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178
179화
-개미와 거미 (1)
이거 몬스터 맞지?
전에도 개미형 몬스터를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평범한 개미보다 조금 더 덩치가 큰 정도였지, 인간만 한 녀석들은 아니었다.
내가 들어온 작은 구멍이 개미굴이었구나.
인간을 위한 구멍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다 싶었는데 개미굴이었다면 말이 된다.
내 앞에 더듬이로 열심히 내 얼굴을 쓰다듬고 있는 녀석은 내가 적인지 아군인지 파악하려는 것 같았다.
여기서 적인 것으로 판단한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이곳은 개미굴. 눈만 굴려 뻥 뚫린 장소를 확인했다. 줄지어 기어가는 개미들과 여기저기에 나 있는 작은 구멍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곳에 개미들이 얼마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순식간에 개미들의 먹이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긴장감이 서렸다.
아직 늦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다시 구멍으로 들어가 매화나무가 있는 곳으로 돌아갈까?
딱딱.
개미가 앞니를 부딪치는 소리가 코앞에서 들려왔다.
아직 내가 아군인지 모르겠는지 더듬이로 계속 살피는 중이었다. 다행인 것은 개미의 시력이 좋지 않아 보는 시야만으로는 파악하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좋아, 천천히 뒤로 물러나자.
지금은 소리 전달도 없고 개미 몬스터의 수가 얼마나 될지도 알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신중해야 했다.
최대한 큰 소리나 움직임 없이….
투쾅-!!
“한설 님, 여기 있는 거 맞죠?”
후드득
아…. 정승아가 있었지.
나는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정승아는 힐러라고 보긴 힘든 화려한 스킬로 작은 개미굴을 박살 내놨고, 큰 목소리로 개미굴 안으로 입성했다.
“그나저나 몇 년을 왔던 곳인데 이런 장소가 있는 줄은 몰랐네요. 응?”
정승아는 눈을 번쩍이는 개미들을 뒤늦게 눈치챈 것인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S급이면서 몬스터에 그렇게까지 놀랄 일인가?
“…여기에 왜 몬스터들이?”
정승아는 주춤대며 뒷걸음질하기 시작했다.
“일은 본인이 저질러 놓고 어딜 가려고요?”
내 말에 정승아는 나를 돌아보더니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A급 지속 던전이란 말이에요! 마력 안 느껴져요? 대체 몇 마리나 있는 건지…. 이건 S급 딜러를 데리고 와야 한다고요!”
참, 생각해 보니 나는 마력 민감도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S급인 정승아는 마력 민감도가 높아 지금 이곳에 얼마나 많은 마력들이 차 있는지 대략 짐작이 가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그렇게 무턱대고 쳐들어오지 말든가.
키에엑-!!
사사삭-
빡치긴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정승아가 머뭇대고 있는 사이에 개미들은 소음을 듣고 이미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정승아를 뒤로 밀쳐내고 리코더를 들어 올렸다.
“그딴 걸로 뭘 할 수 있다고 그래요?! 도망가야 해요!”
몬스터 피는 그렇게 열심히 뽑아대던 사람이 정작 혼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니까 공포에 질린 모양이 우스웠다.
“이게 그냥 리코더가 아니거든요.”
단단한 골렘도 잡는 특급 리코더라고.
그런 걸 알 길이 없었으니 정승아는 내가 미친 건 줄 아는 것 같았다.
“겨우 A급 던전이잖아요. 당신은 S급이고.”
물론 힐러지만.
S급 정도 되면 A급 던전은 아무렇지도 않게 공략할 수 있다고 알고 있었다.
물론 힐러니까 혼자서 공략은 무리더라도 이렇게까지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에요. 여긴 A급 지속 던전이기는 하지만 저 몬스터들에게서 나오는 마력은 준 S급이라고요!”
아, 그래서 그런 거였나?
S급 몬스터라면 힐러로는 무리지.
