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225
226화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 아래(2)
죽었다니, 아니 그러면 얘기를 왜 꺼낸 거야?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백이권을 쳐다봤다. 이권은 특유의 그 서글서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죽어서 만날 수 없다니. 그럼 그 얘기는 왜 꺼낸 건데요?”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었는지 함유리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 하고 있는 대화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내가 말한 이유가 다 있지 않겠어?”
이권은 우리의 반응을 재밌게 보더니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밖으로 나가면서 뒤를 이어 말했다.
“녀석은 죽었지만 그 제자는 죽지 않았거든.”
우리는 미연이와 준서가 잘 있는 것을 확인하고 이권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멀리서 보이는 검은 구름은 여전히 한라산 위에 떠 있었고 천천히 흐르던 기운도 이제는 완전히 멈춘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제자가 살아 있다고요?”
나는 그게 무슨 말이냐며 따지고 싶었지만 이권은 그 구름을 유심히 살펴볼 뿐 쉽게 입을 열지는 않았다.
대체 뭘 하고 싶은 거야?
헌터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내가 모르는 헌터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력 오류에 관한 전문가가 있다는 소리는 이번에 처음 들은 것이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형을 깨우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니지 않아도 됐을지 몰랐다. 게다가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장장 7년을 공사장에서 일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 제자는 어디에 있는 건데요?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요.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상황은 악화될 거라고요.”
구름을 보다가 내가 하는 말에 고개를 홱 돌린 이권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건 이제부터 찾아봐야 해.”
“네?!”
아니 가만히 두고 보니까 이 사람이 지금 장난하자는 건가?
속에서 이권을 향한 분노가 치밀어 올라 주먹이 나가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그도 그럴 게 그 장인은 몇 년 전에 헌터를 그만두고 잠적해 버렸는걸. 센터에서 위치를 계속 추적하고 있어서 생사 여부만 알고 있었어. 죽어버려서 그것도 의미 없어져 버렸지만.”
덤덤하게 말하는 이권을 보고 나는 당황했다.
장난이 아니라 진심이었어?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이권의 말대로라면 제자가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다는 소리였다.
“그럼 제자가 있는지도 모른다는 소리잖아요. 그 제자는 무슨 수로 찾으려고 말하는 거예요?”
이권은 따지는 듯한 내 사나운 말투를 무시하고 그대로 연무장으로 향했다. 자꾸 자리를 이동하는 이권을 보며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저러나 싶었다.
이권은 뻥 뚫려 있는 연무장의 구멍을 보더니 손을 뻗어 흩뿌려져 있던 지저분한 흙과 돌멩이들을 구멍 아래로 쏟아버렸다. 그리고 손가락을 까딱이는 것만으로 울퉁불퉁 튀어나왔던 땅을 평평하게 만들었다.
그 위에는 바위와 금이 간 대리석 바닥을 다시 조각을 맞추어 올리더니 퍼즐 맞추듯이 원상 복귀해 버렸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그래도 내가 저지른 일의 뒤처리는 해야 하지 않겠어?”
자기가 뭔 짓을 한지는 알고 있긴 한가 보네.
나는 백이권의 정상적인 발언에 놀라며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권은 그 이후에도 주변을 계속 돌아다니더니 망가진 곳들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의무실에서 아이들을 돌보다가 이권이 하는 짓을 보게 된 함유리는 목뒤를 잡으며 쓰러지려고 했다.
“이럴 거면 왜 망가트리고 그 지랄을 떤 건데!”
너무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었다. 나 같아도 함유리처럼 목뒤를 잡고 쓰러졌을지도 몰랐다.
“그냥 망가진 채로 둘 수는 없잖아.”
뻔뻔하기 그지없는 이권의 수리 공사가 끝나자 그제야 그는 입을 열어 아까 하던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그 제자를 찾는 데 내가 도와주겠다는 거 아니겠어? 잊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나는 신혈의 백이권이라고?”
당당하고도 허세가 가득한 말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실력과 권력이 그 말을 무시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이혁일 찾기가 끝나니 이제는 이름도 모를 마력 오류 장인의 제자를 찾게 됐네요.”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저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제주도에 갇혀서 앞을 보지 못하고 있는 매화 길드보다는 더 빠르게 일을 처리할 테니까.”
함유리 앞에서 매화 길드를 무시하는 말을 하다니, 누가 미친놈 아니랄까 봐.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함유리가 인상을 쓰며 백이권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지금 뭐라고 했지? 내 부하에게 당해 흙이나 퍼먹은 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말은 잘하는군.”
이권은 멱살을 잡힌 채로 함유리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 부하가 지금 의무실에서 사경을 헤매는 건 모르나 봐? 게다가 틀린 말도 아니잖아? 이혁일을 찾으러 갔던 네 부하들은 지금 전부 어디 있지? 결국 찾아낸 것도 매화가 아닌 한설이잖아.”
함유리는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고 분노까지 사그라든 것은 아니었는지 목과 이마에 핏줄이 섰다. 둘은 까딱하면 원상복구 된 매화 길드를 다시 엉망을 만들 것 같았다.
아니 왜 맨날 이런 역할은 내가 해야 하는 건데?
“이제 그만하시죠! 진짜 다들 정신 차리고 던전 브레이크가 터지기 전에 제자인지 뭔지를 찾자고요! 일단 그 제자가 있는 건 확실한 거죠?”
두 사람을 떼어 놓고 내가 이권을 보고 말하자 이권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깨를 들썩였다.
“내가 말했잖아, 그 제자가 있는지 없는지도 찾아봐야 해.”
