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245
246화
-마지막 장을 향해 (1)
각성을 하기 싫다고? 세상에 각성하기 싫다는 사람은 또 처음 보네.
이권은 각성을 빨리 한 것으로 유명한 헌터였다. 그러니까 각성하면 했지 안 하지는 않는다는 얘기였다.
“왜 각성하기 싫다는 건데?”
이권은 맑은 얼굴로 나를 보고 말했다.
“왜 각성해야 하는데? 그거 하면 뭐가 좋은데?”
“뭐가 좋냐니… 돈도 많이 벌 수 있고.”
“나 돈 많아. 아버지가 죽어서 이제 전부 내 게 됐지.”
돈이 많다는 이권의 말에 각성해서 좋은 점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목숨 걸고 싸우는 것도 다 돈 때문에 하는 일이었으니까. 적어도 나는 말이다.
“음, 강한 몬스터와 싸울 수 있어.”
나는 강한 놈과 싸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냥 되는대로 말해버렸다.
난 바보인가? 제정신이 아닌 이상 이런 걸로 각성하겠다고 할 리가.
“그건 좀 구미가 당기네.”
맞다, 백이권은 정신이 나간 놈이었지?
이권이 강한 놈과 싸울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하는 것을 보고 나는 신나게 이권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녀석을 각성시키는 것이 아마 소미가 바라는 일일 테니까 말이다.
“그래! 각성을 하게 되면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생기게 되는데 거기 들어가면 강한 몬스터들과 눈치보지 않고 싸울 수 있어!”
이권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무 근처를 슥 둘러보고는 다시 내 앞에 섰다.
“근데 네가 무슨 수로 나를 각성시킨다는 거야? 좀 특이하다는 건 알겠지만 헌터를 각성시켜주는 헌터라고? 들어본 적도 없어.”
이권의 눈에는 이채가 서렸다. 나를 정말로 믿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떠보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았지만 이권이 각성하기 싫은 게 아닌 것 같다는 것만은 알 것 같았다. 정말로 싫었다면 나를 떠보는 짓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
“세상에는 아주 다양한 스킬과 직업이 있어.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고서라도 나는 좀 특별한 존재이긴 해.”
나는 그렇게 말한 뒤 근처에 있던 돌멩이 하나를 들어 올려 마나 핵에 마나를 주입했다. 그러자 돌멩이에서 빛이 나더니 살아 숨 쉬는 것처럼 공중에 둥실 떠올랐다.
“나는 생명을 되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어. 각성자라서가 아니라 내가 관리자의 후계자라서야.”
이권에게 이런 말까지 해도 될까 걱정이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안 하면 계속 의심만 하다가 현재로 돌아갈 것 같은 느낌에 솔직해지기로 했다.
“관리자? 그게 뭔데?”
“세계를 관리하는 관리자. 뭐 나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후계의 길을 걷고 있지.”
“관리자의 후계께서 왜 인간을 각성시키려고 하는 거지?”
이권의 말투는 조금 비아냥이 섞여 있었다. 갑자기 세계니 뭐니 하는 말을 하면서 내가 신과 같은 존재라고 하니까 안 와닿는 느낌이라 그런 것 같았다.
그래도 뭐 어쩌겠어, 이게 진실인데.
“그래서, 각성은 필요 없다고?”
나는 반쯤 도발하는 마음으로 이권에게 말했다. 그러자 잠깐 고민하는 듯싶더니 이권은 손을 쑥 내밀었다.
“밑져야 본전이고 관리자인지 아닌지는 나와 상관없는 얘기니까.”
결국 손을 내민 이권은 떠보기가 끝났다는 듯이 해맑은 표정을 지으면서 웃었다. 어째 당했다는 기분이 들기보다는 이권이라서 이런 식으로 나오는구나 싶은 마음이었다.
물론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각성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다가 아니야. 직접 경험해봐서 아는데 꽤 아플 거거든.”
나는 이권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그 이상 자세히 알려주지는 않았다. 말로 열심히 떠들어봐야 직접 겪는 것보다 덜할 테니까.
이권은 상관없다는 듯이 손을 맞잡았다.
“아픈 건 잘 참아. 항상 해오던 거니까.”
그 말에 나는 잠시 이권에게 동정심이 가기도 했다. 하지만 곧바로 이권이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엄마를 해치고 자기 아빠까지 죽이려던 인간인 것을 떠올렸다.
동정심 가질 놈에게 가져야지.
각성시키는 스킬은 마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장 할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매화나무의 영향인지 아니면 과거이기에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건지 스킬이 돌아와 있었다.
‘어쩌면 소미가 각성을 위해 손을 써준 걸 수도 있겠다.’
“인간작곡, 대상은 백이권.”
나는 허공에 대고 스킬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맞잡은 손이 살짝 떨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를 악문 것 같은 이권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게, 쓰러지지도 비명을 내지르지도 않았다.
훨씬 어린 나이였다. 이권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정말로 그 고통을 전부 감내하고 참아냈다. 고통이 익숙한 것처럼 보였다.
이권은 그럼에도 씩 웃어 보였다. 그 모습이 미래의 이권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이권이 말했던 희생양이라는 칭호는 뭘까? 희생양이라는 단어는 이권과 너무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정말 각성이 됐네?”
“너 정말 잘 참는다.”
