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98)
검은 머리 영국 의사-98화(98/505)
98화 폭풍의 언덕……? [2]
“그게 지금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나……?”
이게 다 먹히는 건 또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이번엔 선을 좀 넘은 거 같긴 해.
조선이 무슨 환상의 나라도 아닌데 뭔 일이 있을 때마다 턱턱 케이스가 있겠냐고.
“하지만…… 자네 같은 사람을 배출할 수 있는 나라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긴 하는군.”
“오.”
“오?”
아니…….
먹히긴 먹혔다.
나중에 조선 같이 가 보자고 하면 도망가야지.
-저희 군관들 중에 철퇴에 다친 이들은 봉합하는 대신 붕대로 감아서 피만 막아 둔답니다. 그 이유가 뭔지 압니까? 봉합을 못 해서? 아니! 남의 피와 살점이 잔뜩 묻은 둔기에 다친 상처를 그대로 닫으면 저주를 받아 썩는단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주는 아니겠지만…… 실제로 그렇긴 해요. 그러니 피하는 게 좋습니다.
지금 이들의 머릿속에 있는 조선은…….
뭐라고 해야 할까?
은둔의 나라가 아니라 의학의 나라 정도가 아닐까?
히포크라테스, 갈렌 등등이 논밭에서 일하는 그런…….
실제 조선은 지금 이 시점에서만큼은 유교 탈레반과 다름이 없을 테니, 같이 갔다간 효수될는지도 몰랐다.
리스턴의 손에 죽든 포졸 나으리들한테 죽든 하겠지…….
“아니, 아닙니다. 둔기와 개를 동일시해도 좋을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죠.”
“그렇긴 한데…… 지지는 것이 확실하지 않겠나? 잘 보게. 피가 조금씩 나지 않나.”
“저 정도 피 난다고 사람이 어찌 되겠습니까?”
하여간 설득이 되기는 되어서 에밀리 브론테는 인두의 압박에서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리스턴을 비롯한 우리 자랑스러운 19세기 의사들은 에밀리의 상처를 보면서 입맛을 다시고 있긴 했다.
말마다나 살짝 피가 나고 있긴 했다.
저것도 멎게 해 주는 것이 의학적으로 미루어 볼 때 옳기는 했다.
인두 아니라 미세 핀셋 같은 걸 달구면…… 나중엔 가능할 것도 같단 생각이 들었지만.
지들은 머리 아프다고 하면 무작정 피 뽑는 주제에 이따위 말을 한다니.
당장은 일단 두기로 했다.
“그리고 더 중한 것은 개의 이빨에 묻어 있던 것이 과연 시신에 있던 것보다 약할 거냐는 거죠.”
“아하…… 그것도 일리 있는 말일세.”
“기록을 보면 개에 물려서 사망한 이들 중 오히려 다수는 광견병 증상으로 죽은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응? 그건 또 무슨 소린가?”
리스턴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살짝 실수하긴 했다.
지금 내 말은 일단 상대가 광견병이란 질환에 대해 박식하다는 걸 전제로 하고 있지 않나.
세상에 박식하다니?
내가 볼 때 리스턴이 감히 박식하다는 말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정통한 분야가 있다면 아마 팔다리의 해부 정도에 국한될 터였다.
“아…… 그, 광견병에 걸리게 되면 침이 과다하게 흐르고 열이 나고 또 물을 무서워하게 되지 않습니까?”
“아…… 그렇지. 그래서 공수병이라고도 하지 않나.”
공수병이라고 해서 그냥 고여 있는 물을 보면서도 오만 법석을 떠는 건 아니었다.
목이 말라서 물을 먹는 순간 후두와 횡격막 등의 경련이 발생하면서 어마어마한 고통이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그걸 한번 겪고 나면 다음부터는 물만 봐도 발작하는 증세를 동반하는데, 이 시기 의학 지식이나 기록이라는 것이 온전치가 못하다 보니 와전되어 전래되는 경우도 많았다.
하여간 꽤 특징적인 증상이니만큼 의료진이라면 숙지하고 있어야 했다.
물론 이게 발생할 정도로 진행했다면…….
‘21세기에서도 방법이 별로 없어.’
백약이 무효하다고 봐도 될 정도로 무서운 병이었다.
