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25
26화
-백이권을 조심하세요 (1)
* * *
“한설 군은 특이하단 말이야.”
“무슨 의미인가요? 그나저나 왜 이렇게 몬스터가 없지?”
이권이 빤히 쳐다보며 말하는 것을 살며시 무시하고 질문을 질문으로 되받아쳤다.
“그러게 말이야. 나도 궁금하네.”
실실 웃으며 말하는 것에 조금 짜증이 일었지만 티 내지 않고 얌전히 던전 안을 걸어 다녔다.
“근데 이 던전 C급 맞죠? 설마 E급 헌터를 데리고 높은 등급에 데려왔을 리는 없고.”
“뭐…. 그렇지?”
이권은 질문에 애매하게 대답하며 뒤를 따라왔다.
저 애매한 대답은 뭐야? 불안하게.
태도가 애매한 이권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몬스터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간간히 나오는 몬스터도 이권이 한 방에 족족 처리해 버리니 골치가 아팠다.
불행 중 다행이라 하면 이권이 버프나 디버프를 걸 시간을 준다는 것 정도?
반쯤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권은 내가 공격 스킬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을 하고 있었다.
악기 공격 써보고 싶은데.
그래도 경험치는 쑥쑥 잘 오르고 있으니 굳이 공격 스킬이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는 쪽이 좋을지도 몰랐다.
스킬을 전부 내보이는 것은 약점을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지속 던전이라는 건 확실하죠?”
어제, 이권이 던전에 같이 들어가자고 했을 때 요구했던 조건이 있었다.
바로 공략할 던전을 지속 던전으로 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지속 던전에 숨겨진 보스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른 헌터들은 지속 던전 안에 보스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 나만 아는 메리트를 그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지속 던전의 모든 비밀 보스들을 공략해 버리고 싶었다.
“그건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지.”
그거면 됐다.
던전 등급에 대해 확실히 해주지 않은 것이 신경 쓰였지만, 이권도 생각이 있으면 C급 던전으로 가져왔을 것이다.
그것보다 지속 던전에 숨겨진 또 다른 던전을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신애 님도 부를 걸 그랬어요.”
지난번에 자신도 불러 달라고 했던 신애가 떠올랐다. 사람이 많은 쪽이 숨겨진 던전을 찾는 데 수월했을 터였다.
“같이해도 상관없지만 내가 지금 중요한 실험을 하고 있어서 말이야.”
던전을 들어가기 전 혹시나 해서 신애를 부르려는 시도는 해봤었다.
하지만 딱 저렇게 말하고는 단호히 거절하던 이권 때문에 시도는 무산되었다.
“대체 그 실험이 뭔데요?”
시큰둥하게 질문하자 이권은 빙긋 웃었다.
“궁금해도 말 안 해줘.”
“그러시겠죠.”
무심히 툭 나간 말에 눈동자를 굴려 이권의 눈치를 봤다.
기분이 나쁘다고 다짜고짜 공격할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권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대화를 나눠본 결과, 이권은 본인이 정한 선만 넘지 않으면 적당히 까불어도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었다.
조금 편해진 마음으로 이권과의 대화를 이어 나갔다.
“신애 님이 꼭 불러 달라고 했는데.”
“다음에 더 좋은 던전을 가지고 오지.”
저렇게까지 말하니 더 이상 신애를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신애를 계속 들먹인 것도 다음 지속 던전 공략을 강제로 잡기 위함이었으니까.
공격 스킬을 못 쓰는 것은 조금 아쉬웠지만, 인원 제한 없이 현재 등급보다 높은 던전을 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었다.
게다가 지속 던전 안의 숨겨진 던전을 찾으면 또 다른 혜택을 볼 수도 있었다.
여러모로 좋은 조건이었으니 불만을 가질 수 없었다.
이권은 바쁘신 몸이었으니 뽑아먹을 수 있을 때 제대로 뽑아먹는 게 좋았다.
“근데 진짜 몬스터가 안 나오네요. S급 헌터가 있어서 쫄았나?”
몇십 분째 몬스터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이쯤 되면 문제가 있는 거였다.
나름대로 그럴듯한 이유를 생각해 봤으나 그런 것까지 따질 수 있는 지능이 높은 몬스터가 나올 등급이 아니었다.
이권의 손짓 하나에 바스러지는 몬스터들이라 E급 던전을 돌 때보다 더 긴장감이 덜했다.
게다가 몬스터도 어쩌다 한 번씩 간헐적으로 등장하니 정말 산책하러 나온 기분이었다.
크륵-
“엇 몬스터…!”
오래간만에 나온 몬스터에 습관적으로 리코더를 단단히 쥐었다.
