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181
182화
-던전에 갇히다 (1)
그러니까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고!
아직 30분이 된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실랑이를 하는 사이에 시간이 꽤 흘렀다.
던전이 점점 닫힐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잠깐만요, 던전이 닫힌다는 소리가 진짜였다고요?”
정승아는 당황스러운 얼굴을 하며 사색이 되었다.
“왜 사람 말을 안 믿냐고요! 이대로 있다가는 우리 둘 다 갇혀요!”
“망했어…. 우린 여기서 죽을 거라고요!”
갑자기 정승아는 내게 걸린 스킬을 풀고 허망하다는 듯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포기할 기운 있으면 빠져나갈 생각이나 해요!”
나는 다시 한번 바닥을 짚고 마나를 통해 이 동굴의 구조를 파악했다.
‘생체 리듬’과 ‘만물의 소리’가 합쳐져 동굴 전체의 구조가 파악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마나가 쑥 빠져나가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다고 지치거나 힘든 것은 아니었지만 내 스킬은 마력이 아닌 마나를 사용하는 것이다 보니 리스크가 없었지만 언제 동날지 모른다는 것이 함정이었다.
마력은 다시 물약 같은 아이템으로 다시 충전할 수 있었지만 마나는 다시 회복하는 데까지 시간이 꽤 걸렸으니까.
마나가 넘칠 만큼 많다고 했으니 갑자기 쓰러지는 일은 없겠지.
그리고 나는 정승아를 일으켰다.
“여기서 본 건 전부 비밀로 해요.”
대답 따위는 듣지 않았다. 그럴 시간이 없었으니까.
나는 바로 목걸이를 만져 현지를 소환했다. 녀석은 시큰둥한 얼굴을 하며 왜 소환했냐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최대한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게 해 줘. 지금 당장.”
현지는 주변을 힐끔 둘러보더니 알 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바로 드래곤으로 변신했다.
“헉.”
“빨리 올라타세요. 시간 없어요.”
정승아는 처음보는 드래곤의 크기와 위압감에 헉 하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내 침착하게 똑바로 서며 희망을 가진 눈빛을 하고 드래곤 위에 조심스럽게 올라탔다.
“당신은 대체….”
곧바로 올라탄 나를 정승아는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녀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지 그런 건 내 알 바가 아녔으므로 날갯짓 하는 현지에게 집중했다.
“지름길이 있어. 위쪽으로 쭉 올라가다가 왼쪽으로 틀어. 막는 것이 있으면 전부 파괴해도 좋아.”
현지의 크기가 크다 보니 던전의 공간이 꽤 컸음에도 날갯짓하기가 쉬워 보이지 않았다. 날갯짓하다가 던전이 무너지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꽉 잡아라.”
현지는 날기 좋은 체형으로 몸을 변화시켰다. 원래의 거대한 몸집이 두세 사람이 앉기 좋게 작아지고 대신 날개가 커졌다.
딱 봐도 비행에 특화된 몸으로 변한 것이 보였다.
정승아도 현지의 말을 듣고 등에 난 비늘을 단단히 붙잡았다.
그리고 비늘을 붙잡은 것을 느끼고 어떤 신호도 없이 곧바로 총알처럼 날아갔다.
“헉, 무슨 스피드가…!”
정승아는 현지의 스피드에 놀라 비늘을 놓을 뻔했지만 다행히도 등에서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우리들은 말이 없었다.
“오른쪽! 여기서 왼쪽!”
간간이 내가 외치는 방향만이 대화의 전부였다.
쿠구구궁-
그리고 던전의 진동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갇힐 것 같았다.
게다가 왠지 모르겠으나 현지의 스피드도 점점 느려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한설, 너 마나가 많이 고갈되어 있어. 어디다가 그렇게 쓴 거냐. 또 치명상이라도 입은 거냐?”
내 문제였구나.
