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1
1화
-공사장에서 던전으로
“부서져, 제발!”
나는 귀를 막고 있는 작은 돌상을 망치로 미친 듯이 내리쳤다.
돌상을 꿈쩍도 하지 않을 것처럼 단단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내리쳤다.
쩌적-
몇 번을 내리쳤을까, 머리 부분에서부터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돌상이 이내 우수수 산산조각 났다.
띠링.
[시험에 통과하셨습니다.]“헉, 헉.”
거지 같은 시스템 알림음이 들려왔다.
주변을 둘러봤다.
독열 아저씨는 팔이 하나 없어진 채로 쓰러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최악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내가 얼마나 나약한가를 처절히 느껴야 했다.
공사장에서 함께 땀을 흘렸던 독열 아저씨와 인부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얼굴에 맺힌 땀인지 눈물인지, 혹은 피인지 모를 것들을 닦아냈다.
내가 만약 형처럼 강한 헌터였다면, 아니 적어도 헌터이기만 했다면, 조금은 상황이 달라졌을까?
허망한 눈으로 바닥에 주저앉았을 때, 다시 알림음이 들려왔다.
띠링.
[보상이 도착했습니다.]“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
알림을 확인하자마자 고막이 터질 것 같은 날카로운 소리가 귓가를 강타했다.
“크아아악!!”
나는 귀를 막으며 신음을 흘린 채 그대로 기절할 수밖에 없었다.
[조건을 달성하여 칭호 ‘???’를 얻으셨습니다.]기절하면서 의문의 사고를 당한 것보다 내가 약하다는 사실에 절망을 느껴야 했다.
* * *
“너 또 그거 보냐?”
콧수염을 지저분하게 기른 독열 아저씨를 바라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남이사~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헌터도 아닌 놈이 뭣 하러 헌터 커뮤니티를 들락거려. 헌터가 뭐가 좋다고, 떼잉.”
독열 아저씨는 커피를 건네면서 습관처럼 콧수염을 슬쩍 만졌다.
수염은 예술가들의 상징이라면서 자르지 않고 기른 소중한 수염이었다. 그래 봤자 공사장에 날리는 먼지 때문에 예술가는커녕 더러워 보일 뿐인데.
“그런 거 보지 말고, 힘들어 죽겠는데 노동요나 불러 봐라.”
“아, 뭘 맨날 노동요 불러 달래. 직접 불러요!”
“이놈아, 내가 괜히 너 부르게 시키는 줄 알어? 어! 과거엔 말야 내가 잘나가는 음대 교수였다, 이 말이야! 그런 사람 앞에서 부르는 게 영광인 줄 모르고….”
“아, 지겨워요. 그 얘긴 하도 들어서 귀에 딱지 앉겠네.”
“떼잉, 쯧. 젊은 놈이 말이 많아.”
말로는 투덜거리지만 아저씨는 나에게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건넸다.
커피를 받아 마시며 핸드폰을 끄고 아저씨가 원했던 대로 조용히 아무 노래나 흥얼거렸다.
평소대로 우렁차게 불러주지 않는 것은 작은 반항이었으나 아저씨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저기 봐! 성 씨야!”
“성 씨가 돌아왔네! 우리의 자랑스러운 헌터 양반! 껄껄.”
흥얼거리던 것을 멈추고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봤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곳에는 지난주에 헌터로 각성해 일을 그만둔 성덕배 아저씨가 있었다.
웬일로 멋들어지게 2 대 8로 가르마를 타고, 새로 산 듯 깔끔한 복장을 하고 나타났다.
아저씨 주변에는 그를 부러워하는 공사장 인부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에이 시부럴, 오늘 일진 사납네.”
나는 아저씨가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고 킥킥댔다.
알 만하다.
각성하기 전부터 호들갑이란 호들갑을 다 떨고 주변 사람들의 추앙을 받던 덕배 아저씨다.
각성을 하지 않았더라면 모를까, 갑자기 턱 C급 헌터로 각성을 해버리니 배알이 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뭐가 그리 자랑이라고 떠들어 대긴 떠들어 대.”
“왜요, 아저씨 아들도 D급 헌터잖아요.”
아저씨는 다 마신 커피 잔을 구기며 아무 데나 던져버렸다.
이유는 알고 있었다. 각성자라고 해봤자 별 볼 일 없는 D급 각성자라 이거다.
