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ughter of the Elemental King RAW novel - Chapter (27)
제 21화 두번째 임무 (4)
“안녕히 가십시요오~ 다음에 또 들려 주십시오오~”
피곤에 잔뜩 절었지만, 하루 일과가 드디어 끝났다는 해방감인지, 아니면 오늘 매상이 엄청 커서
행복한 탓인지 힘찬 주인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헤롱헤롱 하는 정신을 부여잡은 채 그 주점 겸
식당을 나올 때는 새벽녁인 듯 했다.
달이 거의 서편으로 기울어져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 술 한잔 입에 대지는 않았지만, 걸신이라도 잠시 들렸는지 엄청 먹어댔다.
그런 걸 가지고 안주발이라고 했던 가?
평소에 먹던 양의 몇배는 더 먹었던 것 같다.
사람이 술을 마실 때 술에 취하기도 하지만 분위기에도 취해 마신다고 하더니만, 나는 분위기에
취해 쉼 없이 음식들을 집어 먹었던 듯 했다.
나에게 이런 면이 있었을줄은 몰랐지만…
‘내가 이리 식탐이 많았을 줄이야.’
덕분에 지금 속이 거북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며 휘청이고 있지만…
“괜찮으십니까?”
“괘, 괜찮을 거예요. 우욱… 이, 이정도 쯤이야… 철도 소화시킬 나이인데… 꾸륵…”
그것뿐이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지금 새벽까지 안 자고 분위기에 휩쓸려 신나게 떠들고
웃어댄 덕에 무지 피곤하고 졸려서 눈이 반쯤 감긴 상태였다.
조금만 정신을 흐트리면 이놈의 눈꺼풀이 주인의 의지를 무시하고 스르르 내려와 감기는 거였다.
그러다가 거북한 속이 뒤틀리면 다시 확 정신을 차려 눈을 뜨고, 그러다 눈꺼풀이 기회를 봐서
다시 내려오고, 거북한 속이 용트림을 하면 다시 정신을 차리고…
그런 일이 반복되니까 아주 죽을 지경이었다.
옆에서 듀비가 날 거의 들어올리다시피 부축해 주지 않았다면 난 걷지도 못했을 거였다.
너무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동료 무사들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들이야 취해서 길거리에 쓰러져 자던 말던, 누가 일일이 챙겨 숙소까지 옮겨주던 말던 내
코가 석자인 터라 신경 쓰고 싶어도 쓸 처지가 아니었다.
뭐, 그 와중에 힐끗 본 거에 의하면 잭슨과 머튼이 동료를 수습하고 삯마차를 불러서 태우는 등
그들을 챙기는 듯 했지만 말이다.
“그러길래 왜 그렇게 많이 드신 겁니까? 적당히 드시지요…”
“우욱… 그, 그게… 나도 모르게… 에구, 에구…”
“숙소에 도착하면 약을 구할 수 있을테니 조금만 참으십시오.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견디시겠
습니까?”
“그, 그래야죠…”
말하기도 힘겨웠다.
더럽기는 하지만 잘못 했다가는 속의 음식물이 올라올 것 같아…
‘우욱… 생가하지 말자. 생각하지 말자… 무념무상… 무념무상…’
그쪽으로 생각하니까 더욱 더 쏠렸던 것이다.
아버지가 이 모습을 보면 뭐라고 하실지…
‘허걱… 이 모습을 절대 보여줄 수는 없지.’
그 생각을 하니까 정신이 확 깨이는 듯 했다.
그런 내 앞에 아까 머튼이 있는대로 다 불러댔던 삯마차 중 하나가 우리 앞에 와서 섰다.
“거기분들, 타시렵니까?”
이제 완연한 가을이라 해가 떨어지면 찾아드는 추위를 견디기 위하여 두툼하게 차려 입은
마부가 우리를 불렀다.
“성 밖의 베지테크스 창고로 가주시오.”
다른 지역의 성에서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라지만, 이 곳 그레이험성에서는 밤에도 성문이
열려 있다.
원체 외적이나 몬스터등에 의한 침략이 없는 곳인데다가, 성이 세워진 이유 또한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국가에서 계획적으로 항구를 만들면서 성을 같이 세웠던 것이다.
게다가 성 바깥에 많은 상회의 창고가 있던 터라 늦게까지도 왕래하는 경우가 빈번하여 어느때
부터인가 아예 성문을 낮이나 밤이나 열어놓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성문을 수비하는 경비대를 세워두기는 했지만 어차피 이 성으로 들어오는데 까다로운
검문을 하지는 않았던 터라 거의 형식적이었다.
그만큼 이 곳에 많은 나라들의 사람들과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수시로 왕래했기에 그럴 수
밖에 없었겠지만…
그리하여 이렇게 삯마차에게 성 바깥까지 가 달라고 당당히 요구를 할 수 있는 거였다.
