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ughter of the Elemental King RAW novel - Chapter (2)
제 1화 해인 황당한 곳에 떨어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상투적인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멀리 나가버렸던 정신이
서서히 제자리로 복구됨을 느끼자 제일먼저 내 머리에 든
의문이었다.
하지만 정신 상태는 복구가 원활히 진행되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지만, 내 육체는 아직 복구가 절반도 안 된
모양이었다.
몸을 움직이려 해도 도저히 힘이 안 들어가 손하나 까닥
할 여력이 없었다.
아니, 너무 힘이 없어서 내 팔, 다리가 온전히 몸에 붙어 있는지
느껴지지도 않았다.
눈만이라도 떠서 여기가 천국인지 현실인지 알아보려고
했지만, 이놈의 눈꺼풀이 학교에서 꾸벅꾸벅 졸때보다 수십배는
더 무겁게 느껴지는 거 였다.
‘젠장… 죽겠구만…’
그나마 완전 복구가 안된 정신 상태 때문에 비몽사몽간인데도
눈이 안떠지자 되게 답답해서 그 와중에도 눈을 뜨려고
낑낑거렸다.
그러자 이런 내 노력이 신께서 어여삐 여기셨는지 나는
드뎌 가늘게나마 눈을 뜰 수 있었다.
실과 같은 가는 틈을 통해 빛이 보이자 조금이나마 답답함이
가시는 것 같았지만, 눈에 눈물이 맺혔는지, 눈껍이 잔득 달렸는지
시야가 뿌연게 약간 흐리게 보이는 거였다.
눈을 몇번 깜빡인 것 같았지만, 눈을 크게 뜨지 못한 탓인지
시야는 여전히 뿌연게 마치 TV의 몽환적인 장면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 내 옆에 있는 인영이 희미하게 비쳐졌다.
‘엄마? 아니… 해민인가?’
입을 열어 누구인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입은 도저히 안 떨어져
포기하고 눈만 몇번 더 깜빡거리자 다행히 시야가 조금 더 밝아져
그 인영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인영은 긴 머리를 가지고 있었는 데 , 그 머리카락이
온통 파란빛깔이었다.
자세히는 보지않아 그가 무슨 펑퍼짐하고 희끄무레한 옷을 입고
있고 파랗고 긴 머리를 가졌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목 알아봤지만,
그것만으로도 나는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허걱… 흰옷에… 파란머리? 호, 혹시 천사인가? 허걱… 그럼
난 죽은겨?”
그런데 그 때 그 인영이 나를 향해 손을 뻗어왔는데, 그러자 이상하게도
나는 시야가 다시 뿌옇게 흐려지며 내가 원치 않았는데도 스르르
눈이 다시 감겨지는 것이었다.
‘허걱… 저 천사는 죽음의 천사인가보다. 내 영혼을 지금 가지고 가려고
하나봐…’
다시 한번 가슴이 덜컹 거렸지만, 그 와중에도 이상하게 나에게
잠이 엄습했고, 나는 겨우 복구해 놓은 정신을 다시 잃어 버렸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나는 날 데리러 온 것이 악마가 아닌 천사인 것
같다는 것에 -아직 진짜 천사인지 아닌지 모르니까-와중에 안도하고
있었다.
‘엄마, 나 먼저 천국에 가~ 나중에 천국에서 보자고~!!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니까…’
그렇게 혼자 쑈를 하고 잠이 든 나는 한참이 지난 후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번에는 마치 푹 자고 일어난 듯 정신도 완전 복구가 되어 말짱했고
눈도 금방 확 트여 진거보니 육체도 거의 복구가 된 모양이었다.
눈을 깜빡여 시야를 가리고 있던 눈물을 지우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마치 옛날 초가집의 천장 마냥, 통나무로
지붕과 벽을 지탱해 주고 그 틈을 흙으로 꼼꼼히 매꾼 천장이었다.
“뭐, 뭐야…”
그 모습에 황당해져서 입을 여는 데 목이 오랫동안 안쓴 것 처럼
꺼칠하게 매말라 있어서 거칠고, 낮은 내 목소리가 아닌 것만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 목과 입술을 침으로 조금 적셔 준 후 나는 고개를 돌리며
중얼 거렸다.