물론 그런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닌 듯했지만, 나였으면 내 아들이 D급 각성자라고 동네방네 춤을 추며 떠들어댔을 것이다.
한낱 일반인에게 각성의 기회가 오는 것은 아주 드물다. 그런데 D급이니 C급이니 따지는 건 배부른 소리였다.
각성자가 되면 일단 그 급이 어떻든 간에 굶어 죽을 일은 없다. 던전에 들어가 몬스터들을 처치하는 것만으로도 돈이 떨어진다.
이런 공사판에서 죽을 둥 살 둥 노력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나보다 훨씬 사정이 좋은 것이다.
그게 아무리 상위 던전은 꿈도 못 꿀 D급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자랑스럽지 않아요? 그래도 굶어 죽을 일은 없잖아요.”
“뭐가 자랑스러워. D급이면 몬스터를 잡다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라고. 차라리 이곳이 훨 낫지.”
“요즘은 파티나 시스템이 잘되어 있어서 죽을 일 거의 없대요. 우리처럼 생고생하는 게 좋아요? 돈은 잘 벌잖아요.”
“그걸 믿어? 넌 운 좋은 줄 알아. 각성은 행운이 아니야. 불행이지.”
“네네~ 알겠어요. 다 먹었으면 일어나요. 어차피 각성자 될 일도 없는데 일이나 마무리하죠.”
남은 커피를 전부 마시고 일어났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기회를 누가 준다고 하면 땅바닥에 엎드려 절할 것이다.
행운이든 불행이든 관심 없다.
나는 돈이 필요했으니까.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들 다시 자기 할 일을 하러 떠났다.
쉬는 시간이 끝났음에도 덕배 아저씨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주변 아저씨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웬 민폐람.
다른 사람이 노는 만큼 우리가 더 일해야 하는데.
“노래 부르기 싫으면 뭐냐, 그 핸드폰으로라도 틀어 봐라.”
나는 노동요를 틀어 달라며 귀찮게 구는 독열 아저씨 때문에 못질을 하다 말고 유행이 한참 지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 알지?”
“알아요, 그 지루한 음악. 뭘 이런 걸 다 좋아한대.”
한참 핸드폰을 만지작거리자 부드러운 피아노의 건반 소리와 바이올린의 선율이 흘러나왔다.
안 어울리게도 아저씨는 일을 할 때 클래식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일하면서 클래식을 들어야 마음의 안정이 된다나.
웃기는 아저씨라 생각하면서도 결국 얌전히 원하는 대로 해줬다.
말은 저렇게 해도 마음이 여리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또 같이 일을 하면 지루할 일은 없으니까.
“음~ 역시 음악은 클래식이지.”
“저번에는 아이돌이 짱이라고 하시지 않았어요?”
“그땐 잠시 내가 방황을 했던 거야. 클래식만 한 게 없는데 내가 잠시 미쳤었지!”
나는 피식 웃으며 핸드폰을 내려놨다. 잔잔한 피아노 연주가 아저씨의 말대로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것 같기도 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우리가 서 있는 공사장에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작은 진동이 땅에서부터 울리는 것 같다 싶더니 그 진동을 인지한 순간 주변 공간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우리가 있던 장소는 순식간에 돌로 뒤덮인 동굴로 바뀌어 있었다.
“으악!”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당황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이내, 익숙하지 않은 알림음이 들려왔다.
띠링.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이, 이게 무슨 소리여!”
머릿속에서 보여주는 듯한 이 알림 메시지는 나에게만 보이는 것이 아닌 듯했다.
“더, 던전이라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게 대체 무슨….”
말문이 막힌 독열 아저씨가 멍하니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의 바위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고 희미한 불빛만이 방향을 겨우 가늠하게 했다.
우리는 순간적으로 바뀐 배경에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아무것도 못 한 채 자리에 서 있었다.
나는 주변을 살피다 벽면을 두들겼다.
진짜 돌이었다.
날카로운 파찰음을 내는 철근이 아니라 딱딱한 돌.
우리는 공사장에서 갑자기 어딘가로 이동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는 분명 모두 공사장 한가운데에 있었다. 갑자기 이렇게 많은 인원의 사람들이 순간이동을 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때 동굴 깊숙이에서 날카로운 짐승의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을 그 소리에 흠칫 놀라며 서로를 찾아댔다.
