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195
196화
-새로운 이야기의 주인공 (6)
‘주인공을 죽이라고?’
오름은 자신도 모르게 쓰러져 있는 한설을 바라봤다.
인간들을 학살하라고 했던 것에 얌전히 따랐던 것은 어쨌든 오름이 느끼기에 과거의 인물이었고 나와 별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의식이 내 것이 아닌 듯한 느낌을 받으며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학살하고 다닌 것도 맞았다.
죄 없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었고, 누군가를 해치지 않는 것에 거대한 정의감이나 사명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사람을 죽이라고 하는 건.’
“너무하잖아….”
마음속으로 하던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오름은 마음속이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했다.
주인공이라고 하면 누가 뭐라고 해도 한설이었다. 언제나 주인공 같은 녀석이었으니까.
오름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한설이라고 생각했다. 스토리텔러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었기에 오름은 자신이 틀릴 리 없다고 확신했다.
확신했기에 더욱 망설여졌다. 그래도 오름은 한설을 친구라고 생각해 왔다. 조금 재수 없는 놈이었지만 그렇다고 죽이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한설을 죽이지 않으면 오름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시스템은 절대적이었다. 이 시스템을 보내오는 것이 어떤 녀석인지는 잘 알게 되어 버렸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시스템을 거스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살고 싶은데….”
‘살고자 하는 이유가 뭐였더라. 한설을 죽이면서까지 살아 있어야 하나?’
오름은 삶에 대한 강한 집착이 있었다. 반드시 살아남아서 이 세상에 복수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게 전부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시스템이 하라는 대로 한설을 죽이고 살아남은 삶이 마냥 즐거울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오름은 포기했다.
“난 못 해.”
“아까부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네.”
자신을 향해 다가온 악마 같은 이권을 마주해도 오름은 반항하기를 포기했다.
차라리 여기서 이권의 손에 죽게 된다면 아마 미래의 자신도 사라지게 되지 않을까 오름은 생각했다.
“컥-!”
오름은 이권의 손에 목이 졸렸다.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삶에 집착하고 살기 위해 아득바득 버텨 왔지만 돌이켜 보면 단 한순간도 행복했던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반항도 하지 않는다니, 갑자기 태도를 바꾼 이유가 뭐지? 말하지 않으면 죽일지도 몰라.”
이권은 그렇게 말하며 오름의 목을 좀 더 강하게 잡아챘다.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었는지 정말 오름을 죽일 듯이 조여 왔다.
“큭!”
오름은 저절로 입에서 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얼굴이 새빨개지고 숨을 헐떡였다.
퍽-!!
“내가 왜 이 난리를 피우고 있는데? 죽는 꼴은 못 보지.”
그리고 그 순간 기절한 줄 알았던 한설이 이권의 팔을 후려쳤다.
* * *
이권이었기에 오히려 봐주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해 리코더로 내리쳤다. 그 반동으로 이권은 오름을 놓쳤다.
그 틈을 타서 나는 재빨리 컥컥대는 오름을 데리고 이권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너, 컥, 깨어 있었어…?”
“너야말로 언제 과거로 온 건데?”
오름은 나를 노려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말을 제대로 하기가 힘들어 보였다.
나는 오름과 재회하기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정말 죽을 뻔했지, 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6시간 전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니까 아이의 모습이 되고 이권이 등장했을 때였다.
“왜 말이 없니?”
상냥한 목소리로 나를 들어 올린 이권은 잘 다려진 셔츠와 바지를 만지작거리면서 날카로운 눈빛을 했다.
“넌 여기 애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어디에도 식별번호가 없다는 것을 눈치챈 이권의 싸늘한 목소리에 나는 긴장하며 따라 웃었다.
여기선 내 연기력으로 승부한다.
“저는 여기 오면 가족들이 있을 거라고 해서 왔어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어린애처럼 나왔다. 내가 원해서 이렇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어색해서 토가 나올 뻔했다.
