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128
129화
-다시 만난 차오름 (2)
뭐야, 쟨 왜 멀쩡해? 같은 물속에 있었던 거 맞아?
손이 덜덜 떨려서 리코더를 제대로 쥐기도 힘든 나와는 달리 오름은 몸이 떨리는 현상 따위 찾아볼 수 없었다.
무슨 효과인 거지?
물어보고 싶어도 물속이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계속 위를 향해 헤엄을 치려고 해도 수면 위로 올라갈 수 없는 것을 보니 몬스터의 스킬이거나 원래 이렇게 생겨먹은 던전일 것이다.
몬스터의 스킬이면 차라리 다행이었지만 원래 던전이 이런 모양이면 골치 아파진다. 스킬이 통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오름의 모습을 보아하니 확신이 생겼다.
‘이 물속은 몬스터의 스킬이야.’
그렇지 않았다면 오름이 저렇게 멀쩡할 리가 없었다.
스킬을 막아주는 스킬이 있다든지, 아이템을 써서 멀쩡한 것이 분명했다.
일단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리코더를 휘두르자.
할 수 있는 짓은 다 해 보기 위해 리코더를 강하게 휘둘렀다.
하지만 부력에 의해 평소의 속도보다 배는 느렸다. 그것 때문인지 몬스터에게 제대로 된 공격이 들어가지 않았다.
퍽.
나름 공격한다고 들이민 건데 아무 타격이 없는 것을 보니 위기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뱀장어는 곧바로 다음 전기 공격을 먹이기 위해 옆구리를 들썩이고 있었다.
물속이라 뭘 할 수 있어야지!
답답한 마음에 다시 리코더라도 휘두르려고 했을 때 옆구리에서 다시 번쩍이는 빛이 지나갔다.
찌르르-!!
그리고 후폭풍처럼 온몸을 마비시키는 전류가 또다시 흘러들어 왔다.
“큽!!!”
신음 소리도 물에 먹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점점 숨이 막혀오고 정신이 아늑해지려고 할 때, 이번에 새로 얻은 마나술이 떠올랐다.
하루에 한 번밖에 쓸 수 없었던 일괴본을 쓸 차례였다.
‘일괴본!’
눈을 까뒤집고 기절하기 전에 리코더를 들어 최대한의 힘으로 녀석의 옆구리를 때렸다.
퍽.
여전히 힘은 안 들어가 있었지만 스킬의 효과는 무시할 것이 아니었다.
콰지직.
황금빛의 물결이 몬스터의 피부결을 따라 뻗어 나갔다.
온몸을 집어삼키듯이 퍼져 나가는 모습이 마치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았다. 자세히 보면 핏줄을 따라 뻗어 나간 것 같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금세 타격이 크지 않은 공격이었음에도 리코더에 닿은 곳부터 금빛 결을 따라 피부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치명타가 적용되었습니다.]나이스. 치명타 때문에 저렇게 된 거구나.
뱀장어의 최후는 상당히 허무했다. 녀석은 무너지는 몸을 감당하지 못해 천천히 바다 깊은 곳으로 추락했다.
그리고 나도 숨이 막혀 눈이 돌아가려고 할 때 몸이 머리끄댕이를 잡아채듯 몸이 수면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푸학!!!”
“콜록!!”
나와 동시에 수면 위로 끌어올려진 오름도 마찬가지로 물을 뱉어내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늪에서 겪었던 일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이 정도면 바닥에 빠지는 거에 뭐 있는 거 아니야?
주변을 둘러보니 아까 그 지하실로 돌아왔다.
“와, 너 어떻게 한 거냐? 그래도 B급 몬스터인데 한 방에 해치웠네?”
오름은 숨을 고르고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방심하지 마. 뭔가 더 있어.”
쉽게 해치운 것 같지만 어려운 상대였다. 그리고 우리보다 앞서 간 헌터도 이놈을 만났을 확률이 컸다.
하지만 헌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헌터가 아무리 비싼 돈을 들여 장비를 마련했다고 해도 이기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 시체라도 있어야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뱀장어 말고 뭐가 또 있다는 거야?”
