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210
211화
-계획 (1)
“그런 일이라면 당연하지.”
함유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동의했다. 눈빛은 이상한 사람 보듯이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 보였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체념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뭐 이래나 저래나 따를 수밖에 없을 테지만.
“그, 그럴 리 없어요! 다들 무슨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때, 얌전히 내 옆에 앉아 있던 준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는 당황하며 준서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지금 우리가 나눈 대화가 받아드리기 힘든 내용들이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준서야. 녀석은 사람들을 속이고 있어. 아직도 이혁일이 좋은 사람처럼 보여?”
내 말에 준서는 손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을 억지로 받아드려야 하는 준서의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더 잔인하고 냉혹한 것이었다.
“제주도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준 분이에요. 우리를 속이고 있었다니, 말도 안 돼…!”
현실을 부정하는 준서의 어깨를 붙잡으며 몸을 고쳐 앉았다.
“정신 차려. 제주도를 엉망으로 만든 것도, 그걸 자신이 구해준 것인 양 속여서 사람들을 가지고 실험한 것도 다 너희들이 떠받들던 이혁일의 실체야.”
“흐윽, 흑.”
결국 준서는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충격적인 진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줄도 모르고 우린 이제껏…!”
분노가 북받쳐 흐르는 것인지 아니면 죄책감이 흐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많지 않았다.
“울지 마. 울어 봤자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저는 어떻게 하면 좋죠? 옆집 아저씨도, 학교 선생님도 잡혀 갔었어요. 이혁일을 의심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요!”
준서는 괴로운 듯이 바닥에 주저앉아 주먹을 꽉 쥐었다. 어린 놈이 얼마나 주먹을 세게 쥔 건지 손에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잡혀간 사람들이 멀쩡히 살아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마 이혁일의 실험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 말을 굳이 입에 올리지는 않았다. 이미 크게 자책하고 있는 아이에게 그런 것들은 도움이 되지 않았으니까.
“네가 그렇게 자책한다고 과거가 바뀌는 것은 아니야.”
어쩐지 자괴감에 몸부림치는 녀석의 모습이 과거의 나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런가, 왠지 쓸데없는 말을 길게 늘어놓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야. 과거의 실수로 스스로를 비난만 하다가 현재도 바꾸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준서가 내 말에 눈물을 겨우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중요한 건 변하지 않느냐, 변하느냐야. 멍청하게 주저앉지 말고 일어나.”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울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준서 스스로 일어나길 바랐다.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죄송하면 나를 도와. 제주도를 한번 바꿔 보자고.”
어쩌면 준서에게 한 모든 말들은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일지도 몰랐다.
그때 그 과거의 나에게 그렇게 말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과거로 돌아갔다 오며 깨달았다. 나는 과거에 너무 얽매여 있었다.
형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과거에 얽매여 현재를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미련한 일이었다.
준서는 내 말에 겨우 주저앉던 몸을 일으켜 소매로 눈물을 거칠게 닦아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힘이 닿는 데까지 도울게요!”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나는 준서가 정신 차린 것을 보고 다시 하던 말을 이어갔다. 아마 앞으로 준서가 다시 이혁일에게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자, 질질 짜는 건 여기서 멈추고 앞으로의 일을 도모하자고. 함유리 씨, 그런데 이혁일이 어디서 거주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어요? 사람들이 신처럼 떠받는다고 하늘에서 지내는 건 아니잖아요.”
함유리는 이혁일의 거처를 묻는 질문에 내 쪽으로 지도 하나를 던져줬다.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정교하게 그려져 있는 제주도의 지도였다.
“이건 제주도 지도잖아요.”
“거기에 붉은색으로 표시되어 있는 곳, 보여?”
함유리가 말한 곳을 살펴보니 붉게 칠해진 곳이 보였다.
“그곳이 이혁일이 거주하는 곳으로 추측된 곳이야. 믿을 만한 사람을 통해서 조사한 거다.”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믿어줘야지. 그런데….
“붉은색으로 칠해진 곳이 여러 군데인데요?!”
게다가 붉은색으로 표시되어 있는 곳이 정확하지 않았다. 얼추 이쯤일 거라고 커다란 동그라미로 표시되어 있어 정확한 위치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믿을 만하고 뭐고 정보가 정확하지 않은데 이걸 보고 어떻게 유추하라는 거야?!
나는 어이가 없어서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함유리를 바라봤다.
“그래, 말대로 그건 정확한 정보가 아니지. 하지만 그게 우리의 최선이야. 말마따나 녀석은 신이 아니지만 신과 소통하는 놈이다. 거처를 알아내는 것도 벅찼어. 귀신 출몰하듯이 이곳저곳에서 나타나는데 정확한 곳을 어떻게 알겠어?”
말은 그럴듯하게 하는데 결국 능력 부족으로 정확한 거처를 알아낼 수 없었다는 얘기였다.
이혁일이 시스템을 조종하니 거처를 알아내기 힘들 거라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이혁일을 의심하면서도 몇 년 동안 알아낸 것이 이것밖에 없다는 게 조금 이해가 안 갔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나도 멍청했다는 건 인정하니까. 이혁일을 의심하게 된 것도 얼마 안 된 일이고 녀석의 힘이 생각보다 이 제주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어서 알아보는 것도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착잡한 목소리로 말하는 함유리를 보며 나는 다시 지도에 눈길을 돌렸다.
