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166
167화
-이권의 폭로 (2)
이 미친놈아, 제발 미친 짓 좀 그만해.
속으로 불쑥 든 생각을 겨우 진정시키고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그 영상을 왜 퍼트린다는 거죠? 신혈 길드에 득 될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게다가 사실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긴 하지만 나에게는 신혈만큼 큰 타격이 없었다. 그래서 이게 협박이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권은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렇지. 보통 상황이면 우리한테 지금 이득되는 게 없지. 여러모로 말이야.”
그런데 왜 그런 선택을 하는 거냐고, 이 미친놈아.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길드대항전을 치르고 나서 선수들끼리 모이는 이벤트가 있거든.”
그런 이벤트가 있었다고? 길드대항전에 대한 것도 모르고 있었으니 내가 알고 있을 리가 없지만.
“선수들끼리는 왜 모이는 건데요?”
길드대항전도 다 끝났겠다, 굳이 선수들이 모여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나 싶었다.
“뭘 모르는군. 길드대항전은 경기가 끝나고 난 뒤가 진짜야.”
“끝나고 난 뒤가 진짜라고요?”
“대형 길드끼리만 모이는 게 아니라 이번 모임은 길드대항전에 참여했던 선수라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어.”
뭘 위한 모임인 거지? 설마….
“이 모임은 스카우트를 위한 자리야. 길드대항전에서 활약을 했던 길드의 선수를 영입하기 위한 자리라고 할 수 있지. 길드장부터 선수들까지 수고했다는 의미로 파티를 벌인다는 명목이지만 그 뒤에는 눈치싸움을 벌이는 거지.”
그렇군. 알아들었다. 백이권이 대항전 뒤가 진짜라고 한 이유도 스카우트 때문이구나.
그런데 그건 그거고.
“그래서 영상을 유출하겠다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건데요?”
영상 유출할 거라는 반협박을 말하고 있다가 갑자기 스카우트 파티에 대한 얘기를 하니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뭐, 그 파티에서 영상 틀고 팝콘이라도 먹게?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권을 바라봤다.
소미의 얘기를 하기 위해 여기로 사무실로 왔다가 난데없이 영상 유출에 대해서 말하고 또 갑자기 스카우트 파티에 대해 얘기하니 당연히 이해가 안 갈 수밖에 없었다.
“그 파티에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매번 대형 길드들도 참여해 왔어. 물론 길드장들도. 이번 길드대항전에서 가장 크게 활약했던 사람을 뽑자면 천설원과 한설이잖아? 아마 천설원의 길드장인 진중권도 꽤나 위상이 올라갔겠지.”
“그렇죠.”
“그런데 다들 천설원을 순수하게 헌터로서 스카우트하려고 하진 않을 거야.”
헌터로서 보지 않는다면 뭐로 본다는 거야?
“그거 알고 있나?”
“말을 해 줘야 알겠죠.”
자꾸 빙빙 돌려 말하는 이권이 짜증나서 고운 말이 나가지 않았다. 결론만 정확히 말해 줬으면 좋겠다는 심정이다.
이권은 내 짜증에도 그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천설원을 대장으로 내세워 센터나 길드장들에 대항하는 단체들이 많아지고 있어. 신흥 종교처럼 알음알음 퍼져 나가고 있지. 그걸 대형 길드나 센터가 곱게 볼 리가 없겠지?”
젠장,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일들이 있었단 말이야? 요즘 헌터 커뮤니티를 안 들어간 지가 꽤 오래돼서 천설원이 아직까지 거론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말을 들어보니 천설원은 썩어 빠진 센터와 길드들을 저격하며 대장격으로 급상한 것 같은데, 난 그런 적이 없다.
아니 던전 돌고 원스 의뢰 처리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그런 짓을 할 새가 어딨어?
억울했지만 이미 길드장과 센터에는 천설원의 이미지가 나락 간 것 같았다. 절망스러운 표정을 짓는 와중에 쐐기를 박는 이권의 말이 들려왔다.
“대안 길드장은 천설원 때문에 자신들이 활약을 못 했다고 이를 갈고 있더군. 심지어 센터에서도 천설원의 뒤를 캐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지.”
아, 망할. 정체가 나라는 걸 알게 되면 아주 난리가 나겠구만.