“여기가 어디지?”
목이 말라 근처에 있는 누군가에게 -아마도 엄마나 해민일 테지만…-
도움을 청하고 싶어 찾으려 했는데, 그런 내 눈에는 다른 사람은
안 보이고 왠지 엄청 구식으로 보이는 집안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내 옆에 작은 원형 탁자에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고, 그 너머 벽에는
옷장과 화장대가 벽에 붙어 있었으며, 그 옆으로 어딘가로 -아마도
거실이겠지만- 통하는 나무 문이 달려 있었다.
“뭐야? 여긴 어디야? 왜 내가 여기 있는 거지?”
병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 집 내 방도 아닌 전혀 상상도 못한
엉뚱한 곳에 내가 와 있자 너무 황당해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지가 않아 일어나기는커녕 팔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고개나 좌우도 돌리는 것이 겨우였다.
“엄마아~, 해민아~~ 아무도 없어요?”
목이 잔뜩 가라앉아 있어서 그렇게 크게 부르지는 못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목소리로 크게 불렀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이런 내 부름에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고, 대신 이 방의 허공을
잔뜩 차지하고 있는 왠 날파리 같은 것들만 왱왱 날아다니고 있었다.
“아…정말…왠 날파리들이야? 여기 시골인가?”
평소 벌래를, 특히 여름 방에 잘 때 밤잠을 방해하는 날파리나 모기등을
엄청 싫어하는 나는 팍 인상을 찡그리며 허공에 있을 그 시끄러운
날파리들에게 시선을 돌리다가 그대로 벙 쪄버렸다.]
“뭐, 뭐야.. 이것들은?”
그것들은 날파리가 아니었다.
날파리보다 훨씬 컸다.
“내, 내가 지금 헛것을 보나? 나 몸이 많이 허약해 졌나봐…”
내 눈 앞에서 허공을 날아다니는 것들은 모두 내 손 크기 만한 요정같은
것들이었다.
그들은 반투명해서 마치 유령 같이도 보였지만, 유령처럼 희뿌연 색이
아니라 확실하게 색을 띄우고 있었다.
대부분 녹색을 띈 요정(?)이 많았고 그들 중 드문 드문 파란색을 띈
요정들도 있었는 데, 그들은 손에 손을 잡고 웃으며 허공을 날아다니기도
하고 모여서 머리를 맡대고 소근대다가 잠시 후 까르르 웃으며 헤어지기도
하고, 하여튼, 자기 멋대로 놀고있었다.
날파리가 왱왱거리는 듯한 소리는 바로 저 애들이 웃으며 소근거리는
소리였던 것이다.
내가 너무 황당해서 그 애들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니까 마침
어떤 녹색 요정과 파란 요정이 손을 잡고 내가 있는 쪽으로 날아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들은 나를 보자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왔다.
[안녕~]동방예의지국에서 자란 내가 상대방이 호의적인 얼굴로 건네는 인사를
어찌 그냥 씹을 수 있겠는 가?
그래서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어색하게 웃으면서 그들의 인사를 받았다.
“어, 그, 그래… 안녕…?”
그러자 그 인사를 건넨 두 요정이 날아가려다 말고 멈칫 하더니만
내 얼굴 위로 날아와서는 놀랍다는 얼굴로 날 내려다 보았다.
[뭐야, 우리의 인사를 받았어!!] [와, 인간이 우리와 인사했어!!]마치 내가 인사를 할 줄 몰랐다는 태도였다.
“뭐냐, 너희들… 그럴거면 뭐하러 나에게 인사를 한 거야?”
내가 황당해 져서 그 두 꼬맹이들에게 말을 건네자 그들이 더욱 놀란 듯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떠들어댔다.
