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111
112화
-미션 007 (3)
“이걸 태산에서 보냈다고요?”
의심의 눈초리로 보자 이권은 손사래를 쳤다.
“아, 이건 내가 보내 달라고 해서 보내준 거니까 이상한 생각하지 마.”
아…. 뭐야.
혼자 예민한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언짢아졌다. 내가 생각해도 지금 모든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 상태 같았다.
“너무 모든 상황을 의심하려 들지 마. 태산은 쓰레기가 맞지만 모든 행동에 의미가 들어 있을 만큼 똑똑한 놈들은 아니야.”
이번만큼은 이권의 말이 맞았다. 어차피 태산의 회장은 헌터도 아닌 일반인이었고, 여차하면 힘으로 우위에 있는 것은 이쪽이었다.
게다가 지금 우리에겐 백이권이라는 거대한 빽도 있었다.
“그러게요…. 위협을 받다 보니 조금 예민해졌나 봅니다.”
조금 가벼워진 마음을 가지고 카드키를 찍고 내부로 입성했다.
신혈만큼은 아니었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사기업인 만큼 화려한 깔끔하고 도시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나는 미리 준비했던 녹음기를 미리 틀어놓고 바지 주머니에 넣어뒀다. 그 모습을 본 이권이 나에게 다가왔다.
“뭘 하려는 건진 알겠는데 다른 팀원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인데 독단적으로 행동해도 될까?”
아, 맞다. 백이권은 다른 애들이 태산 치러 가는 거 안다는 걸 모르지?
“말하면 되죠. 숨길 것도 없잖아요?”
그 자리에서 이권이 다른 말을 하기 전에 재빨리 지금 우리가 뭘 하러 가는지 말하기 시작했다.
태경은 눈치껏 카메라를 잠시 꺼 버렸고, 팀원들은 마치 처음 듣는 얘기라는 듯 열심히 연기를 했다.
극단 차려도 될 정도로 쿵짝이 잘 맞는걸? 괜히 대형 길드가 아니군.
속으로 감탄하며 말을 마쳤다.
이권은 이렇게 시원하게 다 밝혀 버릴 줄 몰랐는지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참고로 백이권 님께서 날뛰어도 된다 허락하셨으니 잘해 봅시다.”
팀원들이 이권의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권이 별말 없이 지켜만 보고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슬쩍 끄덕였다.
이제 거리낄 것 없으니 태산에게 협박할 일만 남았다.
태산 회장의 사무실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가장 사람의 유동이 적고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곳을 찾으면 됐으니까.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간 곳에는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한 늙은 사내가 기다렸다는 듯이 서 있었다.
저 사람이 태산의 회장인가 보군.
명패에 적힌 이름은 서영웅이었다.
“어서 오세요, 잠입요원 여러분. 제가 바로 태산 회장입니다.”
이미 무슨 일 때문에 왔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뉘앙스로 팔 벌려 환영하는 모습이 뒷공작을 할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겉모습에 속을 순 없지.’
태경은 카메라를 들어 다시 실시간으로 영상을 찍고 있었다. 아마 저 카메라가 있는 한 서영웅은 실체를 드러내지 않을 것이었다.
“네, 안녕하세요. 잠입요원 6명이서 태산 회장님을 뵙네요.”
서영웅은 맨 뒤에서 묵묵히 자리하고 있는 이권을 보고 흠칫했다. 아마 길드장이 따라올 줄은 생각하지 못했나 보다.
길드장이 참여할 수 있는 미션인 만큼 그것에 대비하지 못한 그의 실수였다.
게다가 이권이 직접 출입증까지 달라고 요청했으면 예상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저렇게 놀라지?
“그래요, 미션이 함께 사진 찍기지요? 신혈이 가장 먼저 미션을 완료하겠군요.”
서영웅의 뒤에서 두 손을 모으고 서 있던 비서는 그의 손짓에 준비해 둔 사진기를 꺼냈다.