사사삭-
그사이 소리를 들은 개미들이 떼거리로 몰려들었다. 빼곡히 늘어선 모습이 징그럽기도 하고 경이롭기도 한 광경을 보여줬다.
“지금 설마 상대하려는 건 아니죠? 당신은 그래 봤자 조금 강한 스킬을 가진 E급이잖아요!”
E급 타이틀은 대체 언제까지 달고 다녀야 하는 거지?
예전에 A급 던전까지 들어갈 수 있는 임시 발급증을 받은 것 같은데. 그럼 이제 A급이라고 봐도 되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그건 임시 발급증일 뿐이었고 남들에게 나는 아직 E급으로 인식이 되어 있는 듯했다.
“그 E급이 공략하는 모습이나 잘 봐둬요.”
“한설 님이 아무리 S급 신신애를 이겼다고 해도 스킬이 사기여서 그런 거잖아요! 게다가 아는 사이니까 보여주기 식으로 져 줬을 게 뻔한데 무슨 수로 이기겠다는 거예요!”
뭐야, 남들 눈에는 그렇게 보였던 거야?
어쩐지 내가 S급인 신애를 이기는 모습이 방송에 탔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 평가가 좀 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편집을 잘했거나 신애와 내가 둘이 짜고 치는 고스톱을 하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물론 내가 사기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쿨타임이 그만큼 길어 리스크가 있었고 거의 사용하는 스킬들은 버프와 악기 공격뿐인데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여기서 한번 봐 봐요. 구라인지 아닌지.”
솔직히 나도 이 수많은 개미떼를 전부 상대하는 것이 가능할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랬기에 확실하고 빠르게 죽일 수 있게 소리 전달 스킬만이라도 쿨타임을 채우고 다시 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지.
어느새 개미 녀석들은 우리가 들어온 입구까지 전부 막아 놓고 있었다.
“하, 매화 가지를 찾으러 왔다가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절 따라 들어오지 않았어도 개미떼가 사라지는 건 아니거든요?”
한숨을 푹 쉬는 정승아를 보고 어이없어서 한마디를 날렸다. 정승아는 맞는 말이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내 뒤에서 몬스터만 경계하고 있었다.
“점점 다가오고 있어요! 이렇게 된 거 어떻게 좀 해 봐요!”
정승아는 쫄아서 점점 범위를 좁혀 오는 개미들을 보고 내 어깨를 강하게 부여잡았다.
“악! 아파요. 아니 그렇게 겁이 많은데 저는 어떻게 쫓아온 거예요?”
“그쪽이 나뭇가지 가지고 튀었잖아요! 게다가 한설님은 그래 봤자 E급이니까 제 손으로 처리할 수 있으니까요!”
이 사람 할 말 못 할 말 다하네?
난 만만해 보이니까 쫓아왔다는 거잖아.
어쨌든 나뭇가지를 훔친 건 맞았으니 나는 일단 거미줄을 생성해 정승아의 허리에 감았다.
그리고 나머지 한쪽으로는 상대적으로 개미의 수가 적은 곳의 벽면에 거미줄을 붙였다. 그리고 재빠르게 거미줄을 타고 자리를 이탈했다.
“뭐, 뭐예요? 이런 것도 할 줄 알았어요? 이건 마치 스X이X맨이잖아요!”
정승아는 신기하다는 듯이 눈을 깜박였다. 알면 알수록 처음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사람이었다. 과묵하고 신중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눈이 없는 개미들은 우리가 갑자기 사라지자 우왕좌왕하며 분주히 더듬이를 움직였다.
“그래서 어떻게 상대하려고 하는 건데요?”
정승아는 조금 안전해짐을 느끼자 나를 보고 말을 걸었다.
“일단 저희가 임시 동맹이라는 건 인정하는 거죠?”
힐러인 정승아의 도움이 얼마나 필요할까 싶기는 했다. 지금 나는 무적 상태라 녀석들의 공격을 받아도 멀쩡했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나오는 이유는 하나였다.
