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206
207화
-무너져 내린 제주도 (4)
뭐야, 그 이름이 갑자기 여기서 왜 나와?
당황한 것도 잠시 이혁일이라는 단어를 내뱉은 사내가 밧줄을 끌고 도심 한가운데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도심 한가운데는 서울 도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한 가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는 것. 그리고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뭐야, 여긴? 마치 유령 도시 같잖아.”
나는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사람들이 끌고 가는 것에 얌전히 따랐다. 괜히 눈에 띄는 짓을 했다가 함유리에게 발각되는 것이 더 최악의 상황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혁일 님이 말하셨던 게 바로 저건가….”
“으, 끔찍해.”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다들 어딘가에 숨어서 이곳을 바라보고 있던 것이었다.
바쁜 현대 사회에서 이 광경을 열심히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이 내가 묶여 있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빼꼼 내밀며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며 경계하는 모습이 썩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간간히 이혁일의 이름도 들려왔다.
대체 이혁일이 여기서 무슨 짓을 한 건지 다들 그 이름에 님을 붙이며 극존칭하고 있었다.
“저기, 그래서 나를 대체 어디로 데리고 가는 건데요?”
아이들을 앞장세우고 간간히 뒤를 돌아 내가 허튼짓을 하지 않는지 힐끔대던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혁일 님께 데리고 간다.”
아니 그건 알겠는데 어디로 가는 거냐고! 장소!
내 질문에 그저 이혁일에게 간다는 말만 하는 녀석을 보고 답답함이 들었다.
“여기 왜 이렇게 사람이 없어요?”
그 외의 것들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대꾸해주지 않았다.
“혹시 애들 가지고 사기 치는 것에 회의감이 들지는 않으신가요?”
빈정대며 심기를 건드려 봐도 묵묵부답이었다.
포기한 것은 이쪽이었다. 내가 얌전해지자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끌고 가던 무리들이 걸음을 멈췄다.
드디어 도착했나 싶었는데 그들이 멈춘 곳은 도심 한복판, 게다가 4차선 신호등 한복판이었다.
“뭐야, 왜 여기서 멈춰요? 여기 서 있으면 어떡해요? 차에 치여 죽으려고? 봐 봐, 저기! 차 온다!”
끼익-!
내 말대로 이곳을 지나가려던 승용차 한 대가 우리가 있는 것을 보고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창문을 슥 내리는 모양새를 보니 욕을 한 바가지 내뱉을 것이 훤히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창문을 내렸던 운전자는 우리의 모습을 확인하더니 그냥 휙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어 가 버리는 것이었다.
뭐지? 왜 그냥 지나쳐?
싸늘한 사람들의 분위기와 갑자기 브레이크를 멈춰 화낼 법한데도 잠시 우리를 보더니 우회해 버리는 차들을 보고 나는 살짝 당황했다.
그리고 지나다니던 차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수가 줄어들더니 10분 뒤에는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게 됐다.
그리고 사람들은 갑자기 하늘 위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허공에 뭐가 있는 건가 싶어서 나도 똑같이 허공을 쳐다봤다.
그리고 갑자기 시스템창이 떴다.
[이 모든 게 당황스러울 법도 하지.]메시지는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나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는지 이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환호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혁일 님이다!!”
“와아!! 혁일 님이 오셨다!!”
마치 광신도처럼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의 반응에 나는 당황스러웠다.
얘네 갑자기 왜 이래, 무섭게?
그리고 정말로 허공에서 이혁일이 갑자기 등장했다. 허공에서 무슨 천사가 강림한 것처럼 빛 효과가 나타났다.
“아아, 역시 혁일 님…!! 마치 하늘에서 강림한 천사!”
“햇빛도 혁일 님을 알아본다!”
햇빛? 그냥 이거 스킬로 빛 효과 뿌려댄 거 같은데?
사람들은 마치 자연이 이혁일을 알아본다는 듯이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환호를 질렀다. 어떤 사람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울기도 했다.
완전 사이비 그 자체네. 대체 제주도에서 뭔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거야?
나는 이 미친 광신도들과는 다르게 이혁일에 대한 불신만 커졌다.
“그래서, 왜 날 끌고 오라고 시킨 거야? 사이비 놀이 하려고?”
이혁일이 하얀 옷을 입고 바닥에 발을 디뎠을 때 나는 녀석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내 밧줄을 쥐고 있던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이 사악한 헌터 놈아!! 감히 혁일 님께 그딴 식으로 말해?!”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그 반동으로 나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혁일에게 머리를 박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그래! 너에게는 이런 모습이 가장 잘 어울리지!”
이거 좀 짜증나는데. 그만둘까?
잠시 내적 갈등이 생겼지만 조금만 더 참아보기로 했다. 이혁일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조금 궁금했으니까.
제주도에서 이런 사이비 활동을 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하, 오름도 원래대로 돌려놔야 하는데 귀찮은 놈들이 자꾸 꼬이네.’
원래 이혁일을 만나 보려고 생각은 했었으니 일단 얌전히 있기로 결정했다.
[되게 불만이 많아 보이는 표정이네.]“됐고, 용건이나 말해. 왜 나를 부른 거야?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리 전부인가?”
[전부까지는 아니고, 너와 오름, 그리고 백이권을 부른 거지. 나머지는 내 알 바 아니야. 조금 흥미로워 보이는 녀석이 있긴 했지만.]그러니까 질질 끌지 말고 왜 우리를 부른 거냐고.
그때 갑자기 품 안에서 소미가 바르작거리며 나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아직 시스템에게 네가 각성한 사실을 들키면 안 돼.]“왜?”