[인간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인간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어!!] [우리가 보이나봐!!] [하지만 인간은 우리를 못봐.] [그렇긴 하지만 저 인간은 지금 우리를 보고있잖아!!] [정말 신기한 인간이네!!]그들이 그렇게 큰 소리로 떠들어대자 주위에 허공에 떠 있던 다른
꼬마 요정들이 그 소리를 듣고 우르르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봐봐, 이 인간이 우리를 본대!!] [정말? 정말이야?] [헤이, 인간, 우리가 보여?]어떤 초록색 요정이 앞으로 나서더니만 내 눈앞에서 자신의 가냘픈
팔을 휘둘러 보였다.
“뭐야, 지금 뭐하는 거야? 똑똑히 잘 보이니까 장님 취급하지마!!”
그러자 주위에 있던 그 요정들이 저마다 까르르 웃어대며
떠들어댔다.
[와아~ 정말 우리가 보이나봐!] [우리에게 말을 했어!] [신기해, 신기해!]자세히 보니 그냥 색깔만 다른 줄 알았던 파란 요정과 초록 요정은 생김새가
조금씩 달랐다.
둘 다 어린 여자아이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초록 요정은 등뒤에
마치 팅커벨 같은 두쌍의 날개가 달려 있었고, 무릎까지 오는, 주름이 많고,
알아서 계속 나폴거리는 초록 원피스에 초록 머리도 항상 바람에 나부끼듯이
한쪽으로 뻗쳐 팔락대고 있었다.
그에 비해 파란요정은 그리스나 로마신화에 나오는 발까지 내려오는 드레스를
입고있어 발이 보이지 않았고, 그 드레스는 발 부분에서 합쳐져 마치 유령처럼
길이 뾰족하고 구불구불한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머리도 마치 물에 젖은 것처럼 꼬불거리는 머리가 착 밑으로 늘어져
있었고, 초록 요정 같은 날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요정들은 내 주위를 둘러싼 채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꺄르르 웃으며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뭐, 뭐냐… 너희들은…”
그러자 맨 처음 나에게 인사를 건넨 파란 요정과 초록 요정이 같이
대답해 주었다.
[우린 정령이야. 나는 물의 정령] [나는 바람의 정령이야!]‘정령? 정려어엉~~? 이게 무슨 귀신과 정령이 만나 쎄쎄쎄 하는 소리다냐?’
[우린 정령이야. 나는 물의 정령] [나는 바람의 정령이야!]‘정령? 정려어엉~~? 이게 무슨 귀신과 정령이 만나 쎄쎄쎄 하는 소리다냐?’
그러나 나는 속의 생각과는 달리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여줬다.
“아, 그… 그래… 정령이었어?”
‘쟤네들이 너무 오랜 시간 유령으로 있다 보니 자신을 정령이라고 착각하고
있나 봐. 그런데, 예전에도 판타지라는 게 있었나? 정령이라는 걸
어떻게 알고 있지? 쯧쯧쯧… 어쨌든 불쌍한 애들이야. 보아하니 얼마
살지 못하고 죽은 거 같은데…’
비록 그들이 초록색에 파란색을 띄고 있고 모습도 소복을 입고 피를 철철
흘리는 모습이 아닌 깨끗한 복장을 하고 있어서 요정같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솔직히 21C에 요정이 어디 있겠는가?
그나마 나는 유령이나 귀신의 존재는 믿지만, 요정은 깨끗한 자연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것들, 그러니 불쌍한 자연들이 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 시대에 요정은 커녕 정령은 있었다 해도 다 전멸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저 애들을 척 봤을때 유령이라고 단정 지었고, 저들을 보게
된 것도 수영장에서 물살에 휘말리다 어딘가에 머리를 크게 부딧혀서
영적인 능력이 생긴 거라 여기고 있었다.
‘아… 이왕 이런 능력이 생긴 거 앞으로의 진로를 유령 사냥꾼 쪽으로
확 바꿔버릴까? 그런걸 액소시스트라고 하던가? 그건, 그렇고 여긴 참
이상한 곳이군. 왠 어린애 유령들이 저렇게 많아? 이 근처에 공동 묘지라도
있는 건가? 근데 어른 유령은 안 보이고 왜 애들 유령만 있는 거지?’
솔직히 어린 애들 유령이라서 그런지 별로 안 무섭게 느껴져 지금 담담하게
있지만, 만약 어른 유령이 나타난다면 내가 지금처럼 이렇게 담담하게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렇잖아도 지금 이렇게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말이다.