어쩐지 현지의 스피드가 느린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 아니라 마나 부족으로 일어난 능력 저하 같았다.
현지는 내 소환으로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보니 내 마나의 양에 따라 능력치가 조정된다.
아까 마나로 공간 전체의 구조를 알게 되는 것이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2개의 스킬을 합쳐서 사용한 것이기도 하니 마나가 2배로 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 조금만 더 마나를 아껴둘 걸!
능력이 떨어졌다고는 해도 원체 스피드가 빨랐던 현지인지라 그래도 던전 게이트와 멀지 않았다.
“이제 곧이야! 조금만 더!!”
빛이 반짝이고 밖으로 향하는 계단이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쿠궁-!!
“아, 이런.”
콰직!
우리의 위로 거대한 바위가 하나 떨어졌다. 그리고 그것을 눈치챈 현지가 몸을 급하게 틀다가 날개에 바위가 깔리고 말았다.
쿠당탕-!!
“윽!”
“꺄악!”
그 반동에 우리도 현지의 등에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나는 벌떡 일어나 현지의 상태를 살폈다.
“너 괜찮아?!”
“…시끄럽게 굴지 마라.”
현지는 빠른 스피드로 날고 있던 만큼 벽에 크게 부딪혀 타격이 꽤 커 보였다.
“너 날개가….”
게다가 바위에 깔린 날개가 길게 찢어져 더 이상 날기는 힘들어 보였다.
이를 으득 갈았다.
나 때문에 또 이런 일이….
나는 날개를 깔고 있는 바위를 급히 치워냈다. 그러자 상처가 얼마나 심각한지 훤히 드러났다.
현지를 소환하고 고생만 시킨다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이 스물스물 기어 올라왔다.
“정승아 씨! 죄송하지만 현지 좀 봐주실 수 있어요?”
나는 옆에 바로 힐러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정승아를 억지로 일으켜 현지 앞으로 데리고 갔다.
정승아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재빠르게 현지의 상태를 확인했다.
“어, 이상해요. 치료가 왜 안 되지?”
정승아는 구름을 만들어내 상처 부위에 열심히 스킬을 사용했다. 푸른빛이 현지를 감싸며 뭔가 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힐은 되지 않았다.
설마 마력이기 때문에 힐이 안 먹히는 건가?
“…드래곤은 마나로 이루어진 생명체다. 인간의 마력이 통할 리가 없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덤덤히 말을 이어 갔지만 목소리에 힘이 없는 것이 느껴졌다.
“미안하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절망감이 들었다.
“괜찮다. 어차피 돌아가서 마나가 충전되면 부상은 자연스럽게 치유된다. 자가 치유 마법도 할 줄 아니까.”
그렇게 말하는 현지를 더 이상 소환으로 붙잡아 둘 수 없었다.
여기 있으면 상처가 아무는 속도가 현저히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내가 마나가 충분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가서 푹 쉬어.”
어두운 얼굴을 하고 나는 현지를 역소환하기 위해 목걸이를 만졌다.
“죄책감 가지지 마라. 어차피 너에게 죽었던 목숨 아니냐. 난 지금이 즐겁다.”
내 눈빛을 본 현지는 위로인지 뭔지 모를 말을 던지고 그대로 역소환됐다.
그 말에 조금은 힘이 나는 기분이 들었다.
“드래곤은 못 쓰게 됐으니 아쉽게 됐네요. 시간 없으니 빨리 가죠.”
정승아는 역소환된 현지를 보고도 그냥 쓸모 있던 도구를 못 쓰게 돼서 아쉽다는 투로 가볍게 말하고 스스로를 치유했다.
아, 뭐가 기분 나빴던 건지 이제 이해가 가네.
나는 정승아가 몬스터를 가축 이하로 취급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왜 기분 나빴는지 이제야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몬스터와는 성격이 조금 다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소미도 있었고 현지도 있었다.
