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35
36화
-납치는 언제나 호기롭게 시작된다
“미쳤네…. 여기 바다야.”
E급이라고 무시한 것도 있겠지만 이렇게 허술하게 해놓은 이유가 있었다.
이미 바다 위라서 어디로도 도망가지 못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망한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그걸 들은 오름이 밧줄에 묶여 있는 채로 펄쩍 뛰어서 나를 밀치고 창문을 바라봤다.
“X발! 이 새끼들 미친 거 아니야? 바다아?! 대체 어디로 끌고 가려는 거야?”
“욕하지 마!”
오름이 쌍욕을 내뱉자마자 나를 막아섰던 작은 여자아이가 오름을 다그치며 눈을 부릅떴다.
놀란 오름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다그친 아이를 바라봤다.
“미, 미안.”
오름은 아이에게 혼날 줄은 몰랐는지 어색하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버럭 화를 내며 같이 싸울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넌 이름이 뭐야?”
무릎을 꾸부려 아이의 시선과 맞춘 후 물었다. 그러자 노란색 원피스가 잘 어울리는 아이가 새침하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
“난 김세린! 걱정하지 마. 우리 아빠가 곧 구하러 올 거야.”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세린이는 상냥하게 웃었다. 안심시키려는 듯한 세린의 작은 손길이 따뜻했다. 용감하고 씩씩한 아이였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자 세린은 다른 아이들을 달래러 분주히 움직였다.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울지도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을 위로해 줄 줄 아는 대단한 아이였다.
“야, 이제 어떡할 거야?”
오름은 한층 얌전해진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그런 오름을 보며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추궁하는 것은 이곳을 빠져나가고 난 후였다.
던전을 돌던 때처럼 전부 박살내 버리고 배를 돌릴까 싶었지만 걸리는 것이 있었다.
‘나원명’.
나원명의 부하들을 잡몹이라고 치자면 나원명은 던전의 보스였다. B급이었으나 그 실력은 A급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솔직히 붙어서 이길 자신이 없었다. 등급이 같다고 해도 헌터와 몬스터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바로 지능.
헌터를 상대하는 것이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보다 훨씬 까다로운 이유였다. 전투가 벌어지면 바드인 것을 눈치채자마자 악기부터 부술 거다.
“난리를 피우기보단 조용히 탈출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B급 던전을 혼자서 깼던 것과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그때는 안전장치인 백이권이 있었지만 지금은 반대로 애들의 목숨이 달려 있었다.
지금 상황이 던전 공략이었다면 A급 던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애들을 두고 혼자 탈출할까도 싶었으나…. 매정히 두고 가기엔 양심이 좀 찔리기도 하고.
‘정보만 조금 줬는데도 1000만 원이었으니까 애들을 구출하면…?’
솔직한 심정은 이거였다.
“그렇긴 하지. 몇 명이 여길 지키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조용히 탈출하자.”
“그래, 애들을 인질로 협박할 수도 있으니까.”
오름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를 할 때였다.
덜커덩.
“쉿-!”
문 가까이에서 인기척이 들려오자 나는 오름의 입을 막고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오름의 욕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형님은?”
“조금 있다가 오신대. 깨어났는지 확인하라던데.”
익숙한 말소리였다.
철컥-
녀석들이 문고리를 돌리는 소리가 나자마자 오름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새도 없이 누워서 기절한 척을 했다.
아이들이 우리가 깨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본능적으로 나온 행동이었기에 뒤는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이 새끼들 아직도 처자고 있네.”
목소리를 들으니 덕구였다. 저번에 맞은 이후로 병원 신세를 좀 질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멀쩡히 걸어 다니고 있었다.
힐러가 금방 치료해 줘서 멀쩡히 돌아다니는 걸 수도 있고.
퍽!
윽.
덕구가 누워 있던 나의 배를 발로 걷어찼다.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공격당하니 타격이 꽤 컸지만 티를 내진 않았다.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신음을 속으로 삼켰다.
“X발, 지난번에 이 새끼한테 당한 거 생각하면…!”
퍽-!
분에 못 이겨 덕구가 한 번 더 발로 배를 걷어찼다. 나는 이를 꽉 깨물고 견딜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언제 넘긴다고?”
“4시간 뒤. 한 명당 억대니까 조심히 다뤄.”