“원하시는 포즈라도 있나요? 제 비서가 잘 찍어줄 겁니다. 아! 신혈 길드장님도 함께하시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권유하는 서영웅은 아무 사심이 없다는 것을 어필하는 듯했다.
“하하, 되게 준비성이 철저하시네요! 천존도 이렇게 준비성이 철저했으면 좋았을 텐데.”
일부러 천존의 이름을 과장되게 말했다. 가볍게 웃고 있던 영웅의 얼굴에 살짝 핏줄이 서는 것이 보였다.
“하하….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번에 공격당하셨다던 선수군요,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음, 이 정도로는 꿈쩍도 안 할 것 같긴 했다만 꽤 공방이 길어질 것 같네.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능청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은 참 정이 많으신 분 같아요. 천존의 미래도 이렇게 걱정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무슨 말씀을….”
“아니, 천존 길드장님이 성과를 못 내시는 것 같으니 갈아치우려고 사람 고용하셨잖아요.”
이 내용이 정확히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송출되기를 바라면서 서영웅을 바라봤다. 환하게 웃고 있던 미소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굳은 얼굴에는 핏줄이 서서 시뻘게져 있었다. 하지만 서영웅은 억지로 입 꼬리를 끌어올리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노력은 가상하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를 못 하겠군요. 무슨 오해를 하시는 겁니까?”
이런 얘기가 신혈에게서 나올 줄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경쟁자들을 뒤로하고 태산을 최고의 자리에 앉혀놓은 장본인이 쉽게 당해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설 님,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 난리예요.”
뒷일이 걱정된다는 듯 카메라를 들고 있던 태경이 조심스레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하, 잠입 미션의 연장선이군요?”
카메라와 댓글 얘기를 들은 영웅은 손뼉을 치며 깨달았다는 듯 밝게 웃었다.
물론 나는 그 미소가 거짓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바삐 자신의 비서에게 손짓하는 그의 손가락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럼 제가 맞장구를 쳐드려야겠군요. 흠, 그래! 내가 바로 모든 일의 원흉이다!! 이 정도면 됐으려나요?”
나도 혹시 몰라 핸드폰을 켜두고 실시간 댓글을 확인하고 있었다.
-아, 뭐야. 연기였어?
-신혈이 ㄹㅇ 본격적이긴 하다. 진짜인 줄?
서영웅의 한마디에 순식간에 반응이 뒤집혔다. 잠입 미션이라는 특성 때문에 사람들이 이 모든 게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 머리는 잘 굴렸네.
그사이 태경의 뒤에 바짝 다가왔던 비서가 카메라를 부숴 버리고 말았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갑자기 까매진 화면에 다들 당황하다가도 이것도 연출의 일부일 것이라며 칭찬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대로만 믿네. 이게 진짜인 줄도 모르고….
왠지 모르게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신혈이 알고 있을 줄은 몰랐네.”
카메라가 꺼진 것을 확인한 서영웅은 순식간에 싸늘한 표정을 내비췄다.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후, 카메라를 깨 버리셨네요? 핸드폰은 어쩌시게요? 이것도 전부 깨실 건가?”
아무렇지 않게 핸드폰을 흔들어 보이자 그는 책상 아래에서 작은 버튼이 달린 리모컨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무슨 원리인지 핸드폰의 전원이 팍 나가 버렸다.
“엇, 내 핸드폰이….”
“내 것도…!”
그건 나만이 아니었다. 모든 이의 전자기기 전원이 나간 건지 작동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기기들이 전부 동시에 꺼지는 거지? EMP 기술 같은 건가?
젠장, 이러면 녹음기마저 쓸모없게 되잖아!
생각보다 철저한 서영웅의 대응에 한순간에 계획이 어그러져 버렸다.
“이걸로 모든 전자기기는 무용지물이 됐다네. 여기서 벌어진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갈 일은 없다는 소리지. 길드장까지 대동하고 말이야…. 우린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영웅의 말에 흠칫 몸을 떨어대던 태경은 사색이 되어 이권을 바라봤다.
눈치 빠른 이권이라면 방금 그 말을 듣고 모종의 거래가 오갔을 것을 추측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리라.
