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141
142화
-강서고등학교로 가다
* * *
예전에 예빈이가 나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오빠 우린 왜 엄마 아빠가 없어?’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이라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단 얘기는 어린 예빈이에게 알려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대신 나는 예빈이의 부모님이 되었다. 부모님을 대신해 모든 행사를 참여했다. 예빈이도 그걸 당연하게 여겼다.
그런데 사이가 나빠지고 나서부터 그런 일이 없어졌으니 이번 일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게다가 학부모 총회 같은 건 딱히 필수로 참여해야 하는 행사도 아니니까.
“그래도 그렇지, 예빈이 녀석. 말이라도 꺼내 볼 수 있는 거 아니야?”
아니지, 누굴 원망해. 결국 이렇게 사이가 멀어진 건 예빈이 탓이 아니잖아.
의뢰 날짜는 바로 이틀 뒤였다. 날짜를 보니 예빈이는 끝까지 나에게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던 것 같다.
“예빈이가 너무 자라기도 했지. 그런데 학부모 총회는 뭘 하는 거지?”
근본적인 질문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면 맨날 예빈이 초등학교 때나 보호자로 참석했지, 중학교나 고등학교는 가 본 적도 없었다.
어차피 의뢰 겸 겸사겸사 가는 것이다 보니 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내가 가서 크게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닐 테니까.
“진짜 너도 징하다. 애 고등학교를 따라갈 생각을 하고 있냐. 그러면 싫어해.”
오름이 컴퓨터를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뭔 소리인지 몰라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답답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애들 마음을 이렇게 몰라서 되겠냐? 그냥 조용히 있다가 와. 걔가 너한테 왜 말 안 했겠냐?”
“내가 쪽팔려서?”
“물론 그런 것도 있겠지.”
아니 농담이었는데 너무한 거 아니냐.
“아무튼 조용히 있다가 나오라는 소리야. 그때 나이대 여자애들 예민하다.”
뭘 모르면서 하는 말이군, 우리 예빈이는 그런 거 없거든.
…라고 말하기엔 그동안 봐왔던 게 있어서 그런지 당당하게 말할 수 없었다.
그래, 뭐 어차피 학부모들끼리 얘기하다 오는 거니까 굳이 예빈이 얼굴 볼 필요도 없지.
그렇게 도착한 강서고등학교는 옛날 모습 그대로였다.
나도 이 고등학교를 나와서 그런가, 감회가 새롭네.
이번 임무도 나 혼자였다. 오름은 던전 외 의뢰를 받는 건 안 되겠다고 판단한 것인지 이번을 마지막으로 삼았다.
나도 던전을 돌지 못하게 되는 것은 싫었으니 오름의 말에 동의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오셨군요.”
정문에 다다랐을 때 나를 마중 나온 사람이 있었다. 얼굴이 익숙한 것을 보니 고등학생 때 수업을 몇 번 받았던 것 같았다.
“한설 님 맞으시죠? 같이 가실까요?”
“네.”
고분고분 대답을 하고 나이가 꽤 지긋한 남자의 뒤를 따라 교장실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주름이 깊게 패인 늙은 사내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며 다가왔다.
“어이고!! 드디어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 이 사람. 교장이다.
익숙한 얼굴에 순간적으로 인상이 찡그려지려 했지만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싫은 사람 앞이라도 표정관리는 해야지.
“아휴, 귀한 발걸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헌터 일 하시느라 바쁘셔서 못 오실 줄 알았는데.”
헌터에 대해 항상 안 좋게 말하고 다니던 교장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방긋 웃으며 헌터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모습이 참 웃기기도 했다.
“의뢰는 학부모 총회 동안 내부에서 경비를 서는 거였죠?”
교장의 악수를 못 본 척 무시하고 웃으면서 본론으로 들어갔다. 교장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네네, 그것도 그런데 센터에서 저희 고등학교 부근에 마력이 강하게 몰려들었다는 공문이 내려왔어서요. 오늘은 학부모님들께서도 오시니까 대비 차원으로 의뢰를 드린 겁니다.”
