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252
253화
마지막 장
이권의 상태가 이상했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몸이 축 늘어져 있었다. 백이권과는 정말로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었다.
“…희생양이라는 칭호가 왜 나에게 뜬 건가 했지.”
그리고 이권은 꽤 멀쩡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이어갔다.
“말하지 마요! 금방 고쳐줄 테니까!”
“소용없어, 한설.”
나는 황급히 공중에 떠 있는 이권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거대한 마력의 창이 이권의 심장에 박혀있었다. 그 창은 시스템에게 연결되어 있었고 그것 때문에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거였다.
“심장에 찔리는 순간 알겠더라고. 내 칭호가 희생양이었던 이유를 말이야. 내 눈앞에 시스템창이 뜨는 것 같았어. 나를 죽일 건지, 너를 죽게 내버려 둘 건지 선택하라는.”
이권의 몸 상태는 좋지 않아 보였지만 말만은 또박또박했다. 그럼에도 이권과 나는 그가 죽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난 절대 나를 희생하는 선택 따위는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이권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시스템은 이권의 심장에 박힌 창을 빼냈다. 그와 동시에 이권의 몸이 추락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재빨리 이권의 몸을 잡아채 땅에 내려앉았다. 이권은 눈을 감으며 미소를 짓고 말을 이어갔다. 나는 그 순간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계속해서 마나를 불어넣어 이권의 생명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었다.
“너를 살려야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그런 위대한 사명이나 이유 따위는 아니었어.”
이권이라면 그럴 것 같았다. 그런 이타적인 이유로 자신을 희생할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강해진 지금의 너와 한번 싸워보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네.”
끝까지 제멋대로에 이기적이고 전투에 미쳐있던 이권은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장렬한 죽음이었다. 나는 이권의 축 처진 팔을 보며 알 수 없는 감정이 속에서 끌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권이 이렇게 죽을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더욱 감정은 소용돌이처럼 치솟았다.
“귀찮게 구는 게 성가셨는데 드디어 갔군.”
시스템은 그렇게 말하며 이권을 찌른 창을 나를 향해 조준하고 있었다.
“다음은 너다, 관리자. 언제나 관리자 놈들이 문제였지.”
시스템은 내가 관리자가 됐다는 것을 알고 나를 죽이기 위해 이권을 죽였던 창을 들이대고 있었다.
나는 이권을 잘 눕혀놓고 시스템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한 손에는 마나가 담긴 리코더를 소환했다. 원한다면 드럼 채를 꺼내도 되는 일이었지만 나는 리코더가 역시 제일 편했다.
“그딴 허접한 악기로 내 창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나는 관리자의 힘을 빼앗은 이력이 있다고!”
시스템은 내 무기를 비웃으며 창을 내 머리에 날렸다. 그리고 나는 그 창을 리코더로 흘려보내고 땅을 박차고 공중으로 날아올라 녀석과 대치했다.
녀석은 거대한 창들을 하늘을 꽉 채울 정도로 소환해 냈고 일제히 나를 향해 날려댔다. 역시 괜히 소미를 이긴 게 아니었다. 녀석은 전투를 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인 것처럼 창들을 피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피한다고 피했지만 하늘을 수놓은 창들의 수에 결국 옷가지가 찢겨 나가고 살갗도 찢겨 나갔다.
파앗-
마나로 상처를 치유하며 어떻게든 버텨냈지만, 시스템은 만만찮은 상대인 것은 변하지 않았다.
‘네가 상상하는 것은 뭐든 할 수 있어.’
그때 어디선가 소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소미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 아니라 관리자가 되어 관리자의 생각과 마음이 동기화된 것이었다.
나는 머릿속의 울림을 생각하며 허공에 펼쳐진 창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나는 그 창들이 없어지기를 바랐다.
그러자 허공에 창의 수만큼 많은 마나의 빛들이 생기며 그 창들을 으스러트리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다는 얘기가 이거였나?
나는 생각의 지평선을 넓혀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때부터 좀 더 자유롭게 공격을 할 수 있게 됐다.
계속 생성되는 창들을 부숴버리고 시스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녀석이 자랑하던 단단한 방어막을 리코더로 깨부숴 버렸다.
쩌적-챙-!!
이전에는 절대 뚫리지 않을 것 같던 방어막이 마나로 만든 리코더를 한 번 휘두른 것으로 깨져버렸다.
“큭, 그래봤자 조잡한 무기일 뿐이다! 관리자 태생도 아니고 인간이 관리자의 힘을 얻은 것뿐. 그리고 그딴 무기 같지 않은 걸로 나를 쓰러트린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난 그 조잡한 무기로 널 쓰러트릴 거고 실제로 방어막도 깨진 거 안보이냐?”
“건방진!”
시스템은 자신의 온 힘을 다해 창을 휘둘렀고 나는 정신을 집중해 다가오는 모든 공격을 무로 만들었다.
코앞까지 내가 다가오자 시스템은 위기감을 느꼈는지 창으로 공격하는 것을 그만두고 장검을 꺼내 들었다. 손에 들린 검이 위협적이었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녀석을 향해 날아가 리코더를 휘둘렀다.