나는 찬찬히 생각을 하며 주변 흔적들을 살폈다.
어두운 동굴, 사방이 넓은 돌과 바위로 뒤덮인 곳.
갑작스러운 이동.
정말로 던전이었다.
모두가 당황하는 사이, 누군가가 덕배 아저씨에게 말했다.
“성 씨! 어떻게 좀 해봐!”
“나, 나도 던전은 처음인데 내가 뭘 어떻게 해!”
“헌터라면서! 던전이 처음이라니!”
“헌터 된 지 아직 일주일밖에 안 됐어! 던전은 무슨, 스킬 효과 외우기도 바빴다고!”
당황한 덕배 아저씨는 버럭 소리 지르며 모르는 척했다.
나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인부들을 둘러보며 공사장에 있던 모두가 이곳으로 넘어온 것을 확인했다.
“이제 끝장이야! 다 끝이라고! 우린 던전에서 죽는 거야!”
독열 아저씨가 비명과 같은 소리를 냈다.
다른 사람들도 던전 안인 것을 인지하고 당황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전화! 전화는 터지는지 확인해 봐!”
“전화는 아까부터 먹통이야! 이제 우린 꼼짝없이 여기서 죽는 거라고!”
던전과 몬스터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없는 인부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요란하게 들려왔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던전에 대해 빠삭하게 잘 아는 것은 중년이 아닌 젊은이들의 몫이었다.
평생 일용직 일만 하던 사람들이 던전과 몬스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침착하게 주변을 살피다 말했다.
“너무 걱정 마세요! 가끔 이런 식으로 갑자기 던전으로 이동되는 사례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어요.”
“그, 그렇구먼.”
몇 사람은 내 말에 진정을 하는 듯했지만,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 사실을 알아 봤자 여기가 던전이라는 사실이 달라져?”
틀린 말도 아니었지만 이렇게 흥분하면 오히려 몬스터를 더 불러들이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진정하세요. 소리를 듣고 몬스터가 올지도 몰라요.”
소란에 목소리가 잘 안 들릴 거라 생각했지만 다들 어떻게 내 말을 들었는지 헉 소리를 내며 입을 가리기 시작했다.
10여 분이 지났을까, 입을 가리고 잔뜩 겁을 먹고 있던 사람들이 몬스터의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자 긴장을 풀기 시작했다.
“이제 어쩌지?”
작은 목소리로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곳에서 가장 젊은 사람은 나였고 그만큼 던전에 대해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던전이 막 생겨났으니 아마 각성자들이 던전을 공략하러 올 거예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두 시간 이내로 올 테니 그때까지만 버티면 돼요.”
“그 전에 몬스터가 나타나면 어떡해!”
걱정이 됐는지 두려움에 찬 누군가의 목소리가 동굴에 울렸다.
“몇 분이 되도 몬스터가 여기에 오지는 않은 걸 보니 아마 깊게 들어가거나 소란을 피우지 않는 이상 나타날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여기서 기다리다 보면 괜찮을 거예요.”
“그, 그런가?”
나의 침착한 말에 다들 수긍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내 등 뒤에서는 긴장감에 절은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아무리 우리가 얌전히 있었다고 해도 이 정도 인원의 인간들을 몬스터가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이 던전은 뭔가 이상했다.
각성자는 아니었지만 나는 던전과 몬스터에 대한 정보들을 수집하고 공부해 왔다.
던전에 입장한 순간부터 그곳은 전쟁터였다.
몬스터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미세한 마력까지 감지해 공격해 온다고 들었다. 이 인원의 인간들을 가만히 뒀을 리가 없었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에 떨었고 배고픔을 호소하는 사람도 등장했다.
시간은 꽤 지났지만 각성자들은 나타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다들 나를 쳐다봤다.
“이 정도로 시간이 지났는데도 몬스터는커녕, 쥐새끼 한 마리도 안 보이는 걸 보니 안을 좀 살펴봐야겠다 싶어서요.”
“위, 위험해! 미쳤어?”
사람들이 내 행동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걱정 마세요. 저 혼자 갔다 올 테니까요.”
다들 내가 혼자 갔다 온다는 얘기를 하자, 안심한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때, 옆에서 얌전히 날 지켜보던 독열 아저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도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