불치병이라고 봐도 무방하니 실로 그렇지 않나.
허나 이 시기 절대다수의 환자들은 광견병이 아니라 그냥 물린 상처 때문에 사망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록을 보면 그러한 증상 중 열만 일치하는 환자들이 훨씬 많습니다.”
“으음…… 누구 기록인가?”
“제멜이나 교수님…… 하여간 여기 응급실 기록이요.”
기록이라고 해 봐야 별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병원에서 으레 쓰던 SOAP 서식 따위는 먹고 뒈지려도 없는 게 당연했고, 그냥 공통된 서식이랄 게 없었다.
의사마다 그때그때 쓰고 싶은 대로 써 놓은 것이 다였다.
그마저도 쓰는 놈 있고 안 쓰는 놈 있고 해서 기록이 온전하지도 않았다.
그거 뒤지느라 어제 진짜 말 그대로 뒤질 뻔했다.
“아…….”
“거기 보면 제일 두드러지는 증상은 물린 부위의 종창입니다. 아마 이 주변이…….”
감염을 감염이라 부르지 못하고…….
균을 균이라 부르지 못하오니 소자 이만 병원을 떠…….
“이 물린 주변에 뭔가 안 좋은 것이 끼어 들어가서 발생하는 증상이겠죠.”
“그게 광견병도 일으키고 그러는 거 아니겠나.”
“아.”
진짜 확 뜰까?
이런 생각이 들다가도…….
바이러스는커녕 세균의 존재조차도 모르는 시기라는 걸 생각하니 화가 아니, 분노가 좀 가라앉았다.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아닐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나쁜 것에 종류가 있을 수도 있지 않겠어요?”
“거참, 자네는 가만 보면 비약을 너무 잘하네. 일단 나쁜 것이 존재하는지 여부도 증명이 되지 않았거늘…… 막말로 지금까지는 공기론이 제일 각광받고 있네.”
“아…… 네. 그게 말이 되면…….”
“손 씻기가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걸 보면 아닐 가능성도 있긴 하네만 말이야. 거기서 종류라니. 허허.”
내 말에 리스턴은 후후 웃다가 이내 복도 끝에 걸린 문을 열었다.
“그런 발상의 전환이야말로…… 자네의 우수함의 근원이겠지. 나는 응원하네.”
암만 봐도 말도 안 된다고 여기는 거 같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렇다고 날 말리는 건 아니니까.
지금도 봐.
일단 에밀리 입원할 곳을 마련해 주었잖아?
“여긴……?”
에밀리는 인두 앞에서도 쫄지 않았던 사람이니만큼,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입을 연 것은 언니 쪽이었다.
제인 에어 아니, 샬롯 브론테.
“다른 병동은 좀…… 상태가 그래서. 여기 교수님 연구실인데, 입원 병실로도 쓰려고 침대를 가져다 놓은 거야.”
쫀 기색이 역력한 아이에게 나는 부리나케 벽에 걸린 역대 리스턴 칼을 가리면서 침대를 가리켰다.
아닌 게 아니라, 여기 침대가 다른 곳에 있는 침대보다는 상태가 월등히 나았다.
일단 내가 침구를 매일 빠니까…….
그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별의별 새로운 환자를 여기서 봤기 때문에 아주 깨끗하다고는 하기 어렵겠지만, 그렇더라도 시트에 피, 고름, 변 등이 함부로 묻어 있는 일반 병동에 비하면 여긴 진짜 특실 그 자체였다.
“아…… 네. 근데 저희가 돈이…….”
“돈? 괜찮아. 어차피 내가 출근하는 김에 보는 거라. 괜찮죠, 교수님?”
“응? 그렇지. 엄밀히 말하면 자네는 아직 의사가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면 얘들이 되게 불안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어지간한 의사보다 낫다고 해 두지. 실제로 그렇지 않나.”
어째 내가 의도한 것만큼 감사해하는 것 같진 않지만…….
뭐가 되었건 도망가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하여간 난 돈 받을 생각일랑 추호도 없었다.
앨프리드에게 빌붙어 살아가고 있는 주제에 돈은 무슨 돈?
게다가 곧 콘돔이 발매하게 되면 돈방석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한 몸 건사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터였다.
무엇보다 이 둘은 미래의 대문호였다.