썩둑-
그리고 리코더는 시스템의 장검에 의해 반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크하하! 마나로 만든 악기라고 나에게 통할 줄 알았냐?”
나는 이를 으득 갈았다. 다시 마나로 리코더를 소환해 내도 반으로 갈리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한참 공방전을 펼치다 문득 나는 이권이 줬었던 리코더가 떠올랐다.
당연히 마나로 만든 것이 아니면 통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 꺼내지도 않았던 이권의 리코더가.
나는 인벤토리에서 리코더를 꺼내 들었고 그 리코더에 마나를 감쌌다.
“겨우 꺼낸다는 것이 인간이 만들어낸 무기냐?”
시스템은 그것을 알고 비웃었다. 하지만 나는 묘한 확신이 서렸다. 이권의 호칭은 희생양. 그가 나에게 줬던 무기들은 하나같이 이권을 닮아 내구성이 좋았고 다른 무기를 대체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좋은 아이템이었다.
리코더와 함께 다른 손에는 드럼 채를 꺼냈다. 마치 이도류처럼 양손에 악기를 들고 있자 꼴이 우스웠는지 시스템은 큰소리로 웃어대기 시작했다.
“하하하! 자포자기라도 한 건가!”
“짧고 굵은 건 대봐야 아는 거지.”
나는 그것을 양손으로 집고 시스템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강한 마나를 실어 녀석의 머리를 향해 공격했다.
시스템은 당당하게 장검으로 악기를 썰기 위해 휘두르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것을 피하지 않고 있는 힘껏 내리쳤다.
쾅!!!
장검과 악기가 맞부딪치며 거대한 굉음과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고 누군가가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땅에 몸이 박힌 것은 다름 아닌 시스템이었다.
“크헉, 어, 어째서?”
나는 악기를 바라봤다. 드럼 채가 부러지고 리코더는 멀쩡했다. 드럼 채의 희생으로 리코더는 살아난 것이다.
나는 악기에도 이권의 칭호가 적용되는 것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든 녀석을 해치우겠다는 일념으로 다른 드럼 채를 꺼내 들고 괴로워하는 시스템에게 빠른 속도로 하강하며 무자비하게 공격을 했다.
“크헉!!”
피를 토하며 녀석이 정신을 잃을 때까지 공격했다.
콰광-!
시스템은 자리에서 일어나 반격을 꾀했지만, 이권의 무기를 들고 녀석에게 한 방 먹이고 나서부터 우리는 인식하고 있었다. 이 싸움의 승패를 말이다.
그리고 잠시 후.
“징… 한 놈….”
털썩.
시스템은 그 자리에서 쓰러지며 이 싸움의 종전을 알렸다.
나 또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시스템의 검에 의해 피투성이가 된 나는 성한 곳이 하나 없었다.
그래도 나는 멈추지 않고 쓰러져 있는 시스템에게로 다가갔다. 마지막으로 리코더를 들어 녀석의 심장에 강하게 찔러 넣고 나서야 내 움직임은 멈췄다.
그리고 시스템의 움직임 또한 멈췄다.
발끝부터 서서히 잿빛이 되어가는 시스템은 뭔가를 말하기 위해 입을 여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녀석의 입을 발로 밟아버렸다.
“네놈에게 최후의 변론도 사치다.”
그렇게 녀석은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 몰려 있던 몬스터들과 던전 게이트들도 모두 하나둘씩 사라져갔다.
세상에 던전과 몬스터가 없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었다.
* * *
“뭐야, 잘 지냈어?”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차오름이었다.
“잘 지냈지, 다른 사람들은?”
“이제 온대.”
오름의 말대로 그 뒤로 신애와 지완이 들어왔다.
“허허, 내가 이런 자리에 껴도 되나 모르겠네.”
“당연하죠. 한설 씨 은인이시라면서요.”
“그게 영 내가 무슨 은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심지어 약속 시간보다 십 분은 늦은 독열 아저씨까지 가게 안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몬스터와 던전이 사라지고 2년이 지났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던전이 사라졌다는 것에 환호하다가도 직업을 잃은 헌터들이 넘쳐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행히도 시스템이 사라지면서 스킬이나 마력을 지닌 아이템들은 전부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그들의 무력만큼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대형길드들은 힘을 쓰는 건설사나 사건을 해결해 주는 용병, 경호업체 등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혼란했지만, 혼돈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고 평화의 시대는 길었다.
“앗, 시작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공로는 2년 전에 죽은 백이권의 공으로 돌아갔다.
자신을 목숨을 희생해 시스템을 막아선 영웅. 던전 브레이크를 막은 희대의 영웅.
실질적으로 시스템을 해치운 것은 나였지만 그 누구도 나를 그렇게 기억하지 못하게 했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백이권이 그런 식으로 잊혀지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티비에서는 국가 차원으로 이권의 장례식을 하는 행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지금 이 모임도 마찬가지였다. 백이권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모인 모임이었다.
나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소미의 권능을 받은 형과 오름도 있었다. 둘은 권능을 받았기 때문에 기억을 조작할 수는 없었다.
