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17
17화
-빽이 있는 게 어때서?
당연히 중형 길드 정도일 줄 알았는데 대형 길드 중 최고라고 말하는 신혈 길드라니.
그렇게 자존심이 높던 현준이 왜 D급 검사인 신애와 같이 다녔던 것인지 알게 되는 대목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땡잡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부담감으로 바뀌고 있음을 느꼈다.
내가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지 헷갈렸다. 이러다 길드 놈들이랑 엮이는 건 아닌지….
그때 짧은 숏컷 머리를 한 여자가 중무장을 한 채 우리에게 다가왔다.
“언니, 여기!”
나는 잔뜩 긴장했지만 신애는 익숙한 듯 그 여자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아는 사람이 레이드 대장이라고 했으니 저 여자가 아마도 이번 레이드를 이끌 사람인 모양이었다.
“이 사람이 네가 말했던 사람?”
여자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응! 한설 님이라고 실력은 내가 보장해.”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뭐….”
여자는 나를 한 번 힐끗 보며 미덥지 못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한숨을 푹 쉬었다.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게 느껴졌지만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길드와 엮이든 무시를 받든. 지금은 일단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잡는 게 더 중요했다.
“뭐 신애 지인이긴 하지만 확인은 해야 해서요. 헌터증 좀 보여주시겠어요?”
순간 당황했다. 실제 등급이 D급이어도 내 헌터증에는 E급으로 되어 있으니까.
E급 헌터는 아무리 잘나 봤자 길드 레이드에서 아웃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의아한 표정을 짓는 두 사람을 보며 등에 식은땀이 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헌터증을 놓고 왔다고 거짓말을 할까 고민도 해봤지만, 센터 홈페이지에서 검색해 보면 금방 들킬 거짓말이었다.
결국 얌전히 헌터증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내쫓긴다면 조금 쪽팔리긴 하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최후의 방법으로 둘에게 무릎 꿇으며 부탁하는 방법이 남아 있었으니 괜찮았다.
지금 자존심이 중요하냐, 던전 들어가서 레벨 업 하는 게 중요하지.
헌터증을 본 여자는 눈이 동그래지더니 나를 쳐다봤다.
그 눈빛은 마치 염치도 없이 여길 어떻게 따라왔느냐는 것 같았다.
내가 E급 헌터라는 사실을 모르는 신애는 언니라 부른 여자가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E급이시네요.”
“네. 보시는 대로.”
신애는 여자의 말에 그 여자와 마찬가지로 눈이 동그래졌다.
“한설 님. E급이셨어요?”
“네.”
비난의 말도 각오하며 눈을 살며시 감았다. 무릎이 때를 보며 꿇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어떻게 그런 스킬을 갖고 계신 거예요? 이거 기자한테 말하면 뉴스에 나겠는데요?”
의외의 반응에 눈을 번쩍 뜨며 신애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은 초롱초롱해 보였다. 아마 신애에게 나는 무한 신뢰의 이미지인 것 같다.
분명 비난도 각오하고 있었는데.
하긴 내 스킬이 좀 쩔긴 하지.
“그렇게 대단한 스킬을 가지고 있다고?”
“응, 그것뿐만이 아니라 버프 효과도 좋아. 물론 언니한테는 얼마나 적용될지 모르겠지만.”
“난 버프 안 받아도 상관없어. 내 아랫사람들이 버프를 받느냐가 더 중요하지.”
“하긴 언니는 필요 없겠다. 아차, 내 정신 좀 봐. 소개가 늦었네요. 이쪽은 제 친언니 신지애예요. 언니, 이분은 한설 님.”
“안녕하세요. 한설입니다.”
나는 활짝 웃는 낯으로 손을 내밀었다. 지애는 그 손을 살포시 무시하며 고개만 까딱거릴 뿐이었다.
무안한 손을 거두며 웃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더는 엮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애 언니는 A급 헌터인데 오늘이 레이드를 이끄는 게 두 번째라 조금 예민한 상태예요. 이해해 주세요.”
신애는 지애가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며 신애의 걱정을 덜어줬다.
하지만 속으로는 현준을 떠올리며 높은 등급의 사람들은 원래 저렇게 다 인간성이 없고 제멋대로인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땜빵이시니 딱히 할 일은 없을 것 같네요. 서포터이시니 신애 뒤에 붙어서 나오지 마세요. 평소 돌던 곳이랑은 차원이 다를 테니까.”
“네. 걱정 감사합니다.”
지애가 예민한 상태라고 하는 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하지만 감사 인사를 하며 눈치 없는 척을 했다.
그렇게 주의하라고 해봤자 뻔뻔하게 나댈 예정이라 소용없는 말들이었다.