여기서 던전 게이트가 소환될지도 모른다고?
갑자기 예빈이가 있는 곳 근처에서 던전 게이트가 생성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물론 던전 브레이크는 쉽게 일어나는 일도 아니고 다른 헌터들이 금방 공략할 테지만 그것은 둘째 치고 그런 사실을 알고 나서 애들을 대피시키지 않은 이 정신 나간 교장 때문이었다.
민간인이나 사회적 약자들이 몰려 있는 지역에는 센터에서 미리 대피 공문을 내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특히 학교 같은 곳에서 던전 게이트가 소환되면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최소 3일 정도는 휴교를 하는 것이 정부 지침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평화로웠고, 던전 브레이크도 일어나지 않는 일처럼 여겨졌기에 간혹 그런 지침을 무시하고 휴교를 하지 않는 학교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학교 중 하나가 강서고등학교였던 것이고.
“…센터에서 대피 공문이 내려왔는데 학부모 총회를 하겠다고요?”
평화롭고 안전한 세계라는 인식은 던전을 겪어보지 않은 일반인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까딱 잘못하면 사람이 죽어 나갈 수 있는 곳이 던전이었고, 실제로도 사람이 죽어 나가는 곳이었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S급 헌터들의 수가 꽤 있었기에 다행이지, 던전 브레이크에서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예예, 뭐 요즘은 다들 그럽니다. 권고사항 같은 것이니까요. 그나저나 들어보니 저희 학교 졸업생이셨다는데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학부모님들 앞에서 간단하게 한마디 말이라도….”
진짜 돌았나.
“센터에서 내려오는 대피 공문은 권고가 아닐 텐데요.”
“네, 네? 그건 그렇지만…. 아하하, 한설 님께서 잘 모르셔서 그런가 본데, 요즘은 그런 걸 따르는 사람들이 더 드물어요.”
당황해 말을 더듬던 교장은 내 모습을 슥 살펴보더니 너털웃음을 짓더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이런 안일한 인간들 아래서 학교를 다녀야 하는 학생들이 불쌍했고 예빈이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당장 대피시키세요. 센터에 신고하기 전에.”
“무, 무슨 소리입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안 하시면 제가 직접 합니다.”
나는 당장 그곳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예전 기억을 되살려 방송실로 향했다.
교장실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섰다.
“어딜 가시는 겁니까?!”
당황한 교장이 내 팔목을 잡았고, 나는 그걸 가볍게 떨쳐냈다.
“방송실이요.”
“미친…! 어린 놈의 자식이!! 조금 유명하다고 봐줬더니만!!”
결국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교장 눈에는 내가 미친 짓을 벌이는 놈처럼 보였겠지만 나에게는 교장이 미친놈처럼 보였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우리인데 이렇게 안일할 사람들이 많을 줄은 몰랐다.
“저놈 잡아!”
교장이 근처에 있던 선생들에게 명령을 내렸지만 일반인이 헌터를 막을 힘이 있을 리 만무했다.
전부 떨쳐내고 방송실에 쳐들어가자 어린 학생 하나가 당황하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거 방송, 지금 하고 있는 거야?”
“아, 네네.”
마침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열심히 음악을 내보내고 있던 모양이었다.
잘됐네.
“나 좀 쓰자.”
“헉! 한설??”
녀석은 내 얼굴을 알아보고 자리에서 얼른 일어났다. 친절하게도 목소리가 잘 들리게 버튼까지 눌러줬다.
“아아, 교내에 계신 학생, 선생, 학부모 여러분께서는 곧 던전 게이트가 생성될 가능성이 있으니 빠르게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야!! 방송 못 하게 해!!”
그새 쫓아온 선생 한 명이 손가락질하며 학생에게 명령을 했다. 그러자 친절하게 자리를 내줬던 학생이 당황하며 나와 선생을 번갈아 봤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지금 던전 게이트가 생성될 가능성이 있으니 빠르게 대피하시길….”