오히려 이쪽에서 영광으로 알아야 할 일이다, 이 말이었다.
“그런 고로 치료를 하게 되었으니 잘 부탁해. 닥터 평이라고 불러 주면 돼.”
“네, 감사합니다.”
“네에.”
나는 정식으로 인사를 올린 후, 다시금 상처를 살폈다.
붕대를 감을까 말까 고민하기 위함이었다.
이걸 왜 고민하냐?
이 시기 붕대라는 것이 참으로 참혹하기에 그러했다.
압박이라도 할라치면 진짜로 피도 안 통할 만큼 동동 둘러매야 했을뿐더러, 상처에 들러붙어서 뗄 때 오히려 상처를 죄 망가뜨리기 일쑤였다.
애초에 붕대라고 정식으로 만들어지는 물건도 없다고 보면 되었다.
진짜 아무 천이나 찢어 오면 그게 붕대가 되는 마법 같은 세상이 이곳 19세기였으니.
‘안 하는 게 낫겠어.’
어지간하면 안 하는 게 나았다.
피치 못할 수준으로 피가 난다면야 어쩔 수 없겠지만.
다행히 어린 에밀리는 영양 상태가 아주 양호하지는 못했을지언정 결핍 상태는 아니다 보니 잘 멎고 있었다.
일단 개가 독하게 문 게 아닌 게 다행이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려니, 샬롯이 입을 열었다.
“제가 프라이팬으로 후려쳤어요. 그러니까 떨어지더라고요.”
“아하. 근데 어쩌다 물린 거지?”
그렇군.
프라이팬으로 때렸군.
어쩌면 나보다 오히려 샬롯 쪽이 에밀리를 살린 데에 있어 지분이 더 클 수도 있겠다.
이 시기 의료는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열악하거든.
“밥 주려다가요. 동물들에게도 친절해야 한다고 배워서요.”
“아…… 그렇구나.”
언니만 왔길래 고아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아닌가?
갸우뚱하고 있으려니, 덜커덕 문이 열리고 늙수그레한 얼굴의 사내 하나가 들어왔다.
“내 딸이…… 개에 물렸다고…….”
“아, 아버님 되십니까?”
“그렇소만. 당신은…….”
그리곤 내 얼굴을 보자마자 딱 얼었다.
면전에서 노란 원숭이 운운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그런 시대잖아.
그러니까 난 괜찮은데…….
“어허어허! 이분은 닥터 평으로, 저와 가장 가까운 친우이자 리스턴 박사님의 아우이면서 동시에 명의십니다!”
“제 후배라고 부르는 것이 죄스러울 정도의 명의란 말입니다!”
조지프와 앨프리드가 쌍으로 나를 싸고돌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아까 의사에게 뭐라고 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뭐 하나는 내 불알친구고 다른 하나는 두 번이나 생명을 살려 준 은인이니 그럴 만도 했다.
“아니, 그…… 내가 뭘 했다고…….”
“안녕하십니까, 리스턴입니다. 광견병에 걸린 개에 물렸어요. 지금은 괜찮아 보여도 중환자가 될 가능성이 있어 제 연구실에서 따로 볼 작정입니다.”
“아…… 리스턴 박사…… 아니, 그런…… 안 됩니다. 살려…… 살려 주세요.”
“그러기 위해 저희가 노력 중입니다. 여기 닥터 평도 어리지만 실력이 아주 좋으니 너무 걱정 마시죠. 특히 광견병을 아주 잘 봅니다.”
“그…….”
하여간, 에밀리의 아버지는 꽤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원래 자식 아프다고 하면 부모가 이러는 게 당연하긴 하지만…….
손을 바들바들 떠는 것이 어째 좀 유독 심해 보였다.
“아버지가 널 엄청 사랑하나 보다.”
해서 보호자 대기실 따윈 없는 병원이라 나간 후에 물었더니 돌아오는 답이 나를 좀 서글프게 만들었다.
“네…… 사실 엄마랑 두 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요. 아프다고 하면 걱정이 많으세요.”
“아.”
벌써 셋이나 죽었구나.
그냥 했던 말인데 어쩐지 어깨가 더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원래도 최선을 다할 작정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정말이지 죽도록 에밀리를 살펴야 할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