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169
170화
-이한대와의 만남
나도 모르게 튀어나간 말이었지만 후회하지는 않았다. 이한대는 고개를 꺾으며 나를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 뭔 소린가 했더니. 너였구나?”
기억한 건가?
“내 돈 떼먹고 튄 녀석. 맞나?”
이 새끼 전혀 기억 못 하고 있잖아.
완전히 틀렸다. 심드렁한 이한대의 목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마치 별일 아니었다는 듯이 구는 이한대의 태도가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가 으득 갈렸다. 내가 못해도 이 새끼 면상은 한 대 치고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거쳐 갔으면 내가 바로 떠오르지 않을 정도지?
“기억을 전혀 못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랑 형을 기억 못 한다는 게 말이 돼?”
“하도 오래된 일이라서 기억이 희미하네. 뭐였지? 형을 살려내라고 로비에서 난리치던 그놈 맞나?”
나보다 더 선명히 기억해야 하는 건 형이어야 했다. 하지만 이한대는 형은커녕 나를 기억하는 것도 겨우 하는 것 같았다.
“네 길드원이었던 사람을 기억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
“네 녀석이 우리 길드원이었나?”
말이 통하지 않았다. 정말로 나와 형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린 것 같았다.
“S급이었던 사람을 그렇게 쉽게 잊는다고?”
나는 울분을 삼키며 삐딱한 말투로 말했다.
“S급? 우리 길드에 S급 헌터였던 녀석이라…. 아! 그 녀석을 말하는 거였나? 한창우?”
이제야 정말 생각이 다 났다는 듯 다 피운 담배꽁초를 근처 재떨이에 비벼 끄며 이한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빛바랜 잿빛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이한대는 천천히 나에게로 걸어왔다.
“그런데 말이야.”
이상하다. 분명 담배는 다 피웠을 텐데 왜 연기가 사라지지 않고 있지?
의문을 가지며 경계태세를 취하고 이한대를 노려보자 놈은 같잖다는 듯이 비웃음을 내보였다.
슈욱-
“큭!”
그리고 순식간에 이한대의 주변에 일렁이고 있던 연기들이 내 목을 졸랐다.
나는 목린 목을 풀기 위해 연기들을 손으로 잡아보려 했지만 실체가 없는 기체를 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죄책감은 전혀 없는 말투에 귀찮게 하지 말라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예전에도 그랬다. 형에 대한 일로 찾아갔더니 저런 심드렁한 표정으로 나를 죽기 직전까지 패고 길거리에 던져 놓던 녀석이었다.
이 자식만큼은 내가 어떻게든 한 방 먹이고 만다.
그렇게 다짐하는 것과는 상반되게 점점 숨이 막혀오고 있었다.
윽, 이거 무슨 스킬이지? 연기랑 관련이 있는 모양인데 이대로 가다간 숨 막혀 죽겠어.
지금이야말로 승급을 통해 무적 효과를 사용할 때인가 싶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백화점에서 샀던 아이템 중 하나가 떠올랐다.
백이권의 카드로 나름 쓸모가 있어 보이는 아이템들을 몇 개 더 구입했었다.
그중 하나가 이 아이템이었다.
[마력탄]등급과 상관없이 3초 동안 상대의 눈을 멀게 합니다.
*마력의 5분의 1 소모
싼 값에 팔고 있길래 의아할 뻔했던 아이템이었다. 등급에 상관없이 상대의 시야를 3초 동안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은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 아이템이 안 팔려서 할인 매장에 나와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마력을 미친 듯이 잡아먹는다는 조건 때문일 것이다.
5분의 1이라면 낮은 등급과 레벨의 헌터라면 나쁘지 않은 조건일 수도 있었겠지만 상급자일수록 손해인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나는 마력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템의 효능만 빼먹을 수 있지.
이렇게 이걸 빨리 사용할 줄은 몰랐으나 지금 타이밍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한대의 눈을 피해 인벤토리를 열고 힘겹게 마력탄을 던졌다.
펑!
“큭, 뭐지?!”
말 그대로 번쩍하는 빛이 일어났고 잠깐 동안이었으나 목을 조르고 있던 연기의 힘이 느슨해졌다. 그 틈을 타서 나는 재빠르게 몸을 빼냈고 바로 드럼채를 꺼내 들었다.
