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209
210화
-무너져 내린 제주도 (7)
필요한 존재라고? 시스템이?
함유리는 진지해 보였다. 시스템이 제주도에 왜 필요한 존재인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사람들이 이혁일을 신격화하며 떠받들던 것과 관련이 있어 보였다.
“제주도에 신이 왜 필요한데요?”
함유리는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이혁일이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은 알고 있지? 그걸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는 것도 말이야.”
“네. 게임 시뮬레이터라는 직업 효과인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것도 맞아. 하지만 미디어에 제한을 받고 있는 제주도민들에게는 그저 신의 능력이라고 여겨질 수밖에 없어. 특히 각성자라면 더욱.”
하긴, 정보가 제한된 상황에서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각성자들은 일반인들에게 고등의 존재로 인식될 수밖에 없고, 각성자에게 퀘스트를 주는 시스템을 신적인 존재로 여기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그렇다고 해도 광신도라고 해도 좋을 무조건적인 믿음은 그냥 나올 수 있는 게 아닐 텐데요.”
“이혁일은 그가 믿는 ‘신’을 내세워 예지를 했어. 녀석은 거의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던전이 나타날 시기와 위치를 맞췄지. 그 덕분에 우리가 오기 전까지 제주도민들은 괴멸하지 않고 피해 있을 수 있었던 거야.”
던전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의 공포는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던전 브레이크가 처음 터졌던 곳도 제주도였다. 미국만큼 던전 브레이크가 크게 터져 괴멸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기에는 충분했다.
옆에 멀쩡히 대화를 나누던 이가 순식간에 몬스터의 밥이 되어 찢겨 나가는 공포는 겪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게다가 제주도를 도와줬던 길드나 헌터도 없었다.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신께 목숨을 비는 것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타난 것이 이혁일. 그리고 이혁일이 신으로 섬기는 ‘시스템’.
던전의 위치를 미리 알려줘 몸을 피할 수 있게 해 주는 것만으로도 이혁일은 아주 쉽게 그들의 신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네.
“우리 길드가 처음 제주도로 왔을 때 사람들은 우리를 배척했어.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냐면서 비난의 목소리만 가득했지. 길드가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은 던전 브레이크를 정리하고 몬스터 토벌을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함유리는 허공을 바라보며 과거를 회상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실질적으로 몬스터를 해치우고 던전을 공략해 주는 것은 우리 길드였기에 우리의 입지가 높아진 것은 순식간이었지. 그런데 문제는 이 제주도에 나타나는 던전의 위치는 무조건 이혁일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는 거였어.”
그래서 강제로 이혁일과 협력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구나.
“우리는 이혁일의 손을 빌리지 않고 어떻게든 자력으로 던전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애썼다. 그런데 제주도에 무슨 저주라도 걸린 것처럼 모든 것이 통하지 않았지.”
아무것도 통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소리지?
“미디어가 통제되는 것과 연관이 있는 건가요?”
함유리의 얘기를 듣다가 조용히 되묻자 그녀가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제주도를 벗어나기만 하면 멀쩡한 스킬과 아이템들이, 제주도에 오기만하면 먹통이 되어 버렸지. 대체 어떻게 한 건지 아직도 알아낼 수 없어. 정말 신이 저주라도 내린 건지….”
이거 분명 시스템의 짓이다.
아무리 강한 스킬을 가진 헌터라고 해도 시스템이 작정하고 방해하면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혁일의 세력은 점점 강해졌고, 녀석은 우리가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우리 길드에게 무리한 요구를 해오기 시작했다.”
“요구요?”
“그래, 우리가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인간들로 협박했다. 실제로 던전의 위치를 알려주지 않아 던전 브레이크가 터져 많은 사람들이 사고로 죽고, 심하면 자신들의 신도들을 가지고 인신공양을 드리기도 했지. 말이 인신공양이지, 대규모 자살쇼였어! 그 꼴은 도저히 봐줄 수가 없어 따르기 시작했다. 그랬으면 안 되는 건데.”
대체 무슨 요구를 했는지 함유리의 마력이 분노로 요동치고 있었다.
“어떤 요구였는지 물어봐도 되나요?”
씁쓸한 미소를 짓던 함유리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인간을 납치해 실험을 위해 이혁일에게 가져다 바치는 일. 길드장으로서, 인간으로서 하면 안 될 일에 동참해 버린 거야.”
이혁일 이 새끼, 미친놈이었네? 아니, 이혁일이 아니라 시스템이 꾸민 일인가?
괴로워 보이는 표정은 함유리가 진실로 후회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줬다.
“한 명의 생명이냐, 다수의 생명이냐 언제나 선택해야 했다.”
S급 헌터라도 시스템을 거역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였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최소한의 피해를 선택했을 것이다.
“정승아가 소원을 들어주는 나뭇가지를 모으는 이유는 뭐예요? 보니까 그쪽도 그 나뭇가지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눈치던데.”
사정은 어느 정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점은 남았다.
그 빌어먹을 소원 나뭇가지 때문에 내가 죽을 뻔했던 것을 생각하면 물어보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승아는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한 것 같았지만, 나뭇가지를 모으고 있던 것은 눈치채고 있었어. 사실 뻔하지, 이혁일을 치워 버리는 것이었을 거야. 아니면 이 악순화을 끊어 달라고 할 생각인 게 아니었을까.”