‘아, 빨랑 엄마나 해민이를 불러야지… 근데 엄마는 왜 날 이런 이상한데다
데려다 놓은 거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가진 채 나는 내 앞에서 저희들끼리 떠드는
그 어린 유령들을 향해 물었다.
“저기, 이 곳에 나 말고 다른 인간 못 봤니? 내 또래의 남자 인간이라던가,
아니면 아줌마 인간이라던가…”
그러자 그 유령들은 친절하게 서로 자신이 대답해주려는 듯 재잘거렸다.
[못봤어, 못봤어.] [여기에 인간은 당신 뿐이야.] [우리는 오랜만에 인간을 처음 본 거야.] [맞아, 맞아]…..
“아… 그러냐?”
하도 많은 애들이 한꺼번에 떠들어서 머리가 띵할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알아낼 수 있었다.
‘이 곳에 나 뿐이라고? 설마.. 엄마가 날 혼자 여기에 내버려두고
갈 리가 없는데…’
저 유령 애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 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예전에 유령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에서 유령들이 사람을 속여서
자신들처럼 유령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읽은 것 같아서
난 저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나가서 찾아봐야 겠어.’
그렇게 마음 먹고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몸이 여전히 말을 안 들어서
상체를 겨우 조금만 들어 올리다가 힘들어서 포기하고 다시 뒤로
털썩 드러누었다.
그러자 이런 내 모습이 웃긴지 그 유령들이 또 꺄르륵 대며 마구 웃어댔다.
“헥헥, 이것들아.. 그렇게 웃기냐? 에고.. 힘들다…”
그렇지 않아도 목이 약간 말라 있는데다 힘까지 써서 그런지 목이
몹시 말라왔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봐도, 내 머리맡은 커녕 방 안 어디에도 나를 위한
물주전자는 보이지 않았다.
“우쒸.. 엄마는 아픈 딸내미를 두고 어디로 갔담? 아.. 목마른데…”
침을 내어 목으로 삼켜 보았지만, 너무 양이 작았기에 오히려 갈증만
더 부추기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자 이런 내 행동을 보고 있던 유령들 중 파란 하나가 나에게 물어왔다.
[목이 마르다고? 그럼 내가 물 줄까?]“네가?”
유령이 준다기에 쪼끔 찝찝했지만, 지금 이렇게 목이 타는 상황에서
찬밥, 더운 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허락했다.
‘설마.. 별 일이야 있겠어? 먹고 안 죽으면 돼.’
“그래, 줄 수 있으면 물좀 줄래?”
내 부탁에 그 파란 유령이 생긋 웃더니 자신의 근처에 있던 유령들을
불러 모았다.
[자, 이 인간이 물 먹고 싶대. 우리가 물을 주자.]그러자 그 옆에 있던 파란 유령들이 재잘대며 앞으로 나서서 저희들끼리
뭉쳤다.
[물을 주자, 물을 주자.] [저 인간에게 물을 주자.]그 파란 유령들은 자그마한 팔을 양 옆으로 펼쳐 옆에 있던 파란
유령들의 손을 잡고 둥글게 원을 만들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들이 만든 원 가운데에 아주 조그마한 물방울들이
하나, 둘 생겨나더니만 그 작은 물방울들이 뭉쳐 조금 더 큰 물방울들을
만들고, 그 조금 더 큰 물방울들이 합쳐저 좀 큰 물방울을 만들고…
그리하여 결국에는 내 주먹만한 커다란 물방울 하나를 만들어 내는
거였다.
[이 정도면 충분 하지?] [충분 할까?] [충분 할 거야.] [모자르면 어쩌지?] [그럼 또 주면 돼지.] [아, 그렇구나…]그렇게 저희들끼리 재잘 재잘 의논을 하더니만 의논을 끝냈는지
일제히 나를 돌아 보며 말했다.
하지만, 물방울이 너무 커서 입에 들어가기 보다는 내 얼굴에
그대로 작렬할 것만 같아서 나는 불안했다.