그만큼 돈을 많이 달라고 하게 되겠지만 말이다.
“자, 천천히 오르십시오. 발 조심하시고…”
듀비의 부축을 받아 힘겹게 마차 안으로 올라탄 나는 걱정스레 그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삯마차를 불렀네요? 돈은 있어요?”
“저는 없지만 머튼 대장 말로는 그 곳에 도착하면 거기서 지불해 줄 거라고 하더군요.”
“아…”
듀비의 말에 나는 안도함으로 인하여 고개를 끄덕이고 초라한 마차 내부의 의자에 몸을 기댔다.
의자에는 얇은 천 방석만이 깔려 있어 나무의 딱딱함을 그대로 전달해주고 있어 불편했지만
지금 내 상태로는 정령들을 불러낼 처지도 아니었기에 이 정도에도 감지덕지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그 생각은 뒤바뀌었다.
고급 마차가 아니라서 그런지 마차의 덜컹거림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달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번 덜컹 거릴때마다 속이 같이 울렁 거려 그렇지 않아도 안 좋은 속이 더더욱이나
안 좋아 참는게 정말 고역이었다.
덜컹~
“우욱~”
더커덩
“우우욱~”
이마에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히는게 느껴졌다.
아마 내 얼굴은 누렇게 변했을 터였다.
‘다시는… 다시는 이렇게 과식을 하지 말아야지. 다시는…’
덜컹~
“우욱~”
그렇게해서 성 밖 베지테크스 상회 창고라고 불리는 곳에 도착하는 길은 너무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
그 길을 어떻게 참아냈는지, 그러고보면 내 인내도 꽤나 강한 듯 싶었다. – 이게 인내심과 별로
상관이 없을지라도 말이다. –
그리하여 겨우 겨우 도착하자마자 잽싸게 바깥으로 내리자 시원한 공기가 나를 덥쳤다.
좁은 삯마차 안에서는 덜컹거리기도 하거니와 답답해서 더욱 더 버티기 힘들었는데 이 두가지가
사라지자 그나마 살 것 같았다.
“에구.. 에구…”
물론 완전히 살아난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날 힐끔 바라본 듀비는 대기하고 있던 한 무사에게 다가가서 정중하게 요청을 했다.
“약 좀 구할 수 없겠습니까?”
그러자 그 무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한쪽을 가르키고 그 곳에는 뭔가 바구니를 가지고 있던
무사가 서슴없이 자그마한 나무통을 내미는 거였다.
듀비는 주저없이 그것을 받아들고 나에게 왔는데 나무통 안에서 찰랑거리는 액체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아마 물약인 듯 했다.
듀비가 나에게 먹여주려는 듯 마악 마개를 빼내고 나에게 가까이 대자 알싸한 약초 냄새가
풍겨왔다.
그 냄새를 맡으며 부디 이거 먹고 효과를 보길… 하며 입에 대려 하는 순간 나는 나보다 한 발
늦게 도착하여 대기하고 있던 무사에게 부축을 받으며 내려 선 만취한 무사가 나와 같은 물약을
받아 마시는 걸 보고 멈칫할 수 밖에 없었다.
“이거… 무슨 약이야?”
내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너무나 작았기에 내 말을 받은 듀비가 약을 나눠주는 무사에게 다시
물을 수 밖에 없었다.
“이거 무슨 약입니까?”
그러자 그 무사는 내 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이제 속속 도착하는 무사들에게 열심히 약을 나눠
주면서 성의없이 대꾸했다.
“숙취에 좋은 거니까 그냥 먹여요.”
그 소리에 나는 그렇지 않아도 기운 없는 몸이 아예 땅으로 꺼질 듯한 기분이엇다.
“나는… 술에 취한 게 아니라 배탈이 난 거야…”
결국 그 약을 먹지 못한 나는 거의 듀비에게 업히다시피 해서 의무실로 향했다.
한 밤중이라 한산할 줄 알았던 의무실은 황당하게도 꽉 차 있었다.
나는 혹시나 곤히 자고 있는 의무반 사람을 깨울 거 같아 되게 미안하게 생각했었는데, 왠걸,
의무실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나는 들어가지 못하고 듀비가 혼자 들어가서 겨우 약을 얻어내야
했다.