원래라면 신혈 길드에 있는 헌터라 쉽게 건들지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 영상을 유포한 범인이 신혈 길드장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사람들은 신혈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할 것이 뻔했다.
그러면 내가 지금 세운 원스의 활동도 방해하려고 들 테고, 나 또한 헌터 생활을 하는 데 있어 순탄치 못할 것이 뻔했다.
대안 길드야 아예 적대적으로 돌아서 버린다고 해도, 센터와 척을 지게 되면 던전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는 사항이었다.
“그러니까 협박하시는 거네요?”
“뭐 그런 섭한 소리를. 협박이라니.”
실실 웃고 있는 이권의 면상에 주먹이 파들대며 떨렸지만 꾹 참고 웃어 보였다.
“이거 풀면 공격당할 테니까 말 잘 들으라는 소리처럼 들리는데요.”
“뭐, 그렇게 들렸을 수도 있지만 나는 한설 군이 뭐라고 해도 이 영상을 퍼트릴 생각이야.”
뭐야, 나보고 지금 한번 망해 보라는 건가? 지금 시비 거는 거 맞지?
화가 살짝 치밀어 오르려고 하는데 이권의 진지한 눈빛에 뭔가 의도가 있음을 깨달았다.
애초에 그 의도를 먼저 말해 달라고.
“그래서 무슨 꿍꿍이신데요?”
“그래도 이해가 빨라서 좋아~?”
이권은 산뜻한 미소를 짓고 나에게 협조할 것을 요구했다.
“말도 없이 영상만 올리면 한설 군이 당황할 것 같아서 미리 말해주는 거야. 그래도 우리는 특별한 계약 관계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시고, 영상을 올리면 신혈이 얻게 되는 것은 뭔데요?”
“얻는 것이야 많지. 천설원을 안 좋게 보고 있던 길드들과의 관계가 개선되고 센터와도 사이좋게 지낼 수 있겠지?”
그런 게 아니란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이권은 다른 길드들과 사이가 좋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인물이었다.
사이가 극도로 험악해져 당장 이곳에 대형 길드가 쳐들어온다고 해도 이권은 감당할 자신이 있는 것이다.
감당할 뿐인가, 아마 오히려 덤벼들기를 바라겠지.
“진짜로 원하는 거요.”
“역시 안 속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이런 자잘한 해프닝이 아니야. 이걸 통해 최종적으로는 매화 길드의 몰락을 원해.”
뭐? 매화 길드가 몰락하길 바란다고?
어이없는 실소가 흘렀다. 다른 대형 길드의 몰락을 원하는 건 그렇다고 치자. 근데 그게 어떻게 내 영상으로 그렇게 되는 건데?
“웃기게도 매화도 천설원을 노리고 있어. 천설원이 매화를 개박살 낸 건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지? 그게 인터넷에서 아주 화제여서 말이야.”
“그런 걸로 천설원을 노리고 있다니, 매화 길드장도 참 속이 좁군요.”
“그렇지. 나처럼 넓은 아량을 베풀지 못하고 말이야. 어쨌든 이 영상을 풀게 되면 매화는 자연히 한설 군을 노리겠지. 그걸로 매화 길드장의 틈을 노릴 생각이야. 매화 길드장인 함유리도 분명 스카우트 파티에 참여할 거고 나에게 딜을 걸어오겠지. 그때 나는 한설 군을 팔아먹을 생각이야.”
아니 날 팔아먹겠다고? 이걸 본인이 있는 곳에서 대놓고 말하네.
“매화랑 무슨 딜을 하시게요?”
“내가 원하는 건 매화가 무너지고 드러나게 될 거대한 지속 던전이야.”
이권의 눈빛이 싸늘하게 빛났다. 지속 던전. 웬만한 지속 던전들은 모두 센터의 소유이거나 대형 길드들의 차지였다.
그리고 그 지속 던전을 통해 수많은 돈들을 수금하기도 했지만 간혹 가다 특정 던전에만 나오는 부속품들이 존재했다.
내가 봤을 때는 이권도 그런 부속품을 노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나를 팔아먹겠다는 데 동조하라는 말을 아주 장황하게 하셨네요.”
“하지만 냅다 설명하는 것보다 이렇게 차근차근 설명해야 대화를 오래 할 수 있잖나?”
