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112
113화
-미션 007 (4)
백이권의 성격을 잘 아는 나로서는 서영웅이 불쌍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이권은 분명 태산을 친다고 선언했다.
그것은 분명 선언이었다. 신혈을 건드린 자에게 내리는 벌 같은 것이었다.
이권은 사람을 피 말려 죽인다면 죽였지, 허튼소리는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겠다고 말한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렇게 만드는 인간이었다.
“싫어.”
상큼한 미소로 말하는 이권에 당황한 서영웅은 표정을 굳히고 오른손을 들었다. 그러자 비서가 공중에서 검을 꺼냈다.
헌터였던 것이다.
“이게 무슨 짓이야!”
그리고 근처에 있던 태경을 인질로 삼고 뒤로 물러났다. 리더인 태경이 잡히자 팀원들이 동요하고 있었다.
하지만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명색이 A급 헌터이신데 인질이 되었다고 쉽게 당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됐기 때문이다.
“인질을 삼는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6대 2예요, 알죠? 게다가 저희는 모두 헌터고.”
“크큭, 헌터가 뭐 별건가?”
영웅은 상황 판단이 안 된 것인지 아니면 믿는 구석이 있는 건지 두려워하지 않고 웃었다.
왜 저렇게 당당하지? 뭔가 있나?
“그냥 허세야!”
김은아가 표정을 굳히며 양손을 벌리고 무기를 소환시키려 했다.
그런데 은아의 양손에서는 아무것도 소환되지 않았다.
“어…? 왜 스킬이 안 되지?”
이상함을 감지한 기태도 자신의 스킬을 사용하려고 손을 뻗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두가 같은 상황이었다.
스킬이 먹통이 된 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설마 아까 눌렀던 버튼이랑 상관이 있는 건가?
비서는 영향이 없는 것인지 손을 뻗어 스킬을 사용했다.
그의 손에서 검은 줄이 뻗어 나와 우리를 포박했다. 팔에 얇은 팔찌를 착용하고 있는 것이 슬쩍 보였다.
저 팔찌를 끼면 스킬을 쓸 수 있는 모양이네.
그런데 스킬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도 아까 누른 버튼의 영향이라면, 내 목소리로 풀 수 있는 거 아닌가?
“크하하! 헌터들은 힘만 세고 멍청하단 말이지. 여기가 어딘 줄 알고 힘자랑을 하는 거냐! 진중권 그놈도 그래. 어쩌다 우연히 얻어걸린 힘만 믿고 뻗대는 게 꼴 보기 싫었지.”
“그래서 함정을 파놓으신 건가요? 천존 사람이 공격한 것처럼 꾸미고 일부러 꼬리잡기에서도 다른 길드들을 만나지 못하게 조작하신 거, 전부요.”
일단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 연기를 하며 서영웅이 스스로 자백하도록 유도했다.
모든 반격은 놈의 자백이 끝나고 난 뒤였다.
“그걸 함정이라고 걸린 천존 놈들이 미련한 거다.”
“진짜 치졸하시네요. 그렇게까지 해서 천존을 차지하고 싶으십니까?”
“능력도 없는 헌터 놈들이 길드를 망치는 것보다 내가 사업적으로 잘 이용해 성과를 내주는 게 뭐가 문제지?”
저렇게까지 헌터를 까내리는 것을 보니 오히려 열등감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헌터들이 길드를 망친 게 아니라 그쪽이 망하라고 똥 뿌리고 있잖아요.”
솔직히 이번 일을 겪으니 이전에도 이러지 않았으리라는 법이 없었다.
매번 길드대항전 때마다 이런 식으로 방해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증거 있나?”
그러자 서영웅이 표독스러운 눈을 치켜뜨며 맞받아쳤다.
사실 증거는 없지.
증거라고 한다면 유일하게 안태경이 태산과 거래를 했다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게 실질적인 물증이 될 수는 없었다.
할 말이 없어 가만히 있을 때 옆에서 지원사격이 들어왔다.
“증거가 없긴.”
