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174
175화
-매화 길드
안경을 쓴 부드러운 인상의 여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반기고 있었다.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서 본 사람 같은데?
“오랜만이군, 정승아.”
아, 이 사람이 그 유명한 힐러구나.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유명한 사람이었다.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신이 주신 인간, 힐러 정승아.
그녀는 매화 길드 소속의 S급 힐러였지만 그와 동시에 국가에서 특별히 지정한 보호 대상이었다.
헌터나 일반인들을 가리지 않고 스킬을 사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이 시대 진정한 성모마리아라나 뭐라나.
“귀한 분이 왜 여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지?”
정승아는 살포시 미소를 짓고 우리를 지나쳐 문밖으로 향했다. 그러고 두 손을 모으더니 손 안에서 솜사탕같이 몽실몽실한 실뭉치 같은 게 생성됐다.
그리고 그 실뭉치가 환자들을 이송시키기 시작했다.
“강한 건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대단하시네요.”
정승아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딱히 길드원들을 공격했다고 탓할 생각은 없어 보이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저런 식으로 나오는 게 더 의심스러웠다.
“저희가 오실 걸 알고 있었죠? 함유리 씨는 어디 있어요?”
정승아는 내 질문에도 그저 미소를 지을 뿐 한참을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따라오라는 듯이 어딘가로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따라가지.”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나를 향해 이권이 말했다. 그는 이미 정승아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의심 많은 이권이라면 정승아를 쉽게 믿을 리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얌전하게 굴었다.
“어디로 데려갈 줄 알고 졸래졸래 따라가는 거예요?”
“진짜 속내는 알 수 없겠지만 내가 봐온 정승아는 평화주의자야. 쓸데없이 힘 빼는 짓은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이권은 정승아가 아마 우리를 함유리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얌전히 정승아의 뒤를 따랐다.
“여기는 저희 길드원들이 무술을 연마하는 장소예요.”
큰 정문을 지나 한참을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중문이 나왔다.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운동장만 한 연무장이 나왔다.
멀리서 봤을 때와 다르게 내부는 확실히 으리으리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연무장 사방으로 다른 장소로 이어지는 협문들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 크기를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완전 조선시대에 온 것 같네요.”
“함유리의 아버지가 한옥을 사랑하는 무술가라더니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군.”
내가 신기하게 주변을 휙휙 둘러보자 이권이 설명했다. 이권도 매화 길드 내부에 오는 것은 처음이었는지 턱을 쓰다듬으며 내부를 천천히 구경하고 있었다.
“네, 맞아요. 유리네 아버지는 유명한 무술가이시고 어머니는 건축가세요. 두 분 다 한옥을 좋아해서 매화 길드 건물도 한옥으로 짓게 됐어요.”
위치만 아니었으면 관광지로 내세워도 좋을 정도로 제대로였다. 그리고 연무장 안에도 매화나무가 즐비하고 있었다.
사실 연무장뿐만이 아니라 여기저기 곳곳에 매화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누가 매화 길드 아니랄까 봐.
연무장에는 스킬을 연마하고 있는 헌터들이 서로 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우리가 신경도 쓰이지 않는지 한참 공방을 벌이다가 한쪽이 승리하고 나서야 우리 쪽을 바라봤다.
“헉! 백이권이다!”
그리고 그제야 우리가 누군지 알았는지 입을 막으며 놀라는 것이었다.
“정승아 님 안녕하세요!”
그리고 이어서 우리를 안내하고 있던 정승아를 확인하고 90도 인사를 했다. 정승아가 인사를 받아주니 다들 좋아라 하는 것을 보아하니 꽤 신뢰받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까 결투 보니까 매화 길드 사람들의 수준이 생각보다 더 높은걸?
등급 자체는 그렇게 높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상당히 전투 센스나 기본기가 탄탄해 보였다.
앞의 녀석들과는 천차만별인데? 일부러 별로인 녀석들을 앞에 세운 건가?