어쨌든 녀석이 주로 어느 곳에서 활동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뭘 시도해도 할 텐데, 걱정이 앞섰다.
백이권이라면 이혁일이 어딨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잠깐, 생각해 보면 나도 사용할 수 있지 않나?
나는 내 마나가 어디까지 활용될 수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던전이 한계였지만 완전한 각성을 마친 지금이라면 제주도 전체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시도는 해 보자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밖으로 잠시 나왔다. 그리고 전체적인 제주도의 풍경을 둘러보면서 손바닥을 바닥에 댔다.
“지금 뭐 하는 거야?”
함유리는 내가 갑자기 밖으로 나가더니 땅에 손을 대는 모습을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지켜보고 있으시라고요.”
나는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일 때문에 말을 더 얹고 싶지는 않았다.
손끝에서부터 느껴지는 마나의 파장을 느꼈다. 땅으로 퍼져 나가는 마나의 속도가 예전과는 다른 것을 느꼈다.
면적이 커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각성을 했기 때문인지 확실히 마나를 다루는 것에 차이가 느껴졌다.
마나는 쭉쭉 뻗어 나갔다. 나무의 줄기가 뻗어 나가는 것처럼 넓고 빠르게 움직였다.
던전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마나가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그게 버겁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아마 각성을 한 것이 크게 작용한 것이겠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머릿속에는 거대한 제주도의 지도가 그려졌다.
머릿속에 느껴지는 거대한 마나의 지도에 살짝 어지러운 느낌도 들었지만 무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냈다.
혹시나 싶어서 해 봤던 것인데 되잖아?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움직임들을 보며 나는 이혁일을 찾는 것은 또 다른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적으로 작았던 던전이라 전에는 좀 더 수월하게 사람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다. 제주도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으나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인파 속에서 이혁일 하나만 찾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믿을 수 있는 지도인지는 몰랐으나 함유리가 내민 지도를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지.
한라산을 중심으로 퍼져 있는 다섯 개의 붉은 동그라미들을 확인한 뒤에 나는 다른 곳으로 펼쳐져 있는 마나를 거뒀다.
그러자 다섯 개의 원에서 움직이는 사람들만 머릿속에 들어오게 됐다.
아까보다는 훨씬 낫지만 아직도 사람들이 많아.
이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이혁일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차라리 이럴 바에야 누군가를 미끼로 삼아 이혁일을 밖으로 이끌어 내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녀석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미끼라면…. 나밖에 없나?”
중얼거림을 들은 함유리는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네가 미끼가 되자면 어쩌자는 거야? 그래서 잡히면 어떻게 하려고?”
“제가 잡혀도 함유리 씨가 대신 일을 진행시키면 되죠. 저보다는 함유리 씨의 말을 더 믿을 테니까요.”
“이혁일의 실체를 다 밝히려는 거야? 하지만 사람들의 세뇌는 생각보다 심해. 내가 말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세뇌가 약했던 준서마저도 은인처럼 여기는 함유리의 말을 부정부터 하고 봤던 것을 보면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더욱 심할 것이다. 그리고 그걸 얌전히 넘어갈 이혁일도 아니었고.
일단 함유리가 알려준 위치에 이혁일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겠다.
나는 다시 집중해 시간이 오래 걸림에도 이혁일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열심히 찾아보기 시작했다.
혹시 몰라 이혁일이 나타났던 도심도 샅샅이 뒤졌다.
“이거 제대로 표시한 거 맞아요?”
나는 결국 이혁일처럼 느껴지는 마나나 마력을 찾지 못해 집중을 풀어 버렸다.
“이혁일은 철저해. 자기 모습을 웬만해서는 잘 드러내지 않지. 동그라미로 표시된 지역들이 이혁일이 한 번이라도 모습을 드러냈던 장소들을 표시한 거다.”
그러니까 거주지는 아니라는 소리네?
나는 함유리의 말을 듣고 어이없어서 실소가 흘렸다.
정확한 정보는 무슨! 목격한 것을 표시했다고 같은 장소에 나타나리란 보장이 없잖아!
괜히 마나를 소모한 것 같아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표시된 곳에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됐다.
어차피 시간이 걸릴 일이었다. 사람이 최대한 지나다니지 않을 곳들을 제외하고 열심히 마나로 이혁일을 수색했다.
이렇게 된 거 몇 시간이 걸리든 어떻게 해서든지 찾아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혁일을 찾지 못하면 계획이 어그러지는 건가?”
“네. 이혁일은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어요. 시스템을 통해서 대화를 하거나 헌터의 위치를 알아내기도 하죠. 사람들이 신격화하는 것도 사실 이상한 일은 아니죠. 우리가 무슨 일을 꾸미든 간에 방해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럼 이혁일의 위치를 알아낸다고 달라지는 건 없잖아?”
나는 궁금증에 계속 질문하는 함유리를 보며 씩 웃어 보였다.
“그 전지전능해 보이는 능력을 멈추는 게 계획의 핵심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