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114
115화
-미션 007 (6)
이 인간 또 왜 이래?
인상을 구기며 미소 짓는 모습은 또 처음이라 신선했다. 하지만 이권이 상당히 화가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에 티내진 못했다.
“희생하겠다고 한 적 없는데요.”
“그럼 여기서 살 방법이 있단 소리인가?”
“제가 살 확률이 가장 높을 것 같아서요.”
화아악-!
작은 공방이 지속됐다. 그사이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아 우리를 압박하고 있었다.
“콜록, 콜록!”
유리창이 뚫려 있어 연기를 그대로 마시지 않아도 됐지만 점점 불길이 거세지니 빠져나가는 연기보다 들이마시는 연기가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서현이 입을 막고 괴로워하는 것이 보였다.
“시간 없어요. 빨리 가세요. 저 여기서 떨어져도 살 수 있는 스킬 있으니까 괜찮아요.”
모두가 살려면 이 방법이 가장 컸다. 미심쩍은 표정이었지만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권은 결국 공중에 발을 내딛었다.
“금방 다시 올 테니까 기다려.”
다시 올 필요도 없을 텐데.
이권이 가볍게 손짓하자 나를 제외한 사람들이 공중에 대롱 매달렸다. 그리고 이권은 나를 한 번 힐끗 보더니 건물 아래로 사라졌다.
엄청 빠른 속도로 낙하하듯 비행하는 이권을 보니 다시 올 테니 기다리라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알았지만, 생각보다 높이가 있어서 시간을 맞추지는 못할 것 같았다.
왜냐면 이제는 건물이 무너지려고 하고 있었으니까.
“쓸데없이 높은 곳에서 일하고 난리람.”
서영웅의 사무실은 꼭대기 층에 있었다. 60층이 넘어가는 건물에서 뛰어내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떨어져도 살 수 있는 스킬?
그딴 건 없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있었지만 그것도 소용이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뛰어내릴 수는 없었다.
콰앙!!
태경의 방어막이 사라지고 거센 불길에 오롯이 방치되니 온몸이 타오르는 고통이 밀려왔다.
불길에 집어삼켜지기 전에 나는 이어폰을 켰다.
“너 어디야?”
이권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인간의 속도가 드래곤의 속도를 따라올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미 이권이 창문을 깼을 때부터 현지를 불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녀석의 속도를 생각하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몇 초 안에 올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녀석의 모습을 드러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빨리 사라져 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비행 스킬 없다는 녀석이 하늘을 나는 것을 의심스러워할 테니까.
게다가 이권의 마력 민감도 때문에 현지의 정체를 들킬 수도 있었다.
[미션 수행 중이다.]“내가 있는 곳으로 와. 지금 당장. 10초 내로.”
[무슨 일인지 설명도 없나? 천존에서 열심히 하라고 할 때는 언제고.]당장 죽게 생겼는데 설명은 무슨 설명?
“나 타 죽게 생겼어! 빨리!”
[…그래.]방금 살짝 망설인 거 맞지? 아쉬워한 거지?
“투명 드래곤으로 와야 해.”
급한 와중에도 요구할 것을 착실히 말했다.
현지의 말로, 일단 소환이 되면 GPS처럼 소환자의 위치나 마력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래서 굳이 위치를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다.
무전을 끊고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불바다였다. 피부가 녹는 것 같은 고통이 잠시 밀려오다가 메시지가 떠올랐다.
[체력이 50%가 남아 ‘삶과 죽음의 경계’가 발동합니다.]벌써 체력이 반이나 달았다고?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어쩐지 살이 녹는 것 같더라니.
점점 고통이 적어지고 화상을 입는 동안 체력이 차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 밖에서 날개가 펄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왔어?”
소환자이기에 투명화를 한 현지의 모습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정말 10초도 안 되서 온 것 같은데?
“거의 지옥 불구덩이 같은 모습이군.”
감상평을 한마디 던지고 현지는 뒤를 돌아 등을 댔다. 올라타라는 의미였다.
흐물거리는 팔다리를 이끌고 밖으로 몸을 던져 현지의 등에 올라탔다.
