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176
177화
-지하감옥의 지하
소원?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라고? 그런 게 있단 말이야?
100년에 한 번 피는 꽃의 나뭇가지가 그런 기능을 가지고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어떻게 그런 나무가 존재할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나뭇가지만 있으면 형을 깨울 수 있을지도 몰라.’
이권이 무슨 소원을 빌기 위해 매화 길드에 쳐들어온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 심정이 조금은 이해됐다.
나였어도 간절히 바라는 소원, 형을 깨울 수만 있다면 그곳이 매화든 신혈이든 망설임 없이 쳐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우연이었지만 그런 기회가 지금 여기에 떡하니 펼쳐진 것이다.
내가 그 나뭇가지를 가진다면 형을 깨울 수 있는 건가? 설마 소미가 말했던 내가 결국 해내야 하다는 것이 이 나뭇가지를 쟁취하는 일인건가?
소미가 했던 말이 떠올라 어느새 안개화를 하고 둥둥 떠다니고 있는 소미를 힐끗 쳐다봤다.
하지만 소미는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맞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런 얘기를 들은 이상 그 나뭇가지를 차지하는 것에 동참할 생각이었다.
“백이권이 매화 길드에 쳐들어온 이유도 그 100년 만에 생긴다는 매화 나뭇가지 때문이군요?”
나는 정승아를 떠 보기 위해 이권을 언급했다. 그러자 정승아는 랜턴을 벽에 튀어나와 있는 나무에 걸쳐 놓고 입을 열었다.
“맞아요. 하지만 나무가 어디에 있는지는 전혀 모르는 상태이죠. 그러니 이 감옥에서 탈출해 이곳저곳 들쑤시고 있는 거겠죠.”
정승아라면 그 나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겠지? 어떻게 불게 한담?
“저한테서 나무의 위치를 밝혀낼 생각이라면 그만두시는 게 좋을 거예요.”
정승아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보인다는 듯이 말했다. 뜨끔한 나는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런 얘기를 들었으니 솔직히 혹하기는 하네요.”
“생각보다 솔직하시네요.”
솔직하다기보다는 여기서 진심을 숨기고 부정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의심스럽게 보인다는 것을 아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만두라는 건 무슨 이유 때문이죠?”
정승아의 말을 위치를 알려주기 싫어서 한 말이라기보다 어차피 못 가져갈 것을 알기 때문에 나온 말처럼 들렸다.
“어차피 그 나무를 발견해서 나뭇가지를 가져간다고 해서 소원을 이룰 수 없거든요.”
뭔 소리야? 아까는 소원을 빌 수 있다며?
“천 개.”
천 개? 무슨 소리지? 설마….
“나뭇가지 천 개를 모아야만 소원을 빌 수 있습니다.”
100년에 하나 얻을 수 있는 나뭇가지를 천 개나 모아야 한다니.
갑자기 정신이 확 드는 느낌이었다. 나뭇가지를 얻는다고 소원을 빌 수 없을 거라던 말이 이해가 됐다.
천 개를 어느 세월에 모아.
“백이권은 그 사실까지는 모르는 거군요?”
“맞아요. 헛수고를 한 셈이죠. 하지만 이권 님의 힘은 너무 강해서 매화 길드를 들쑤시고 다니면 피해가 막심해요.”
그런데 그게 몬스터를 잡아 둔 거랑 무슨 상관이지?
나는 정승아와 한참을 이야기하다 뭔가 이야기가 딴 길로 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원래 하던 이야기는 몬스터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왜 아까부터 몬스터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소원을 들어주는 나뭇가지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거지?
그리고 정승아는 곧 그 의문을 풀어줬다.
“제가 이 이야기를 갑자기 하는 이유가 궁금하시겠죠.”
고개를 끄덕이자 정승아가 랜턴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랜턴이 어두운 지하 감옥에 모든 횃불에 불이 붙으며 환하게 밝아졌다.
그러자마자 귀를 뚫고 들어오는 비명 소리가 지하감옥에 울렸다.
크아악-
캬악-!!