아, 망할 백이권!
* * *
펄럭-
인천 끝자락 앞바다의 작은 주택에 살고 있는 서율은 어김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 옥상에 널린 빨래를 걷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바다가 코앞이다 코앞이다 하지만 서율이 살고 있는 곳은 정말로 바닷가의 코앞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문을 열고 나가면 방파제가 보이고 그 옆으로 모래사장이 보였으니까.
모래사장이라고 하면 해변이 있다는 소리였고 해변이 있으면 놀러 오는 여행객으로 사람이 꽉 차 있어야 할 터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겨 아무도 오지 않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그럴 만도 하지, 이곳은 던전이 들끓는 곳이니까.”
서율은 참담한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봤다. 그리고 불길한 기운이 바다 쪽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 시작이군.”
서율은 한숨을 푹 쉬었다. 서율의 한숨과 함께 바다에서는 거대한 던전 게이트가 생성됐다. 게이트가 소환되어 파도가 출렁거렸고 그 충격으로 파도가 해변가를 집어삼켰다.
“하, 이번에는 그래도 B급이네.”
서율은 유심히 던전을 살피더니 등급을 매기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긴 머리카락을 땋아 올려 고정시키고 한 손에는 작살을, 다른 한 손에는 거대한 가위를 들었다.
집 밖으로 나오려다 서율은 신발장 근처에 놓여 있는 사진을 바라봤다. 돌아가신 부모님과 서율, 그리고 서율의 남동생이 함께 찍힌 가족사진이었다.
행복해 보이는 사진 속 인물의 모습을 보며 아련하게 쓸어내린 서율은 이를 악물고 밖으로 나왔다.
“아빠, 다녀올게요.”
서율은 거대한 파도가 그치고 잠잠해진 바다를 바라보며 해변가를 향해 걸어갔다. 익숙하다는 듯이 노란색의 우비를 입고 바다에 발을 디뎠다.
찰랑-.
서율은 익숙하게 바다 위를 걸어갔다. 그리고 곧 던전 게이트 앞에 섰다.
자신의 키보다 몇십 배는 커 보이는 게이트 앞에 서서 서율은 거대한 작살을 던져 던전 겉을 꿰매기 시작했다. 푸른빛과 황금빛이 뒤섞인 밧줄이 던전의 입구에 거미줄처럼 쳐지고 있었다.
일반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마력과 마나가 섞인 희한한 밧줄이었다.
“얼추 된 것 같네.”
서율은 단단히 던전 입구를 꿰매고 나서 마력실을 가위로 싹둑 잘라내 버렸다. 그리고 그대로 다시 바다를 거닐어 원래 있던 해변가로 걸어갔다.
인천 앞바다에 헌터가 오기까지는 꽤나 많은 시간이 걸린다. 서율이 하는 일은 결국 던전을 공략해 줄 헌터가 오지 않으면 시간 벌기용밖에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기에 서율은 이곳에 나타나는 던전의 입구를 잠시나마 봉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사실 이 일은 서율의 아빠가 하던 일이었다. 일반인에 가까웠던 서율은 각성자인 아빠가 하는 일이 신기하고 부러웠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이곳을 떠나고 도심으로 향했을 때는 아빠가 미련하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서율은 이곳에 남은 아빠를 버리고 떠날 수가 없었다. 모두가 욕하고 바보라고 손가락질할 때도 여기 남아 곁을 지켰다.
“이번엔 며칠이나 걸릴까.”
근처에 사람이 살지 않다 보니 헌터가 출동하는 것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어느 때는 던전 브레이크가 터지고도 남을 시간이 되어서야 헌터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너무 오래 걸리면 안 될 텐데. 난 실력이 좋지 않으니까.”
걱정스러운 얼굴로 잠시 던전을 바라보다가 서율은 집으로 향했다.
고요한 집을 상상하고 거대한 작살과 가위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혹시 그쪽이 신원효 씨 자식 되십니까?”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한 곳에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세 명이나.
* * *
우리는 이권을 따라 인천으로 향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신원효라는 남자가 우리가 찾는 마력 오류의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죽은 사람이었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그곳에 홀로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던 특이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흥미가 돋았다.
홀로 그곳에서 무슨 일을 하기 위해 남아 있던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가족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안심이 된 것은 사실이었다.
제자가 없다고 해도 그 가족들이라면 어느 정도 그 방법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식이 있다면 아마 그 자식들이 신원효의 기술을 이어받았을 수도 있는 것이다.
“딸 하나, 아들 하나 있다더군.”
이권은 짧은 시간에 정보를 수집하고서는 우리에게 알려줬다.
“흠, 그렇군요. 그런데….”
투구투구-.
“…잘 안 들려서 그런데 다시 한번 말해주세요!”
빠르게 돌아가는 헬기 팬의 소리가 귀를 아프게 찔러와서 제대로 된 정보를 듣기가 어려웠다.
대체 인천 간다고 헬기를 대동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이게 빠르다니까.”
이권은 내 마음이라도 읽은 것인지 태평하게 말했다. 확실히 이권의 말대로 헬기는 생각보다 더 빨랐고 우리는 얼마 되지 않아 인천 바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말 이런 곳에 혼자 살고 있다고요?”
“서류상으로는 그래.”
혼자 이곳에 살아가기가 쉽지 않을 텐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무렵 멀리 바다 쪽에서 걸어오는 한 인영이 보였다.
헌터인가? 좀… 특이하네.
“잠시만요, 혹시 그쪽이 신원효 씨 가족 되십니까?”
머리를 땋아서 곱게 올린 머리를 한 여자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이쪽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