그들은 남이 보기에는 처치해야 할 몬스터에 불과했지만 정을 주고 나를 도와주는 고마운 존재들이었다.
툴툴대긴 하지만 현지는 단 한 번도 내가 말하는 것을 따라 주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죽인 몬스터들에게 동정이 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내 동료라고 생각하는 현지에게까지 도구 취급 하는 정승아의 태도는 아니꼽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말조심하시죠.”
“네? 갑자기 무슨….”
갑자기 내가 싸늘한 태도를 보이자 정승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설마 드래곤 때문에 그래요? 그래 봤자 소환수잖아요.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역시 난 이 사람이 싫어.
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고 정승아를 똑바로 바라봤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그걸 강요할 수는 없어요. 현지는 내 동료고 당신한테 그런 취급 받을 이유 없습니다.”
정승아는 입술을 삐뚜름하게 짓다가 이내 풀며 한숨을 푹 쉬었다.
“뭐 그건 알았어요. 나중에 얘기하고 지금 시간 없으니까 빨리 가요.”
정승아가 진짜로 알아들은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던전 입구가 닫히기 일보 직전이었기에 나도 이 정도로 하고 넘어갔다.
우리는 가라앉은 공기를 느끼며 계단을 말없이 뛰어 올라갔다.
쿠궁-!!
진동은 더욱 심해지고 빛나던 던전 게이트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 보였다.
게이트가 가까워짐에 희망을 가진 것도 잠시, 던전의 입구가 점점 작아지는 것이 보였다.
“닫히기 일보 직전이에요! 뛰어요!!”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미친 듯이 달렸다.
“야! 빨리 와!”
“어?!”
그리고 그 던전 게이트 입구에서 익숙한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건 차오름이었다. 반가움 반 놀람 반의 표정이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네가 어떻게 알고 왔어?”
“니가 불렀잖아! 잔말 말고 뛰어!”
맞다. 내가 차오름이랑 지완에게 문자를 보냈었지. 매화 길드에 납치됐다는 문자를 보낸 것이 까마득한 옛일처럼 느껴졌다.
차오름은 몸을 반쯤 입구에 걸치고 나를 향해 팔을 쭉 뻗고 있었다.
그리고 차오름이 반쯤 걸친 던전의 입구는 점점 작아져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가 되었다.
계단을 거의 다 오름과 동시에 오름의 손을 맞잡으려고 할 때였다.
탁.
“한설 씨. 나뭇가지, 인벤토리에 가지고 있죠? 당신이 사용할 바에야 그냥 같이 사라져 주세요.”
정승아가 뒤로 밀쳐냈다.
계단 아래로 떨어지는 몸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정승아는 오름을 지나쳐 던전 입구 밖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내 손을 잡는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계단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쿠당탕-!!
나는 계단을 계속해서 굴렀다. 한참을 오른 만큼 한참을 굴러떨어졌다. 겨우 평지에 몸이 닿고 나서야 떨어지는 것을 멈출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주변을 둘러볼 새도 없이 일어나 던전 입구를 바라봤다.
“정승아!”
소리쳐 봤지만 이미 늦었다.
계단을 다시 미친 듯이 올랐지만 던전에서 흘러나오던 빛은 사그라지고 말았다.
어두컴컴해진 던전 안에 나는 갇혀 버리고 만 것이다.
탈출이 급해 정승아를 신경 쓰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거기서 배신을 때리고 혼자 살아 나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정승아는 몬스터만 도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필요가 없으면 쉽게 버릴 수 있는 도구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분노를 참을 수 없어 주먹으로 벽을 강하게 쳤다.
우수수.
돌 부스러기가 떨어지고 벽에 손자국이 남았다.
“여기 혼자 남은 건가.”
절망감이 들었다. 던전에 남게 됐던 사람들이 다 어떻게 됐더라?
“아야야.”
그때였다. 계단 아래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설마 던전에 갇힌 거야?!”
차오름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