오름도 진지한 내 모습에 긴장했다. 자기가 생각해도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뱀장어 전에 다른 몬스터를 만났을 확률이 가장 커.”
그리고 그게 이 던전의 진짜 주인일 확률도 컸다.
“근데 넌 왜 전기 공격 안 받았냐?”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오름을 바라보자 녀석은 별거 아니라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옷의 물기를 짰다.
“스킬이지 뭐. 내가 말했잖아. 나 힘은 없는 대신 스킬은 좋다고.”
보나 마나 전에 사용했던 거짓 진술 같은 스킬로 피해를 무효화시킨 것이다. 아니면 거짓 진술을 사용한 것일 수도 있고.
“어쨌든 또 다른 녀석이 오기 전에 움직이자.”
오름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말없이 물기가 가득한 지하실을 걸어가야 했다.
한참을 걸어도 몬스터는커녕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요한 가운데 나는 오로지 오름의 등만을 보며 걸었다.
너무 고요한데? 또 바닥에 빠트릴 기회를 노리고 있는 건가?
“근데 너 그거 알아?”
수상할 정도로 아무 일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쯤 오름은 앞장서서 걷다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끼기기긱-
그리고 어딘가 바람 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뭐가?”
오름의 말에 대충 대답하며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다음 몬스터일지도 몰랐기에 더 신경이 쓰였다.
“이런 지하실에 물기가 가득 차 있으면 다가가면 안 된대. 음기가 강해서 귀신이 좋아한다나…?”
귀신? 갑자기 웬 귀신?
“너 그런 것도 믿어? 몬스터 잡으러 와서 웬 귀신 타령이야?”
오름의 등을 바라보며 이상하다는 듯 말하자 녀석은 갑자기 걸음을 뚝 멈췄다.
그리고 한참을 제자리에 서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데.
“야, 뭐 하자는 거야? 귀신한테 홀리기라도 했냐?”
갑자기 귀신 얘기라니, 오름답지 않았다.
녀석의 어깨에 손을 올렸을 때였다.
끼기기긱-
다시 한번 귀를 긁어대는 바람 소리가 들려오고, 오름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어…?
그리고 보인 오름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녀석의 눈이 점점 검붉은 피로 가득 차고 눈이 아예 시커매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녀석의 입과 눈이 괴기하게 찢어지고 고막을 뚫는 웃음소리가 냈다.
“깔깔깔깔!!”
“윽!”
갑자기 하이톤의 웃음소리를 들으니 귀가 나갈 것 같아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럼에도 녀석의 웃음소리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말이 씨가 됐네. 그래서 옛 선조들이 그렇게 말조심을 하라고 강조했던 건가.
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오름은 갑자기 웃음을 뚝 멈추더니 얼굴을 굳혔다.
아니, 오름이 이젠 맞는지도 모르겠다.
“너 되게 덤덤하구나.”
기분 나쁘다는 듯 툭 내뱉은 오름은 갑자기 입에서 거대한 거울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어떻게 해 볼 새도 없이 거울을 내 머리 위에서부터 들이밀었다.
“뭐 하는…!”
그리고 그렇게 나는 거울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이상한데, B급에서 인간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수준의 몬스터가 나온다고?”
내가 오름인지 몬스터인지 헷갈렸던 이유가 이거였다.
몬스터라고 하기에는 드래곤 수준의 몬스터도 아닌데, 인간과의 소통이 원활했다.
오름이 정말로 귀신에게 홀린 것이거나 몬스터의 스킬일 확률이 크다.
아니면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을 때, 던전 오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던전 오류가 이렇게 자주 일어나는 일일 리가 없지.
일단 나는 엎어져 있던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폈다.
거울 안은 지하실 바닥과 같은 재질이었지만 좁고 축축했던 밖과는 다르게 건조하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야~! 차오름!”
혹시 몰라 오름의 이름을 불렀다.
이러면 오름이든 몬스터든 나타날 거라 생각했다.