파앗-!!
삐익-!!
“미, 미치신 겁니까!!”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모르는 학생을 뒤로하고 선생이 다가와 거칠게 마이크를 빼앗았다.
“미친 건 그쪽들이죠. 던전을 너무 우습게 보고 있는 거 아니에요? 애들은 여기에 던전 게이트 생긴다는 거 알고 있긴 해요?”
“애들이 알아봤자 도움 될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공부에 방해만 될 뿐이지!!”
하, 진짜 한숨만 나오네. 선생이 이러니 다들 경각심이 없지.
“보호자분들도 다 동의하고 진행하는 겁니다!”
보호자들의 동의? 단체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게다가…
“난…. 동의한 적 없는데?”
나도 보호자 중 하나라고.
순간 화가 나서 손으로 짚고 있던 의자의 모서리가 종잇장처럼 찌그러졌다.
“히익!!”
겁에 질린 선생 놈이 새된 비명을 질렀지만 표정이 풀릴 일은 없었다.
“서, 선생님…. 이거 아직 방송 중인데요.”
“뭐, 뭐?? 당장 꺼!!”
당황한 선생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자 겁에 질린 학생이 방송을 꺼 버렸다. 그래 봤자 이미 선생의 말이 교내에 쩌렁쩌렁 울렸을 테지만.
오히려 잘됐어. 애들이 제정신이라면 던전이 생성된다는데 학교에 남아 있으려고 하지는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방송실을 나섰다. 그런데 이게 웬걸.
“그래서 어제 말이야~”
“야, 그 틴트 너한테 찰떡이다!”
대피는커녕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학생들의 모습과 마주해야 했다.
“이게 뭐야….”
“어휴, 그러니까 방송을 하긴 왜 하십니까! 우리가 괜히 그렇게 말한 줄 아세요? 애들도 학부모님들도 던전 게이트 따윈 신경도 안 쓰신다고요!!”
뒤따라 나온 선생은 한숨을 푹 내쉬며 따지듯 말했다.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게 맞나? 어떻게 이렇게 던전 밖은 안일하고 평화로울 수 있지?
치열하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몬스터와 싸우던 것이 꿈같이 느껴졌다.
만약 정말로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던전이라도 터진다면….
띠리링.
그와 동시에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을 보니 김지완이었다.
무슨 일이지? 김지완은 오름과 같이 내일 있을 던전 의뢰 준비 때문에 바쁠 텐데.
“무슨 일이시죠?”
넋 놓고 있던 정신을 바로잡고 전화를 받자마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설 님!! 지금 강서고등학교십니까?”
왜 이렇게 당황했지?
“네, 그런데요, 왜….”
“S급 던전 출현입니다! 강서 고등학교에요!”
S급 던전이, 지금 이 강서 고등학교에…?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지금이 딱 그 꼴이었다.
지완의 다급한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에 쩌렁쩌렁 크게 울렸다.
그러니까 이 자리에 있는 선생과 학생들도 그 목소리를 들었다는 소리다.
그런데도.
“와, 미친! 우리 학교에 S급 던전 생긴대!”
“에고, S급 던전이면 사람들도 몰리고 복잡해지겠구만.”
“대박! 아까 방송도 그 얘기였나 본데? 난 왜 난리 피우나 싶었지.”
뭐가 이 사람들을 이렇게까지 안전 불감증으로 만들어 버린 거지?
“한설 님, S급은 차원이 달라요. 생성될 때도 여파가 남다릅니다. 얼른 그곳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쿠구궁-
“…이미 늦은 것 같아요.”
그 말을 끝으로 핸드폰 너머에서 지완이 뭐라고 하는지 들리지 않았다. 더 큰 소리와 소음에 먹혀 버린 것이다.
운동장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몰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란 검은 막대가 생성됐다.
그리고 마치 몬스터가 입을 벌리듯 막대의 크기가 팽창하며 커졌다.
S급 던전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