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248
249화
-마지막 장을 향해 (4)
“긴급 속보입니다. 던전 브레이크가 잠잠해진 가운데 갑자기 한라산에 거대 게이트가 생성되었습니다.”
헬기를 타고 있는 기자는 창문 밖을 내다보면서 상황을 전하고 있었다. 제주도 상공에 떠 있는 수상한 구름의 정체를 보도하기 위해 온 것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라산 아래에 생성된 거대 게이트를 발견하고 기사 내용을 급하게 바꾼 것이었다.
잘 다린 양복을 입고 깔끔하게 넘긴 머리를 보는 것이 하루 루틴이었던 기자는 최근 들어 그 루틴을 지켜본 적이 없었다. 헌터들의 스킬이 사라지고 던전 브레이크가 끊임없이 일어나게 되고부터는 퇴근이 없는 삶의 연속이었다.
깔끔하고 항상 향기가 나던 양복은 구겨지고 냄새가 났다. 깔끔하던 머리는 부스스해지고 수염이 올라온 얼굴은 언제 깎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만큼 일이 바빠졌다는 증거였다. 그럼에도 기자는 불만이 없었다. 불만이 있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루에도 수십 명씩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위험지역을 알려 한 명이라도 목숨을 구하는 것. 그것을 위해서라면 몇 달을 못 씻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계속 이어졌던 던전 브레이크가 무슨 일인지 멈추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원인이라고 여겨졌던 제주도 상공에 헬기를 띄웠다.
검은 구름은 여전했지만 기자는 기사를 보도하던 중 생성된 또 다른 게이트에 식은땀을 흘렸다. 언제나 냉정히 사실만을 전하던 기자는 감정을 내비치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또 다른 던전 브레이크는 아닐까요?”
그렇게 말을 전하는 순간 던전 게이트 안에서는 악마의 형태를 한 험악한 인상의 마족들이 끊임없이 소환되었다.
“아아, 몬스터입니다. 그것도 수백, 아니 수천 마리는 족히 넘는 몬스터입니다….”
말끝을 흐리던 기자는 절망스러운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목소리를 떨었다. 누구든 소환된 마족들을 본 순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 세상의 끝이 도래했다고.
* * *
센터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안 그래도 던전 브레이크 때문에 정신이 없는데 갑자기 울린 사이렌 소리 때문이었다.
지완이 센터장을 그만두고 새롭게 센터장이 된 위구안은 왜 이런 시기에 자신이 센터장이 된 것인지 한탄을 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높은 등급의 던전이 등장했을 때만 울리는 사이렌은 최근 들어 꽤 자주 들을 수 있는 소리가 되어 버렸다. 이제는 그 사이렌 소리에 익숙할 때도 됐다고 생각했는데 잊을 만하면 울리는 사이렌 소리는 익숙해지려야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야, 위구안!! 제주도에 또 새로운 던전 게이트 열렸다!!”
위구안이 센터장이 되면서 센터 보좌관이 된 박추환은 홀로그램실에 도착한 구안을 보고 심각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댔다.
“조용히 좀 해. 안 그래도 요즘 사이렌 소리 때문에 귀먹겠어. 이번에는 또 뭔데?”
“지금 네 귀 문제가 아니야! 이것 좀 봐!”
구안은 홀로그램으로 떠 있는 제주도의 전체 모습을 확인했다. 그리고 한라산 근처에 떠 있는 거대한 던전 게이트를 보고 그 자리에서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사상 초유의 S급 던전 게이트였다.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더 높은 등급의 던전일지도 몰랐다. 만약 이런 던전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온다면 한국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뉴스 나온다!”
수많은 화면들 중 가장 큰 화면에 뉴스가 띄워졌다. 그리고 그 던전의 실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던전 게이트와는 기운이나 색이 조금 달랐지만 던전 게이트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게이트 안에서 수많은 마족들이 쏟아져 나왔다.
“뭐?! 던전 브레이크가 벌써 일어난다고?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위구안은 경악을 하며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마족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한두 마리가 빠져나왔을 때는 그나마 빠르게 인력을 투입해서 해치우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뒤이어 줄줄이 나오는 마족의 숫자가 천을 훌쩍 넘어갈 때 위구안은 깨달았다.
오늘 한국은 망할 거라는 것을.
* * *
“아니 얌전히 안에 있으라니까.”
나는 눈이 돌아간 마족들을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시스템은 잠시 이권에게 맡겨두고 지상으로 내려갔다. 주변에 헬기와 헌터들이 많이 깔려있기 때문에 아는 척하게 되면 곤란해질 것을 알고 있었지만 녀석들을 그냥 내버려두면 더 큰 사고를 칠 것 같았다.
“배고프다!! 여기 있는 생물들을 산채로 뜯어먹어 주마!!”
수천 명 정도 되는 마족들이 일제히 소리를 외치니 한라산이 진동할 정도로 엄청난 함성이 되었다.
“아오, 시끄러워. 다 같이 모여 있으니까 진짜 시끄럽네. 언제는 전쟁이니 뭐니 하던 녀석들이.”
비밀 던전에서의 시간은 하루도 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치는 녀석들이 곱게 보이지는 않았다.
“차오름은 어디 있지?”
한꺼번에 많은 마족들이 빠져나와 오름의 모습을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오름의 모습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족들의 맨 앞에 서서 마족들이 어깨에 올라타고 있는 장대한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거 차오름 맞아?”
차오름은 팔짱을 끼고 화난 모습으로 서 있었고 오름에게 어깨를 내어준 마족들의 얼굴은 어째 다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자! 가자! 먹을 걸 찾으러!! 그리고 우리를 가둔 한설에게 복수를 하는 거다!!”
