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31
32화
-사기꾼을 잡는 것은 시간과 정성이 든다 (2)
“이래서 어떻게 잡아.”
어지럽게 떠다니는 사람들의 속마음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가다듬고 간신히 귀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눈을 감고 마음의 소리를 하나하나 듣기 시작했다.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적은 수의 사람들이 무수한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것을 다 읽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스킬 사용을 멈추지는 않았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기꾼 놈을 잡아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떡해, 지각이다!’
‘아, 이 채널 너무 웃기다. 구독해야지.’
‘호구 새끼, 날 어떻게 잡겠다고.’
“이거다!”
나는 마지막에 들린 마음의 소리를 읽고 질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근처 공원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만물의 소리는 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속마음일수록 크게 들린다.
그리고 마음의 소리가 어느 방향에서 들리느냐에 따라 얼추 위치도 파악이 가능했다.
여러모로 유용한 스킬이었다.
만물의 소리를 통해 들려온 소리의 근원지로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다시 스킬을 썼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호구’라고 내뱉었던 주인공에게 다가가 어깨를 붙잡았다.
홱-!
“잡았다.”
사기꾼 녀석, 못 찾아올 줄 알았지?
“뭐, 뭐야?”
내가 씩 웃으며 사기꾼 놈을 쳐다보자 당황한 듯한 눈동자가 나를 바라봤다.
하얀 캡모자를 눌러 쓴 짧은 숏단발의 여자였다. 키가 작고 얼굴이 어린 것을 보니 아직 학생인 것 같았다.
근데 뭔가 착장이 익숙한데?
“진짜 찾아올 줄 몰랐지? 정의의 암살자.”
“미친, 설마…? 어떻게 여기까지…?”
당황에 물든 까만 눈동자가 사정없이 깜박이며 나를 쳐다봤다.
어린 놈이 벌써 사기를 치고 다니고 말이야. 떡잎이 노랗다 못해 시커멓다.
“아직 급식인 것 같은데 사기를 치고 다녀?”
빡-!
캡모자는 눈을 깜박이던 것도 잠시, 내가 혀를 차며 하는 말을 듣자마자 냅다 정강이를 후려쳤다.
“윽!”
신음이 흘러나왔다. 정강이를 제대로 맞았다.
정강이를 타고 올라오는 짜릿한 고통에 그대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캡모자는 되레 화가 난 듯이 표정이 싸늘했다.
“누가 급식이야? 호구 주제에.”
“아야…. 너 지금 그게 중요해?!”
쓰라린 정강이를 감싸며 버럭 소리쳤다.
다짜고짜 정강이를 차 버리는 것은 그렇다 쳐도 싹싹 빌거나 도망쳐야 하는 것이 맞는 거 아닌가?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지.
하지만 캡모자는 도망친다거나 싹싹 비는 행동 따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근처 벤치에 앉아 다리를 꼬꼬 앉는 기행을 보여줬다.
“니가 ‘만능 바드’야?”
“그러는 넌 ‘정의의 암살자’ 맞지? 이 사기꾼 놈아.”
“누가 사기당하래?”
뻔뻔한 말에 나는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잡히면 반쯤 죽여 놓을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나오니 오히려 기운이 빠진다.
“내 3억 내놔. 그럼 봐줄게.”
화를 꾹 참고 내가 정당하게 받아야 할 돈을 요구했다.
“없는데.”
“…뭐?”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되묻자 캡모자는 두 손을 들어 보이며 다시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없다고.”
그 말을 듣자마자 녀석의 냅다 멱살을 들어 올렸다.
“켁켁-!”
캡모자는 키가 작아서 그런지 그대로 들려 올려졌다.
“지금 나랑 장난해? 없긴 뭘 없어.”
싸늘해진 내 목소리에 어깨를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잡은 멱살을 놓지는 않았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스킬의 후유증인 것인지 이 상황이 어이가 없어 머리가 아픈 것인지 모르겠다.
“오란다고 진짜 찾아오냐. 그거 이미 없어. 두들겨 패도 안 나와.”
캡모자가 강하게 손을 쳐내고 나를 올려다봤다.
“어쩌라고! 무슨 짓을 해서라도 구해 와. 콩밥 먹기 싫으면. 그게 어떤 돈인 줄 알아?”
“어떤 돈인지 내가 알 게 뭐야!”
얘 말로 해서 안 되겠네?
나는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리코더를 들어 올리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악을 쓰던 캡모자가 주먹을 쥐더니 소리쳤다.
“거짓 선언, 힘 스탯이 2배가 된다!”
이상한 말을 외치는 캡모자를 보다가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뭐 하는…?”
그리고 말을 다 잇기도 전에 캡모자의 주먹이 내 얼굴로 날아들었다.
퍽-
얼굴이 팩하고 돌아갔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주먹은 꽤 매서웠지만 큰 타격은 주지 못했다.
