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240
241화
-소원을 이루고 싶은 사람 (5)
이권은 내 말에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불쌍한 척하던 어린 소년의 가면은 순식간에 벗겨지고 장난스러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뭘 숨기질 못하겠군. 맞아, 이거 다 재밌어서 하는 일이지.”
사람을 죽이는 게 재밌나, 이 사람은?
나는 인상을 팍 쓰며 이권을 이상한 사람 쳐다보듯이 봤다. 그러자 이권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보지 마. 너라면 나를 이해해 줄 줄 알았는데 말이야.”
“무슨 이해요? 재미로 사람을 죽이는 걸요?”
“그렇게 말하니 내가 이상한 사람 같잖아.”
그럼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가?
나는 이권의 빙빙 돌려 말하는 화법에 질려서 짜증 내듯이 말을 했다.
“정확히 그쪽이 원하는 걸 말해요! 이제 그쪽 장단에 맞추는 것도 지겨우니까.”
“과거의 나를 죽여도 현재의 나는 죽지 않아. 내 칭호가 가진 능력이지. 내가 나를 죽이겠다는 게 그렇게 큰 잘못은 아니잖아? 나도 살아야 하는 건 맞기도 하고. 한설군에게 피해 주는 것도 없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 사람의 본심을 아는 이상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진짜로 살고 싶어서 데인을 죽이는 게 아니잖아요. 그랬다면 굳이 당신 아버지까지 공격할 이유는 없었겠죠.”
이권은 내 말을 듣고 한참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그건 내 실수가 맞군. 네 앞에서는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이권은 하늘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너는 너무 강해서 이 모든 것이 지루하다고 느껴본 적 없나?”
“지루하다고요?”
이권 정도로 강하면 좋지 않나? 너무 오랫동안 홀로 강자로 지내면 또 다르려나?
“무슨 일을 해도 채워지지 않고 무료한 기분이야. 절대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지. 그런 인생에 갑자기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사건이 생긴다면 어떨 것 같아?”
이권은 진심으로 기뻐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이권이 재밌어한다는 것은 진심일 것이다.
“살기 위해서는 나를 죽여야 한다는 거, 재밌지 않아? 적이 내 자신이라니!”
이권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이권은 데인을 죽이는 것을 멈추지는 않을 것 같았다.
“별게 다 재밌네요. 그럼 당신 아빠를 죽이려던 건 뭔데요?”
“그건 방해가 될 것 같아서.”
이권의 말을 끝까지 듣고 나서 결심을 하게 됐다. 이 소시오패스를 막아내야겠다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권에게 말했다.
“역시 나는 당신을 막기로 결정했어요.”
이권은 그런 내 결정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방긋 웃었다.
“그럴 것 같았어. 그럼 우린 적인 건가?”
적이라는 말에 움찔거렸다. 미운 정이 든 것인지 아니면 소시오패스라고 해도 같은 편이라 여긴 건지 이상하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지금만큼은 그렇죠.”
“난 적이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한 이권의 기운이 살벌하게 변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도 그에 맞춰 오랜만에 드럼 채를 들었다. 더 익숙한 것은 리코더였지만 내게 남은 리코더는 이권이 준 리코더 뿐이었다. 그걸 이권과 싸우는 데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각오가 됐어?”
아직 완벽히 소미의 마나를 얻지는 못했으나 이권과 맞설 정도는 생각했다. 나도 헌터라 소리 전달자의 스킬들에 제약이 있는 게 조금 걸렸으나 마나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으니 괜찮았다.
마력을 이용해 스킬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스킬이 나가는 원리가 마나를 사용하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보니 스킬을 사용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머나먼 벽처럼 느껴졌던 이권이 코앞까지 다가온 것 같았다.
“각오는 오래전부터 됐어요. 백이권씨, 저랑 싸워보고 싶었다고 했죠?”
우리는 점점 서로를 향해 멀어졌다.
“나도 그래. 당신이랑 오래전부터 싸워보고 싶었어.”
이권의 미소를 보고 나는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기다란 드럼 채가 이권의 품을 파고들었다. 이권과는 처음 싸워보는 것이 아니었기에 어느 정도 패턴을 알고 있었다.
이권은 내 공격을 막아내고 자신의 스킬을 펼쳤다. 다양한 모양의 구름 들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초반부터 구름을 꺼내는 것을 보고 속으로 경악하기는 했지만 이미 겪어본 녀석들이었기에 침착하게 대응했다.
파직-!
가장 나와 가까이 있던 구름에서 번개가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 구름에서 번개가 나올 것을 예상하고 피한 뒤였다.
이권은 내가 피하는 것을 보고 살짝 놀란 눈치였다.
“마치 뭐가 있는지 아는 것 같은 얼굴이군.”
이권의 놀란 표정을 보고 놀란 것은 오히려 나였다. 지금은 청소년쯤의 외모였고 오름과 함께 과거로 돌아가 이권을 만났을 때는 8살쯤 되는 어린애긴 했다. 그래도 한 번 싸웠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다는 것은 이권답지 않았다.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모르는 척한다고 보기에는 그럴 이유가 없었다. 저 표정은 정말 모르기에 나오는 표정이었다. 생각보다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구분하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어. 오히려 다행인 부분이었다. 나는 마음 놓고 이권의 스킬을 피해 다녔다.
뜨거운 불길을 피하고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음을 지나치고 나니 이권의 모습이 코앞에 다가왔다.
“이걸 전부 파악하고 피할 줄이야.”
재밌어하는 이권에게 드럼 채를 휘둘렀다.
“구분구!”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는 마나술 밖에 없었다. 만약 소리 전달자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더 타격이 크겠지만 지금은 사용할 수 없음에 안타까움만 날릴 뿐이었다.