[시스템에게 너희는 변수야. 시스템이 던전으로 뭔가를 꾸미고 있는 것은 확실한데 만약 오름이나 네가 각성한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 몰라.]지금의 내 힘으로 시스템을 박살낼 수는 없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러자 소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타까운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내 마나를 넘겨받지 않는 이상, 시스템을 이기기는 힘들 거야.]어느 정도 이해했다는 제스처를 취하자 소미는 다시 눈을 감고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가만 보면 그냥 펫처럼 보이는 녀석이 이 세상의 관리자라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했다.
“뭐 하고 있는 거야? 혼잣말?”
메시지로 열심히 대화를 하던 녀석이 갑자기 실제 입으로 말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소미가 있다는 사실을 들키기 않기 위해 애쓰며 녀석을 바라봤다.
“혼잣말하면 안 되냐? 니 꼬라지가 웃겨서 참을 수 없는데 어떡해?”
내 말에 녀석은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다.
“무엄하다!!”
무엄이래. 뭔 저런 단어를 쓰냐.
나는 중2병에 단단히 걸린 이혁일을 보고 ‘시스템’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했다.
녀석은 분명 시스템의 하수인이 맞았고, 잘못하면 다시 시스템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분께 선택받은 몸, 감히 네 녀석 따위가 함부로 말해도 되는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
이혁일은 자신이 뭐라도 된 것 마냥 격분하며 언성을 높였다.
그분이라는 것은 아마 시스템을 말하는 것이겠지? 에휴, 시스템이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네. 뭐, 사람에게는 신 비슷한 거긴 한가?
나는 이혁일과 주변 사람들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사이비 놀이에 빠진 애새끼한테 빠진 사람들은 또 뭐야.
이혁일은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비쩍 말라 뼈밖에 없는 것 같은 체형에 빛을 많이 보지 못했는지 창백한 피부와 퀭한 두 눈이 그랬다.
그리고 오래 관리를 받지 않은 것인지 허리까지 길게 내려온 모습은 자칫 잘못 보면 여자라고 오해하기 쉬워 보였다.
녀석이 남자인 것을 단번에 알아 볼 수 있었던 것은 옷차림 때문이었다.
그리스 신화에나 나올 것 같은 흰 색 천을 허리에 두르고 당당히 상의를 탈의한 녀석의 모습은 미치광이처럼 보였다.
“용기 하나는 대단하네.”
“그렇게 비웃는 것도 지금뿐일 거다. 그분이 나에게 명령했다. 네 녀석이 나타나면 네놈의 동료들과 함께 화형에 처하라고!”
화형? 여기가 던전도 아니고 도심 한복판에서 화형을 하겠다고?
나는 웃기지도 않는 녀석의 발상에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이혁일의 말 한 마디 때문에 살인에 동조할 사람들은 없을 터였다.
그랬을 터였는데.
“왜 다들 그런 눈으로 저를 보는 거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이상했다. 어딘가 나사 하나씩은 빠진 것처럼 광기에 물든 눈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근처에 숨어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나와 내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화형!”
그리고 누군가 외쳤다.
“화형!! 화형!!”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사람들은 미친 사람들처럼 화형을 외치며 나를 끌고 갔다. 미리 준비한 것인지 갑자기 사람들은 어디선가 거대한 나무 화형대를 가지고 왔다.
“다들 제정신이에요? 정말로 화형을 하겠다고? 당신들 이거 살인이야!”
당황한 목소리로 나를 화형대로 이끌고 가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이렇게 해서라도 정신을 차리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외친 것이었다.
하지만 내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기는커녕 되려 윽박지르는 사람들밖에 없었다.
“조용히 해!! 매화 길드를 망칠 악마 새끼야!”
“제주도를 무너뜨릴 사탄!!”
사람들은 한마디씩 말을 얹었다. 그 속에서는 알 수 없는 증오와 분노가 담겨 있었다.
대체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화형대에 매달렸다. 이곳은 사람들이 훤히 보이고 보기 좋게 세워진 고층 빌딩들과 아파트가 공존하는 도심 한가운데였다.
날씨도 굉장히 맑았다. 날씨와 공간과 이 상황에 괴리감이 들었다. 어떻게 발전했다는 현대 사회에서 화형식을 치를 수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건 단체로 미친 것도 아니고.”
나는 어떤 타이밍에 밧줄을 풀고 도망칠까 궁리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혁일이나 사람들은 내가 헌터이고 꽤 강하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 라이터로 신문지에 불을 붙이려는 것을 보고 나는 정말 갈 데까지 갔구나 생각하며 밧줄을 풀어내려고 했다.
“자, 잠깐만요!”
어라, 저 애는?
나는 화형대 앞을 두 팔 벌려 막고 있는 한 아이를 바라봤다. 처음 제주도에 도착하고 만났던 그 아이였다.
“비켜!! 너도 죽고 싶은 거야?!”
두려움에 팔을 덜덜 떨면서도 아이는 비켜서지 않았다.
“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나쁜 형처럼 보이지는 않았어요!”
나는 알게 모르게 안도했다.
아직 정상인인 녀석이 한 명쯤은 있다는 생각에 말이다.
저렇게 어린애도 뭐가 옳은지 아닌지 구분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째서 그걸 깨닫지 못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퍽-!!
“이 새끼가 어른들이 하는 일에 토를 달아! 너도 같이 타 죽고 싶어?!”
어른들은 무자비했다. 아이를 거칠게 밀어 쓰러트리고는 신문지에 붙은 불로 아이를 위협했다.
협박은 장난이 아니었던 것인지 아이의 머리 쪽에 바짝 불을 가져다 대려고 할 때, 나는 내 속에서 뚝 하고 이성의 끈이 끊기는 것을 느꼈다.
턱.
“애가 옳은 말 했구만, 뭐. 안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