이권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서영웅에게 다가갔다. 그를 묶고 있던 검은 줄도 이미 풀려 있은 지 오래였다.
“어, 어떻게…!”
참나, S급한테 그런 허접한 포박이 통할 거라고 생각한 것부터가 아이러니하네.
얼마나 헌터를 무시했으면 S급을 제압했다는 착각을 할 수가 있지?
실제로 다들 몸을 움직이지 못해 곤란해 보였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드리지 않고 있었다.
이권이 쉽게 당할 리 없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킬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해서 이권의 힘이 어디 달아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물증도 없이 너희를 칠 만큼 바보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이권은 말을 끝내고 인벤토리에서 서류 더미를 꺼내 서영웅 앞에 흩뿌렸다.
“네가 4년간 길드대항전에 뇌물을 먹여 천존에게 불리하도록 경기를 조작한 것, 그리고 사람을 사주해 협박한 것에 대한 증언과 증거들이다.”
“무, 뭐라고?!”
오오, 백이권…! 믿고 있었다고!
태산을 쳐야겠다고 했을 때 뭔가 준비했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다. 이권 성격에 그냥 허투루 일을 벌이는 것을 싫어했으니까.
이렇게 빼도 박도 못 할 증거들을 가지고 오면 상황은 역전된다.
“녹음도 들려줄 수 있는데 지금은 기기가 말썽이니 아쉽게 됐군.”
“망할 놈들!! 내가 얼마를 줬는데 감히 배신을 때려?!”
서류의 내용을 살펴보던 서영웅은 서류를 찢어 버리며 분노를 표출했다.
“그들은 그저 더 큰 가치에 투자한 것뿐이야.”
“돈보다 큰 가치가 어딨다고 그러나!!”
“네놈, 그렇게 헌터를 싫어하면서 의뢰는 전부 헌터에게 맡겼더군? 헌터에게 정말 가장 큰 가치가 돈이라고 생각하나?”
뭐야, 돈 아니었어?
서영웅처럼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버린 나는 이권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바로 더 강해지고 싶다는 욕구야.”
“뭐…라고?”
“나는 이 증거들을 모으는 데 단 한 번도 협박성 발언을 한 적이 없어. 그저 한 가지 제안을 했지. 증거를 모으는 데 도움을 준다면 신혈에서 성장시켜 주겠다고 말이야.”
와…. 저 자신감 넘치는 표정 봐.
하지만 저 자신감 뒤에는 무시하지 못할 배경이 뒤를 따르고 있었기에 부정할 수 없었다.
백이권이 저런 제안을 하는데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
돈보다 더한 가치? 그건 바로 백이권이다.
“웃기는 소리! 뭣 하고 있어! 지금 당장 공격해!!”
서영웅은 얼굴이 시뻘게지며 비서에게 명령했다. 그에 이권은 비릿하게 웃었다.
“시험해 볼까?”
주춤대고 있는 비서를 삐딱하게 돌아보며 이권은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거기 너, 지금 우리에게 건 스킬을 풀고 서영웅을 포박하면 신혈에 들어올 수 있게 해주지.”
“뭔…!! 너 같은 버러지와의 약속을 지킬 리가 없잖아! 빨리 시킨 대로 하지 못해?!”
서영웅이 비서를 다그치는 소리가 점점 커져 갔고, 그럴수록 비서의 고민도 커져 가는 것 같았다.
“거짓말 따위 하지 않아. 신혈 길드장의 명예를 걸고서라도 말이지.”
결국 비서는 들고 있던 검을 떨어트리고 서영웅을 향해 손을 올렸다.
“큭!! 뭐 하는 짓이냐!”
비서의 손에서 나온 검은 줄에 서영웅은 꼼짝달싹 못하게 되었다. 이권은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짓고 서영웅을 바라봤다.
마치, ‘봤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와, 진짜 약 오르겠다.
“네, 네놈! 감히 태산을 배신해!! 네가 신혈에 들어간다고? 어림없는 소리!! 내가 어떻게든 막을 거다! 배신자 녀석!!”
악에 받쳐 소리치는 영웅의 목에는 핏대가 서 있었다.