“큭.”
이권이 한 팔로 내 공격을 막아내며 작게 신음을 흘렸다. 기분이 이상했다. 칼에 찔려도 피 한 방울 나지 않고 조금의 흐트러짐도 용서하지 않을 것 같던 이권이 인상을 찌푸리고 작게 고통의 신음을 흘렸다는 것이 말이다.
그만큼 내가 강해졌다는 소리도 될 것이다. 이권이 정비할 시간을 주지 않고 다시 덤벼들려고 할 때였다.
까딱.
이권이 손가락만 까딱거리는 것으로 내 몸이 저 멀리 밀려났다. 이권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마 건물 벽에 나를 처박아버릴 생각이었던 것 같았는데 내가 생각보다 쉽게 밀려주지 않은 모양이었다.
“예전의 내가 아니라고요!”
“그런 것 같군.”
이권은 인상을 찌푸리다가도 금세 밝은 표정이 됐다. 나와 전투를 하는 것이 즐거워 보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지루하고 무료한 일상에 호각으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했다.
“번개로 이용할 수 있는 스킬은 뭐든 꺼내 보시죠?”
나는 이권을 있는 힘껏 도발했다. 물론 이권은 내 의도까지 전부 파악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적당히 도발을 하고 숨겨둔 스킬은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 같은 거였다.
“이미 내가 무슨 스킬을 가지고 있는지 다 안다는 투로군. 과거에 나와 싸워 본 적이 있는 모양이야?”
이권은 눈을 빛내며 내게 말했다.
“기억 못 하면 땡이죠.”
정말 기억 못 하는 건가? 그때도 리코더를 이용해서 싸웠던 걸로 기억하는데.
나는 이상함을 느끼면서도 일단 이권을 이겨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계속해서 드럼 채를 휘둘렀다. 이권은 내 움직임을 읽으며 가볍게 피할 뿐이었다.
“기억이 날 것 같은데 말이야. 뭔가에 싸인 듯이 기억이 잘 안 난단 말이지.”
이권은 내 모습을 잘 살펴보다가 손을 쭉 뻗어 공격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겠어! 지금 당장 한설군과 싸우는 게 즐거우면 된 거겠지!”
내 공격을 모두 피하고 하는 말이라 그런가 재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즐기는데 방어만 하면 온전히 즐길 수 있겠어요?!”
파앗!!
이권이 옆구리를 찌르는 척하다가 나는 자연스럽게 궤도를 바꿔 이권의 머리 쪽으로 드럼 채를 향했다.
이권은 그것도 막을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움직임을 멈춰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콰앙-!!
거대한 굉음이 이권의 머리에서 들려왔다. 나도 진심을 다해 휘두른 것이었기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충분히 피할 수 있었는데 피하지 않았어.
이권의 이마에서 피가 주르륵 흐르는 것이 보였다. 수박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는데도 이권은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혀로 핥고는 씩 웃었다.
“기억났다. 센터에 몰래 숨어들었던 꼬맹이, 맞지?”
그 한마디에 나는 온몸이 소름이 돋아났다.
일부러 맞은 이유가 머리를 맞으면 기억이 날 것 같아서였어? 그보다 진짜 머리 한 대 맞았다고 내가 떠오를 건 뭐람?
질색한 표정을 지으며 드럼 채를 치우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이권이 이마에 흐르는 피를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내고 나에게 훅 가까이 다가왔다.
“그때도 과거로 타임리프 한 상태였구나. 지금이랑 생긴 게 너무 달라서 못 알아봤지, 뭐야?”
비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진심으로 내 모습이 역변해서 못 알아봤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지금이랑 어릴 때랑 다른가?
어쨌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에 나는 드럼 채를 휘두르며 이권과의 거리를 다시 한 번 벌려놨다.
그리고 양손으로 드럼 채를 신중히 잡고 눈을 부릅뜨고 마나술을 사용했다.
“일괴본.”
상태의 약점을 공격해 단번에 무너트리게 하는 기술. 하루에 한 번 밖에 사용하지 못해 사용을 자주 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X등급이 된 이후로 횟수나 쿨타임에 제약이 사라졌기 때문에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됐다.
콰과곽-!
이권의 모습이 순간 흐릿하게 보이며 그 안에 있는 노란 빛이 이권의 약점을 찾기 위해 분주히 떠다녔다.
하지만 약점을 찾던 마나는 갑자기 빛을 잃고 허공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왜 사라진 거지? 이런 적 한 번도 없었는데! 설마….
“약점이 없다는 거야?”
나는 이를 악물고 일괴본을 다시 사용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나는 길을 잃고 약점을 찾아내기는커녕 아무 효력을 내지 못하고 사라졌을 뿐이었다.
“뭐가 잘 안되나 봐?”
퍼억!!
내가 당황하고 있는 사이 이권은 어려진 몸으로 비어있는 왼쪽 옆구리를 발로 냅다 차버렸다. 그대로 날아간 나는 풀숲으로 굴러 들어갔다. 내 키보다 큰 식물들이 꺾여서 생을 마감했다.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마나를 발에 집중시켰다. 이권의 공격 속도가 내 예상보다 더 빨라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마나 덕분인가 봐? 그런데 말하는 대로 이뤄지는 그 사기 스킬을 안 쓰는 걸 보면 마나로 이뤄진 스킬만 쓸 수 있는 거 같고.”
전부 파악 당했다. 이권은 날카로운 눈으로 내 다리를 바라봤다. 발에서는 새의 날개가 생성되어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을 모습이었지만 이권은 그게 보인다는 듯이 말하는 것이었다.
“마치 헤르메스 같군.”
설마 백이권도 마나가 눈에 보이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