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185
186화
-각성자
그리고 나서 잠시 세상에 어둠이 내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기절한 것이었다.
그리고 귀를 강타하는 고주파음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이건 마치 내가 각성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게 과거로 돌아가는 스킬인 건가?
나는 익숙한 감각이 몸을 지배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곧이어 눈을 힘겹게 뜰 수 있었다.
“여긴….”
주변을 휙 둘러봤다. 과거로 돌아왔다고 해서 뭔가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했다.하
지만 딱히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그저 어두컴컴한 배경 그대로였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고 한다면 바닥에 물이 고인 것처럼 찰랑인다는 것이었다.
[정신 차렸구나. 깨어나지 않을 줄 알았어.]그리고 어둠에 익숙해질 때쯤 소미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바로 내 앞에서 둥실 떠오르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가 과거라고?”
나는 의문이 들어 소미를 향해 물었다. 소미는 주변을 빙글 돌더니 내 머리 위에 올라가 앉았다.
[정확히는 과거로 가기 위한 중간 공간이야.]과거로 돌아간 게 아니라고? 그럼 여기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건가? 소미가 말한 미션은 뭐지?
[궁금한 것들은 천천히 알려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원래 내가 계획한 대로라면 이 중간 공간에 머물지 않고 곧바로 과거로 돌아갔어야 해.]소미는 따라오라는 듯이 천천히 앞으로 비행하고 있었다. 그 뒤를 따라가자 소미는 설명을 시작했다.
[마지막 비밀 던전은 네가 S급이 되어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들어가게 할 셈이었어.]“역시 네가 비밀 던전을 열고 있었던 거야?”
스킬을 주고 각성을 시킨 것도 전부 소미라고 한다면 비밀 던전 또한 소미의 작품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예측이 틀리지 않았나 보다.
[맞아, 나는 너를 내 후계로 삼고 싶었거든.]후계? 설마 관리자를 넘긴다는 소리인가?
“내 의견은 들어봐야지.”
[나에겐 딱히 선택지가 없었어. 너밖에는.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결코 쉬운 길은 아닐 테니까.]소미는 슬픈 눈을 하고 잠시 나를 돌아봤다. 기분이 이상했다. 저런 표정을 짓는 소미도 어색했고 관리자가 되길 바란다는 말도 현실성이 없게 느껴졌다.
“인간이 어떻게 관리자가 된다는 거야?”
[나는 시스템과 전투를 벌인 뒤에 힘이 약해졌다는 것을 깨달았어. 내 심장이 깨져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란 것을 알았지. 그래서 몇몇 인간에게 내 뒤를 이을 씨앗을 심어뒀어.]소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인간들은 너무 약해.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던전과 몬스터들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나는 재능이 있는 인간들을 각성시켰어. 그리고 그들 중에서도 특별히 높은 잠재력을 가진 자들에게 씨앗을 심었지.]씨앗? 그게 뭐지?
소미가 하려는 말이 정확히 알 수 없어 가만히 듣고 있었지만 나는 속으로 조바심이 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이러고 있을 시간에도 오름은 죽어가고 있을 테니까.
[조바심 내지 마. 이곳은 시간이 멈춘 공간이니까. 과거로 간다고 해도 네가 미션만 잘 수행한다면 현실의 시간은 흐르지 않을 거야.]내가 불안해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소미가 말했다.
“그럼 여기서는 얼마든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거야?”
[기뻐할 일이 아니야, 네 목숨이 여기서 끝날 수도 있으니까. 과거로 가기 위해서는 평범한 육체로는 불가능해. 인간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되어야 하지.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 바로 내가 심은 씨앗, ‘관리자의 조각’이야.]소미는 갑자기 비행을 멈췄다. 그리고 소미가 멈춘 곳에는 황금빛으로 물든 깨진 보석 조각이 있었다.
[그리고 관리자의 조각을 다루려면 적어도 S급 정도는 되어야 하지.]그렇다는 소리는 설마 지금 S급들이 모두 관리자 후보라는 소리인가? 그런데 왜 나밖에 선택지가 없었다는 거지?