나는 대화를 오래 하기 싫다고.
짜증 나는 대화 방식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딱히 표정을 숨기지 않은 상태로 이권을 바라보고 삐딱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으신 결론은 소미를 데리고 다니는 것을 비밀로 해줄 테니, 영상 유포하는 것에 동의하라, 그 말씀이시네요?”
“맞아. 그리고 매화 길드장 앞에서 억울한 척 연기도 해 주면 좋고.”
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그냥 동의를 구하는 척 웃으며 하는 협박이었다. 전부 내 동의를 구할 필요가 없는 내용이었다.
내가 이렇게 친절하게 구니까 너도 좀 더 말 잘 들어, 하는 뉘앙스가 풀풀 풍겼다.
싫다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여기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좋아요.”
이권은 사실 영상을 유포하는 것에 동의하는 것보다 뒤에 ‘연기’를 해 달라는 것이 포인트일 것이다.
나는 이권이 더 말하지 않는 계획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일단은 얌전히 있기로 했다.
“저도 스카우트 파티에 참여하길 바라시는 것 같은데, 맞아요?”
떠보듯 이권에게 말하자 이권은 박수를 짝 치며 웃었다.
“그러면 너무 좋지.”
“날짜는 언젠데요?”
“아마 오늘이던가?”
아니 오늘이면 뭐 고민하고 준비할 새도 없잖아? 이거 일부러 노리고 오늘 온 거구만?
이권은 신난 표정을 짓더니 기대고 앉아 있던 책상에서 일어나 갑자기 내 어깨를 붙잡았다.
“파티에 입고 갈 옷은 있나?”
“그냥 이 옷 입고 가면 되는 거 아닌가요?”
나는 입고 갈 옷이 있냐는 말에 멀뚱히 이권을 올려다봤다.
아니 굳이 옷을 사 입고 파티에 가야 해?
“안 되지. 그런 귀한 자리에는 옷을 갖춰 입고 가야 하는 법.”
얼마나 거창한 파티를 벌이길래 옷까지 맞춰 입고 간다는 거야?
뭔가 길드대항전 때의 일이 데자부처럼 스쳐 지나갔다. 열심히 백화점 쇼핑을 했던 때가 말이다.
“그럼 사 주시는 겁니까?”
사 준다면 거절할 생각은 없다.
“그럼, 당연하지. 최고의 스파이가 되어 줄 사람인데.”
그런데 오늘 매화 길드장이 나를 노리려면 영상을 본 상태여야지 않나?
나는 이권이 이런 실수를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근데 오늘 매화 길드장와 얘기하려면 영상을 미리 퍼트려 놨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응, 그래서 사실 이미 퍼트린 상태야.”
이 미친놈.
그냥 내 동의 따위 얻을 생각이 없었던 거잖아.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권과 싸우려면 아직은 힘을 더 키워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얌전히 주먹을 꾹 쥐기만 했다.
그리고 이권은 옷 사러 가자는 말과 함께 나를 무슨 짐짝 들 듯 어깨에 들쳐 메고 큰 테라스로 나가더니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이거 무슨 하울의 움직이는 성도 아니고, 하늘을 아주 자유롭게 날아댕기네.
거꾸로 매달려 가는 중이라 그런지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참고 있자 얼마 지나지 않아 백화점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권은 환한 얼굴로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 나를 밀어 넣고는 당당하게 말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다 사.”
그래, 내가 이거 때문에 이권이 개같이 굴어도 참는다.
그리고 나는 사고 싶은 것을 참지 않았다.
“이거 신기한데 살래요. 이것도요. 아, 그리고 이것도.”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일단 눈에 밟히는 것은 전부 쓸어 담으며 이권이 결제하게 만들었다.
이권은 조금 놀란 눈을 했지만 결제를 안 해 주지는 않았다.
“왜 그런 표정인데요? 원하는 거 다 사라면서요.”
“아니, 보통은 내가 겁나서 사 준다고 해도 적당히 고르거든.”
저번에 길드대항전 선수들 보니까 아니던데. 아님 그게 적당히 고른 선택인 건가?
“그래서, 불만이에요? 다시 환불하고 올까요?”
“아니, 일일이 결제하기 귀찮으니까 이걸로 해.”
그리고 이권은 검은색 카드를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