“하아, 죽는 줄 알았네.”
여전히 살이 이글거리며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체력이 조금 오른 덕분인지 고통이 느껴지진 않았다.
“너희도 미션을 수행하던 중 아닌가? 불구덩이에서 살아남는 게 미션이었나?”
비꼬는 거야, 걱정하는 거야?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니 의중을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드래곤이라고 위엄을 보이는 것일 수도 있었다.
“미션 중에 일이 꼬여서. 그래도 천존을 망치려던 놈을 잡았지. 아, 저기에 내려줘.”
멀리 이권이 보이는 것을 보고 조금 떨어진 건물의 옥상에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현지의 크기가 만만치 않으니 길가에 내려 달라고 했다가는 난리가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시 빌딩 위로 비행하려고 준비 중인 이권이 보였다.
“아무튼 고맙다. 얼른 가봐. 너네는 미션 뭐였지?”
하도 미션들이 다양하고 많아서 천존의 미션이 기억나지 않았다.
분명 물건은 숟가락이었던 것 같은데….
“…쓸데없는 미션이다.”
질문에 현지는 표정을 굳히며 침묵을 유지했다. 표정은 확 굳히며 싫은 티를 냈지만 목소리는 뭔가 들떠 보였다.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웠군. 이만 가보지.”
여기 온 지 1분도 안 지났어….
어이가 없어 현지를 돌아봤지만 녀석은 이미 날개를 활짝 펴고 공중에 날아오른 상태였다.
나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대체 무슨 미션이길래 저렇게 안달난 건지 의아할 뿐이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지는 현지를 보며 잠시 다른 팀이 궁금해져 핸드폰을 들었다.
천존의 실시간 영상을 틀어보니 한 음식점에서 열심히 먹방을 찍고 있는 녀석들이 보였다.
먹는 것 때문에 저렇게 꽁지 빠져라 달려간 거였어?
현대에 소환되더니 즐길 거 다 즐기며 좋아하는 현지를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얘네 지금 놀러왔냐?
얼마나 빨리 간 건지 갑자기 토끼탈을 쓴 현지가 화면에 등장했다.
화장실을 갔다 왔다고 둘러대고 나온 건지 다들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긴, 화장실 갔다 온 것보다 빠른 속도이긴 했어.
덤덤하게 자리에 앉아 있지만 숟가락을 쥐고 음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현지를 보니 아무렴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즐거우면 됐다….”
실시간 댓글에는 전부 천존을 욕하는 말들밖에 없었지만 녀석들은 속도 좋게 실실대며 음식 먹방을 찍고 있었다.
분명 이미지가 나락 간 것을 모르진 않을 텐데.
일부러 더 웃고 오버하며 미션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여론을 뒤집어 줄 테니까.
서영웅이 손을 쓰기 전에 먼저 녹음을 터트려야 했다.
결국 시간 싸움이었다. 나를 찾기 위해 날아오르려는 이권을 막으려 얼른 옥상을 내려왔다.
“…그래! 신혈까지 싸잡아서 시궁창으로 보내라는 소리잖아!”
그리고 건물을 벗어나 팀원들에게 가려고 할 때, 외진 골목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멀리 못 갔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어떻게 이런 데서 만나냐.
식은땀을 얼마나 흘린 것인지 머리카락이 땀에 절어 축축해져 있었다. 누군가에게 명령을 내리는 모습을 보고 찾을 수고를 덜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 머리카락 보여요.”
“너, 너! 어떻게…!”
멀쩡히 살아 있는 것을 보고 귀신이라도 본 듯 서영웅은 경기를 일으켰다.
나는 봐주지 않고 씩 미소를 지으며 서영웅의 뒤통수를 가격해 기절시켰다.
“이렇게 기력이 없어서야…. 콩밥 좀 드셔야겠어.”
서영웅을 질질 끌고 팀원들에게로 걸어가자 가장 먼저 이권이 눈치채고 고개를 돌렸다.
“왜 거기서 나오는 거지?”
“뭐야! 한설!! 너 어떻게 된 거야?”
“살아 있었어?!”