그러자 이권이 곁눈질로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 시선을 눈치채고 바로 몽둥이처럼 쥐고 있던 리코더를 입으로 가져다 댔다.
그래, 버프나 줘서 경험치나 열심히 얻자.
어차피 진짜 목적은 숨은 던전과 보스 찾기였다.
악기 공격으로 직접 처치하는 게 경험치를 더 받겠지만 버프, 디버프를 주는 것만으로도 E급 던전을 도는 것보다 더 많은 경험치를 얻고 있는 중이었다.
디버프를 거는 리코더의 연주가 끝나자마자 이권은 미련 없이 몬스터를 두 동강 내 버렸다.
그래도 역시 아쉬운 건 아쉬운 거였다.
“뭔가 아쉬워하는 표정인데, 몬스터에게 동정심이라도 가지는 건가?”
이권이 찡그린 표정을 보더니 말했다.
표정에서 아쉬운 마음이 드러난 모양이었다. 아쉬워하는 것은 맞았으나 몬스터에게 동정심을 가진 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래도 오해한 김에 슬쩍 제안해 봤다.
“저희 따로 다니는 건 어떨까요? 제가 감수성이 좀 풍부해서 잔인하게 죽이는 모습을 지켜보기가 힘드네요.”
이권과 떨어져 숨겨진 던전도 찾고 혼자 공략까지 해 버릴 생각에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것을 막느라 힘들었다.
“몬스터도 못 죽이면서 따로 다니자고?”
이권의 일침에 할 말이 없어졌다.
이권의 입장에서는 어이없는 제안처럼 느껴질 것이다.
공격 스킬을 그냥 밝혀 버릴까하는 생각이 스쳤다.
만약 이권이 나를 길드에 끌어들이고 싶은 거라면 공격 스킬이 있다는 사실을 떠벌리고 다닐 정도로 경솔한 행동을 하진 않을 것이다.
“아님 서포터지만 공격 스킬이라도 있는 모양이지?”
이권의 눈빛이 먹잇감을 노리고 있는 짐승처럼 빛났다.
먼저 밝히기도 전에 정곡을 찔려 버리자 말문이 턱 막혔다.
역시 S급이라는 걸까.
어차피 말하려던 거, 시원하게 밝히기로 했다.
“맞아요. 솔직히 말하자면 혼자서 다녀도 상관없을 정도입니다.”
“끝까지 숨길 줄 알았는데 순순히 밝히네?”
의외라는 듯 놀란 표정을 지어내는 이권을 보고 덤덤히 대꾸했다.
“이러다가는 기껏 던전에 들어왔는데 몬스터 한 마리 못 잡아 보고 끝날 것 같아서요.”
“하하, 딜까지 가능한 바드라…. 경계해야 할 정도인데.”
말을 마친 이권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변했다. 살을 에는 듯한 섬뜩한 기운이 감돌았다. 싸늘한 눈빛에 본능적으로 리코더에 손이 갔다.
뭐야, 갑자기 웬 살기를 띄워? 내가 뭘 어쨌다고?
침을 꿀꺽 삼키며 경계를 하자, 이권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살기를 지우고 호쾌하게 웃어댔다.
“하하하! 너무 겁먹은 거 아닌가? E급 헌터를 죽여서 뭐 득 될 게 있다고.”
어깨를 퍽퍽 치며 웃어대는 이권의 손길이 꽤 매서웠다.
장난이었나?
장난치고는 살벌했다.
그렇지만 지난번에 길드원에게 했던 것처럼 아프게 어깨를 쳐대며 웃는 이권의 표정은 천진난만하기만 했다.
그냥 날 떠보려고 살기를 띄운 쪽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따로 다니는 건 어렵겠고, 대신 내가 서포터 역할을 자처하지. 어때?”
인심 썼다는 듯이 턱을 한 번 쓸어대다 웃어 보인 이권을 보며 싫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못 했다고 하는 편이 더 옳았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하시겠다고요?”
이권은 두 손을 들었다가 양손을 주머니에 넣어 버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완전히 마음이 놓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권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저번에 만났던 사기꾼 파티처럼 거짓말을 칠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이권의 말대로 하지 않으면 아까와 같은 살기를 내뿜을 것 같아서 쫄았다.
킁킁-!
이권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자마자 어디선가 몬스터 무리가 나타났다.
이제껏 보이지 않던 몬스터들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바라던 바였기에 리코더를 강하게 쥐었다.
진짜 나에게 전부 맡길 셈인가?
의심이 가서 뒤를 슬쩍 돌아보자 이권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걱정 마. 손 하나 까딱 안 할 거니까.”
이권이 먼저 저렇게 나와 준다면 땡큐였다.