“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를 납치한 건가?”
이권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한 얼굴을 한 나를 보고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고민했다. 미소를 짓지 않은 이권의 얼굴이 낯설었다.
“그래도 잘 데려온 것 같네. 나를 앞에 두고도 웃는 어린애라니, 귀하잖아?”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혼잣말을 들으며 나는 팔에 닭살이 돋아나는 것을 느꼈다.
뭔데? 나 뭐 실수했나?
땀이 주륵 흐르는 것을 느껴졌다. 이권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일은 판이 굉장히 커졌다.
아직 눈앞의 괴물이 아군인지 적인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일단 웃으며 의심을 피하려고 한 것인데 오히려 호기심을 부른 것 같았다.
“이거 놔주세요.”
탁.
나를 들어 올려 이리저리 살펴보던 이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땅에 착지했다. 그리고 녀석을 사납게 노려봤다.
언제까지고 녀석에게 순한 양인 듯 굴 수는 없지. 뭐, 눈앞의 이권은 나를 처음 보는 거겠지만.
이제 와서 겁먹은 척하는 것도 웃긴 것 같아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어차피 다른 애들은 내가 성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내가 어린애가 아니라는 건 금방 들킬 터였다.
“그쪽 알아요. 신혈 길드 백이권이죠? S급 헌터가 이곳에는 왜 있는 거죠?”
“나를 알아보다니 꽤 헌터에 대해서 잘 알고 있나 봐?”
오늘날의 백이권이라고 한다면 헌터든 일반인이든 모르는 것이 간첩이었다. 하지만 지금 시대의 이권은 그렇게까지 유명한 존재가 아니었다.
최초의 S급 헌터라고 많이들 떠들어 댔지만 그것도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낯선 것이었다.
이권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2년 후부터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니 자신을 알아보는 꼬마가 나타난 것이 사뭇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대답해 주시죠. 여기 왜 계시는 거냐구요. 혹시 공범입니까?”
“어린애치고 말도 잘하고 능숙해.”
이권은 계속해서 대답을 회피했다. 알려지면 안 되는 것인지 말을 자꾸 돌리는 뉘앙스를 풍기자 나는 똑바로 이권을 바라보며 말했다.
“말해 주세요. 그쪽은 우리 편이에요, 아니에요?”
“그게 너한테 중요한가? 어차피 여기 애도 아닌데.”
이권도 만만치 않았다. 자신 왜 알려줘야 하냐면서 방긋 웃는 모습이 사나운 맹수 그 자체였다.
그리고 나도 이권에게 물어볼 힘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권은 눈을 번뜩이며 내 목덜미를 잡아 올렸다.
“꽤 괜찮은 실험 재료가 될 것 같은데 같이 가자고.”
“어어…!”
그렇게 이권은 문밖으로 나를 끌고 나갔다. 방안에 있던 다른 아이들은 이권이 들어올 때부터 겁에 질려서 벌벌 떨고 있다가 내가 잡혀가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렇다 할 만한 행동을 취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권에게 끌려가며 고민했다.
어린 몸의 나와 아직 젊은 루키 시절의 이권과 싸우면 승산이 있을까? 어려졌다고 힘도 어린애가 되진 않았겠지?
확실히 키가 줄어들었으니 전투에 불리하게 작용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이 이권은 거대한 실험대가 있는 방에 도착했다.
설마 여기가 오름이 있다던 각성실인 건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오름이 어디 있는지 열심히 찾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오름이 없었다.
“흠, 이미 누가 다녀갔나 본데?”
이권은 나를 가볍게 옆구리에 끼고서 실험대 위에 올려놓고 기기를 살폈다.
이권의 말대로 이미 이 각성실을 누가 이용했던 것인지 실험대와 기기들이 따뜻했다.
오름한테 사용한 건가? 그 녀석 대체 어린 시절에 무슨 일을 겪었던 거야?
