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221
222화
-한라산의 사람들 (7)
“뭐, 뭐야?”
이혁일은 몸이 잠시 움직이지 않는 것을 느끼고 준서를 홱 돌아봤다. 그리고 준서는 고개를 푹 숙이고 머리가 핑 도는 것을 참아내고 있었다.
“설마, 이런 꼬마가 각성을?”
이혁일은 준서의 상태를 보더니 놀라서 눈동자가 커졌다.
준서도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울렁거리고 머리가 띵한 것을 최대한 참아내고 이혁일을 바라보니 자신이 말한 대로 이혁일의 움직임이 멈춘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스킬, ‘슬로우 모션’을 사용하셨습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진짜로 내가 각성을 한 건가?’
자세히 보니 이혁일은 움직임을 멈춘 것이 아니라 아주 천천히 느릿하게 가고 있는 것이었다.
준서는 그것을 눈치채고 재빨리 이혁일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미연을 등에 이고 자리를 벗어났다.
“어디 가!! 그런다고 내가 못 잡을 것 같아?”
이혁일은 어느새 발이 땅에 닿았고 느릿한 걸음으로 준서의 뒤를 쫓으려고 몸을 틀었다.
어쩐지 느릿했던 걸음이 점점 빨라지는 것을 보고 준서는 식은땀을 흘렸다.
[스킬이 해제됩니다.]착각이 아니었다. 스킬의 지속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던 것인지 금방 스킬을 해제되었고 이혁일이 빠른 속도로 쫓아오고 있었다.
어린애의 걸음이 아무리 빨라 봤자 어른의 속도를 이길 수 없었다.
얼마 가지 못해 준서는 붙잡히고 말았다. 그리고 준서의 목덜미를 잡은 이혁일은 마나를 전부 뽑아내겠다는 듯이 눈에 불을 켜고 목을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크헉!”
“뭐야, 게다가 꼴에 S급으로 각성한 모양이네?”
이혁일의 중얼거림이 들려왔지만 준서는 그 소리를 듣기 전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하, 잘됐네. 마나가 부족했는데 마침 S급으로 각성해 주다니!”
준서는 자신의 몸에서 거대한 무엇인가가 빨려 나가는 느낌을 받으며 정신을 잃기 직전까지 갔다.
그리고 정말로 죽겠다고 생각이 든 순간, 이혁일이 잡았던 손을 놓아줬다.
“하…. 이제 진짜로 됐어. 그분이 강림하실 거다.”
이혁일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채 두 팔을 하늘을 향해 쫙 벌렸다.
준서는 이혁일의 손에서 탁한 색의 마력들이 하늘을 향해 모아지고 있는 것을 흐린 눈으로 지켜봤다.
허공에는 순식간에 색이 탁한 거대한 구름이 생성되었다. 만들어지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마치 곧 세상이 멸망할 것처럼 보이는 불길한 현상이었다.
“안 돼….”
준서는 그 마력구름을 보며 젖 먹던 힘까지 쥐어 짜내어 그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까 스킬 이름이 뭐였더라. 맞다….’
“슬로우 모션.”
준서는 이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스킬, ‘슬로우 모션’이 발동합니다.] [스킬, ‘독안에 든 쥐’가 발동합니다.] [스킬, ‘능력 증폭’이 발동합니다.]준서는 슬로우 모션 하나만 사용했을 뿐인데 동시에 여러 가지 스킬이 사용되는 것을 보고 당혹스러운 감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한테 이런 스킬들이 있다고? 그보다 어떤 스킬들인지도 모르는데!’
준서의 당혹스러운 감정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안 그래도 마나를 빼앗겨 기절 직전의 상태인데 스킬을 동시에 여러 개를 사용하다 보니 마력이든 마나든 전부 빠져나가 버린 것이다.
그리고 준서는 그 스킬들의 능력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기절하고 말았다.