술에 취하면 괜히, 쓸데없이 자신의 온 몸을 내던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더니만, 아무래도
이번 동료 무사들 중에도 그런 인물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내 기억으로는 식당 안에서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셨어도 싸움 같은 건 일어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음… 장난치다가 나뒹굴었을 수도…’
아마 싸우고 싶어도 머튼이 떡 하니 버티고 있었으니 꿈도 못 꿨겠지만…
어찌 되었든, 나는 듀비가 바쁜 의무반 사람을 못살게 굴어서 간신히 얻어 온 어두운 초록색의
냄새도 고약한 두개의 알약을 건네 받았는데, 약이 우황청심원보다 조금 더 커서 물하고 같이
삼키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 절망스럽게도 그 약은 물과 같이 먹으면 약효가 떨어진다나 어쩐다나 하면서
그냥 씹어 삼키라는 거였다.
“이, 이걸… 그냥요?”
듀비가 그 약알을 처방해준 것이 아니라 그도 별 다른 수가 없었지만, 그렇게라도 말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냉정하게도 듀비는 내 말에 고개를 그냥 끄덕이는게 아닌가?
“그냥 씹어 드셔야 한답니다.”
“에구구구…”
나는 절망적으로 한숨을 내쉬며 손바닥 위에 올려진 그 시커머튀튀한 약을 바라보았다.
생각 같아서는 먹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내 상태가 너무 안 좋았기에 어쩔 수 없이 눈을 꽉
감고 알약을 털어 넣었다.
“우엑…”
냄새도 고약하더니만 맛은 더 고약했다.
속을 다스리는 약이라더니 맛으로도 속을 더 안 좋게 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버틴게 너무 아까워 이를 앙 다물고 버티는데 듀비가 갑자기 내 등과 무릎
뒤 쪽에 손을 집어 넣더니 날 조심스레 안아 드는 거였다.
그래 놀라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입을 여는 거였다.
“혼자 걷기에는 무리이실 것 같고, 업자니 아무래도 속이 안 좋으시겠지요? 이렇게 안아서
옮겨드리는게 나을 것 같아서요.”
“아… 욱…”
고맙다고 입을 열려고 했는데 입을 열자마자 왠지 약이 식도에 걸린 것만 같은 냄새가 확
올라오는 게 느껴져 재빨리 입을 다물어야 해다.
‘에고고…. 속이야…’
평소 같으면 해민이가 그런 듀비를 향해 으르렁 거렸겠지만, 지금은 내 상태가 워낙 안 좋아서
그런 것도 잊어버렸는지 듀비 옆에서 날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며 따라오고 있었다.
결국 그날 나는 집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 갈 기운도 없었으려니와 갔다가 이 꼴을 아버지께
보여 뭔 소리를 들을까 무서웠기에 – 해민이에게는 쬐께 미안했지만 그의 침대를 차지한 채
드러 누웠다.
그나마 그 고약한 맛의 약은 그래도 효과가 좋아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약효가 서서히 돌아 나는
속이 편안해져 잠들 수 있었다.
만약 안 그랬다면 아마 같은 방에서 자는 듀비와 해민이가 나의 끙끙 앓는 소리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잤을 것이다.
새벽 늦게 잠자리에 누워서 그런지 눈을 떴을때는 햇살이 강한 것이 아무래도 한 낮인듯 싶었다.
“우우우웅~~~”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서 그런지 찌뿌둥한 몸을 기지개를 펴서 풀며 일어나보니 해민이와 듀비는
벌써 일어나 나갔는지 방에 없었다.
아마 내가 너무 곤히 자서 깨우지 않고 저희들끼리 나간 모양이었다.
그래 우선 나가서 얼굴이라도 씻으려고 몸을 일으키며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 배고프… 헉…”
세상에 어제 그렇게 과식해서 고생을 해놓고서도 이놈의 위장은 자존심도 없는건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배고픔을 호소하는 거였다.
“헉… 내가… 이런 식충이었을 줄이야…”
스스로에 대한 실망으로 의기소침하여 터널터널 문을 나서던 나는 마악 듀비와 해민이의
방 문쪽으로 향하던 잭슨과 마주쳤다.
“엑?”
그에 놀라 눈을 똥그랗게 뜨는데 잭슨이 반가운 표정을 떠올리며 나에게 다가왔다.
“아, 이제 일어나는 거야?”
“아? 에? 응…”
마치 기다렸다는 듯한 그의 말에 놀라 얼결에 대답하자 그가 다짜고짜로 내 팔을 잡아 끌었다.
“자, 가자.”
“응? 어디를?”
그에게 질질 끌려가면서 묻자 잭슨은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대꾸했다.
“상회 본부. 그쪽에서 너와 나를 호출했어.”
“아앗, 밥도 못 먹었는데?”
이럴때도 밥 타령을 하고 있다니, 나는 어쩔 수 없는 식충이었나보다.
“늦게 일어난 네 탓이야.”
“잠깐만, 해민이하고 듀비도 데려가면 안돼? 그 둘은 내가 없으면 찾아다닐 거라고.”