혀를 차며 이권이 허튼짓을 하기 전에 실험대 위에서 내려오려고 했다.
휙- 쿵-
“윽!”
하지만 이권은 손가락 하나로 나를 꼼짝 못 하게 해 놓고는 친절히 실험대 위에 눕혀놓고 팔다리를 결박했다.
“있잖아, 네가 헌터라는 것쯤은 눈치채고 있었어.”
그리고 이권은 머리맡에서 위협적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이권의 호기심을 끌었다는 부분에서 이미 이권이 나를 의심하고 있고 평범한 녀석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고 생각했다.
이권은 지나가던 개미의 수도 알만큼 마력 민감도가 높았으니까. 모르는 게 이상했다.
“그래서 절 또 각성시키겠다고 실험대에 올려놓은 건가요?”
반항적으로 이권을 올려다보자 이권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너 어린애가 아니구나?”
그걸 이제야 알았냐? 미래의 백이권은 만나자마자 눈치챘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이권을 더 도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권이 나타나는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으나 어쩌면 오름을 각성시키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내 편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가장 큰 방해꾼이 될 놈이었으니.
“그러고 보니 안정해가 실험하던 아이 중 신체 나이를 변형시키는 스킬을 가진 아이가 있었지.”
역시 실험을 하고 있었던 걸 알고 있긴 했구나.
왠지 모를 실망감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지만 그런 사소한 감정은 잠시 미뤄두고 이권을 회유할 방법을 찾았다.
“안정해라는 놈이 실험을 주도하던 놈인가 보네요? 대체 무슨 거래를 했길래 안정해의 뒤를 봐주고 있는 거죠? 아니면 그쪽도 공범인 건가요?”
이권은 또박또박 말하는 나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실험대에 걸터앉았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둘만 남았으니 말해줄게. 난 굳이 따지자면 안정해 편이 아니야.”
뭐라고? 그럼 왜 이 실험을 알고 있었는데도 말리지 않은 거지?
내가 모르는 사실이 더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얌전히 이권의 말을 들었다.
“안정해는 우리 길드 소속이었던 버러지였는데 어느 날부터 정계 쪽과 손을 잡고 있더라고? 그리고 국가에서 비밀리에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맡게 됐다고 나와 함께하자고 제안을 하더라고.”
비릿하게 웃는 이권의 모습 마치 악마 같았다.
“참 웃기지? 실험 내용은 보다시피 각성 확률이 높은 아이들을 데리고 어릴 때부터 병기로 키우자는 거였어. 국가의 개를 기르려는 속셈이었지. 우리 버러지의 스킬이 연구에 적합해서 그걸 알고 그쪽에서 접근한 거였지.”
“그럼 그쪽은 왜 받아들인 거예요?”
“받아들인 적 없어. 안정해 혼자 그렇게 착각한 거지. 자신의 성과를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니더라고. 나는 함께한다고 한 적이 없었는데 말이야.”
“하지만….”
결국 그냥 두고 본 건 맞잖아.
나는 뒷말을 삼켰다. 이권에게 그 말을 했다가는 확실히 척을 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권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안다는 듯이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힘이 없어. 국가에서 손대는 일을 일개 헌터가 어떻게 건드리겠어? 어차피 갈 곳 없는 고아들을 거두는 일이기도 했으니 나쁘지만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지.”
자신의 입으로 힘이 없다고 말하는 이권이 너무도 어색했다.
미래의 그를 떠올리면 ‘힘이 없다’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남자였다.
그래도 어느 정도 대답이 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한숨을 푹 쉬고 이권을 향해 세워진 날카로운 경계를 풀었다.
“알겠어요. 적의가 없다는 건 알겠으니 이것 좀 풀어주실래요?”
그 말을 들은 이권은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결박을 풀 거라고 생각했던 손으로 내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컥!! 무, 무슨! 큭!!”
“난 안정해 편이 아니랬지, 네 편이라고 한 적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