“저, 저기.. 미안한데, 한 두 세조각으로 나눠주면 안 될까? 한번에
먹기에는 너무 많은데…”
그러자 그 유령들은 자신들 사이에 만들어진 물방울을 보더니
다시 날 보고는 꺄르르 웃었다.
[괜찮아, 괜찮아.] [그래, 괜찮아.] [우리가 알아서 할께.] [입을 벌려] [입을 벌려]믿어도 될지 심히 불안했지만… 나는 그냥 물벼락 맞아주자는 셈으로
입을 작게 벌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들 사이에 있는 내 주먹만한 물방울이 쭈욱 늘어나더니만
내 손가락 만큼 가는 물줄기가 되어 조르륵 하며 내 입속으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얼결에 꿀꺽 삼키자 꽤 시원한 생수였다.
[맛있지? 맛있지?]내가 먹는 모습에 마치 합창을 하듯, 그러면서 나에게 뭔가를 바라는 듯한
빛나는 눈동자로 말하는 그들을 향해 나는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너무 맛있어. 고마워..”
그러자 그 파란 유령들이 꺄르르 웃으며 흩어졌다.
그러면서 재잘대는 것은 잊지 않았다.
[맛있대, 맛있대] [우리더러 고맙다고 했어!] [인간이 우리보고 고맙대!!]그런 천진난만한 유령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몸을 침대 – 푹신하니까 아마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 에 깊숙히 누이며 눈을 감았다.
아직 몸이 그렇게 좋지 않아서 그런지, 아주 잠깐 그 유령들하고
이야기를 나눈 것 뿐인데도 다시 졸음이 쏟아졌던 것이다.
‘요즘 유령들은 별 희안한 재주를 다 가지고 있구나… 별일이야…
음, 다음에 눈을 뜨면 옆에 아무라도 좋으니 인간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소박한 기원을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깝게도 내가 눈을 뜨자 내 눈에 보이는
천장은 흰 바탕에 보라빛 작은 꽃이 그려진 벽지가 발라져
있는게 아니라 여전히 통나무와 흙으로 만들어진 채 당당히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허공에는 눈 감기 전에 본 그 어린 유령들이 동동 떠다니다가
내가 눈을 반짝 뜨자 꺄르르 웃으며 떠들어댔다.
[야, 깨어났다. 깨어났어!!] [어디, 어디?] [저봐, 눈을 떴어!!] [이봐, 우리가 아직도 보여?]‘여전히 시끄럽군…’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래, 보인다. 아주 자알~ 보인다.”
그러면서 고개를 돌려보니, 여전히 내 옆에는 아무도 (그러니까 인간이)
없었다.
“아, 정말.. 엄만 나만 이런데 냅두고 어디 간 거지?”
한 초록색 유령이 내 이마 위를 휙 지나가자 바람이 생겨서 (유령이 그럴
수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작은 머리칼이 내 이마를 덮으며 눈가를
간지럽혔다.
나는 커트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멋을 좀 내느라 앞머리는 길게 해서
양 옆으로 늘어뜨렸기에 그 앞머리가 이마 위로 올라오자 눈을 찌르는
거였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머리위를 쓸어 올려는데, 어깨에 약한
통증이 느껴져서 눈쌀을 찌푸리다가 아까는 손가락 끝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는데, 지금은 근육통이 느껴지지만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놀랐다.
“어? 이제 몸이 좀 나아졌나보네? 역시 한잠 더 자서 그런가?”
목도 아까보다 훨씬 나아져서 팍 잠겨서 쉰 목소리가 아닌 거의
내 본래 목소리로 돌아와 있었다.
그러자 그런것이 신기했는지 유령들이 또 떠들어댔다.
하지만, 시끄럽기도 하고 일일이 대꾸해주자면 끝이 없을 것 같아
싸악 무시하면서 나는 윗 몸을 일으켜 보았다.
윗 상체를 버텨 일으키는 팔이 부들 부들 떨리고 온 몸의 근육이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대긴 했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던 터라
나는 꾹 참고 일어나 앉았다.
역시 내가 누워 있던 곳은 침대였다.