“이 새낀 어린애 아니잖아. 이야~ 중국 놈들은 이래서 좋아. 화끈하잖아. 근데 이런 어린애들 갔다가 어디 쓰려고 그런대?”
“알 게 뭐야. 우린 일만 잘 처리하면 돼.”
“흑흑….”
“조용히 안 해! 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이들이 훌쩍이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듣기 싫었는지 덕구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침을 바닥에 뱉었다.
그 고함에 우는 소리 대신 숨죽여 흐느끼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둘이 뭔가 더 중얼거리며 대화를 이어가다가 밖으로 나갔다.
쾅!
“으윽….”
문 닫는 소리가 나자마자 나는 참았던 신음을 흘렸다. 손으로 붙잡아 묶여 있는 척하고 있던 끊어진 밧줄을 털어 치워 버렸다.
“야, 괜찮아?”
오름이 몸을 일으키며 물어왔지만 대답 대신 피가 섞인 침을 뱉어 보였다.
“안 괜찮구나.”
“그보다 지금 우리가 인신매매로 팔려가게 생겼다는 게 더 문제지.”
아까 들었던 녀석들의 대화를 떠올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이렇게 어린애들을 가지고 무슨 짓을 할 생각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배가 중국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얼핏 옛날에 이슈가 됐었던 중국의 헌터 실험이 떠올랐다.
각국의 어린아이들을 사고팔았던 것이 밝혀져 충격을 줬던 사건이었다.
4년도 더 된 일이라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 지는 오래였는데, 아직도 버젓이 성행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완전 미친놈들 아냐? 갱생도 못 할 쓰레기들!”
욕하고서 오름은 세린의 눈치를 봤다. 아까처럼 한 소리 들을까 봐 그런 듯했다.
“욕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탈출할 방법을 생각해 보자. 너 뭐 괜찮은 스킬 없어?”
“괜찮은 스킬? 딱히. 있어도 확률 싸움이라서 도박이야.”
“저번에 썼던 그 반반 확률 스킬?”
“엉, 한 번 실패하면 하루 정도 못 써서 신중하게 써야 해.”
오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또 거짓말을 쓰는 것인지 유심히 살폈다. 목숨이 위험한 상황까지 와서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다른 스킬은 없어?”
“있긴 한데…. 왜 나만 말하고 있냐? 너야말로 방법 없어?”
오름이 짜증 난다는 듯 삐딱한 얼굴로 쳐다봤다. 물론 내 버프라면 차도가 있을지도 몰랐다.
문제는 허리춤에 있어야 할 이권이 준 리코더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벤토리에 여분을 남겨놨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스스로를 탓했다.
방구석에 고이 모셔뒀던 리코더들이 아른거렸다.
그때 내가 왜 그랬지?
물론 목으로 노래를 불러도 버프는 충분히 들어갔으나 소리를 낸다는 것 자체가 지금은 자살 행위였다.
녀석들이 소리를 듣고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 바드인 거 잊었냐? 그래서 다른 스킬은 뭔데?”
“이거 풀어주면 얘기할게.”
꽁꽁 묶여 있는 손목과 다리를 들이밀며 오름이 말했다. 얼마나 발버둥친 것인지 손목 주변이 새빨갛게 부어 있었다. 거동도 불편해 보였다.
하지만 당한 게 많아서 쉽게 풀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널 어떻게 믿고 도와?”
날 선 목소리로 오름에게 말했다. 오름에 대한 신뢰는 ‘0’에 가까웠다.
불편해 보이는 건 보이는 거고, 오름을 풀어주게 된다면 자기 혼자 냅다 도망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오름이 도망가더라도 최후의 수단인 ‘소리 전달’ 스킬이 있었기에 걱정되진 않았다.
그렇지만 소리 전달을 쓰지 않고 넘어갈 수 있다면 그게 베스트 아닌가.
소리 스킬은 한 번 사용하면 3일이나 기다려야 하는걸.
“나 아니면 어떻게 하게? 왜, 내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왜 그렇게 의심이 많아!”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치는 오름을 보자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기분이었다.
애초에 너 때문에 생긴 불신이잖아!
오름은 자기가 믿음직스럽다고 생각하는 건가?
“너도 나 없으면 그 줄 못 푸는 건 알지?”
“쯧.”
입술을 짓이기며 혀를 차는 오름을 보니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너한테 사기 쳤던 스킬 있어. 손댄 사람의 외형과 기억을 일시적으로 카피할 수 있는.”