안 그러면 내가 이 길드 레이드에 참여할 이유가 없었다.
얌전히 버프나 줘서 경험치를 나눠 받는 것도 방법이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인원이 참가한다면 나눠 받는 경험치도 조금일 것이다.
그러면 E급을 도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 현재 목표는 등급을 올리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우선 레벨을 올려서 만렙을 찍어야 했다.
그러니 활약을 해야 한다.
그게 공격이든 버프이든.
“다들 소란 피우지 말고 정비해! 이제 곧 들어간다!”
지애는 나에게 관심을 끄고 던전에 들어갈 채비를 했다.
나도 그녀의 말에 따라 가지고 온 장비를 점검하고 신애의 뒤에 섰다.
물론 점검이라고 해봤자 품 안에 있는 리코더와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 악보를 다운받은 핸드폰이 전부이긴 했지만.
물론 악보를 볼 줄은 모른다.
최대한 쉬워 보이는 것들로 아무거나 마구잡이로 다운받았는데 어떤 노래인지도 몰랐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든든한 느낌이 들었으니 상관없었다.
드디어 신혈 길드의 사람들과 함께 던전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던전의 음산한 기운이 퍼졌다.
다른 사람들은 잔뜩 긴장해 침을 삼키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나도 긴장을 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역시나 저번 B급 던전 오류 때처럼 긴장은커녕 내 집처럼 편하기까지 했다.
이런 게 체질인 건가 싶었다.
신애와 나는 맨 뒤에 서서 다른 헌터들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 처지였다.
길드 레이드에 받아주는 최소 등급이 D급이라는 것을 떠올려 보면 이게 맞는 위치이긴 했다.
아마 우리가 나설 일이 없다고 보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어디 듣도 보도 못 한 것들이 갑자기 들어와선 물을 흐리네.”
우리가 한참을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앞에서 걷던 무리가 우리를 욕하는 것이 들려왔다. 분명 혼잣말이라고 하기에는 소리가 컸다.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지애의 친동생인 신애까지 싸잡아서 욕을 할 줄은 몰랐던 터라 힐끔 신애를 바라봤다.
그녀가 충격받지는 않았을까 싶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어디서 빽도 없는 게 앞에서는 하지도 못할 말을 뒤에서 중얼거리고 있네. 자신 있으면 직접 나한테 말하지 그래?”
신애의 표독스러운 표정에 당황했다.
역시 인맥을 이용하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신애같이 이런 깡을 가지고 사람들의 비난에도 버틸 수 있어야 해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맞는 말 한 건데 뭘?”
하지만 신애의 말을 듣고도 지지 않던 사내가 더 큰 소리를 냈다. 앞줄까지는 들리지 않을 크기였다.
그러자 신애가 아주 우렁찬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람 없어서 난감했던 거 겨우 채워줬더니 낙하산이라 말하고 싶은 거야 뭐야! 레이드도 일정 인원 못 채우면 던전 못 들어가는 거 몰라? 우리 없었으면 이 레이드가 출발이나 했을 것 같냐! 시간 줄여줬더니 말이 많네. 불만이 있으면 일대일로 뜨던가!”
이건 분명 앞줄까지 들으라는 호통이었다.
신애는 이 일을 크게 몰고 갈 생각마저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내비친 것이다.
분명 신애의 목소리를 대장인 지애가 들었을 테고 불리한 것은 신애가 아니라 상대방이었다.
신애의 큰 목소리에 사내도 당황한 듯 보였다. 신애가 이렇게까지 반응할 줄은 몰랐겠지.
“무슨 일이지?”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결국 한숨을 쉬며 지애가 뒷줄로 와 상황을 물었다.
대장의 등장에 당황한 사내는 얼버무리려는 듯 아무 일도 아니라고 말했지만 신애는 표독스러운 눈으로 그 말을 씹으며 소리쳤다.
“저 새끼가 지인빨로 낙하산 탄 새끼들이 물 흐리고 지랄한다고 했어!”
나는 사레가 들려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너무 과장된 말이었다. 사내도 억울했는지 손사래를 쳤다.
“너 뭐라는 거야! 그 정도로 말하진 않았어! 아닙니다, 대장님! 오해입니다.”
대충 상황을 알겠다는 듯이 지애는 다시 한숨을 크게 쉬고는 말했다.
“던전에 들어온 순간 우리는 적이 아닌 아군이다. 몬스터를 견제해도 모자랄 판에 같은 편을 견제하는 건 잘못된 일이지. 레이드 인원에 불만이 있다면 고용당한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을 고용한 나에게 와서 항의하도록.”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 우리를 조롱하던 남자는 찍소리도 못 내고 죄송하다는 말만 남발했다. 그리고 우리와는 떨어진 중앙부에 재배치되었다.