눈이 동그래지며 놀란 것은 이권뿐만이 아니었다. 예상하고 있던 반응이었지만 그들의 놀란 모습을 보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이권은 내가 멀쩡한 것을 확인한 뒤 내 손에 끌려오고 있는 서영웅에게로 시선을 줬다.
“제가 살 방법 있다고 했잖아요. 그보다 서영웅이 신혈을 나락으로 보내려는 것 같은데, 저희가 먼저 선수쳐야 하지 않겠어요?”
“실력도 좋고, 운도 좋고. 이러니 내가 좋아할 수밖에.”
기절해 있는 서영웅을 보며 이권은 기분 좋게 씩 미소를 지었다.
* * *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신혈이 제일 중요한데 송출이 끊기는 게 말이 돼?! 상황 파악이라도 돼야 할 거 아니야!”
방송실에서 화난 여성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그 호통을 전부 듣고 있어야 했던 막내PD는 찍소리도 못 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백이권 그 능구렁이가 드론을 철수시켜 달라고 할 때부터 뭔가 있을 것 같더라니…. 드론이 없으면 신혈한테는 카메라라도 한 대 더 주지 그랬어!”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분명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죄송하다는 말만 되뇌고 있었다.
“빨리 태산으로 사람 보내서 무슨 일인지 정확히 알아봐! 지금 이 순간에도 돈이 새고 있잖아,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네, 알겠습니다.”
자리로 돌아와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던 PD는 한숨을 푹 쉬었다.
갑자기 신혈 쪽에서 이상한 얘기를 하더니 카메라가 박살이 나 버렸다. 댓글창도 난리가 난 것은 물론이었다.
-왜 갑자기 꺼짐? 천존 얘기는 무슨 말임. 미션 얘기인 거지?
-딱 보면 모름? 다 연기잖아
-그럼 카메라는 왜 껐는데? 이상하잖아.
-ㄹㅇ007 찍는 중인가?ㅋㅋㅋ
태산과 주최 측이 결탁하고 있다는 것은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다. 방송국에서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번에 태산 회장이 이 미션에 등장한 이유도 이미지 관리를 위함이었다.
‘대중과 소통하는 감각적인 회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져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천존과는 엮이지 않게 수를 써놨는데 난데없이 신혈이 똥물을 부어 버린 것이다.
마녀 같은 팀장이 열을 내는 것도 이해가 됐다.
그녀는 태산이 비리를 저지르든 말든 상관없어 했다. 시청률을 올릴 수 있는 일이라면 그녀 스스로 비리를 만들어낼 인물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이번 일은 심각한 사안이었다.
한참 동안이나 카메라가 복구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시청자 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었다.
가장 주목하고 힘을 줬던 신혈에게서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있으니 복장 터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후, 나는 별로 달갑지 않은데.”
태산이 천존을 나락으로 보내기 위해 조작하는 것을 시청률이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만히 지켜보는 것도 고역이었다.
천존의 팬은 아니었으나 악플밖에 없는 댓글창임에도 열심히 먹방을 찍는 그들을 보니 안타깝기도 했다.
-실력도 없는데 인성까지 말아먹었죠?
-음식이 불쌍하다ㅠㅜ 저런 놈들한테 먹히다니….
-어케 아직까지 대형 길드로 남아 있는 거임? 꼬리잡기 때 매화 이긴 것도 구라 아님?
-ㅇㅇ주작인 듯. 카메라에 한 번도 비친 적 없음.
“다 태산이랑 주최 측이 이미지 망쳐 놓은 건데 사람들은 신나서 까내리고 있네.”
PD는 현장에 사람을 보내놓고 천존의 댓글들을 읽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매화와 천존이 싸웠던 장소를 떠올렸다.
“분명 매화가 카페에서 나왔었지? 어…. 근데 거기, 카메라 설치했을 텐데?”
PD는 팀장의 명령에 따라 보이지 않는 곳에 작은 카메라들을 설치했던 것을 떠올렸다.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는 본성을 드러내는 법이지. 혹시 비하인드용으로 쓸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설치해 둬.’
“분명 팀장님이 그렇게 말했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