의문을 가지고 소미를 바라보자 소미는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는 조각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예상했던 것처럼 S급들이 그 후보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그들을 제외하고서라도 눈에 띄었던 아이들에게 그 씨앗을 심었어. 그중 하나가 한설, 너였던 거고.]“씨앗이 있는지 나는 전혀 모르겠던데, 대체 그게 뭐야?”
[칭호.]소미는 조각을 끌어올려 나의 손 위에 올려놓았다.
[나의 특성들을 조각으로 쪼개서 그 특성에 가장 어울리는 인간에게 칭호의 형태로 심었어.]칭호가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줄은 전혀 몰랐다. 내 칭호를 떠올려봤다. 물음표로 적혀 있던 칭호.
아직 내가 어떤 칭호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소미의 특성을 나눠 가진 것이라고 하니 뭔가 기분이 묘했다.
[자격을 갖춘 자만이 자신의 특성을 확인할 수 있어. 그리고 보통은 S급이 되면 그 자격이 갖춰지지.]어라, 그런데 차오름은 S급이 아닌데 칭호가 있지 않았나?
[오름은 특이한 케이스야. S급이 아님에도 스스로 자격을 얻어낸 유일한 아이거든.]스스로 자격을 얻어냈다고?
어떤 식으로 자격을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이 다시 보이는 느낌이었다.
소미가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자격을 얻어내야 과거로 갈 수 있는 모양이었다.
[자격을 얻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어려워. 보통은 S급이 되어 저절로 자격을 얻게 되지만 한설 너는 지금부터 심어진 씨앗의 특성을 알아내고 스스로 특성의 주인이라는 걸 증명해내야 해.]“증명하라고? 어떻게?”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말이었다. 증명하라는 것이 뭘 증명하라는 건지도 의미 불명이었다.
“특성은 어떻게 찾아내는 건데?”
그렇게 말하며 손에 쥐어진 황금빛 보석 조각을 손에 쥐었다.
[스스로 찾아내야 해. 하나 알려주자면 너는 내가 가진 특성 중에 가장 특별한 특성을 가지고 있어. 너의 모든 것에 한계를 두지 마.]“그걸로는 알아내기 힘들지! 좀 더 알려줘!”
손에 쥐었던 보석에서 황금빛이 세차게 빛나다가 점점 공간을 집어삼킬 것처럼 커졌다.
소미의 모습이 점점 흐릿해져 나도 모르게 소미를 향해 소리쳤다.
“기다려! 죽을 수도 있다는 건 뭐야? 칭호를 얻게 된 다음에는 뭘 해야 하는데?!”
소미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고요함만이 감돌고 있었고 빛은 나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파앗-!!
“지금 어디로 가는 건데!!”
내 외침이 멈췄을 때 황금빛도 동시에 멈춰졌다. 그리고 소미는 완전히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새로운 장소가 펼쳐졌다.
아니 말해 줄 거면 제대로 말해 줘야 할 거 아니야.
나는 답답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사라진 소미의 사리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주변을 휙 둘러봤다.
황금빛으로 물든 갈대밭에 푸른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발걸음을 한 발 내디딜 때마다 갈대들이 홍해처럼 갈라지며 길을 터줬다.
그 광경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지만 내 마음은 점점 더 복잡해지기만 했다.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타파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마나로 흐름을 살펴보려고 해도 느껴지는 것은 끝없는 갈대들뿐이었다.
“대체 뭘 어떻게 찾으라는 거야.”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고 말해 줬지만 여기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낭비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죽을 수도 있다는 건 지루해서 죽을 수도 있다는 건가?”
계속 정처 없이 갈대밭을 걸어 다녔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고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
이런 상태가 지속되다 보니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득 몸이 조금 가벼워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 이게 뭐야.”
느낌이 아니었다. 실제로 몸이 가벼워지고 있는 것이었다. 내 몸은 반투명하게 변해하고 있었다.
