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244
245화
-소원을 이루고 싶은 사람 (9)
“너 피부가 그을렸어. 힘들어 보이고. 아버지는 늙고 약한데 구할 만큼의 가치가 있어?”
어린 이권의 말대로였다. 내 피부는 녀석이 일으킨 마력으로 뭉쳐진 불로 장시간 지져지다 보니 온전히 못 막고 피부가 조금 그을렸다.
마나 치유를 처음 사용해 본 거라 미숙한 점도 있었다. 녀석은 그 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대단한 통찰력이었지만 여전히 사람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건 나아지지 않았다.
남이든 피붙이든 상관하지 않고 가치로 사람을 판단하고 나누는 것. 나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녀석이 자신을 구해준 사람에게는 정을 느끼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백이권 너는 그럼 나를 왜 도와주려고 했는데? 나한테 그만큼의 가치가 있어?”
“너는 강하잖아. 그리고 사람을 구해줬고.”
나는 몸을 털어내고 숨을 고른 채 녀석의 앞에 섰다.
“아니, 네 논리대로라면 나도 가치 없는 사람이야.”
“무슨 말이야?”
어린 이권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녀석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약하디약한 E급 헌터로 각성했었어. 운이 좋아서 이 위치까지 오게 됐지. 게다가 사람을 죽인 적도 있어. 아직도 내가 구할 가치가 있는 것 같아?”
이권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손을 움찔대는 것을 보니 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봤자 넌 나한테 안돼, 임마.
녀석이 성인이 된 이권이었다면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하지는 못했겠지만 어린 이권이라면 말이 다르다.
어린 이권도 그것을 깨달았는지 결국 손만 만지작거릴 뿐, 얌전히 손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라봤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해해 볼게. 일단 아버지와 같이 살라는 거지?”
그렇게 말하는 이권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은 것이 느껴졌다.
“무슨 소리야?”
나는 그런 녀석의 머리를 흐트러트리며 이어 말했다.
“널 괴롭게 하는 사람이랑 왜 같이 살아? 너 다른 가족 있지?”
“어? 아마도.”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핸드폰을 들었다.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서였다. 남자는 연기를 너무 마셔서 기절해 있는 상태여서 도망가거나 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구급차도 같이 부르자.’
활활 타오르고 있는 저택을 바라보며 핸드폰을 들었다. 하지만 핸드폰은 먹통이었다.
아, 설마 과거로 왔다고 핸드폰이 안 먹는 거야?
이것까지는 생각 못 한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콜록!”
남자가 기침을 했다. 정신을 차린 건가 싶었는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잠시 기침을 했을 뿐 남자는 눈을 감고 여전히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저러다 죽는 거 아니야?
얼굴을 새카맣고 연기를 많이 마셔 일산화탄소에 중독이 되어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만약 남자가 헌터였다면 별로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마나를 다룰 줄 아는 일반인인 것 같았다.
“사람 살리는 연습을 저 사람에게 하게 될 줄은.”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남자의 몸에 손을 올렸다. 마나 치유는 생각보다 어렵고 복잡한 구성으로 되어 있었다. 아까 급하게 사용한 것은 몸의 재생을 돕기만 하면 되는 거라 생각보다 쉽고 단순했다.
하지만 사람의 생명을 다시 뛰게 하는 일은 어디가 망가졌는지, 그리고 어느 곳을 다시 재생시켜야 하는지 찾아내야 했기에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작업이었다.
마나 오류를 정화하는 거랑은 또 다르네.
마나 정화 같은 경우에는 오류가 난 부분에 깨끗한 마나를 쏟아부으면 되는 일이었다. 섬세하게 돌을 깨부수는 작업이랑 비슷하다고 보면 됐다. 하지만 마나 치유는 결이 조금 달랐다.
다친 곳도 직접 찾아내야 하고 치료법도 달라서 정말 의사라도 된 기분을 느끼게 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남자가 일반인이라는 사실이었다.
마나 오류 때는 헌터였기에 마력을 사용하기 때문인지 인체의 흐름이 또렷하게 잘 보였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그게 없었다. 인체가 흐릿하게 보이니 뭘 하기가 애매했다.
“아버지를 살리려고?”
어린 이권은 내가 마나를 이용해 남자를 치료하려는 것을 알고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말했으나 말리지는 않았다.
“집중 흐트러지니까 나중에 말해. 그리고 전화 가지고 구급차 좀 불러. 아, 경찰도.”
나는 녀석의 질문을 뒤로하고 마나를 가느다랗게 바늘처럼 만들었다. 여기까지는 마나 정화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부터다.
어디가 문제인 거지? 일산화탄소를 들이마셨을 테니까 폐나 머리 쪽에 문제가 생겼을 확률이 높은데. 뭐 정확히 보여야 말이지.
나는 최대한 집중해서 마나로 만든 실과 바늘을 남자의 체내로 들여보내고는 천천히 구석구석 살폈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집중을 하니 좀 나았다.
역시 폐가 문제군.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는 폐를 발견하고 나는 조심스럽게 바늘을 가져다 댔다. 아무 반응도 안 나타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도 약간 불안한 감정이 일어났다.
혹시 실패하면 죽게 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좀 더 신중히 바늘을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가 했던 대로 바늘과 실로 겉에 보이는 상처를 꿰매는 것은 괜찮았다. 하지만 폐같이 장기들이 문제일 때는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골치였다.
구급차가 오기 전까지 버틸 수 있으려나?
바늘이 폐를 질렀다.
“큭!”
낫기는커녕 기절해 있던 남자가 괴로운 신음을 흘렸다.
이게 아닌가?
나는 남자가 바늘과 실로 상처를 꿰매는 것을 흉내 낸 것뿐이었는데 완전히 잘못 생각한 것 같았다.