얼굴을 털어내며 캡모자를 보고 정색했다.
“뭐 하냐, 너.”
그리고 멀쩡한 상태 그대로 주먹을 잡아 끌어내렸다.
“어? 너…. 바드 아니야? 뭐지, 스킬은 잘 들어갔는데?”
오히려 당황한 것은 캡모자였다.
“특이한 스킬을 가지고 있나 보네. 뭐, 말하는 대로 이뤄주는 스킬이냐?”
그렇다면 소리 전달 스킬과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말하는 대로 이뤄주는 스킬이 어딨어! 그보다 너 등급 E급 아니야? 어떻게 그걸 맞고도 멀쩡해? 센터를 속인 거야?”
E급인 건 어떻게 알았지? 하긴, 내 얼굴도 훔쳐가는 녀석인데 정보라고 못 훔쳐가겠어.
진지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질문 폭탄을 날리는 녀석을 보고 질린 표정을 지었다.
속인 거면 어떻고, E급이면 어때서.
애초에 사기를 친 녀석에게 추궁받을 이유도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인데.
캡모자 녀석을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녀석이 내 옷자락을 덥석 잡아챘다.
“나도 알려줘. 어떻게 속인 거야?”
눈을 반짝인 채로.
뭐야, 얘…. 무서워.
갑자기 확 태도가 바뀐 것을 보고 당황했다.
호기심 가득한 눈빛은 당장에라도 나에게 방법을 알려 달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센터를 상대로 사기를 친 적 없는데 혼자 착각해 오해하고 있었다.
그냥 센터에서 E급이라고 판단을 내린 거지, 내가 뭔갈 한 적은 없었다.
애초에 추궁해야 하는 쪽은 이쪽인데 어째 입장이 반대가 되었다.
오히려 잘됐다. 이걸 가지고 이용해야겠어.
“내 돈 돌려주면 알려줄게. 나한테 센터를 속이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지.”
사기를 치기로 마음먹자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물론 그 돈은 내가 받아야 할 정당한 돈이었지만.
그러자 녀석은 혀를 차더니 짜증난다는 표정이 되었다. 내가 순순히 알려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없어….”
혀를 찬 녀석은 모자를 손으로 눌러쓰고 약간은 기가 죽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표정을 보니 진심인 것 같긴 한데….
어이가 없어진 나는 당황한 목소리로 캡모자를 추궁했다.
“얼마나 지났다고 3억을 다 써? 아니, 애초에 돈이 있긴 했던 거야?”
“있었으면 사기도 안 쳤지. 그냥 아이템 얻으려고 구라친 건데….”
“와, 진짜 대책 없구나, 너? 그럼 아이템들은?”
“그것도 이미 다른 아이템으로 바꿔치기 했는데.”
나는 이마를 탁 쳤다. 도통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이 녀석은 정말로 답이 없었다.
“다시 가져올게. 그럼 그땐 알려주는 거지?”
캡모자는 당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자신있어하는 표정을 보자 한숨이 나왔다.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벤치에 앉았다. 그렇게 쉽게 가져오겠다고 할 거였으면 팔아치우지 말고 얌전히 가지고 있지.
“여기서 딱 1시간만 기다린다. 어떻게 해서든 내 아이템 가져와. 그럼 알려줄게.”
“좋아. 어디 가지 말고 있어.”
누가 할 소리인데.
생각해 보니 이 녀석이 이대로 도망가면 신고도 못 하고 놓치는 거 아닌가?
“너 이름 뭐냐?”
문득 든 생각에 출발하려는 캡모자에게 말을 걸었다.
“차오름.”
사기꾼치고는 꽤 예쁜 이름이었다. 나이도 어려 보이는 여자애가 왜 사기꾼이 된 것인지 의아해하기도 했다.
그건 그거고.
“차오름. 이래 놓고 도망가면 내가 무슨 수를 써서든 다시 잡을 거야. 그땐…. 말 안 해도 알지?”
“걱정 마셔. 진짜 돌아올 테니까.”
사기꾼 주제에 뭐가 저리 당당한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어딘가로 사라졌다.
1시간.
“이 새끼 봐라? 안 오네?”
2시간….
“진짜 해보자는 거지?”
동생 또래 같아서 한 번 기회를 준 건데, 이렇게 다시 통수를 쳐?
내가 못 잡을 것 같았나 봐?
설령 놈이 아주 신출귀몰해서 내가 못 잡는다? 그러면 바로 백이권 찬스다.
내가 살 집까지 마련해 주는 신혈 길드장인데 좀도둑 하나 못 잡아줄까.
“넌 뒤졌다.”
사기꾼 놈을 잡으러 출발하려고 할 때였다.
타탓-
멀리서 하얀 캡모자를 눌러 쓴 작은 형체가 뛰어오고 있었다. 도망간 줄 알았던 차오름이었다.