그리고 감옥이 밝아짐과 동시에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몬스터들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게 뭐….”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몬스터의 형태는 가지고 있었지만 제대로 된 형태를 가지고 있는 녀석들은 없었다.
다리가 한쪽이 없거나 팔, 심한 녀석은 하체가 없는 녀석도 있었다.
기괴한 현장이었다.
“이게 뭡니까?”
정승아를 돌아보며 말하자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몬스터들을 봤다.
“그거 아세요? 어떤 우연한 계기로 우리는 특정 몬스터의 피가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의 성장을 돕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설마 그래서 이 몬스터들을 가둬 놓고 피를 뽑았다는 건가?
“저희도 처음부터 가둬 둘 생각은 없었어요. 그건 불법이니까. 하지만 던전 안에서 뽑은 피나 이미 죽은 몬스터의 피는 효과가 없더군요.”
“그래서 이곳에 가둬 두면서 피를 뽑았다는 얘기군요.”
이 기괴한 장면과 설명을 듣고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일단 매화 길드 녀석들이 제정신은 아니라는 점은 확실했다.
“설마 몬스터를 동정하시는 건 아니겠죠? 몬스터는 인간들을 해치는 악마 같은 놈들이잖아요.”
웃고 있는 정승아의 모습은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섬뜩했다.
일단 동정이고 자시고 눈이 정상이 아니잖아.
나도 몬스터로 실험하고 피를 뽑든 말든 동정이 가는 것은 아니었다. 내 형은 던전에서 몬스터에게 당한 것이었으니까.
어라, 몬스터에게…. 당한 게 맞나?
기억이 어딘가 흐릿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동정보다는 증오를 가지고 있다면 그쪽이 더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상황이 달가운 것도 아니었다.
키에엑-!
어두웠을 때는 입이 봉인되어 있다가 밝아지니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마 어떤 스킬의 영향인 듯싶다.
괴로운 듯 비명을 질러대는 몬스터의 소리가 달갑게 들리지는 않았다.
“이걸 저에게 말하는 이유는 제가 여기서 도망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거죠?”
“네, 눈치는 빠르시군요. 밖에는 매화 길드가 영입했다고 말씀드려 놓을 겁니다.”
“매화 길드장도 대단하네요. 대체 어떤 소원을 빌려고 이런 짓을 저지르는지 건지….”
인상을 쓰며 함유리에 대해 말하자 정승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유리 님과는 상관없어요!”
콰직-
랜턴이 부서지고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어둠과 함께 몬스터의 소리도 사라지고 말았다.
“그럼 정승아 씨 혼자서 벌인 거라는 말씀이신가요.”
정승아는 자신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잠시 씩씩대다가 내 쪽으로 손을 쭉 뻗었다.
“맞아요. 이 지하감옥의 존재도 유리 님은 몰라요. 관리는 저에게 전부 맡겼으니까.”
함유리가 이걸 모른다는 게 말이 되나? 던전에서 몬스터를 끌고 나와야 할 텐데 그걸 숨기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백이권만큼은 아니더라도 S급 정도가 되면 마력 민감도가 다른 헌터들보다 뛰어나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하 감옥에 몬스터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함유리가 지하 감옥에 몬스터가 있는 걸 모를 거라고요? 그게 말이 됩니까? 당신도 S급 헌터라면 느껴질 거 아니에요.”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참, 당신은 E급 헌터라 마력 민감도가 없다시피 하죠? 일반인과 다를 게 없는.”
정승아는 비웃듯이 나를 쳐다봤다. 보면 볼수록 사람이 비호감이었다.
“여기 던전 안이에요.”
뭐? 여기가 던전 안…?
이건 정말로 상상도 하지 못한 정체였다.
아니 여기가 던전 안이라고? 끌려 들어올 때 그런 낌새는 전혀 받지 못했는데 어떻게 된 거지?
“몇 년 전, 매화 길드 상공에 지속 던전이 생성된 적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지속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이렇게 높은 곳에 매화 길드를 다시 세울 수밖에 없었죠. 저희도 이런 미친 높이를 일부러 지은 게 아니라는 소리예요. 결과적으로 적들이 쳐들어오기도 힘들었으니 잘된 일이긴 하지만요.”