“식당에서 식사하기에 내가 널 데리러 간다고 했어.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으니까
지금쯤 거기 있을 거야.”
“식당에서 식사하기에 내가 널 데리러 간다고 했어.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으니까 지금쯤
거기 있을 거야.”
“뭐? 그럼 나만 식사를 못하는 거잖아?”
“그러길래 누가 늦게 일어나래?”
“아앗, 이럴 수는 없는 거야야야~~”
“시끄러워. 잔소리말고 빨리 따라와!”
그렇게 잭슨에게 거의 끌려가다시피 도착하니 그 곳에는 이미 듀비와 해민이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는 해민이의 얼굴에는 배부른 자만이 보일 수 있는 기분좋은
포만감이 어려 있어 나는 평소 같으면 귀엽게 보았을 해민이의 애교 어린 얼굴이 지금 이 순간
만은 무지 얄미워 보였다.
역시 나는 이것 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흐흐흐… 해민아… 배부르니?”
덕분에 내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평소의 해민이에게 하던 대로가 아닌 약간 음침한 어조일 수
밖에 없었다.
그에 해민이는 약간 멈칫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만, 내가 그러는 이유를 몰라서인지, 아니면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라 치부해버린 건지 다시금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거였다.
그 해맑고 깨끗한, 너무 순진한 모습에 나는 일순 내가 너무 추악한 녀석이 된 것 처럼 느껴져
기분이 저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에휴휴휴~ 내가 이런 인간이었을 줄이야…. 괜히 애꿏은 우리 해민에에게 화풀이나 하구…
모두 다 내 탓인 것을…”
차마 그런 모습의 해민이에게 화풀이는 못한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대신 해민이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데, 그때 뒤에서 조용히 있던 듀비가 앞으로 나서면서 나에게 종이에 쌓인 뭔 꾸러미를
내미는 거였다.
“이것 받으십시오.”
“예?”
얼결에 받아보니 바스락 거리는 종이 아래에는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뭔가가 들어있는게
느껴졌다.
그리고 거기에서 얼핏 희미하게 나는 이 향기로운 냄새는…
나는 재빨리 종이를 풀어보아 안에 있는 물건을 확인하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설명해주는 듀비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말이다.
“다행이 식당 안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쉽게 주방에다 부탁할 수 있었습니다.”
그 안에 든 것은 내 예상과 틀리지 않게도 아직도 따끈따끈한 두개의 빵 사이에 – 아마도 하나의
빵을 두개로 나눈 듯한 – 바싹 구운 베이컨에 양파, 양상치 같은 야채가 소스에 버무려져 들어
있었다.
“오오~~ 듀비~~”
그 순간 듀비의 모습은 뒤에 새하얀 두 장의 날개가 달리고 머리 위에는 황금빛 둥그런 환이
떠올라 있는 것 처럼 보였다.
내가 감격이 가득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반짝반짝 광선을 쏘아보내자 그가 쑥스러운지 슬쩍
고개를 돌리면서 한 가지 더 건넸다.
“그리고 이것도…”
이번 거는 내 팔뚝 길이보다 약간 작은 나무 물통이었다.
“우유 입니다. 아무래도 빵만 드시면 목이 마르실 것 같아서…”
“오오옷~~”
감동, 감격, 환희, 행복 ~
그 모든 감정이 어우러진 눈빛으로 듀비에게 뭔가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그 보다도
먼저 잭슨이 끼어들어 이 좋은 분위기를 망쳐놨다.
“자자, 그럼 이제 다 된거지? 그럼 가자고. 다른 건 마차 안에서 해도 되잖아?”
그러면서 대기하고 있는 마차 쪽으로 내 등을 떠미는 거였다.
“자, 빨리 올라 타. 해민이하고 듀비도요~”
“어어어~ 자, 잠깐만…”
그렇게 잭슨에게 떠밀리다시피 내가 마차에 오르고 그 뒤를 해민이와 듀비, 마지막으로 잭슨까지
올라타 마차의 문이 닫히자 마차는 나는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참내… 뭘 그렇게 서두르는 거야?”
마차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내가 투덜댔지만 – 그래도 손 안에 먹을 것이 있어서 그런지 강도는
약했다. – 잭슨이 찌릿한 눈으로 봤다.
“할 일 없이 거기에 계속 서 있을 수도 없잖아. 본부에서 호출이 왔다니까?”
“그래, 그래. 그래서 가고 있는 거잖아.”
한번 투덜대보기는 했지만, 내가 잘한 건 없었기에 나는 작게 궁시렁 거리는 것으로 말을 맺고는
손에 들린 베이컨 샌드위치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역시~ 인생에 있어 세가지 도락 중 하나라고 하더니만 그게 틀린 말은 아니라니까~ 아…
행복해…’
그렇게 내가 마차 안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채 빗지도 못하고 나온 머리를 대충 손으로
나마 빗어 단정하게 묶고 운디네를 불러 세수까지 끝내자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는 성 안에
있는 베지테크스 상회 본부 건물 앞에 도착했다.