몬스터도 해치우고 빨리 숨겨진 던전도 탐색해야지.
D급의 최대 레벨은 10이었다. 현재 내 레벨이 8이었으니 레벨을 2개만 더 올리면 다시 각성할 수 있게 된다.
갑자기 의욕이 솟아올랐다.
앞에서 알짱거리고 있는 몬스터들을 보니 이제까지 등장했던 몬스터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턱까지 길게 뻗어 있는 송곳니와 질척거리는 진흙처럼 생긴 팔과 몸통이 인상적이었고 눈과 코는 마치 두더지를 연상시키는 모양이었다.
킁킁-!
킁킁대며 느릿하게 다가오는 몬스터를 보며 금방 해치우겠다 싶어 재빠르게 다가갔다.
“아, 한설 군. 그렇게 가까이 다가가면….”
뒤에서 중얼거리듯 말리는 이권의 말이 들려왔지만 그 말을 듣기 전에 몸은 이미 몬스터의 무리로 날아간 후였다.
순간 몬스터가 씩 웃는 것이 보였다. 이권의 말이 스쳐 지나가면서 재빠르게 움직였던 몸을 중간에 멈추며 땅에 발을 디뎠다.
푸욱.
그런데 땅이 흐물거리더니 푹 아래로 꺼지며 발이 빠져 버렸다.
“엇!”
당황스러움을 숨기며 깊이 빠져 버린 다리를 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발버둥 칠수록 다리는 늪처럼 점점 더 깊이 들어갈 뿐이었다. 게다가 속도도 빨라 허리까지 순식간에 들어갔다.
당황하며 고개를 돌려 이권을 바라봤다.
무의식중에 이권 쪽으로 손을 뻗었다. 도움을 요청한 손길이었다.
가슴께까지 빠져들어 가는 모습을 전부 보고 있었으면서도 이권은 미동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보고만 있는 이권을 보며 더욱 당황했다.
서포트 하겠다며 왜 멀뚱히 보고만 있어?
“뭐 하자는 거예요?”
이권은 뻗은 손을 잡아주기는커녕 주머니에서 자기 손을 빼지도 않자 짜증이 확 밀려들었다.
그래도 같은 파티원이 아닌가.
“내가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이권의 무표정한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운 미소가 되었다.
그 미소를 바라보며 이권의 꺼림칙함이 어디서 나오는지 깨달았다.
대안 길드 이한대와 같은 미소였다. 형을 내치고, 억울해서 찾아갔던 나를 차갑게 비웃던 그 미소.
이권은 뭔가 좀 다를 줄 알았는데….
‘길드장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다니 내가 미쳤지.’
도와 달라고 손을 뻗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그렇게 길드 사람들에게 당하고도 깨닫지 못한 스스로가 말이다.
초면부터 호의적으로 나오던 모습과 지애나 길드 사람들을 챙기던 모습을 보고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닐 거라 생각했던 것이 실수였다.
턱 밑까지 빠져 이권과 몬스터의 모습을 올려다봐야 할 정도가 되었을 때, 고개를 쳐들고 이권을 노려보며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약속 지켜줘서 더럽게 감사합니다, 개새X야.”
그게 마지막으로 할 수 있었던 저항이었다.
머리끝까지 잠기고 나자 이권의 웃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쭉쭉 아래로 끝도 없이 빠졌다. 숨을 쉴 수가 없어서 괴로웠다.
이대로 죽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 형이 깬 모습도 못 봤고 예빈이랑 화해도 못 했는데….
게다가 정신없는 삶 때문에 잊고 있었던 꿈마저 슬금 떠오르고 있었다.
‘왜 맨날 나한테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지?’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일평생 운이 좋았던 적이 없다.
운은커녕 불행을 몰고 다닌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내 인생은 나락이었다.
헌터가 되어서까지 이럴 필요는 없잖아!
숨이 점점 가빠오고 작은 공기라도 들이마시고 싶어 하는 본능에 입과 코 안으로 진흙이 잔뜩 들어왔다.
더 이상 못 버티겠다 싶을 때 발이 허공에 붕 떴다. 그리고 그대로 떨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쿵-
“콜록, 콜록!”
눈이고 코고 입이고 전부 진흙이 들어가서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천장에서 떨어졌다는 고통은 진흙이 들어가 숨을 쉬지 못했던 고통 때문에 잊혀진 지 오래였다.
“헉…. 사, 살았나.”
진흙을 몇 번이고 뱉어내자 그제야 주변이 좀 보이기 시작했다.
주변에는 아까 진흙에 빠지게 했던 몬스터들과 같은 종류의 몬스터가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숨겨진 던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