아까 입구를 박살내고 들어왔던 스킬. 그게 궁금했다. 힐러라고 해도 간단한 공격 정도는 일반인에 비해서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S급에 한해서.
그래서 막아 놓은 문을 박살낸 것은 이상하지 않았다. 그 문도 한참 걸려서 부순 거니까.
하지만 방금 나를 쫓아오기 위해 작은 벽의 구멍을 파괴한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웬만한 힘으로는 벽을 부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게다가 작은 구멍이라고 해서 얕보고 힘으로 막 부쉈다가는 벽 전체가 무너져 내릴 수도 있었다.
게다가 이런 개미굴은 더욱 그랬다. 이건 말만 돌벽이었지, 툭 치면 무너져 내릴 속 빈 강정, 위험한 모래성이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정승아는 어떤 무너짐도 없이 깔끔하게 구멍을 더 늘리는 정도로만 벽을 파괴했다. 정교한 기술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걸 가능하게 한 기술이 나는 궁금한 것이었다.
“스킬을 공유하자는 말씀이군요? 상황이 상황이니 어쩔 수 없죠.”
협조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쉽게 따라줬다. 아무래도 무섭긴 했던 모양이다.
함께 파티를 이룰 때 대충 어떤 스킬을 가지고 있는지 파티원끼리 공유하는 것은 암묵적인 룰이었다.
“저부터 말씀드릴게요. 대충은 아시겠지만 연주로 버프나 디버프를 줄 수 있고 종류를 상관없어요. 악기로 공격도 가능고요.”
소리 전달은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이미 소리 전달 스킬에 대해 알고 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쿨타임이 안 돼서 사용하지 못했으니 굳이 알려줄 필요가 없다 생각했다.
“전 힐러고 실과 구름을 이용한 스킬을 사용할 수 있어요. 실을 이용한 공격도 어느 정도 가능하고요.”
실과 구름? 특이한 스킬이네.
아까 우리를 맞이하던 정승아가 떠올랐다. 자신의 길드원들을 태워서 보내던 것이 구름에 관한 스킬이었던 모양이다.
“공격은 어떤 식으로 하는 건데요?”
“실로 베어낸다고 생각하면 돼요. 원래는 수술용으로 사용하려고 개발한 스킬인데 공격용으로도 우수하죠.”
정승아는 자세히 묻는 것이 실례인 질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상세히 말했다. 여기서 머뭇대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한테도 그렇게 자세히 말해 줘도 되는 건가요?”
“여기서 죽을 판인데 그게 중요해요? 제가 실제로도 의사였어서 하는 충고인데, 이런 한순간의 망설임이 생명을 앗아가는 거라고요.”
생명을 다루는 직업을 가졌던 사람이라 그런가, 순간의 판단력과 결정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이상한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던데, 맞는 말이네.
지금껏 죽인 몬스터들의 비명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정승아를 비난할 수 있는 자격은 나에게 없었다. 누구보다 몬스터를 열심히 사냥했던 나였으니까.
정승아의 스킬도 대략 알았겠다. 나는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이거 잘하면 손 안 들이고 녀석들을 해치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이 개미굴인 것을 이용한 작전이 떠올랐다. 그리고 제대로 내 스킬을 파헤쳐 볼 기회이기도 했다.
나는 땅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땅의 마나를 느끼기 시작했다.
모든 물질에는 마나가 깃들어 있다. 그리고 그걸 잘만 이용하면 모든 물질의 흐름과 약점, 강점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공간 전체의 마나를 살펴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직 내겐 그 정도의 마나 수련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전부터 느낀 것인데 이 마나의 흐름을 살펴보는 행위가 ‘생체 리듬’과 어딘가 닮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 스킬을 적극 활용해 볼 생각이었다. 땅에 손을 대고 리코더를 쥔 손도 바닥에 가져다 댔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갑자기?”
정승아가 뜬금없는 내 행동에 의문을 표했지만 대답하지 않고 하던 것에 집중했다. 그리고 이상한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생체 리듬’의 심화에 만물의 소리가 반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