일반 매트처럼 스프링이 너어져 탄력 있는게 아닌, 그냥 솜만 잔뜩 넣어
폭신한 느낌만 나게 하는 형식이었지만, 솜을 넣은지 얼마 안 되었는지
되게 폭신 거렸다.
“헐.. 요즘 이런 침대도 다 있고…”
하기사, 내가 있는 방 안도 무지 옛날 형태로 꾸며져 있었는데
침대만 신식이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라고 납득한 나는 일어서기
위해 몸을 돌렸다.
한동안 누워 있다가 갑자기 몸을 일으켜서 그런지 머리가 띵 하고
팔, 다리가 부들 부들 떨려 제대로 서기도 힘들어 이대로 다시
누울까 했지만, 이 곳이 어딘지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컸기에
약간 무리를 해서 발을 내디뎠다.
내가 제대로 걷지 못하고 아주 느리게 휘청대며 앞으로 나아가자
정령들이 걱정스러운지 자신들이 도와준다느니, 다시 침대로
돌아가라느니 떠들어댔지만, 손을 휘휘 저어 그들의 제의를
거절하고 내가 있는 방을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나무 문을
열어 밖으로 나갔다.
그 곳은 거실인듯, 바닥에는 양탄자가 깔리고, 한쪽에는 벽난로가
있었고, 가운데에는 소파와 소파용 탁자, 발 받침대, 흔들 의자
등등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쪽에는 문이 달리지 않고 대신 천이 절반쯤 내려와 안을
가리는 입구가 있었는데, 아마도 부엌으로 통하는 곳인 듯 했다.
그리고 그곳 맡은 편에는, 내가 나온 것과 같은 문이 달려 있고,
소파 넘어의 내 정면에는 현관문인 듯한, 조금 더 크고 튼튼한
문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집안이 되게 조용하고 썰렁한 것이
마치 사람이 오래 비워놓은 집 같은 분위기였다.
물론 거실에도 내가 있던 방에서 본 그 유령들이 떠돌고
있었지만….
게다가 현관 문 양 옆에 있는 창은 나무 덮개로 덮여 있어
햇빛을 차단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난 불현듯 무엇인가가 떠올라 뒤를 돌아보니
역시나, 내 침대 옆에도 커다란 창이 있었는데, 그 창도
똑같이 덮개가 덮여 있었던 것이다.
아까는 그 모습을 그냥 지나쳤지만, 사람이 사는 집에 햇빛도 안 들어오게
모든 창문을 꼭꼭 막아놓은 모습은, 아무도 살지 않는 텅 빈
썰렁한 분위기와 함께 내 마음 속에 불안감을 심어주고 있었다.
“이상하네…”
그런 불안감을 해소시키려고 일부러 소리내어 중얼거리며
밖으로 나가기 위해 현관문쪽으로 향하던 나는 다시 한번
멈칫 거렸다.
문은 물론 창문까지 꼭꼭 닫힌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사물을
볼 수 있는 것일까, 하는 거였다.
하지만, 곧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는데, 허공을 떠도는
유령들이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희미한 빛이긴 해도 하나, 둘도 아니고 수십명은 될 것 같은
그 반투명한 유령들이 모여 있으니 주위를 충분히 구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 어두운 곳에 있어서 그렇게 빛을 내는 것 같지만, 어쨌든
이 상황에서는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참내… 사람이 있는데 엄마는 불도 안 켜놓고 어딜 간 거야?”
나는 다시한번 투덜거리며 허공에서 동동 떠다니고 있는
유령들을 헤치며 우선 밖으로 나가보자는 심정으로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불도 다 끄고 어디론가 가버린 엄마가 혹시나 현관문까지
잠가놓지는 않았을까 걱정하긴 했지만, 다행히 잠그지는 않았는지
옛날 식으로 된 둥그런 문고리를 잡고 힘껏 미니 쉽게 열렸다.
그러나 나는 현관문이 열렸어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아니, 나갈 수가 없었다는 게 더 정확했다.