쿠궁-
자신의 스킬이 어떤 사건을 일으킬지도 모른 채 준서는 그대로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 * *
“준서야!”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쓰러져 있는 준서와 미연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른처럼 신체가 큰 것도 아니라 찾는 데 조금 애를 먹었지만 샅샅이 살핀 덕에 찾을 수 있었다.
“정신 차려 봐!”
기절한 것 같은 두 사람의 모습에 정신 차리라고 뺨을 두들겨 봐도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대체 애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
떨리는 목소리로 주먹을 꽉 쥔 함유리는 미연과 준서를 받아들고 당장 의무실로 가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주변에 없는데요?”
준서를 잡기 위해 분명 다른 정찰팀이나 이혁일이 이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준서를 죽이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자리를 뜨는 게 맞지만 이 두 사람을 인질로 삼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냥 기절시키고 사라진 이유가 뭐지? 뭔가 이상한데?
나는 일단 불길해 보이는 구름의 원인을 찾기 위해 이혁일을 다시 찾으러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리 님은 애들을 데리고 가 주세요. 저는 일단 이혁일을 더 찾아볼게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함유리는 다급히 자리에서 벗어났다.
함유리가 저렇게 다급하게 행동하는 모습은 의외였다. 항상 냉정해 보이는 모습만 봐서 어린애들에게도 그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약자의 편인 모양이다.
나는 주변을 더 살펴보며 이혁일이 어디에 있는지 예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구름을 살펴보다 구름에서 땅으로 이어지는 작은 실 같은 줄기를 발견했다.
“마력 같은데?”
나는 곧바로 그 줄기가 마력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그 이어지는 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이혁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뭐지?”
그런데 녀석의 상태가 이상했다.
녀석은 뭔가에 당한 것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힘들어하고 있었고 구름에서 뻗어 나온 마력의 줄기가 이혁일의 심장과 연결되어 있었다.
“한…설….”
거의 죽어가는 몰골로 나를 쳐다보는 모습은 병자 그 자체였다.
“뭐지, 이제 와서 약자 행세라도 할 셈이야?”
나는 같잖다는 말투로 비웃으며 녀석에게 다가갔다. 한손에는 리코더를 든 상태였다. 저 상태라면 쉽게 녀석을 해치울 수 있을 것이었다.
“…나에게도 안 좋은 소식이지만 이건 너에게도 안 좋은 소식이 되겠군.”
이혁일은 기운 없이 말을 꺼냈다. 어쩐지 모든 것을 포기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뭐야? 안 어울리게. 안 좋은 소식이라니, 무슨 소리지?”
이혁일은 나를 비웃기라도 하고 싶은 것인지 입꼬리를 억지로 올려 미소를 지었다.
“…망할 꼬맹이가 쓸데없는 짓거리를 했다. 마력으로 똘똘 뭉친 구름에 이상한 스킬을 사용했어.”
꼬맹이? 꼬맹이라고 불릴 사람이라고는 미연이와 준서밖에 없는데?
“너희 쪽 꼬마다.”
내가 헷갈리지 않게 친절히 짚어주는 이혁일의 모습에 감동이라도 받아야 하나 고민했다.
“이상한 짓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제대로 알아듣게 말해. 여기서 죽고 싶지 않으면.”
이혁일은 힘없는 웃음을 지으며 소리 내서 웃었다.
“하하…. 네가 죽이지 않아도 나는 곧 죽는다. 그분 곁으로 가게 되는 거지. 죽는 건 두렵지 않아. 하지만 그분이 이 세계에 강림할 시기가 늦춰져 버렸어.”
이혁일은 여전히 알기 힘든 말을 해댔다. 그리고 곧 죽는다는 사실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곧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모습으로 신음을 흘렸다.
“크윽! 그 꼬마가 마력구름의 흐름을 느리게 흐르게 했어. 저 구름으로 그분이 이곳에 강림할 참이었다. 그러려면 많은 마력과 마나들이 필요하지.”
“마력? 설마, 네가 인간들을 데리고 실험했다고 했던 게….”