게다가 자세히 살펴보니 녀석들은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다. 정승아도 그렇고 매화 길드원들만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해둔 것이다.
지금 여기서 스킬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백이권과 나 둘뿐이었다.
이거 괜찮은 거겠지? 지금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거 아니야?
“따라오세요.”
정승아는 연무장을 지나쳐 북쪽에 나 있는 협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딱 봐도 높으신 분이 머무를 것 같은 장소가 나타났다.
아마 저기에 함유리가 있겠지.
“꽁꽁 묶어서 데리고 오라니까.”
그리고 예상대로 함유리가 책상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표정에 변화는 없었지만 정승아에게 왜 우리를 멀쩡히 데리고 왔냐는 듯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거 참 오랜만이네요.”
다시 제 발로 함유리한테 걸어 들어올 줄은 몰랐는데. 뭐 어차피 한 번 만나기는 했어야 하니까 넘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오는 거 얌전히 묶여 왔으면 좋잖아?”
“하하, 묶이나 안 묶이나 스킬을 사용하지 못하면 꼼짝 못 하는 건 똑같잖아?”
이권이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함유리를 쳐다봤다.
함유리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맞아. 그런데 네가 싸고도는 헌터에게는 소용이 없는 것 같아서.”
아닌데. 소용 많은데.
안 그래도 스킬을 사용 못 해서 답답해하던 참이었다. 아무래도 함유리가 내가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칭호 때문인 것 같았다.
“그래, 그래서 밧줄이든 뭐든 소용없다고 말하려고.”
이권도 칭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밝힐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이걸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봤자 E급 헌터의 스킬이잖아. 게다가 여긴 우리 본진이라고?”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지.
어차피 이권도 거짓말을 쳤겠다, 나도 그 거짓말에 동참하기로 했다.
“저한테 백이권 씨의 스킬 무력을 풀 수 있는 스킬이 있다면요?”
그러자 함유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붉은 머리카락이 살짝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함유리가 감정을 표현할 때 머리카락이 움직이는 듯했다.
“그래서, 지금 나를 협박하는 거야? 내 길드 안에서?”
함유리의 눈에 광기가 돌았다. 뭐라고 하는지 한번 보자는 듯이 내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제대로 된 답변이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죽일 기세였다.
S급들은 왜 이렇게 저돌적인 거야? 대화라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아예 모르는 건가?
아, 모든 S급들 중에 정승아는 빼야 할 것 같았다. 얌전히 우리를 함유리 앞으로 데려다준 걸 보니까 말이다.
“협박이라뇨. 제가 스카우트 파티 때부터 계속 얘기했잖아요. 저는 이혁일을 만나러 온 거라고.”
“나보고 그걸 믿으라고? 그랬다면 정당하게 나에게 요청을 하는 게 옳은 일이지.”
아니 뭐 요청하기도 전에 나를 잡으러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 사람이 말은 번드르르하게 하네.
“정말입니다. 이혁일이 우리를 불렀어요. 굳이 따지자면 우리가 이곳에 오게 된 원인도 이혁일 때문이라는 거죠. 이혁일, 어디에 있죠?”
나는 함유리를 설득할 자신이 없었지만 최대한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이혁일의 행방을 물었다.
“하하. 너는 아니겠지, 꼬맹아. 나는 이혁일이고 뭐고 애초에 관심도 없어. 네 뒤에 있는 금수 놈이 너와 생각이 똑같다고 자부할 수 있어?”
함유리는 나를 쳐다보던 눈빛 그대로 백이권을 쳐다봤다.
“당연하죠! 백이권도 저희랑 같이 이혁일을 만나러….”
잠깐만, 생각해 보니 백이권이 이혁일을 만나는 게 목적이 맞나?
지도 하나 얻었다고 앞뒤 이렇게 귀찮은 일을 선뜻 받아드렸다는 것에 갑자기 의구심이 들었다.