‘헤에… 여기 참 오랜만에 오네…’
그 건물은 내가 레이언, 크리스에게 상회에 합류하겠다고 약속한 후 한번 가본 뒤로 한 번도
온 적이 없었다.
그런 곳을 몇달 뒤에 다시 오게 된 것이었다.
‘이야… 겨우 몇달인데 마치 몇년 만에 다시 오는 것만 같잖아?’
그렇게 커다란 상회 본부 건물을 올려다보며 감회에 젖어있는데, 이런 날 잭슨이 가만 두질
못했다.
“뭐 하는 거야? 빨리 빨리 들어가자고. 머튼 대장도 와 있을 거란 말야.”
“머튼 대장이? 왜?”
머튼 대장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잭슨이 한 시라도 빨리 도착하려고 그리 닥달을 했던 모양이다.
“나도 몰라. 어차피 가면 다 알게 될 거잖아. 빨리 가자고. 늦으면 내가 머튼 대장의 눈초리를
다 감당해야 한단 말야.”
애처럽게 재촉하는 잭슨을 이해 못할 게 아니었기에 나는 그의 바램대로 얼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잭슨은 건물 내부를 꿰고 있었는지 들어가자마자 누구의 안내도 받지 않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거였다.
그의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가며 나는 그에게 말을 건넸다.
“저기, 왜 우리를 호출하는 건지 몰라?”
“나도 자세한 이야기는 못 들었어. 단지 너하고 빨리 오라는 소리만 들었거든.”
“그래? 왜 불렀을까나? 혹시… 이번에 너무 수고했다고 보너스를 주려는 걸까?”
내 상상의 나래를 듣던 잭슨은 피식 웃었다.
“그런 거라면 이렇게 급하게 찾을 필요도 없잖아. 아마 뭔 일을 맡기려는 모양이야.”
“엑? 벌써? 도착한지 이제 겨우 하루 지났는데… 아, 가만… 머튼 대장도 있다고 했지? 설마
이번에 또 머튼 대장이랑 같이 일하는 걸까나?”
뜨악 하는 내 어조에 잭슨은 아마 각오하고 있었던 듯 덤덤하게 대꾸했다.
“나도 모르지.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봐.”
“으에…”
머튼 대장은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워낙 고지식해서 그와 일을 하면 힘든 일이 없어도 왠지
알게 모르게 피곤해지는 것 같았다.
뭔가 잘못한게 있을까봐 항상 긴장하고 있는 탓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나마 북 드워프 마을에 갔을 때는 그의 밑에 있다기보다는 같이 있어도 다른 일을
전담하고 있었기에 괜찮았는데 혹시 이번에 그의 밑에 있게 된다면…
‘아아… 상상하고 싶지 않아. 머튼 대장에게는 미안하지만 같이 하라고 한다면 아버지 핑계를
대서라도 집에 갈란다.’
그렇게 생각할 무렵 잭슨이 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눈 앞에 있는 방문에 대고 노크를 했다.
‘아… 그러고보니 여기는…’
주위를 둘러보니 왠지 낯이 익은 곳이었다.
내가 상회 본부 건물에서 유일하게 눈에 익은 곳, 바로 레이언 녀석의 사무실이었다.
“네.”
여전히 넓고 우아하게 꾸며진 사무실 안에는 전혀 안 어울리는 레이언이 크리스, 머튼과 함께
우리를 반겼다.
“어서와.”
예의 그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넨 건 레이언이었고, 크리스는 가벼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머튼은…
“늦었군.”
예의 냉정한 얼굴로 우리의 가슴을 콕 찌르는 한 마디를 던지는 거였다.
‘에구… 역시나…’
“자자, 우선 이쪽으로 앉지. 아직 피로도 안 풀렸는데 호출해서 미안해.”
“뭐, 푹 잤으니까 괜찮아요.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잭슨이 레이언이 가르키는 소파에 앉으면서 묻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세 사람도 같이 자리를
잡고 앉아 우리를 바라보았다.
“뭐… 별거는 아니고…”
싱글싱글 웃으며 입을 여는 레이언의 말투는 정말 별거 아닌 것 처럼 들렸지만 잭슨은 긴장을
풀지 않은 채로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 잭슨에게 레이언이 싱겁게 웃으며 손을 저어 보였다.
“그렇게 긴장할 거 없어. 시간이 좀 부족해서 그렇지 크게 대단한 일은 아니니까 말야.”
“그게 도대체 무슨 일인데?”