그 녀석이 그렇게 의로운 일을 위해서 나뭇가지를 모으고 있었다고?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함유리를 쳐다보자 그녀는 똑바로 마주쳐 왔다.
진실을 말하는 눈빛이었다. 정말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정승아는 방법이 조금 삐뚤어지긴 했어도 길드를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다 바칠 아이야.”
“방법이 조금 삐뚤어진 게 아니라 상당히 많이 삐뚤어진 것 같던데. 그것 때문에 저는 던전에 갇혀서 죽을 뻔했다고요?”
함유리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 눈빛 하지 마. 승아가 옳다고 말하는 게 아니니까. 너무 목표에 집착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거다.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어. 대신 사과하지.”
함유리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해 왔다. 그래도 뻔뻔한 노랑머리 짐승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기분이 조금이나마 나아졌다.
물론 대신 사과했다고 정승아에게서 사과를 안 받아낼 것은 아니었다.
이건 이거고, 그건 그거지.
“이제 네가 알고 있는 정보를 말해.”
함유리는 고개를 번쩍 들어 올리고 눈을 빛냈다. 자신들의 사정은 말했으니 이제 내 차례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매화 길드가 궁지에 몰려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이러고 있는 와중에 백이권이 쳐들어왔으니 빡칠 만해요, 그건 저도 백이권 씨를 대신해서 사과드리겠습니다.”
나도 고개를 꾸벅 숙이고 이야기를 하기 전에 사과를 전했다.
함유리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혁일의 정보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사과는 됐으니 빨리 말해.”
정 없긴.
“일단 이혁일이 정확하게 던전의 위치와 발생 시기를 알 수 있는 건 녀석이 말하는 뒷배 덕인 건 맞습니다.”
내 말에 함유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지만 문제라면 그 뒷배가 던전을 생성하는 범인이라는 거죠. 그러니 위치와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있을 수밖에요.”
“뭐라고?”
함유리는 내 말에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변을 빙빙 돌며 생각에 잠기던 함유리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 거였어. 그러니 그런 정확한 예지를 할 수 있었던 거군.”
“내 말은 의심도 안 해 봐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함유리를 보며 너무 쉽게 믿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거짓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혁일보다는 믿을 만한 것 같아서.”
그건 그렇지. 이혁일을 믿느니 나도 함유리가 하는 말을 더 믿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감이 좋거든.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는 금방 눈치챌 수 있어. 뭐, 물론 김지완만큼은 아니겠지만.”
S급쯤 되면 그런 것도 가능해지는 건가?
나는 확신하듯이 말하는 함유리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백이권도 마력 민감도가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났던 것을 떠올렸다.
확실히 S급이 되면 한 가지 능력에 인간을 초월하는 무언가를 얻게 되는 것은 맞는 것 같았다.
이권의 마력 민감도, 지완의 거짓 간파, 유리의 점프력 등과 같이 말이다.
“어쨌든 이혁일이 하는 일이나 그 뒷배가 하는 일이나, 인간에게 도움 되는 일은 하나도 없을 거예요. 이걸 사람들한테 알리면 조금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요?”
함유리는 내 대안에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라면 이미 시도해 봤지. 하지만 녀석은 무슨 능력인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기억을 조작하는 것 같아. 사람들의 믿음도 너무 굳건해서 쉽지 않을 거다. 확실한 증거가 아닌 이상 말로는 뭔가를 바꾸긴 어려울 거야.”
그렇단 말이지.
나는 시스템과 지금 여기서 마주하고는 싶지 않았다. 녀석을 굳이 불러낼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녀석은 이 ‘세상’에는 간섭할 수 없는 존재였다.
본인이 직접 행차하는 것이 아니라 이혁일을 통해서 일을 꾸미는 것도 그래서였다.
녀석이 직접 뭔 짓을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던전 안에서만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이 제주도에 저주 같지도 않은 저주를 건 장본인은 다름 아닌 이혁일 본인이라는 소리였다.
물론 시스템을 뒷배로 두며 꽤 강력한 힘을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까 일반인들을 이용해 나를 화형대에 올리려고 했던 것을 떠올리면, 녀석은 직접 나를 건드릴 생각은 없어 보였다.
건드릴 생각이 없었던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라면?
나는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제주도 전체를 조종하려면 아무래도 큰 힘이 필요할 테지. 그만큼 안고 가야 하는 리스크도 클 테고.
나는 희미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녀석의 실체를 까발릴 계획을 세울 생각에 미소가 멈추지 않았다.
“우리, 이혁일을 처리할 때까지는 아군인 거죠?”
나는 빙긋 웃으며 함유리를 바라봤다. 내 미소에 함유리는 흠칫 놀라며 떨떠름해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아참, 정승아는 이 일에서 빼주세요. 걔는 못 믿겠으니까.”
정승아에게는 어떤 말도 전하지 말고 비밀로 해 달라는 말에 함유리는 약간 망설이는가 싶더니 내가 당했던 일을 떠올렸는지 알겠다고 답했다.
함유리가 하지 말라고 한다 해서 녀석이 들을지는 미지수였으나 여차하면 함유리의 이름을 팔고 녀석을 줘 패면 될 일이었다.
“뭘 하려는 건데?”
“무너져 내린 제주도를 다시 세우는 일? 같이할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