버프를 걸 시간은 없었다. 느긋하게 연주를 하고 있다가 또 연기 공격에 당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악기 공격이라면 달랐다.
[중급 마나술 – 구분구]1회 공격이 9회 공격과 같은 피해를 입히는 기술.
1회 공격에 9회 공격의 피해량과 횟수를 적용합니다.
중급 마나술, 구분구와 함께 쓴다면 악기 공격의 중첩 효과를 한 번에 9번이나 적용시켜 공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로는 성에 안 차지.
어디 보자, 소리 전달 스킬 쿨타임이 다 찼던가?
날짜를 계산해 보면 얼추 쿨타임이 돌아올 때였다. 녀석에게 이렇게 귀한 스킬을 사용한다는 것이 짜증났지만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소리 전달만큼 좋은 방법이 없었다.
“이한대는 지금부터 모든 대미지를 수십 배로 받는다.”
[스킬을 1명의 존재에게 사용하셨습니다. 형태변화의 지속시간은 5시간입니다.]녀석은 금방 마력탄에 정신을 차리고 살벌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웃기지도 않는 말을 내뱉는군.”
대형 길드의 대장쯤 되는 사람이면 백이권과 계약한 헌터의 뒷조사를 안 했을 리가 없다.
지금까지 활약한 것도 있어서 내 스킬을 유추해낸 놈들도 있을 거다.
하지만 녀석은 기억력이 나쁜 건지 기억하기 귀찮은 것인지 내 능력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게 나한테는 좋은 일이긴 하지만 무시당하는 것 같고 기분은 썩 좋지 않긴 하네.
하지만 상관없었다. 놈이 방심해서 얌전히 당해 준다면 무시하든 말든 알 바 아니었다.
나를 얕보고 있는 지금이 한 방 먹이기 좋은 타이밍이었다.
“E급 주제에 발버둥 치는 모습이란.”
아, 기억을 못 하는 게 아니라 E급 헌터의 스킬 따윈 안 통할 거라 생각해서 신경을 안 쓴 거였어?
이렇든 저렇든 변하는 것은 없었다. 어쨌든 녀석에게 한 방 먹일 거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으니까.
이제 공격 수단은 충분히 확보했다.
하지만 이한대를 상대하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저 잡히지 않는 연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으니까.
까딱 방심하면 아까처럼 목이 졸릴 것 같았다.
정말 승급으로 무적 효과를 적용해야 하나? 저 녀석 때문에 쓰기에는 아까운데.
나는 직업 공유 시간이 전부 끝났는지 확인했다. 아까 비밀 던전을 끝으로 직업 공유 시간이 거의 끝났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던전에서 나온 지 시간도 꽤 지난 상태였으니까.
그리고 남은 시간을 확인했을 때였다.
[공유 시간: 19시간 50분]어? 뭐지? 왜 시간이 늘어나 있는 거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나 싶었지만 지금 가장 급한 건 이한대를 상대해야 하는 것이었기에 재빨리 오름의 스킬을 사용했다.
“지금부터 내게 닿는 스킬은 무효화된다.”
‘거짓 진술’만으로 스킬이 먹혔으면 좋겠지만 안 될 경우에 ‘거짓을 진실로’까지 사용할 생각이었다.
[스킬을 성공하셨습니다.]다행이군.
30%의 확률을 뚫는 것은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 또한 여러 조건에 따라 가뜩이나 낮은 확률의 변동 폭도 컸다.
만약 S급의 행동을 직접 제재하는 거짓이었다면 실패할 확률은 현저히 높아졌을 거다. 하지만 나 스스로에게 건 거짓이었기에 그나마 성공 확률이 올라간 것이다.
“계속 헛소리만 하는군. 아, 설마 그게 백이권이 집착하던 스킬인가?”
생각보다 대안 길드는 나에 대한 정보가 명확하지 않은 것 같았다. 다른 길드들도 이 정도면 많이 알고 있는 건지 아니면 대안 길드만 정보력이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일단 매화는 이혁일이 있으니 정보력 측면에서는 신혈보다 위라고 할 수 있으려나?
신혈의 정보력은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었으니 비교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보다 지금은 눈앞의 이한대다.