이권이 여기서 어떻게 나올지 몰라 슬쩍 눈을 돌려 그의 표정을 살폈다.
그런데 의외로 이권은 별 감흥이 없는 표정이었다. 딱히 태경을 탓하는 사람의 표정은 아니었다.
“길드장께선 이미 알고 있었나? 아무 반응이 없군.”
“글쎄, 딱히 문제될 만한 일인가 싶어서.”
영웅도 원하던 반응이 아니었는지 괜히 이권을 걸고 넘어졌다. 이권은 뻔뻔히 받아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둘이 의미 없는 말싸움을 하고 있는 동안 뒤로 슬쩍 빠져 주머니에 넣어뒀던 녹음기를 확인했다.
녹음기도 완전히 맛이 간 듯 전원이 나가 있었다.
“에이씨…. 이젠 어떡하지?”
녹음기를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순간적으로 녹음기의 전원이 들어왔다.
뭐지 방금?
하지만 녹음기의 전원은 다시 금방 꺼졌다.
이거 내 목소리에 반응한 건가?
의구심이 가득한 채로 다시 조그마한 목소리로 아무 말이나 중얼거려봤다.
“백이권이 인기투표 1등인 거 이해 안 감.”
그러자 또다시 녹음기에 붉은 불이 들어오며 전원이 켜지는 것이었다.
내 목소리에 반응하고 있는 게 맞는 거 같은데…? 대체 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도 아니고 오로지 내 목소리에만 반응하는 것에 신기함을 느끼면서도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더니…!
어쩌면 내 직업과 연관이 있었을 수도 있다.
어디서 들은 얘기로 EMP 공격을 막는 방법은 전자기파를 막는 전자기파를 발사해야 하면 된다고 들었다.
당연히 인간의 목소리가 전자기파를 내뿜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나 나는 ‘바드’였다.
더 정확히 하자면 ‘소리 전달자’.
내 목소리가 전자기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녹음기나 핸드폰도 잠시나마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말하는 순간에만 반응한다는 것인데.
“이렇게 된 거 차라리 태산과 손을 잡는 건 어떻소? 어차피 당신들은 길드대항전에서 우승하는 게 목표 아닌가?”
열심히 녹음 기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영웅이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백이권에게 제안을 했다.
마치 대안에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아씨, 잠깐만 기다려라! 아직 녹음기 작동시킬 방법 모른단 말이야.
“아하, 우리에게 우승을 주면 태산은 항상 눈엣가시였던 진중권에게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치워 버리려는 건가?”
백이권. 눈치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눈치가 빨라서 좋군.”
둘의 대화가 끝나 버리기 전에 비서와 서영웅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이동했다.
딱 마침 덩치가 큰 기태 녀석의 뒤로 숨어 핸드폰과 녹음기를 동시에 꺼내 들었다.
대충 아무 말이나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리자 핸드폰과 녹음기가 동시에 전원이 켜졌다.
그래서 재빨리 녹음기에 내 목소리를 녹음했다. 그리고 녹음된 내 목소리를 계속해서 핸드폰 가까이 가져다 대고 있었다.
다행히도 녹음기에 반복재생 기능이 있어 중간에 끊기지 않고 핸드폰 전원을 킬 수 있었다.
“…백이권이 시간 끌어줘서 다행이다.”
진짜 잠입 미션 하는 것도 아니고, 나 혼자 이게 무슨 쌩쇼냐….
순간적으로 현타가 세게 오긴 했지만 무사히 핸드폰 녹음 기능을 틀고 두 기기를 같은 쪽 주머니에 넣어 놓을 수 있었다.
주문을 외우는 듯한 이상한 목소리까지 녹음될 거라는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찬물 더운물 가릴 때가 아니었다.
“나쁘지 않은 제안 같은데….”
이권은 고민하는 척 턱을 쓸었다. 서영웅은 그런 이권을 보고 씨익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영웅아, 그거 아냐. 네가 백이권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김칫국 그만 마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