대단한 일인지 아닌지는 내가 듣고 판단해야 하는게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자꾸 본론은 이야기 안 하고 서론에서 맴도니 나까지 끼어들어 다그치자 크리스가
끼어들었다.
“그냥 내가 이야기 하지. 너희들은 왈그린 국에 우리 상회 지부가 있다는 것 알고 있지?”
예전에 지나가는 투로 잠깐 들은 적은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이자 크리스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재차 입을 열었다.
“왈그린국의 수도인 그랜드마에 있는 지부에서 연락이 왔어. 뛰어난 실력파 몇몇만 지원해
달라고 말이야.”
“왜? 거기에는 실력 있는 자들이 없어?”
“물론 있지. 그런데 하필 그 실력파들이 지금 대부분 운송 경호를 나가느라 자리를 비웠는데
얼마 안 있으면 그쪽에서 대규모 노예경매가 열리게 되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는 거야.”
왈그린 나라는 라센 국가처럼 공식적으로 노예 매매를 허용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법으로
금지를 해놓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암묵적으로 허용하는 상태라고나 할까?
뭐, 벨레니 같은 국가는 법으로 금지를 해도 권력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이 법의 눈을 피해 뒤에서
거래를 하는 정도니 왈그린 국가 같은 곳은 매년 축제때마다 열리는 야시장 처럼 일정 기간
마다 노예매매시장을 벌여왔다.
그런데, 가끔은 돌발적으로 매매를 할 때가 있다고 한다.
“이번에 열린다는게 바로 그런 돌발적인 매매인 듯 해. 그런데 이번에 열리는 매매에는 다른때
쉽게 볼 수 없는 이종족노예가 선보인다는 정보래.”
“그럼 엄청난 자금이 모여들겠군요.”
잭슨의 말에 크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래서 놓치기가 아까운데 하필 본부에 인력이 빠져나간 상태라서…”
“운이 안 좋았네. 그렇게 어긋나다니…”
“운이 안 좋았네. 그렇게 어긋나다니…”
내 중얼거림에 대답한 건 레이언이었다.
“맞아. 운송 나간 측에 연락을 해놓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제 시간에 돌아오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하더군. 그래서 우리측에다 도움을 요청한거지.”
“그쪽 나라에는 수도 외에 다른 곳에 지부가 없어?”
“아아, 두 군데 더 있기는 한데 그쪽에서 모아도 역부족인 모양이야. 그래서 혹시나 하고
우리쪽에 부탁을 해온 건데…”
“그렇군요. 그럼 거기에 저와 해인이가 가게 된 겁니까?”
잭슨의 질문에 레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가능하면 몇몇의 무사를 더 붙여주고 싶지만… 촉박한 시간에 많은 인원이 이동하기는
힘들테고, 해민이와 듀비도 있으니 너희 넷 정도면 충분히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
“자꾸 시간이 촉박하다고 하는데, 그럼 우리가 얼마나 빨리 그 왈그린 국가의 수도에 도착해야
하는 거야?”
“경매는 이주 후에 열린다고 했어. 그렇다면 기본적인건 거기서 미리 준비를 해놓는다고 해도
너희들의 능력과 비례하여 목표가 달라질테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능력도 맞춰봐야 할 테니…
최소한 오일 전에는 도착해야 할거야. 그러니까… 늦어도 9일 안에는 도착해야 해.”
레이언의 말에 잭슨이 너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9, 9일이요? 그건 불가능해요. 여기서 왈그린 국경까지만 해도 밤낮으로 말을 달려야 최소한
한달은 걸린단 말입니다.”
잭슨의 말은 옳았다.
지금 우리가 있는 이 항구 도시는 라센국의 서쪽 – 비록 반도 끄트머리는 아니라 할지라도 –
해변에 있기 때문에 여기서 왈그린 국경을 간다는 건 라센국을 횡단해야 한다는 소리다.
하필 이 나라는 남북으로의 길이는 짧은데 동서로는 쭈욱 늘겨져 있는 형태라 종단보다도
시간은 더 오래 걸렸다.
뭐, 북쪽에 있는 벨레니 국으로 간다고 해도 9일은 국경에 도착하지도 못할 시간이지만…
“그러니까 너희를 부른 거야. 보통의 방법으로는 힘드니까 말야.”
불쑥 끼어든 머튼의 의미심장한 말에 잭슨이 뭔가를 깨달은 듯 자리에 천천히 앉으면서 입을
열었다.
“정령을… 이용하라는 말씀이군요.”
“바로 그거야.”
레이언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잭슨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불가능 합니다. 비록 말보다는 빠르겠지만… 제가 며칠동안 쉬지 않고 정령을 부릴
수…”
거기까지 말한 잭슨은 옆에 멀거니 앉아있는 날 보더니 잠시 말을 멈췄다.