이권은 각성한 것이 신기한지 이것저것 시험해 보고 있었다. 손을 까딱하는 것만으로 물건을 옮기고 빛이 번쩍 나왔다. 아마 이권은 S급으로 각성한 것이 분명할 텐데도 조금 신기해할 뿐 당연하다는 듯이 각성을 받아들였다.
기뻐하는 이권을 보며 나는 어느 순간부터 시스템창이 뜨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거로 왔기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현재에 있을 때도 종종 시스템창이 뜨지 않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권이 각성한 순간 확실해졌다.
원래라면 떴어야 할 이권의 각성 성공 여부와 상대의 각성 정보를 볼 수 있는 창이 뜨지 않는 것이다. 대신 나는 이권이 각성한 사실을 머리로 깨달았다. 그리고 이권이 어떤 스킬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전부 알 수가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소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결국 시스템을 관리하고 지배하는 것도 결국 관리자의 역할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이권을 각성시킴으로써 시스템의 영역에서 벗어난 것이다.
“정말 인간이 아니게 된 것 같은 기분이네.”
나는 내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인간이 아니었어?”
이권은 그새 내 말을 주워듣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아파트 카드키를 꺼냈다. 이권은 보지 못하게 땅을 파고 아주 작게 자란 매화나무의 가지를 조금 꺾었다. 그리고 그 나뭇가지의 모양을 변형시켰다. 소리 전달로 물질을 변환시킨 거였다.
마력이 없어도 생각만으로 나는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다.
“지금 뭐한 거야? 나무가 상자로 변했잖아?”
놀란 것 같은 이권의 말에 나는 대답하지 않고 상자 안에 아파트 키를 넣은 뒤에 다시 흙을 덮어 잘 묻어 뒀다.
“난 곧 돌아가야 해. 언젠가 나를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소원을 들어주는 매화나무 아래에 방금 묻은 상자를 찾아. 네가 궁금해하는 것들을 어느 정도 해결해 줄 테니까.”
“바로 가는 거야? 나를 각성시키고? 뭔가 허무해.”
이권의 말대로였다. 나는 이권을 각성시켜 준 것 말고는 이 과거에서 한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건 이권의 입장에서 그런 것이지 내 입장에서는 아니었다.
“허무해? 살면서 허무할 것도 많다, 아직 많이 살아본 것도 아니면서. 허무해지면 날 찾아와. 그럼 허무하지 않게 해줄게.”
“싸우게 해준다는 거야?”
“넌 싸우는 것밖에 모르냐? 어떻게 돼먹은 사고방식이야? 뭐, 싸우는 거든 아니면 다른 거든. 심심하지는 않을걸?”
나는 그렇게 말하고 이권의 손을 다시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장소를 바꿨다. 순간이동을 한 것이다. 관리자가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나는 인간이 생각한 거의 모든 것들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마나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관리자의 후계라는 칭호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여기는 어디야?”
“넌 백이권이니까 혼자서도 잘 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잠깐 했는데 그래도 몸을 의지할 데는 있어야 하는 거니까, 인간이라면.”
내가 이권을 데리고 온 곳은 이권의 친척이 있는 곳이었다. 이권을 그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나는 마나 문을 만들어냈다.
돌아갈 시간이었다.
“잘살아라. 너무 재수 없게 자라지는 말고.”
이권은 나를 붙잡으려는 것처럼 손을 뻗었지만 그 전에 나는 문을 통과했다. 그렇게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그것도 바다 한가운데로 말이다.
“으앗! 차가워!”
마나 문을 열자마자 바다에 빠진 꼴이 되다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한설아!!!”
내가 물에 젖은 옷을 짜내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때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며 다가오는 남자가 있었다. 형이었다.
“너 괜찮은 거야?!”
기겁을 하며 내 곳곳을 살피던 형에게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 괜찮아. 그나저나 몬스터는?”
“그거야 이미 다 처리했지.”
형의 말대로 주변은 아주 깨끗했다. 몬스터뿐만이 아니라 바다까지도 말이다.
“형이 전부 한 거구나?”
“그래, 정화는 내 특기잖아. 전부 끝냈지. 근데 너는 어디 있었던 거야? 던전에 들어가더니 깜깜 무소식이다가 백이권만 혼자 튕겨져 나왔어.”
“백이권은 어디로 갔는데?”
형은 멀리 한곳을 가리켰다. 그곳은 마력 구름이 생성되어 있는 곳이었다. 이권이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가장 사건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달려간 것은 확실했다.
그리고 나도 바다에서 빠져나와 형과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너도 저기로 가는 거야? 대체 저게 뭔데 그래?”
“모든 것을 끝내러 가는 거야.”
나는 형이 알아듣지 못할 만한 말을 던지고 제주도 상공에 떠 있는 마력 구름을 향해 날아올랐다. 뭐가 됐든 던전 브레이크는 계속 터져나가고 있었고 저 마력 구름을 어쩌지 못한다면 끝도 없이 계속 될 것이다.
나는 어쩐지 이번 전투가 큰 마무리를 지어 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험한 건 아니지? 난 네가 위험한 건 더는 못 봐.”
형의 말에 나는 심장 한쪽이 따끔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지금 저곳으로 가는 게 위험하면 위험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막 침대에서 일어나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형에게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응, 걱정 마. 나 E급 헌터야.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그냥 조금 도움만 주고 멀리서 백이권이 하는 거 구경이나 할 거야.”
그 말을 온전히 믿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우리는 제주도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