녀석은 내가 E급이라는 생각에 상당히 방심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그동안 무시했던 E급한테 한번 당해 봐라.
“간다.”
파밧-
놈이 비웃음을 담은 미소를 지으며 연기를 조종하려고 할 때 나는 자리를 박차고 녀석의 바운더리 안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녀석은 갑자기 내가 공격하려고 달려들 줄 몰랐는지 눈이 커졌다.
그래도 S급에 길드장이라 그런지 당황하는 것도 잠시, 녀석은 예의 그 연기를 움직여 나를 결박하려 했다.
하지만.
희뿌연 연기는 내 몸에 닿는 순간 마치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사라져 버렸다.
“뭐지?”
놈은 내가 말한 대로 자신의 스킬이 사라지자 다시 당황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래도 본능적으로 내 공격을 막기 위해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방어하기 쉬운 머리나 몸통보다는 차라리 다리를 노려야 한다.
상체에 치중된 방어 자세를 무시한 채 자연스럽게 타점을 내렸다.
비어 있는 다리. 그곳을 향해 드럼채가 빠르게 다가갔다.
퍽!
[공격에 성공하셨습니다! 공격력이 270% 증가합니다. 공격 시 상대방의 방어력을 270% 무시합니다.]구분구 스킬을 사용한 덕분에 악기 공격의 중첩 효과는 9중첩. 1회당 30%의 증가율이었다.
버틸 수 있는 대미지가 아닐걸?
“크, 크악!!”
역시나, 녀석은 다리에 느껴지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사실 이한대는 내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 다리로 향하는 드럼채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방어하지 않았다.
E급이 공격하면 얼마나 공격할 수 있겠냐는 마인드로 그냥 한 대 맞아준 뒤 주먹을 뻗을 생각이었을 거다.
S급 녀석들은 이게 문제다. 내가 S급인 신애를 이긴 것도 우연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E급이라는 타이틀이 그들을 방심하게 만드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자신을 이길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 화가 났다.
모든 사람들 위에 서 있는 존재, 그게 바로 S급인 자신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머지는 뭐 개미만도 못한 취급이었다.
그 개미한테 세게 물린 기분이 어떠냐?
이한대의 다리는 이상한 방향으로 꺾였다. 그리고 녀석은 다리를 감싸 안으며 고통을 참고 있는 것이 보였다.
투둑.
비명이 잦아들더니 이한대는 연기를 다시 불러왔다.
내게 닿는 스킬만 무효화하는 거라 다시 연기를 불러오는 게 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곧 연기가 다리를 감싸자 기괴하게 꺾여 있던 다리를 원상 복귀시키고 있었다.
시커먼 연기가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더니 이한대의 다리가 멀쩡한 상태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나는 다시 한번 드럼채를 쥐었다.
자체 힐인가. 연기로 힐까지 할 수 있는지는 몰랐네.
“허, 말하는 대로 다 이뤄지는 스킬이라고…? 이게 가능한 일인가?”
이한대는 내가 말하는 대로 전부 이루어지고 있으니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하지. 리스크와 확률의 싸움인데 그걸 이한대는 모르고 있었으니 치트키라고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나는 이한대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곧바로 다음 공격에 나섰다.
이한대는 이제야 조금 진지해질 마음이 생긴 것인지 다시 생성해낸 연기 속에서 일본도를 꺼내 들었다.
날카로운 검신은 검은색으로 빛나고 있었고 위험한 분위기를 풍겼다.
까딱하면 목이 날아가는 건 나일 수도 있겠는데? 하지만 검은 이 좁은 방에서 불리하다. 여차하면 나는 비밀 던전 안으로 몸을 숨기면 돼.
나도 그냥 생각 없이 덤비는 게 아니라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향해 드럼채와 일본도를 휘둘렀다.
콰직-!
드럼채가 두 동강이 났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따져봤을 때 드럼채가 일본도를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드럼채를 가져다 댔다.
그리고 드럼채를 부러트리는 사이, 몰래 꺼내 뒀던 리코더로 이한대의 옆구리를 깊숙이 찔러 넣기 위한 페이크였다.
푹!
그리고 내가 찌른 것은 이한대의 옆구리가 아닌 연기 덩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