.”
리스턴은 정말 놀랍다는 얼굴로 술을 마셨다.
엄밀히 말해 나는 아직 술을 마시면 안 될 나이였지만, 어른이 주는데 그것도 리스턴이 주는데 어떻게 안 마실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나도 썩은 빵을 사람한테 먹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마당이라 지쳐 있기도 했더랬다.
눈을 감으면 자꾸 수은 때문에 똥 싸던 사람하고, 썩은 빵 먹고 토악질하던 사람이 생각나기도 하고…….
‘이런 게 트라우마인가.’
심지어 밖에 널어 둔 광견병 걸린 개의 뇌와 연수 위로 비가 내리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겹쳐 있다 보니 심신이 적잖이 지쳐 있었다.
“어우우…….”
홀짝 마신 거 같은데 몸이 훅 가는 기분마저 들었다.
“이 친구 왜 이러지?”
“그러게요? 한잔 마신 거 같은데?”
정신없는 와중에 머리 위로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취했으니 하는 말이지만, 우리 평은 의학 말고는 딱히 잘하는 게 없는 거 같긴 하네.”
“네, 고추도 작고…… 술도 못 먹고.”
누가 그랬지.
청각은 죽음이 임박해서도 남아 있는 감각이라고.
의사라면 모름지기 알고 있어야 하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19세기 의사들은 전혀 모르는지 아무 말이나 막 해 대고 있었다.
“근데 고추 그게 진짜 단가?”
“그러나 본데요.”
“어쩐단 말인가…… 장가가기는 글렀군그래.”
“아니,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
“나는 사실 자네도 걱정이야.”
“교수님…….”
“뭐.”
“아닙니다.”
기분 나쁘게 딱 이 대화를 기점으로 기억이 끊겨 있었다.
일어났을 땐, 멀쩡한 얼굴의 리스턴을 마주할 수 있었다.
비어 있는 술병들을 보아하니 내가 뻗고 나서도 어마어마하게 마신 모양인데 어찌 저럴 수 있을까.
확실히 옛날에 태어났으면 기사 중에서도 어마무시하게 강한 기사가 되지 않았을까?
“일어났나?”
“아, 네.”
“가지. 늦겠어. 왜 이렇게 술을 못 먹나.”
“그…… 죄송합니다.”
물론 지금이라고 해서 어마무시한 게 아닌 건 또 아니다 보니 나는 잠자코 그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리스턴에 비하면 많이 망가진 상태의 조지프와 앨프리드가 서 있었다.
“어우…….”
“어우우…….”
거의 뭐 좀비가 되어 있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리스턴하고 보조를 맞추려면 그랬을 테지.
하여간, 우리는 마차를 타고 정겨운 런던으로 돌아왔다.
사방에 널린 똥과 와사삭 도망치는 쥐들 그리고 위협적으로 구는 들개들과 하늘을 뒤덮은 매연이 그득한…….
묘사하다 보니 지옥 같아 보이는데 정붙이고 살다 보면 또 살만했다.
“으아아아!”
아니, 그렇지는 않은가…….
병원에 딱 들어서자마자 예의 그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거야 뭐 맨날 들리는 거긴 한데…….
오늘은 차이가 좀 있었다.
“어린애……?”
“으음. 이건 안 좋은데.”
어떻게 들어 봐도 어린아이의 비명이었다.
그것도 여자애 같았다.
이게 참 이상하다면 이상한 일이었다.
나 정도 경력이거나 하다못해 리스턴 박사의 경력이라면 사람 아픈 거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왜 아이가 아파하는 건 도저히 그럴 수가 없는 걸까.
나는 그런 생각과 함께,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놀려 비명이 들려온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 이거라도…….”
그곳엔 팔에 개 물림 자국이 있는 어린 여자아이와 그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프라이팬을 들고 있는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이제 보니 비명은 오히려 프라이팬을 들고 있는 언니가 질러 대고 있었다.
정작 물린 아이는 인상이 일그러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음 소리 하나 내고 있지 않았다.
“이걸로? 이건 너무 커. 역시 인두로 지져야지. 개는 어딨나.”
이번에도 담당 의사는 인두로 지질 생각인지 불부터 찾고 있었다.
개도 불렀는데, 당연하다는 듯 침을 질질 흘려 대고 있었다.
“시발.”
나는 나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고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치료가 될까?
뭐 이런 건 모르겠다.
하지만 그냥 이렇게 두고 볼 수는 없지 않나.
“얘, 너 이름이 뭐니.”
진료의 기본은 일단 이름부터 묻는 것이었다.
특히 소아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런데, 안심시켜 주는 효과가 있었다.
정신을 딴 데 팔리게 함으로써 통증도 일부 경감시켜 줄 수도 있었고.
“에밀리 브론테요.”
“에밀리 브론테……?”
허나 정신이 딴 데 팔리게 된 것은 오히려 나였다.
‘폭풍의 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