너무 놀라서 입이 저절로 벌어지고 온 몸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현관 문 앞에는 자그마한 터가 있었고, 그 너머에 낮은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그리고 울타리에 달린 문과 현관문 사이의 길에는 자갈이 깔린
작은 길이 있었다.
하지만, 길 좌우에 있는 잔디와 한쪽에 마련된 밭의 채소, 그리고
울타리에 달린 문 양 옆에 심겨진 커다란 나무는 시들다 못해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울타리 너머에는….
다양한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니고 해초가 물결에 하늘 하늘
흔들리고 있는 바다속이 존재하고 있었다.
울타리를 기준으로 이 집 전체를 무슨 막 같은 것이 둘러 싸
비록 바닷물이 집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했지만, 이 집이 바다
속에 있는 것만은 틀림 없었다.
그리고 현관문 밖의 공기가 존재하는 곳에는 어김없이 그 초록
유령들이 몇몇의 파란 유령들과 같이 떠다니고 있었고,
바다 속에는 그보다 훨씬, 훠어어어어얼씬 더 많은 파란 유령들이
헤엄쳐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굳어있던 나는 시야가 다시 한번 검어지는
것을 느끼며 뒤로 넘어가버렸다.
쿠당탕~~!!
다시 한번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뒤통수에서 얼얼한 통증이
느껴졌다.
내가 기절했을때 부딧힌 모양이었다.
“우쒸.. 너무 아프다…”
입으로는 그렇게 투덜대고 손으로는 아픈 뒤통수를 어루만지며
몸을 일으켜 침대에 앉으니 여전히 허공에는 그 유령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아까 내가 깨어날 때는 활기차게 재잘대며 돌아다니던
녀석들이 지금은 무슨 일인지 잔뜩 굳어져서는 입을 꼬옥 다문채,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가만히 허공에 떠 있는 것이었다.
‘어? 쟤들이 뭘 잘못 먹었나? 왜저래?’
하지만 이런 내 궁금증을 풀기도 전에 나는 나를 향하는 듯한
차가운 어투의 말을 들어야 했다.
“멍청하기는…”
유령들이 말할 때의 잔 울림이 없는, 완전한 인간의 목소리였기에
난 너무 반가운 생각에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나 이렇게 내 반가운 마음과는 달리 그 곳에 있는 인간은
무척이나 차가운 눈길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노려보고 있는게 더 정확한 표현일라나?
그러나 처음 보는 그 사람이 그러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입이 다시
떠억 벌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마치 고대 그리스나 로마 사람들이 입었음 직한, 하얗고 얇은
천을 주름을 잡아 뒤집어 쓰고 있는 듯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얼마나 긴지 땅에 질질 끌리다 못해 옷자락이 땅에 약간 쌓여 (?)
있었다.
게다가 그는 내가 처음 본, 거의 하늘색에 가깝지만 그와는 약간 다른,
그러니까 투명한 파란색의 숱많은 생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의 피부는 아기 피부보다도 더 깨끗하고 하얀데 얼굴은 무지 잘생겼다.
비록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의 늘씬한 몸에 잘 어울리는, 중성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조각같은 외모였지만, 그의 온 몸에서 풍겨나오는
분위기는 그의 약해보이는 외모를 카바해 절대로 약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하기야, 날카로운 눈매 때문에라도 순정 만화에 나오는 부드러운 꽃미남
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너무 잘생긴 남자였다.
내가 어떻게 그가 남자인 줄 알은 거냐 하면, 우선 목소리가 남자의 목소리였고,
비록 가슴은 천의 많은 주름 때문에 가려져서 알 수 없지만, 가장 확실한
증거인 아담즈 애플이 당당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성격은 얼굴만큼이나 멋지지 못한 지 내가 말을 잃고 그만
멀거니 쳐다보고 있자 그 날아갈 것 같은 눈썹을 못 마땅하다는 듯
찡그리더니 다시 한번 틱틱 대며 말하는 거였다.
“뭘 보냐? 그런 멍청한 표정으로…”
이 순간 나는 마음 속 깊숙이 내 인생의 표어 하나를 수정해
다이아몬드에 새겨서 간직했다.
‘못생긴거는 봐줄 수 있어도 성격 드러운 건 봐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