“그럴 일 없어. 내가 그렇게 하겠다는데 거스를 수 있는 인간은 없거든.”
덤덤한 목소리였다. 허세도 아니고 다짐도 아니었다.
그저 ‘이건 사과야.’라고 사실을 읊어주는 것같이 평온한 목소리였다.
미친놈.
그런데 그 미친놈이 조금은 부러웠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사람이 당당할 수가 있지?
어떤 것도 자신의 방해물이 될 수 없다는 저 자신감은 분명 자신의 힘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일 테지….
“아악!! 어차피 신혈의 일도 아니잖나!! 왜, 왜!! 방해하는 건데!!”
서영웅은 거의 뭐에 홀린 사람처럼 악을 쓰기 시작했다. 이 상황을 받아드리기 힘든 것처럼 몸부림 쳤다.
이권은 그런 서영웅에게 조용히 다가가 속삭였다. 가까이에 있던 나만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였다.
“천존을 무너트리고 싶었으면 신혈을 건드릴 생각조차 하지 말았어야지.”
무섭네. 역시 백이권은 함부로 건드려서 안 될 놈이긴 해.
“크윽! 진중권, 진중권…! 그놈만 없었다면!!! 그놈이 내 모든 계획을 망쳤다!!”
이권에겐 아무것도 통하지 않을 것 같으니 천존 길드장의 이름을 외치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었다.
“그런 건 본인한테 직접 말하지 그래?”
이권은 영웅에게서 떨어지며 문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굳게 닫혀 있던 사무실의 문이 열리며 진중권이 걸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본인 등판이라고? 백이권은 천존과 태산의 일을 다 알고 있었던 건가?
중권은 들어오며 나를 슬쩍 바라보다 모른 척 서영웅을 향해 걸어갔다.
백이권과 진중권을 한자리에서 만나게 되니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서로 쓸데없는 사담을 나누다가 내 얘기라도 나오면 이중 출전했다는 것이 들킬지도 몰랐다.
물론 중권이 쉽게 입을 터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서영웅이…. 오랜만이군. 그사이 더 늙은 거 같아.”
“인사치레는 집어치우시지.”
“난 그래도 우리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어. 천존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내가 물러설 각오도 하고 있었지.”
이 인간 진짜 길드장 자리를 내려오려고 했었단 말이야?
순간 나에게 했던 거짓 제안이 100% 거짓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 상업적으로 성장하는 게 천존에게도 좋은 방향 아닌가? 그게 천존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미래야!!”
쿵!!
“길드는!”
중권은 서영웅에게 다가가 그 옆에 있던 책상을 내리쳤다.
중권에게서 푸른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살벌한 기운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기까지 했다.
“…회사가 아니라네.”
…회사랑 다를 게 없지 않나?
“누구보다 민간인의 목숨을 최우선으로 하고 자신보다 강한 몬스터와 싸우더라도 목숨을 걸 수 있어야하지. 또한 무엇보다 강함을 추구하는 것이 길드 설립의 목적이다. 그에 따라오는 돈은 부수적인 것일 뿐이지. 네가 길드의 뭘 아나?”
나야말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사실 이제 와서 길드는 회사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길드의 설립 목적 따위 일반인들은 알 바가 아니었고, 회사와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길드의 존재는 그저 길드장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그리고 실제로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길드가 대부분이었다.
내가 충격 받은 이유는 길드장 중에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 남아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충격이었다.
“천존은 그것을 위해 수없이 노력해 왔네. 초대 길드장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던전을 믿을 수 있는 동료와 함께 공략하고자 처음으로 천존을 세우신 거였고, 나도 그 의지를 이어받아 퇴색되지 않게 노력했다네. 물론 천존이 한때 잠깐 욕심 많은 인간 때문에 휘청이긴 했어도 적어도 내 대에선 그러지 않게 해 왔다고 자부할 수 있네.”
진중권은 단호한 표정으로 서영웅을 바라보다가 주먹을 꽉 쥐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자네 같은 인간들이 길드 망치는 꼴을 볼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