하긴, 외상도 아니고 폐를 고치는데 바늘과 실이 왜 필요해?
나는 마나를 다시 갈무리하고 형태를 변형시켰다. 연기를 빨아들여 폐를 깨끗이 해야겠다는 상상을 했고 그것은 실체로 나타났다. 청소기 같은 형태의 작은 관이 만들어졌고 나는 폐 곳곳에 쌓인 시커먼 노폐물들을 전부 빨아들였다.
그랬더니 시커멓던 폐는 어느새 점점 깨끗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좋아.”
남자의 폐가 깨끗해지자 괴로운 표정을 지었던 녀석도 고르게 숨을 쉬기 시작했다. 성공이었다.
삐용-삐용-
그리고 타이밍 좋게 구급차의 소리도 들려왔다. 이권이 내 말을 잘 들어준 것 같았다.
턱.
“네 말대로 다 했어. 하지만 여기 있으면 안 돼. 경찰이 오기 전에 도망가자.”
어린 아이의 악력일 텐데도 이권의 힘은 강했다. 왜 이렇게 급히 자리를 뜨려고 하는지 몰라 녀석을 바라보자 이권은 말을 이었다.
“난 사람을 죽인 적이 있어. 그래서 경찰의 눈을 피해 이곳으로 숨은 거야.”
이권이라면 그럴듯하다고 생각이 들어 놀라지는 않았다. 이권은 나를 이끌고 불타고 재가 되어버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런 곳에 숨어봤자 금방 들킬 텐데?”
이권은 그런 내 말에도 말없이 지하로 향했다. 그리고 그 지하실에서 책상을 열심히 뒤지는 게 아닌가.
“여기 있을 텐데, 어디 갔지?”
뭔갈 열심히 찾는 이권을 보며 나는 그 책상 위에 놓여있던 물건을 떠올렸다. 마나가 담긴 것같이 금색으로 빛나던 구슬을 말이다.
“이거 찾는 거야?”
“뭐야, 그걸 네가 왜 가지고 있어?”
살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던 이권은 구슬을 가져가 지하실의 숨겨진 문을 열었다.
“이런 곳이 있었네?”
“아버지가 방심하고 있을 때마다 몰래 만들어놓은 거야. 이 구슬도 마찬가지고. 언젠가 탈출할 때를 위해서. 이 구슬을 가지고 있으면 마나가 차단되는 것을 막아주거든.”
어쩐지 마나를 사용할 수 있더라니. 그런데 이걸 어떻게 다 알고 있는 거지, 이 녀석은?
마나를 담은 눈빛이 어린 이권의 몸을 살폈다.
역시, 아직 이권은 각성을 하지 않은 상태야.
그런데도 불구하고 스킬을 사용했고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설마 마나 만으로 그런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건가?
탁.
“다 왔어. 이제 장소를 이동할 거야.”
이권은 한참 지하의 복도를 달리다가 거대한 벽 앞에 멈춰 섰다. 이권은 벽 앞에서 구슬을 깨트렸다. 그러자 구슬 안에서 거대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하더니 눈 깜짝할 새에 주변 풍경이 바뀌었다.
“이거 어떻게 한 거야?”
나처럼 마나 문을 만들어 과거와 현재를 드나든 것도 아니었다. 순간이동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이동한 장소는,
“…여긴 매화나무?”
매화나무가 피어 있는 동굴 안이었다.
“설마 여기로 오게 됐을 줄은.”
나는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이권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이동한 거야?”
“아니. 순간이동을 할 때 정확한 장소는 특정하지 못해. 내가 여기에 오고 싶다고 올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럼 자기도 모르는 곳으로 왔다는 건데, 이런 우연이 있을 수가 있나?
나는 매화나무를 살폈다. 신원효가 만들었다던 그 매화나무와 똑같이 생긴 나무가 맞았다. 대신 나무는 크기가 조금 더 작았으며 땅을 파놨던 흔적도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나는 언제가 현재의 백이권이 말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이 찾고 있는 사람이 매화나무 아래에 뭔가를 두고 갔다고. 그걸 찾으러 매화 길드에 온 거라고 말이다.
이로써 의심만 가득했던 의문이 풀렸다. 나는 이 과거에서 이권에게 각성을 시켜주고 땅에 아파트 카드키를 숨겨두고 현실로 돌아온 ‘이권이 찾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의심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 나일 줄은 몰랐는데.
내가 왜 이 과거로 왔는지,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았다. 저번 과거로 돌아갔을 때도 목적은 똑같았다. 과거의 사람을 ‘각성’시키는 것.
그게 내가 관리자로서 해야 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소미가 말했을 때는 어떻게 각성시킨다는 소린지 감이 잘 안 왔는데 이제는 정확히 알게 됐다.
나는 이권을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널 각성시켜줄게.”
“뭐?”
이권은 무슨 소리냐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각성이라는 개념이 아직 확립되지 않을 시기이기도 했지만 나 같은 어린애가 어떻게 각성시켜 주겠냐는 의미도 담겨있을 것이다.
“네가 바라기만 한다면 널 각성시킬 힘이 나에게 있어. 각성해서 강해지고 싶지? 각성하게 되면 다시는 너네 아버지가 널 학대했던 것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이권은 내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그 작은 입을 벌려 나를 보고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그래, 이 나이대 아이들은 각성이 좋은 거라고 생각할 테니까 당연히 각성시켜 달라고 하겠….
“싫어.”
“그래 각성… 뭐라고? 지금 뭐라 했어?”
나는 내가 잘 못 들은 거라 생각하며 이권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러자 이권은 살갑게 웃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한번 확인사살을 시도했다.
“각성하기 싫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