“그렇군요. 해인이가 있으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하신 겁니까?”
“에? 나?”
갑작스레 불거져 나온 내 이야기에 내가 휘둥그레 눈을 뜨고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자 크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았다. 해인이라면 어쩌면 가능할 지 모른다고 생각했어. 최상급 정령사라면 말야. 그리고
혹시나 해인이가 지쳤을때는 네가 대신 받쳐주면 되니까 둘이 번갈아가면서 한다면…”
크리스의 말에 곰곰히 생각에 잠긴 잭슨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빠듯할 것 같은데요. 거기다가… 도착한다고 해도 우리 둘은 뻗게 될 겁니다.”
“괜찮아, 괜찮아. 도착하기만 한다면 며칠 여유는 있으니까… 게다가 마법사들도 대기시켜
놨고, 힐링 포션까지 준비해 놨으니까 말야.”
레이언의 아무렇지도 않다는 어조의 말에 잭슨이 기가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 완전 우리 허리를 휘게 만드실 작정이시군요.”
“대신, 이번 일을 무사히 완수한다면 월급의 2배의 보너스와 함께 한달간의 휴가를 주겠어,
어때?”
씨익 웃으며 제안을 하는 레이언의 말에 잭슨이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마지막에 뭔가 걸린다는 듯 미진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만약 제시간에 도착 못해서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요?”
“그렇다면… 두배의 보너스에 한달간의 휴가는 없지만… 일당은 지급하도록 하지. 얼마나
도움이 됐느냐에 따라 등급은 달라지겠지만…”
상회에 소속된 무사들 – 뭐, 일반 사무요원은 모르겠지만… – 은 매달 받는 월급 – 이건 기본료
라고 한다. 자신의 등급에 따라 가격도 달라진다. – 말고도 자신이 한 일의 중요성과 위험성에
따라 또 다른 수당을 받게 된다.
그건 특급, A급, B급, C급 으로 나뉘는데 B급과 C급은 운송의 경호로 나갔다 오면 받는
수당이다.
위험한 싸움이 있었으면 B급의 수당을 받고, 크게 위험한 일이 없었으면 C급의 수당을 받는
식이다.
그리고 특급과 A급은 처음부터 목숨을 위협받을 각오를 하는 일로 대부분 불법적인 일인 경우가
많다.
아마 레이언의 말은 특급 수당이냐 A급 수당이냐를 말하는 듯 했다.
“흐음… 못해도 A급 수당이라면야…”
아무래도 목숨을 걸고 하는 급의 수당이라 B, C급 수당보다는 꽤 높았던 거라 잭슨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잭슨의 중얼거림에 레이언이 태클을 걸었다.
“A급이 아니야. 내가 말했지? 도움이 되는 정도에 따라 급이 달라질 거라고. 아예 아무 도움도
안 된다면 C급밖에 줄 수가 없어.”
“쩝…”
무지 아쉬운 듯 잭슨이 입맛을 다셨지만, 레이언의 말이 어거지가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인지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래 그 틈을 타서 내가 대화의 판에 끼어 들었다.
“그럼 언제 출발하면 되는 거야?”
“너희들이 준비가 되는 대로. 하지만… 시간이 촉박한 이상 최대한 빨리 출발 하는게 좋겠지?”
“알아서 하란 말이군요. 더 하실 말씀은요?”
잭슨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자 레이언은 없다는 뜻으로 어깨를 으쓱 거렸고
크리스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잠깐만, 그런데 그 왈그린 국의 수도에 있는 지부에서 우리를 알아? 그냥 가서 본부에서
보냈습니다… 하면 되는 거야?”
이대로라면 대화가 끝나고 우리는 나가게 될 것 같아서 내가 끼어들자 크리스가 친절하게
웃으면서 설명해 줬다.
“너희를 그냥 보내놓고 우리가 손 놓고 가만히 있을리가 없잖아? 그 쪽에다가 너희를 보냈다고
간단한 신상 정보는 보내줄 거야. 그러니까 너희들은 그 곳에 가서 상회 소속 증명 패를 보이기만
하면 돼.”
“헤에… 그렇군.”
“더 궁금한 건?”
“없어.”
“좋아. 그럼 힘들 거라는 건 알고 있지만, 잘 부탁해.”
이제 대화를 끝내겠다는 의도가 명백한 레이언의 말을 들으며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언제나 그렇듯이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나도.”
“훗, 너희들이라면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특별 수당에 한달 휴가를 잊지 마.”
“잘 해봐라.”
크리스, 레이언, 그리고 머튼의 격려 인사를 들으며 우리는 사무실에서 빠져 나왔다.
“어떻게 해야 해?”