“야! 너 뭐 하다 이제 와! 기다리다 목 빠지는 줄 알았네.”
뭐야, 다시 왔네?
사기꾼의 신의에 조금 당황했지만 표정은 화난 척 찡그리며 팔짱을 끼고 아니꼬운 말투로 오름을 추궁했다.
오름은 그런 나의 말을 무시하며 캡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주머니에서 5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을 꺼냈다.
그리고 억지로 내 손을 가져가더니 얌전히 지폐를 올려놓았다.
“이게 뭐야?”
어리둥절하며 손에 쥐여진 돈을 멀뚱히 바라봤다.
“미안하다. 아이템은 못 가지고 왔어.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그걸로 좀 봐주면 안 되냐?”
“뭐! 야, 너…!!”
하, 이 녀석을 믿은 내가 잘못이지.
오름이 다시 돌아온 걸 보고 분노를 사그라트렸던 스스로가 우습게 느껴졌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오름의 모자를 거칠게 벗겨냈다.
홱!
그러자 눈이 심하게 멍들고 입가에는 피고름이 고여 있는 오름의 얼굴이 나타났다. 왼쪽 뺨은 맞아서 심하게 부은 것 같은 모양새였다.
할 말을 잃고 오름의 얼굴을 바라보자 오름이 인상을 팍 쓰며 모자를 채갔다.
“왜 갑자기 벗겨내고 지랄이야….”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린 오름은 다시 모자를 푹 눌러썼다.
“야, 너 얼굴이 왜 그래?”
“별거 아냐. 사기 치려면 이 정도 일은 항상 있는 일이니까.”
“사기 좀 쳤다고 얼굴을 그렇게 패 놓냐?”
“3억짜리잖아.”
“그건, 그렇지만….”
물론 나도 반쯤 죽여 놓겠다고 속으로 이를 갈긴 했지만….
“덩치 형님들한테 잘못 걸리면 원래 그래. 한 번 끝난 거래는 다시 되돌릴 수 없대. 미안, 내가 거래한 아이템이라도 줄까?”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며 주머니에 손을 꽂은 오름은 이런 일을 많이 겪은 것처럼 보였다.
“필요 없어.”
이런 일을 당할 걸 알면서도 계속 사기를 칠 생각을 하는 녀석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어떡하냐. 나 진짜 가진 거 없는데.”
곰곰이 생각 중인 오름을 보며 나는 모자 위로 손바닥을 쭉 펴서 세로로 강하게 내리쳤다.
팍!
“아! 갑자기 왜 때려?”
오름이 팍 신경질을 내며 이마를 문질렀다. 그렇게 아프지 않으면서 엄살은.
“이걸로 봐준다.”
“어어…? 정말?”
사실은 한 대가 아니라 돈이 나올 때까지 탈탈 털어내고 싶었지만, 이 정도로 심하게 당하고 온 걸 보니 손대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안 좋은 것도 있었다.
나도 돈 때문에 항상 깡패들한테 시달렸었다.
최근에야 꼬박꼬박 돈을 보내주니까 찾아오지 않았지, 예전에는 잊었다 싶으면 문을 부수고 들어와 집 안을 초토화 내놓기 일쑤였다.
집뿐만이 아니라 소중한 자원이었던 몸뚱아리까지.
오름을 보니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류의 덩치 형님들과 잘못 거래를 한 모양이었다. 자기 업보이긴 했다.
오름이 사기 친 것은 화나긴 했지만, 나름 녀석도 노력을 했으니 이 정도로 봐주기로 했다.
그럼 그냥 3억을 날릴 거냐? 그건 또 아니지.
어차피 오름은 털어봤자 나올 게 없었다. 그럼 털어서 나올 곳을 털어야지.
“거기 어디야?”
“뭐?”
“거기가 어디냐고.”
나는 손해 보는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 아니, 못 한다.
어떻게 해서든 아이템을 다시 돌려받고 말 거다. 왜냐면 그 돈은 다른 덩치 형님한테 줘야 할 돈이기 때문이다.
사기당해서 진 빚이 딱 3억이었다.
원래 원금은 1억이었지만 어느새 이자가 불어나 3억 5천이 되어 버렸다.
어떻게든 갚으려 노력해 봤지만 공사장에서 번 돈으로 그 돈을 전부 갚기란 불가능이었다.
그래도 헌터 일을 하고 나서부터 수입이 꽤 괜찮아져 5천을 겨우 갚았다.
대박인 아이템 하나를 건져 이제 겨우 빚쟁이 신세에서 벗어나기 직전이었는데 어떻게 그 기회를 쉽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그게 어떤 3억인데!
“설마…. 거기 쳐들어가려고?”
“내 아이디가 왜 ‘만능 바드’인 줄 알아?”
“모, 몰라.”
“오늘 알게 될 거다.”
네가 거래한 덩치 형님들을 통해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