“우워어어!!”
오름은 가장 앞에서 소리치며 이성을 잃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나는 오름에게 날아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너 뭐하냐.”
“헉! 적이다!”
내가 기척도 없이 나타나 어깨에 손을 올리자 깜짝 놀란 오름은 기겁하며 근처에 있던 마족에게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오름 님에게 손 떼라! 이 악마 자식!”
내가 왜 진짜 악마들한테서 악마소리를 들어야 하는 건데?
어이없는 그들의 발언에 코웃음을 쳤지만 오랫동안 방치해서 이 사단을 낸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 차오름 머리 먼저 고치자.
나는 날아오는 놈들의 공격에도 꿈쩍하지 않고 오름을 붙잡았다. 그리고 바로 마나를 집중해 오름의 머리에 꽉 막혀있던 오류들을 깨끗하게 정화시켰다.
오름이 오류가 그리 크지 않았고 아예 새로이 마나 주입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정화는 금방 끝났다. 사실상 닿자마자 끝났다고 봐도 좋을 정도의 시간이었다.
마나를 다루는 것에 조금 더 익숙해진 탓이었다.
“뭐하는…! 어? 어라.”
제정신이 된 것 같은 오름의 반응을 보니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이제 제정신으로 돌아온 거 맞지, 차오름?”
내가 씩 웃어 보이자 차오름은 기겁하던 표정을 싹 지우고 손을 슬며시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나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빡!
“아!”
볼에서 느껴지는 강한 통증에 어리둥절하면서도 신음이 새어 나왔다.
“이게 갑자기 무슨….”
“다시는 마음대로 굴지 마. 이걸로 퉁쳐.”
오름은 무엇을 마음대로 굴었다는 건지 정확히 얘기해 주지 않았지만 나는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오름에 한해서는 마음대로 굴었던 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각성시켜 주고… 살려줘서 고마워.”
오름은 그렇게 말하고 마족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얘들아 잠깐! 공격 멈춰.”
오름이 손을 들고 말하자 마족들은 순식간에 얌전해졌다.
아니 던전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얘들이 이렇게 차오름 말을 잘 듣게 된 거지?
한때 구원자의 역할을 맡은 적이 있어서 그런가 싶었다. 내가 오름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소미가 오름에게 다가와 오름의 머리 위에 올라탔다.
“마족들을 말 하나로 통솔하다니, 역시 재능이 있는 아이구나. 그래도 전할 것은 전해야지.”
소미는 오름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소미의 몸 안에 있던 마나를 넘기는 것이 보였다. 이번에도 이권과 같이 소미가 오름에게 넘겨줬던 후계자의 진정한 능력을 깨워주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름의 머리 위에는 후광이 비치는 것처럼 환한 금색의 빛이 뜨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뭔가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너에게 넘겨준 후계자로서의 권능은 지혜야. 말로 네가 생각하는 무엇이든 이뤄내고 시스템이나 모든 세상의 지식을 얻을 수 있어.”
와 이권에 이어서 오름까지 이런 능력을 얻게 됐다고?
나는 조금 녀석들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렇단 말이지? 내가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마족들이 배부르게 해줘.”
오름이 그렇게 말하자 주변에서 배고픔을 느끼던 마족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라, 뭔갈 먹지 않았는데 왜 배가 부른 것 같지?”
“고기를 잔뜩 먹은 것 같은 기분이군!”
오름은 마족들의 반응을 보고 신기해했다. 녀석들과 언제 친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가장 먼저 이루고자 했던 소원이 마족들 배 채우기라니, 뭔가 자기 자신만을 소중히 하던 오름에게서 볼 수 없었던 모습이라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나는 계속 소미가 말하던 ‘공간’이니 ‘지혜’니 하는 단어들이 어딘가 걸린다는 것을 깨닫고 소미를 돌아봤다.
“이권은 공간이고, 오름이 지혜면 나머지 흙과 소리도 있는 거지?”
소미는 오름을 지켜보고 있다가 내가 하는 질문에 몸을 빙글 돌려 바라봤다. 그리고 둥실 떠다니는 몸을 나에게로 가까이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시스템과 싸우기 위해서는 혼자서 싸울 수 없어. 나머지 흙의 권능은 원래 생각해 둔 아이가 있었어. 하지만 글쎄 그 아이보다 더 눈에 띄는 아이가 나타나서 말이지.”
소미의 말을 들으며 나는 내가 맨 처음 각성했을 때 갔었던 던전이 떠올랐다. 그곳에 세워져 있던 비석들의 문구와 단어가 소미가 말하던 것과 닮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굳이 따지자면 나도 소미의 후계라고 했고 남은 것이 흙과 소리뿐이었으니 소리 전달자인 내가 ‘소리’의 권능을 받는 것일 터였다.
“흙의 권능을 가지게 되는 건 누군데? S급들 중에 한 명인 거지? 함유리씨? 아니면 이한대인가.”
그러다 문득 직업과 후계자의 권능은 서로 조금씩 관련이 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도 잘 아는 사람이야. 그보다 네가 가장 처음 각성시킨 존재이기도 하니까 잘 알 수밖에 없겠지.”
내가 가장 처음 각성시킨 존재라면 신애 님인데 내가 착각한 건가?
“설아!”
내 머릿속에 누군가가 떠오르자마자 들리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을 확인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했던가, 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사람이 그곳에 서 있었다.
“그럼 마지막 남은 후계자는 신애님 이라고?”
“아니, 설아. 잘 기억해 봐. 네가 맨 처음 각성시킨 사람이 누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