어쩐지 너무 순순하지 않았나? 백이권이 아무 목적 없이 행동한다고?
절대 그럴 리가 없었다. 이권은 목적 없이, 혹은 이득 없이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다 스카우트 파티가 열리기 전에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필요한 물건이 있다던 이야기.
“백이권 씨, 설마 하는데 여기 왜 따라온 거예요?”
몸을 돌려 이권을 바라보니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입은 꾹 다문 채로 어떤 대답도 들려주지 않았다.
그럴수록 불안해지는 것은 이쪽이었다.
“저기요, 진짜 아니죠?”
이권에게 어떤 기대를 품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뭐 서운하니 배신이니 그런 말을 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내가 지금 함유리를 설득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 그리고 적 소굴에서 유일하게 아군이라고 믿고 있던 사람이 아군인지 확신하지 못하게 된 상황.
이 모든 것들이 최악의 상황을 만들 것이 눈앞에 훤히 보이니 머리가 아파왔다.
“난 미리 말했어.”
이권은 그렇게 말하고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쾅!
그리고 눈 깜짝할 새에 함유리의 목덜미를 부여잡고 있었다.
“미친놈.”
함유리는 고통스러워 보이지는 않았지만 표정이 일그러졌다.
“내가 미친놈인 걸 이제 안 건가?”
“네가 이렇게 나올 줄 알았지. 어떻게 된 인간이 이렇게 막무가내일 수 있지? S급 새끼들은 전부 나사가 하나씩 빠져 있는 게 문제야.”
그건 님도 마찬가지인데요.
함유리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리고 함유리의 붉은 머리카락이 잠시 흩날리다가 매화 잎이 나타나고 어느새 그녀는 이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있었다.
“네가 그 물건을 돌려주기만 하면 돼.”
“무슨 물건?”
그래, 백이권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 내 잘못이라고 쳐. 그런데 갑자기 냅다 공격할 필요는 없잖아.
나는 정말로 이혁일만 만나면 된다. 매화 길드에 큰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싸우고 싶지도 않았다.
백이권만 아니었다면 이혁일을 만나고 매화와 부딪칠 일은 전혀 없었을 거란 소리였다.
“하, 진짜 돌겠네.”
어차피 스킬도 쓰지 못하는 인간이 왜 같은 S급한테 덤벼드냐고.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함유리가 듣도 보도 못 한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권의 주변에 매화가 흩날리더니 꽃잎이 이권을 속박했다. 그리고 나도 이권의 꼴과 마찬가지였다.
이권은 스킬을 사용할 수 없어 포기한 건지 아니면 무슨 다른 방법이 있는 건지 어떤 제스처도 취하지 않고 얌전히 잡혔다.
“거기, 이 두 사람을 감옥으로 끌고 가.”
감옥? 길드 안에 감옥도 있어? 진짜 조선시대도 아니고 이게 뭐야.
밖에서 대기 타고 있던 길드원이 우리 모습을 보더니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는 우리를 끌고 갔다.
“조심하세요.”
같은 공간에 있었던 정승아는 우리가 끌려가는 것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으며 손 인사를 했다.
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뭐람.
쾅-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은 시대를 역행한 것처럼 쇠창살이 나 있는 어두컴컴한 지하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아니 이럴 거면 대체 왜 비행선에서 탈출했으며 왜 매화 길드로 쳐들어왔냐고요.”
그리고 이왕 덤빌 거면 이기기라도 하지, 이게 무슨 꼴이야?
툴툴대며 백이권에게 따지듯 묻자 이권은 자리에서 일어나 함유리가 걸어놨던 매화 잎으로 만든 속박을 가볍게 끊어냈다.
“뭐야? 일부러 잡힌 거였어요?”
이권은 대답 대신 쇠창살을 가볍게 박살 냈다. 그리고 나는 당연히 내게 걸려 있는 속박도 풀어줄 거라 생각했다.
“한설 군은 일단 여기 있는 게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