그 말인즉슨 진짜 시스템을 해치운 것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소리였다.
“정말 괜찮겠어?”
형은 내가 얌전히 티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 한마디를 툭 던졌다. 오름도 힐끗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지 않을 건 뭐야? 나는 별로 눈에 띄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거 말고 백이권이 죽음에 대해서 말하는 거잖아.”
오름이 내 말에 끼어들었다.
“그것도 그래. 난 괜찮다니까 왜 둘은 그렇게 날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처럼 보는 거야? 세상은 평화로워졌고 백이권씨가 죽은 건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리고 난 이 세상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고.”
말 그대로였다. 이권이 죽음이 슬픈 것은 맞았지만 관리자로서의 일도 바쁜 것은 마찬가지였다.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 자연을 관리해야 했고 생태계를 유지하고 외부의 침입 또한 막느라 알게 모르게 전투를 하게 될 때도 있었다.
아무튼, 바쁘다는 소리였다. 이권의 슬픔을 애도할 시간 따위 없었다.
“너 어딘가 고장 난 사람 같아.”
오름의 말에 형도 동조하는 것 같았다.
“네 감정을 갈무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항상 참기만 해서 되는 것은 없으니까.”
동해물과 백두산이-
티비에서는 애국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형의 말을 들으며 티비에 비치는 이권의 장례식 사진을 바라봤다.
엄마의 죽음 이후로 누군가가 나 때문에 죽었다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형의 말대로 나는 내 감정을 사실 갈무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백이권에 대해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군인 것처럼 굴다가도 죽어라고 공격하고 또 마지막에는 나를 위해 죽음을 택한 그 존재를 말이다.
나는 그리고 이 관리자의 삶이 행복한가를 떠올렸을 때 답을 내리지 못하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라리 이권이 살아있을 때는 삶에 긴장감이 있었다. 이 사람이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는 긴장과 싸워보고 싶다는 투쟁감.
관리자가 된 이후로는 나에게 이 삶이 무료하다 못 해 지루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쿵-
“넌 취하지도 않냐.”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거지?
술에 잔뜩 취해 머리를 책상에 박은 오름을 보며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어둑어둑해진 하늘이 내가 꽤 생각에 잠겨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형, 오름이랑 다른 사람들 좀 챙겨줘. 예빈이는 친구들이랑 있다가 늦게 온댔지?”
유일하게 멀쩡해 보이는 형에게 다른 사람들의 뒤처리를 부탁하고 나는 그대로 일어나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와 거리를 걸었다.
날씨가 꽤 쌀쌀했다. 12월이니 그럴 만도 했다. 주변에서는 곧 크리스마스다 해서 거대한 트리와 함께 캐럴이 들려왔다.
톡.
“어, 눈이잖아.”
하늘을 올려다보니 새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올해의 첫눈이었다. 나는 그 눈을 바라보며 공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 공허함은?’
그렇다고 뭔가를 벌일 생각은 없었지만 나는 몬스터와 던전이 있던 그 옛날이 그립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시 이권이 떠올랐다. 주변에는 이권을 기리는 멘트와 노래, 사진들이 가득했다.
나는 왜 이것들은 온전히 즐기지 못할까 생각하다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난 관리자가 되고 싶지 않아. 평범한 인간이길 원해.”
나는 평범한 인간일 때가 더 좋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성장할 가능성이 있고 더 높은 곳을 향해 투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네가 상상하는 것은 뭐든 할 수 있어.’
그리고 언젠가 내 귓속에서 속삭이던 목소리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차조차 다니지 않는 텅 빈 거리에 대고 가슴속에 끓어오르는 한 가지 강한 열망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난 관리자가 되고 싶지 않아. 그리고 계속 싸우고 싶어.”
어쩌면 나는 백이권과 그리 다르지 않은 인간일지도 몰랐다. 나는 나의 투쟁심을 숨기고 외면한 채로 살아왔을 뿐인 것이다.
간절히 바라고 원하자 관리자의 마나는 그것을 현실로 만들었다.
내 안에 넘실대던 관리자의 권능과 마나들이 허공에 점점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평범한 인간이 되었다.
그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잡는 것이 느껴졌다. 마나는 사라졌지만 나는 순간 그 사람이 누군지 깨달았다.
“너랑 싸우기 위해 지옥에서 돌아왔어.”
그건 이권의 목소리였다.
나는 덤덤하게 몸을 돌리며 그저 형편없어진 주먹을 이권에게 내밀며 말했다.
“이젠 스킬도 못 쓸 텐데 괜찮겠어요?”
“육탄전에도 자신 있거든.”
잔잔히 울리는 캐럴과 사람들의 추모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텅 빈 거리에서 나와 이권은 서로를 마주 보며 씩 웃었다. 그날 세상을 지키던 관리자는 사라졌고 평화로운 거리에는 투쟁심에 불탄 인간들만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평화로웠고 관리자가 없다 해도 투쟁심에 가득 찬 평범한 인간들이 그 평화를 지킬 것이라는 사실 또한 변함이 없었다.
[많이 부족한 글이었지만 여기까지 읽어주신 독자님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다음에는 더 발전된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