내 안에 있는 마나들이 공중으로 빠져나가 몸이 점점 투명해지고 있는 것이었다.
“이게 소미가 말했던 죽음인가?”
이건 시간이 문제가 아니잖아! 아니, 시간이 문제인 건가?
나는 하늘로 올라가는 내 마나들을 멍하니 쳐다봤다.
설마 허무하게 이대로 여기서 죽는 것은 아니겠지? 죽는다는 표현이 맞는지도 모르겠네.
정신도 순간 아득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왠지 이대로 사라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지도? 다시 현실로 돌아간다고 해도 힘든 일밖에 없잖아. 져야할 책임과…
책임져야 할 사람?
나는 번쩍 정신을 차렸다.
내게는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있었다. 형과 예빈이 그리고 차오름. 그들을 외면하고 나 혼자만 편해지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치욕이었다.
“어떻게든 빠져나가 주지.”
이를 악물고 흩어지려고 하는 정신을 다시 잡았다. 그리고 마나의 흐름에 집중해 내 마나들이 어디로 빠져나가고 있는 것인지 확인했다.
공중으로 흩어지는 줄 알았던 마나들은 하늘로 높이 흘러들어 갔다가 땅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땅에 흡수가 되어 하나의 갈대가 되어 솟아올랐다.
뭐야, 설마 이 모든 갈대들이 전부….
그제야 왜 이곳에 갈대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곳은 마나를 가지고 있는 모든 존재를 분해시키고 땅의 양분으로 삼아 갈대로 만들어 버리는 곳이었다.
“하지만 왜 이런 곳으로 나를 보낸 거지? 이곳에서 특성을 어떻게 찾으라는 거야?”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대체 뭘 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자아를 잃어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안돼, 정신 차려.”
스스로의 뺨을 때리고 어떻게 해야 마나가 빠져나가지 않을지 고민했다.
수만 가지의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곳에 녹아드는 것이 정답인 것은 아닐까? 아니면 갈대를 꺾어 볼까? 할 수 있는 것도 전부 시도했다.
스킬을 사용해 봤지만 통하는 것도 없었고 시스템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 통한 건지도 알 수가 없었다.
“시스템이 없으니 이렇게 불편하네. 아니지, 그 시스템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 거니까.”
내 안의 많은 마나들이 공중으로 흩어지는 것을 느꼈을 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한계를 두지 말라던 소미.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주 큰 힌트라면?”
한계를 두지 말라는 것.
생각해 보면 나는 특이한 케이스의 헌터였다. 스스로 승급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증거였다.
“내가 S급으로 승급하고 나서는 어떨까? S급의 위가 존재하는 걸까?”
아무도 달성한 적이 없었던 영역. 그것은 내 한계를 깨부수지 않고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 될 것이었다.
시스템은 S급 그 이후의 수치를 알려주지 못한다.
실제로 김지완이 내 마력을 측정하려다가 오류가 난 것을 보고 E급이라고 생각한 것처럼 시스템은 사람의 가능성을 정확히 측정할 수가 없다.
“시스템. 그놈의 시스템이 문제지.”
나는 어느 순간 서서히 깨달았다. 시스템이라는 것의 틀에서 벗어나야 진정으로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시스템의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는 소리구나.”
나는 머릿속을 깨끗이 비워냈다. 그리고 흩어져 가는 마나들을 향해 손을 쭉 뻗으며 말했다.
“너희들의 일부가 될 수 없어. 나는 더 앞으로 나아갈 거다.”
갈대가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나를 집어삼킬 것처럼 서서히 조여오던 황금빛의 갈대들은 내 주변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마치 겁을 먹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마나들이 다시 돌아오는 감각을 느꼈다. 그리고 마나가 돌아올수록 강한 욕망이 내 안에서 꿈틀거렸다.
시스템 따위 따르지 않겠어. 소미가 정해 준 특성도 나는 거부할 거야.
나는 어디에도 얽매이고 싶지도 않고 그러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외치는 것. 그것이 내 특성이 될 거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나는 입을 열었다.
“나는, 각성자 한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