지애는 신애에게도 주의를 시켰다.
“네가 화가 난 것도 이해가 가지만 꼭 틀린 말도 아니잖아. 성질 좀 죽여, 여긴 던전이야.”
신애는 지애의 말에 입술을 삐죽 내밀었지만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해요. 많이 당황했죠?”
다시 이동을 시작하자 신애가 머쓱해하며 말을 걸었다.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 상황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못 했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
그 상황에서 끼어들면 모든 불똥이 나에게로 튈 것 같았다. 그리고 신애의 행동을 제지하려고 하는 마음보단 사실 응원의 마음이 더 컸다.
“아니에요, 멋졌어요. 속이 다 시원하던데요.”
나는 엄지를 들어 올리며 신애를 칭찬했다.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나였으면 그냥 웃어서 상황을 넘기거나 선을 넘는다 싶으면 냅다 리코더로 후려쳤을 거다.
“저런 애들은 앞에서 한번 쪽을 당해봐야 다시 안 그러거든요. 저도 하도 이런 일이 많으니까 그냥 터득한 거예요.”
“그렇구나.”
“그리고 인맥빨 좀 받으면 어때서요? 저 같은 D급은 어디를 가도 인정받기 힘들어요. 인맥마저 없으면 설 데도 별로 없다고요. 그래서 잘난 언니 둔 김에 덕 좀 보겠다는데…. 뭐라 하려면 하라고 그래요. 부러워서 그러지 다들.”
이런 일이 한두 번 있던 일은 아니었나 보다.
헌터 세계에서는 사실 등급이 전부였다.
나는 좀 특이한 바드이기도 하고 던전을 돈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제껏 차별을 많이 당하지 않았다.
하지만 던전을 돌다 보면 등급이 낮은 헌터들을 차별하고 무시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야말로 강약약강의 세계.
지애가 스치듯이 한 말이 떠올랐다. 틀린 말도 아니지 않느냐는 말.
나도 나지만 D급인 신애도 이런저런 시선과 비난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을 것이다. 괜히 신애에게 동질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 이런 말 좀 불편하시죠? 죄송해요.”
미안한 기색을 내비치는 신애에게 나는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밑바닥 인생의 서러움은 나도 잘 알았기에.
한참을 걷다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는 지애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 몬스터가 출현한 모양이었다.
“탱커들 앞으로! 힐러와 서포터들은 스킬 사용하고 나머지는 공격 준비!”
우렁찬 목소리가 던전 안을 울렸다. 소리만으로도 몬스터들의 기가 질려 달아날 것만 같았다.
B급이었던 현준도 대단하긴 했지만 역시 A급의 카리스마는 남달랐다.
앞에서는 분주히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지만, 뒷줄인 우리는 생각보다 할 일이 없었다.
앞에서는 화려한 공격 스킬과 방어막이 펼쳐진 것이 보였다.
하지만 맨 뒷줄에서는 몬스터의 코빼기도 볼 수가 없었다. 거리가 있는 탓이었다.
정말로 아무것도 못 하다가 그냥 이대로 나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져서 리코더라도 불어서 버프를 줘야 하나 싶었지만 나보다 뛰어난 서포터들이 많이 있어 그럴 기회조차 없었다.
정말 말 그대로 땜빵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도 지애가 이끄는 팀은 새로 영입된 신입 헌터들을 교육하는 목적에 특화되어 있다고 신애가 말해줘서 그런지 전문적이어도 다들 긴장하며 떨고 있는 것이 보였다.
던전을 많이 경험해 보지 못한 티가 나는 것이다.
아마 등급은 주로 D-C급으로 구성된 것 같았다.
비슷한 등급이니 그렇게 겁을 먹지 않아도 되는데 역시 던전 경험이 많이 없으면 그만큼 긴장이 되는 모양이었다.
무사히 첫 전투를 마치고 잠깐의 휴식을 한 뒤 우리는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다음 전투는 더 수월했다.
나오는 몬스터도 처음과 별반 다르지 않았고 역시나 이번에도 나는 할 일이 없었다.
두 번째 전투라 그런지 사람들도 더 편안하게 전투를 치렀고 두 번째 전투도 별 탈 없이 끝났다.
잡몹과의 전투는 적어도 3번은 치러야 하기에 다들 다음 전투에 만반의 준비를 하며 이동을 했다.
한참을 던전 안으로 들어가니 마지막 잡몹이 등장해 전투를 치르게 됐다.
그런데 이번 전투는 뭔가 미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왜냐면 한 번도 나온 적 없었던 비명이 앞줄에서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비명을 들었을 때 다급하게 외치는 지애의 목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신애야 조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