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213
214화
-계획 (4)
뭐야, 이런 험한 산속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환청을 들은 건가 싶어 다시 자세히 들어봤다.
“누, 누구 없어요!! 사람 살려!!”
역시나 사람 소리가 맞았다. 환청 따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정신 나간 녀석들이 이 한라산에 겁도 없이 들어왔나 싶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헌터로 보이는 몇 명의 사람들이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었고 그 앞에는 무기를 들이대고 있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잠깐, 몬스터가 아니라 사람에게 공격받고 있었던 거였어? 그것도 일반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나는 대체 누가 가해자인지 명확히 하기 위해 다시 한번 눈을 부릅뜨고 바라봤지만 일반인들이 가해자인 것이 누가 봐도 명확했다.
에라이 헌터 자격 떼라.
그렇게 생각하며 무기를 휘두르기 직전의 사람에게로 걸어갔다.
“지금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설명해 주실 분 계신가요?”
“헉!! 유리 님이다!!”
“살았다!!”
내가 하는 말은 사뿐히 흘려버리고 내 뒤에 있었던 함유리에게로 미친 듯이 달려오는 6명의 헌터들을 보고 나는 한숨이 나왔다.
설마 매화 길드 녀석들이었던 건가?
함유리를 쳐다보니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나 같아도 그럴 것 같았다. 자신의 부하들이 몬스터와 싸우다 도망쳐 온 것도 아니고 일반인을 상대로 겁을 먹고 도망쳤다는 사실은 꽤 속이 뒤틀릴 것이다.
길드의 이미지가 추락하는 일이었으니까.
“너희들은 누구지. 처음 보는 얼굴인데.”
화를 눌러 참은 것 같은 목소리가 함유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 저희는 이번에 새로 매화 길드에 입단하게 된 신입들입니다!”
맨 앞에서 겁에 질려 있었던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당당하게 외쳤다. 눈치가 없는 편인지 자랑스럽다는 듯이 가슴을 쭉 펴고 있는 모습이었다.
“신입? 신입들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함유리는 최대한 감정을 갈무리하며 녀석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아까 입을 열었던 녀석이 다시 한번 더 큰 소리로 외쳤다.
“함유리 님의 명령에 따라 선배님들의 수고를 덜어드리기 위해 수색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우렁찬 목소리와 동시에 함유리는 한숨을 푹 쉬었다.
“신입들은 수색이 금지되어 있을 텐데. 알려준 녀석이 단 한 명도 없었나?”
함유리의 짜증이 묻어난 목소리에 우렁차게 목소리를 높이던 녀석이 우물쭈물하기 시작했다.
“아, 그…. 선배님께서 길드에 남으라고 했지만 저희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결국 함유리는 터지고 말았다.
“도움이 된다는 게 일반인한테 죽도 못 쓰고 벌벌 떠는 일을 말하는 건가?!”
함유리의 주변에서 푸른 기운이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아마 S급의 기운을 방출한 것일 거다.
그 기운에 질려서 자리에 주저앉는 녀석들은 이제 일반인들이 아니라 함유리에 의해 벌벌 떨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밖에 하지 못하게 된 녀석들을 뒤로하고 함유리는 아까부터 우리 쪽을 향해 무기를 들고 있는 녀석들에게로 다가갔다.
“너희들은 누구지? 왜 이곳에 있어?”
겁도 없이 성큼 다가가는 함유리를 보고 당황한 것인지 사람들이 한 발자국 물러났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S급 헌터의 위용이 어디 가도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거, 거기서 멈춰! 더 다가오면 화살을 쏘겠어!”
똘똘 뭉쳐 있는 사람들이 더욱 경계심을 가지고 행동하자 함유리는 더 이상 다가가지 않고 걸음을 멈췄다.
“해칠 생각 없다. 이 멍청이들과는 다르니 너희들이 누군지 말해.”
함유리의 말에는 신뢰성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한라산은 위험한 구역이야. 일반인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을 텐데 왜 이곳으로 들어온 거지?”
순수한 궁금증에 대한 질문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인지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가장 앞에 나와서 무기를 들이대고 있었던 늙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
“매화가 뭘 잘 모르는 것 같군. 이곳에는 몬스터가 존재하지 않아.”
역시 그런가. 이혁일을 위해서 몬스터의 수를 줄였거나 던전에서 몬스터가 새어 나오지 않게 막아둔 거겠지.
몬스터를 못 잡게 된 것은 조금 아쉬웠지만 어쨌든 우리에게 좋은 것은 맞았다.
“몬스터가 없다고?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몬스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에 당황한 함유리는 갑자기 난데없이 제자리에서 점프를 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한참을 그렇게 있더니 자리로 내려왔다.
“정말이군. 정말로 몬스터가 없어.”
말도 안 된다는 듯이 함유리는 이를 아득 갈았다.
“아마 이혁일이 살기 위해 그렇게 만들어 놓은 거겠죠. 이혁일이 말하는 신이 말이에요.”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으나 함유리에게는 충격적으로 다가온 모양이었다.
“이걸 이제껏 알고 못하고 한라산을 경계해 왔다고? 그럼 우리들은 여태 뭘 위해….”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모습이 처량해 보이기도 했다.
S급 헌터에 4대 대형 길드 중 하나인 매화 길드였다. 몇 년 동안 한라산을 경계만 하며 공략할 생각도 없이 근처에 가 보지도 않았던 것은 조금 실망스럽긴 했다.
생판 모르는 남도 이렇게 생각하는데 스스로는 얼마나 허무하고 부끄러울지는 대충 상상이 갔다.