예상대로 누군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너무 어두워 누군지 잘 보이지 않아 인상을 찌푸렸다.
“어…. 뭐야.”
뚜벅뚜벅.
말없이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존재는 바로 ‘나’였다.
이거 뭐야. 흔히 나오는 클리셰 아니야? 나 자신과 싸워서 이겨라, 이런 건가?
긴장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이 몬스터에 대한 정보가 없었으니 어떤 식으로 나올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너 뭐야?”
그러니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나, 한설.”
쉽게는 안 알려 주겠다 이거지?
“몬스터 맞아? 차오름은 어디 갔어?”
“너를 기다리고 있었어.”
동문서답을 하고 있는 녀석을 보며 인상을 썼다.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너를 쓰러트리면 이 공간을 벗어날 수 있는 거지?”
“오름과 친하게 지내. 그럼 나를 더 많이 만날 수 있어.”
말이 안 통하는군.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인벤토리를 열려고 했다.
[인벤토리를 열 수 없습니다.]어? 왜지?
드럼채를 꺼내려고 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막히고 말았다.
이 공간이 뭔가 이상한 것 같았다.
내가 당황한 것을 봤는지 또 다른 내가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공중에 손을 올려 타자를 치는 듯한 시늉을 했다.
[여기서는 아무것도 통하지 않습니다.]…어?
[드디어 찾았습니다, 한설.]녀석은 나에게 시스템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이 느껴졌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어떻게 저 녀석이 나한테 시스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거지?
“너 대체 정체가 뭐야?”
“그걸 막 알려주면 재미없어.”
입으로는 반말을 하고 시스템으로는 존댓말을 하니 어색하게 느껴졌다. 마치 로봇과 대화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 차오름이랑 친하게 지내라는 말은 뭐야?”
“너무 바라는 게 많은데…. 뭐, 알려줄게, 이 정도는. 오름은 특별한 칭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던전에 함께 들어오게 되면 나를 만날 수 있어.”
뭐, 칭호…?
여기서도 칭호의 이야기가 나왔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칭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많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이제껏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도 나를 제외하고는 신애뿐이었다.
그런데 오름도 칭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오름과는 던전에 들어온 적이 처음이었다.
시스템과 관련된 존재라니, 뭔가 함부로 열어서는 안 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늘은 그냥 인사만 하러 온 거야. 하지만 때가 되면 선택해야 할 거야.”
녀석은 기분 나쁜 미소를 입가에서 지우고 싸늘한 표정이 되었다. 내 얼굴로 저런 표정을 지으니 생소하고 소름이 돋았다.
[진짜 이 세계의 주인이 누군지.]삐이-!
머릿속에서 언젠가 들어봤던 고주파의 소리가 울려댔다. 경고음과도 같은 그 소리는 두 귀를 막아도 멈추지 않고 시끄럽게 굴었다.
“으아악!!”
결국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질러대자 누군가 내 뺨을 거세게 치는 느낌이 들었다.
“…설! 한설!! 정신 차려!!”
짝! 짝!!
나 정신 차렸어.
얘 방금 눈 마주쳤는데도 뺨 더 때린 것 같은데?
오름은 모른 척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야, 갑자기 쓰러져서 깜짝 놀랐잖아. 왜 그런 건데?”
“내가 갑자기 쓰러졌다고?”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또 다른 나는 사라진 상태였고 물기가 가득한 지하실로 다시 돌아온 상태였다.
대체 그건 뭐였지?
마치 자신이 이 세계의 주인이라고 말하는 듯한 뉘앙스가 걸렸다.
선택해야 할 거라는 말 또한.
“그나저나 너 칭호도 있었냐?”
칭호가 생기는 기준은 대체 뭐길래 차오름도 가지고 있는 거지?
“엥, 내가 칭호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갑자기 접신했나. 아님 진짜 무슨 스킬이라도 있는 거야?”
깜짝 놀라는 오름을 보며 아까 만난 이상한 녀석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됐다.
어, 잠깐. 근데 차오름이 아까 그놈이랑 같은 편이 아니라는 증거도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