그래서 그런 극단적인 계단이 만들어진 거였구나. 애초에 그 이상한 계단이 인공적으로 만든 거라는 것부터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함유리도 몬스터의 존재를 몰랐던 거군요. 어차피 맨날 몬스터가 나타나는 곳이니까.”
어떻게 던전 안에 감옥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싶었다.
“근데 지속 던전을 공략하러 올 때마다 이 감옥을 발견할 수도 있는 거잖요.”
나는 계속해서 정승아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궁금한 점을 솔직하게 물어보는 것도 있었지만 일부러 질문을 던지는 것도 있었다.
그녀가 질문으로 방심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아까 정승아가 지하 감옥의 불을 환하게 켰을 때 출구를 확인했다.
출구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정승아 뒤쪽으로 밖으로 향한 계단이 하나, 내 뒤쪽으로 문이 하나 있었다. 정확히는 돌로 막아 놓은 문이 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밖으로 나가는 계단으로 가야 하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힐러라고 해도 S급 헌터. 잘못하다가는 된통 당하고 다시 감옥에 갇히는 꼴을 면하기 힘들었다.
그럼 선택지는 하나.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는 뒤쪽의 문이었다.
“쓸데없는 질문이 많네요. 하지만 죽을 사람에게 못 말해 줄 것도 없죠. 유리 님은 이런 등급 낮은 던전은 관심이 전혀 없어요. 그래 봤자 D급 던전인데 유리님이 직접 행차하시겠어요? 이런 건 우리 같은 피라미들이 처리하는 거죠.”
말을 마친 정승아의 손에는 어느새 채찍 같은 것이 들려 있었다. 게다가 그냥 평범한 채찍이 아니라 줄에 날카로운 칼날들이 군데군데 박혀 있었다.
아니 힐러라며!
“왜 그런 눈으로 보세요? 힐러는 무기도 들지 말라는 법 있나요?”
그런 법은 없지. 실제로 나도 바드인데 리코더로 패고 다니니까.
하지만 이런 것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승아는 내가 당황한 것을 여유롭게 지켜보더니 나를 향해 채찍을 휘둘렀다.
짜악-!
간신히 몸을 던져 피했지만 긴 사거리 때문에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다리 쪽에 맞아 피가 주륵 흐르고 있었다.
무적 효과라 금방 상처가 사라지기는 했지만 정승아가 계속 저 채찍으로 공격한다면 곤란해질 것이다.
함유리를 만나 봐야 하나? 정승아가 벌인 짓들을 알게 되면 내 편을 들어주는 건 맞을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나는 차분히 생각하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바로 나는 몸을 던져 뒤쪽에 봐뒀던 문으로 향했다.
“뭐 하는…. 안 돼! 거긴!!”
정승아는 내 돌발행동에 인상을 찌푸리는 것도 잠시, 문 쪽으로 뛰어드는 나를 보고 식겁했다.
나는 잽싸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 버렸다.
쾅쾅!
“한설 씨! 문 열어요! 당장 열어!!”
왜 저렇게 빡쳐 있담?
열쇠 같은 거 하나쯤은 있을 거라는 생각에 열쇠로는 열 수 없게 하려고 문고리를 망가트려 놓은 뒤에 근처에 있는 바위들을 집어 올려 그곳에 쌓아뒀다.
근처에 돌이 있어 다행이네.
나는 정승아를 처리하고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생각보다 넓은 공간에 아래로 내려가는 지하 계단이 있기에 말없이 아래로 향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거 설마 밖으로 나가는 길이 아니면 어떡하지?
그래 봤자 이미 나가는 출구는 스스로 막아 버렸기에 아래로 내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니 이상하게 향긋한 냄새가 났다.
이곳은 던전이라고 했는데 던전 안에 이렇게 좋은 향기가 났던 적이 있나?
그리고 나는 그 이유를 곧 알 수 있었다. 계단을 타고 내려간 곳에는 거대한 매화나무 한 그루가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