본부 건물을 나오니 데려 올때는 급해서 마차를 준비 시켜 줬지만, 이제 용무는 끝났으니
알아서 돌아가라는 듯 우리를 위한 마차는 커녕 비루먹은 나귀 한 마리 보이지 않았기에
잭슨을 선두로 우리는 번화가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런 일에는 잭슨이 경험이 많을테니 나는 그에게 질문을 던졌고, 잭슨은 이런 나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해줬다.
“우선은 숙소로 돌아가야 해. 거기 가서 빅터에게 말하면 필요한 걸 챙겨줄 거야. 어차피
최대한 빨리 가려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데다 말을 타고 가는 것도 아니니 아마도 그 곳에
가서 지낼때 필요한 몇가지 소지품과 가는 기간에 먹을 양식 정도 챙기는게 고작이겠지.
중간에 필요한 게 있으면 구할 수 있을 돈 정도 하고… 그거 외에는 필요한 게 없겠군.”
“자는 건 어떻게 해? 식사는?”
“음… 일단은… 노숙쪽으로 생각해야겠지? 식사는 날아가면서 해결해야 한다고 보긴 하는데…
날아가면서 먹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나도 솔직히 이런 식으로 여행을 가게 된 건 처음
이라… 아무리 시일이 급하다고 해도 말을 타고 달리는게 고작이었으니까 말야. 예전에 한번
그랬을 때는 정말 죽어났지.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을 정도였거든. 식사 할때도 말 위에서 했고
오로지 말을 바꿀 때하고 잘때 외에는 계속 말을 타고 달렸었어. 잠이나 충분히 잤냐? 한, 두
세시간 밖에 못 잤는 걸? 나중에는 말 위에서 잤을 정도라니까.”
거기까지 말한 잭슨은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정령들을 타고 가니 편하기야 하겠다.”
“음…. 그럼 우선은 숙소로 돌아가야겠네? 그런데 왜 이쪽으로 가는 건데? 가려면 성문쪽으로
가야 하는 거 아냐?”
잭슨이 시내 중심가쪽으로 향하자 의아해서 물었더니만 잭슨이 피식 웃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돌아갈때 걸어서 갈 수는 없잖아. 그럼 한나절은 족히 걸릴걸? 말을 타고 가야지.”
그러면서 그가 가르키는 곳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삯마차들이 주르르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삯마차들을 한번 힐끔 보고는 이해할 수 없어서 잭슨을 바라보았다.
“너는 삯마차가 좋아? 나는 별로던데… 많이 덜컹거리는데다가 불편하고… 차라리 정령을
불러서 도움을 받는게 좋지 않아?”
내 말에 잭슨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뭐? 아니 이런 간단한 일에 무슨 정령까지 동원해? 그냥 얼마 돈 내면 충분히 갈 수 있는데…”
그의 말에 나는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에에에? 정령을 불러내는게 무슨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내 생각으로는 돈 내고 불편한 삯마차를 타고 가느니 차라리 편안하고 돈 안드는 정령을
불러내는게 좋을 것 같았는데 말이다.
작게 중얼거리는 내 말을 들었는지 빤히 날 바라보던 잭슨은 잠시 삯마차에 시선을 줬다가
다시 날 바라보더니 머리를 긁적 거렸다.
“흠… 그러고보니 너는 매일 물의 상급 정령을 타고 출퇴근을 했지?”
“에? 아… 뭐…”
거야 집이 바다 속에 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뭐, 엔다이론도 하늘을 날 수 있어서 다른때에도 얼마든지 불러도 되지만 말이다.
“흐음… 그래서 그런가?”
뭔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까지 끄덕이며 혼자 중얼거리는 잭슨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
했다.
“뭐가 그래?”
“아니… 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만 정령을 부르려고 하거든. 정령의 힘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부르려고 하지 않는달까? 하지만… 너는 평소 생활에서 정령들을 자연스레
불러낸다고나 할까? 그게 대정령사와 일반 정령사의 차이일까나?”
“아하하… 대 정령사는 무슨… 그냥 보통 사람들도 다 취향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듯이 너와
나도 생각이 다른 것 뿐이겠지.”
나야 뭐 매일 사방에서 정령들을 보면서 생활하는데다 이 세계에 떨어지자마자부터 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생활했으니 뭔 일이 있을때면 정령들에게 의지하는게 이제는 일상생활화 되어
그러려니 했지만, 다른 정령사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그렇게 유용한(?) 능력이 있는데 안 쓰고 아끼는 건 그 유용한 능력이 좀 아깝지 않을까?
능력은 쓰라고 있는 건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갈 때는 그냥 정령들의 도움으로 한번 편하게 가보자고.”
내가 싱긋 웃으면서 잭슨을 이끌자 그가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런 의미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아아, 아무래도 좋잖아? 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