이혁일의 심장에 꽂혀 있던 마력 줄기가 마치 수분을 빨아들이듯이 녀석의 마력을 빼앗아 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윽, 그래. 맞아. 인간들의 마나를 전부 빨아들여 그분의 마력이 되게 했다.”
“이거 완전 미친놈이네.”
인간들을 희생해 시스템을 이 세상에 부르기 위한 마력을 모았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그 녀석이 이 세상에 강림하는 것이 이혁일에게 뭐가 이득이 되길래 이렇게까지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큭,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네.”
얼굴에 티가 났는지 이혁일은 힘들어하면서도 비웃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분이 오시면 우리는 이 작은 세계에서 벗어나 더 큰 우주로 갈 수 있다고 했어. 구원인 거지. 나는 그걸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이혁일은 그 말을 하며 마력으로 만들어진 시커먼 구름을 바라봤다.
“더 큰 우주로 나간다고? 그게 그렇게 중요해? 수많은 목숨을 바칠 만큼?”
“너 같은 인간들은 날 이해하지 못하겠지. 이해를 바라지도 않아. 하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닐 텐데? 그분은 모든 마력의 원천. 헌터들이 사용하는 스킬이나 마력들은 모두 그분에게서 나오는 건데 그걸 느리게 막아 놨으니….”
이혁일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준서가 어떻게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스킬을 사용해 한라산 허공에 떠 있는 구름이 만들어지는 속도를 늦춘 것이다.
“그분이 저 마력구름에 갇히게 되면 결국 헌터들도 스킬을 사용하지 못하게 될 거다.”
힘겨워하면서도 이혁일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말들은 꽤나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혁일의 말대로라면 마력을 사용하는 헌터들은 전부 마력을 사용할 수 없는 일반인처럼 되어 버릴 것이다.
“그럼 던전이나 몬스터는….”
“하하,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겠지.”
이건 안 될 말이었다.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서울, 아니 대한민국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 것이다.
마력에 의한 헌터들만 그렇다는 거지?
일단 마력을 사용하는 헌터에 내가 포함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마력이 아니라 마나를 사용하니까.
일단 헌터의 타이틀을 벗어난 존재였기에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내가 모든 던전을 돌아다니며 공략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건 차라리 시스템이 이곳에 강림해서 해치우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네 녀석의 그분이라는 놈은 언제 강림하는데?”
이혁일은 내가 시스템을 낮잡아 부르자 인상을 찌푸리는 것이 보였지만 이내 힘겹게 말을 이었다.
“적어도 2년.”
뭐? 며칠 이런 것도 아니고? 2년이나 걸린다고?
2년 동안 헌터들이 스킬을 사용하지 못하고 던전을 공략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끝이다.
“어떻게 해야 빨리 강림할 수 있어?”
이혁일이 바라던 일을 막는 것이 아니라 도와야 하는 형태가 된 아이러니한 상황에 나는 마음이 불편했지만 녀석의 말대로 이건 우리 둘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니었다.
“하나 있지. 이 스킬을 건 녀석에게 스킬을 해제하라고 하는 수밖에.”
“준서에게? 뭐야, 준서만 깨어나면 되는 일이잖아.”
괜히 걱정했네.
나는 준서를 데리고 내려간 함유리를 생각하며 몸을 돌리려고 했다. 당장 준서을 깨워서 스킬을 해제하라고 하려는 생각이었다.
“네 생각대로 쉬운 일은 아닐 거야. 내가 어떻게든 깨워 보려고 했는데, 그 녀석 안 일어나더라고. 죽일까도 생각했는데 시전자가 죽어도 스킬이 유지되는 것일 수도 있으니 죽이지도 못하겠더군.”
뭐라고? 일어나지 않아?
나는 왜 이혁일이 준서를 죽이지 않고 내버려 두고 이곳으로 왔는지 이유를 알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설마, 준서가 형처럼 영원히 일어나지 않게 되면 어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