“그만 정신 차리시고. 어차피 이곳은 전부 이혁일한테 세뇌를 당한 사람들로 천지잖아요. 혼자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요. 부끄러울려면 제주도 전체가 부끄러워야지.”
그렇게 말하니 우리에게 무기를 들었던 사람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당신, 이혁일이 보낸 사람이 아닌 건가?”
경계심으로 가득했던 사람들의 눈빛이 약간 누그러진 것이 보였다. 가만 보니 이 사람들도 이혁일에게 세뇌된 사람은 아닌 모양이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도 보니까 이혁일을 따르는 건 아닌가 본데요?”
“우리들은 이혁일을 피해 한라산으로 도망친 사람들이요.”
오, 소문이 무성한 한라산으로 도망쳐 온 사람들이라고?
나는 그 사람들을 천천히 살폈다. 그리고 그 사람들도 무기를 내려놓고 우리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우리는 적이 아니라 아군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일단 대화를 좀 해 봐야 할 것 같은데요?”
그 사람들은 우리를 산속 깊은 곳 어딘가로 안내했다. 혹시 이렇게 깊은 곳으로 끌고 들어가서 뒤통수를 치는 건 아닌가 의심이 잠깐 들었지만 다행히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나왔을 뿐, 몬스터나 이혁일이 등장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이혁일을 피해 이곳으로 도망쳐 나온 거죠?”
불을 피워둔 곳으로 안내한 곳의 나무 그루터기에 앉자마자 안내한 사람을 붙잡고 질문부터 했다.
얌전히 수다나 떨러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정보를 빼내고 이동할 생각으로 한 것이었다.
“이혁일에게 모든 사람이 세뇌를 당한 것은 아니에요. 이혁일 때문에 가족을 잃거나 소중한 사람들이 눈앞에서 처형당했던 사람들은 신이 정말로 있다고 해도 부정하고 싶기 마련이죠. 여기 모인 사람들은 전부 그런 사람들이에요.”
아하, 그랬던 거군. 하지만 이곳은 이혁일이 있을 거라고 예측되는 곳인데. 설마 우리가 틀렸나?
“여기서 산 지 얼마나 됐는데요?”
“아마 족히 10년은 됐을 거요.”
10년이면 말 다했다. 한라산이 아무리 크다지만 그 세월 동안 이혁일을 못 봤다는 게 말이 안 됐다.
이혁일은 여기에 없는 거다.
“이혁일을 본 적은 없나?”
함유리도 같은 생각을 한 것 같지만 다시 한번 확인을 하기 위해 되물었다. 그리고 남자의 반응은 격했다.
“여기 이혁일이 있을 리가!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게. 만약 만났다면 죽여 버렸을 거야!”
이혁일의 ‘이’ 자도 듣기 싫은지 몸서리치는 모습을 보니 정말로 본 적은 없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허탕 쳤다는 생각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우리는 이혁일을 잡으러 여기로 온 거다. 여기 없다면 더 있을 이유가 없지.”
함유리는 볼일 다 봤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준서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연신 죄송하다며 사과를 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헛걸음하게 만들어서.”
“괜찮아. 그럴듯한 발상이었잖아. 게다가 이렇게 이혁일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고, 한라산에 몬스터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됐고.”
이 사람들의 존재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나름 성과는 있었다 생각한다. 이 사람들의 힘이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벌써 가시게요?”
“네. 이곳에 이혁일이 없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다른 곳을 찾아봐야죠.”
“몬스터가 없다는 것은 희한하긴 하군”
“희한할 것도 없어요. 시스템이 이혁일을 위해 몬스터를 없애 둔….”
나는 말을 이어가다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멈추고 말았다.
이혁일이 없는데 이혁일을 위해 몬스터를 없애 뒀다고? 뭔가 이상한데? 몬스터를 왜 없앤 거지? 이혁일은 여기 없는데?
순간적으로 불길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곳에 이혁일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일지도 모른다는 것.
그게 아니라면 이혁일은 이곳에 정체를 숨기고 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생각해 보면 이혁일은 시스템을 다루는 사기 직업이니만큼 체력이나 몸이 약할 가능성이 높았다.
체력이 약한 것이 생존하기 어렵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혼자서 이 험한 한라산 생활을 견뎌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저기, 여기서 10년이나 살았다고 했죠?”
“그쵸. 여기서 10년이면 제가 제일 오래 산 사람일 겁니다.”
“10년이면 이혁일이 여기 오고 나서 1년 후네요?”
“예 맞습니다. 제가 이혁일의 첫 번째 희생자였으니까요. 오자마자 신처럼 구는 이혁일에게 따르지 않겠다고 반항했다가 가족들이 죽었어요. 그 순간은 잊지 못할 겁니다.”
화로 인해 얼굴이 붉어지고 주먹에 핏줄이 서는 남자를 보니 저게 연기라면 대상감이라 생각하며 남자의 이야기를 곰곰이 되짚어 봤다.
10년 전에 이혁일이 제주도로 오고, 같은 년도에 매화 길드가 이곳에 도착했었다. 시기적으로는 이상한 점이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기시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남자가 아니더라도 의심 가는 인물은 수두룩했다.
시스템의 실수인지 아니면 정말로 이혁일이 여기에 있는 것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하산하기 위해 함유리와 준서는 이미 몸을 돌려 내려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을 불러 세웠다.
“두 사람 모두 잠깐만.”
뒤를 돌아보는 두 사람에게 나는 그들만 들릴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우리 이곳에 잠시 머물도록 하죠.”
“무슨 헛소리냐. 이혁일 찾으러 가야지?”
함유리는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나라봤다. 그리고 나는 그 눈빛을 마주하며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이곳에 이혁일이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