“뭐? 나한테 사기 쳤던?”
경악할 정도로 괜찮은 스킬이었다.
하지만 스킬 내용보다는 나에게 사기 쳤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오름과 마주친 기억이 없는데 언제 나에게 손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쓴 거야? 난 너 만난 적 없는데…. 아!!”
갸우뚱하며 의문점을 제기하다가 문득 아이템을 제출하러 갔을 때 어깨빵을 당했던 일을 떠올렸다.
생각해 보니 사과도 하지 않았던 그 싸가지와 체형이나 목소리, 머리길이까지 비슷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를 아는 듯했던 속마음!
“너…. 그때 내 어깨 치고 간!!”
“이제 알았어? 바보 아냐.”
손가락질하며 경악하는 나의 반응에 오름은 한심하다는 듯이 비웃었다.
그게 사람을 더 열받게 만들었다.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지.
“아무튼, 말했으니까 빨리 풀어줘. 손 아파.”
오름은 나에게 손목을 들이밀었다.
여기서 감정적으로 나와 봤자 내 손해였다. 억울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은 오름의 힘이 필요했다.
“에휴, 진짜 어떻게 양파처럼 까도 까도 뭐가 계속 나오냐?”
불평을 터트리며 오름의 손목에 단단히 묶여 있던 밧줄을 힘으로 끊어냈다.
“여기서 탈출하기 싫어?”
오름은 갑이라도 된 것처럼 비꼬았다.
자신의 손으로 이 정도 밧줄을 못 끊어내는 것을 보면 힘이 상당히 딸리는 직업이거나 등급이 D급일 가능성이 컸다.
속임수를 이용한 스킬이 많은 것을 보면 일단 공격형 직업은 아니라는 소리였다.
체력이나 힘이 약한 직업이어도 B급 이상이 이 정도 밧줄을 못 풀어내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니 오름은 D-C급 정도 되는 속임수와 관련된 직업의 헌터라는 말이 됐다.
“나랑 그렇게 등급 차이도 안 나는 것 같은데 뭘 기세등등해 있어?”
“줄 못 푼다고 무시하냐? 나 이래봬도 B급이거든?”
“푸핫, 믿을 만한 거짓말을 해라! 니가 B급이면 난 S급이다.”
퍽.
“윽.”
소리내서 비웃자 오름이 내 명치를 강하게 쳤다.
“뭐, 못 믿겠는 건 이해하는데, 적당히 웃자.”
아니 근데 저번부터 은근히 폭력을 쓰네? 적반하장이야, 아주.
오름은 말을 마치고 일어나서 자신의 얼굴을 머리끝에서부터 턱끝까지 쓸어내렸다.
“지금 뭐 하는…?”
오름에게 맞은 명치를 문지르며 의문을 표했다. 그러자 뒤돌아본 것은 오름이 아닌 꿈에서도 보기 싫은 덕구의 얼굴이었다.
“차오름…? 맞지?”
“그럼 누구겠냐.”
얼굴만 바뀐 것이 아니라 목소리까지 전부 변했다. 낮고 듣기 싫은 걸걸한 목소리였다.
신기한 마음에 오름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폈다.
“정신 사나우니까 저리 가 있어. 몸도 바꿔야 하니까.”
내가 뒤로 물러나자 오름이 검지와 엄지를 튕겼다. 그러자 마법처럼 오름의 몸통이 커지더니 덕구와 똑같은 체형으로 바뀌었다.
영락없이 덕구 그 자체였다.
“으앙! 무서운 아저씨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아이들이 겁을 먹고 울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해서 아이들을 달래려고 노력했다.
“무서운 아저씨 아니야, 아까 그 누나야.”
“으아앙!!”
하지만 겁에 질린 아이들에게 그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나 무서운 사람 아니야, 혼날래?”
“히끅, 으아앙!!”
설상가상으로 기분이 상한 것 같은 오름이 얼굴을 들이밀며 아이들을 더 공포에 떨게 하고 있었다.
“넌 그 얼굴 좀 치워라!”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언제 녀석들이 다시 들이닥칠지 모르는 일이었다.
“뚝! 저 언니 아까 그 아저씨 아니야. 마법 써서 변한 거야. 안 무서워.”
그때 구세주처럼 아이들의 울음을 멈추는 것이 세린이었다.
세린이는 울음보가 터진 아이들에게 일장연설을 하듯이 앞으로 나와 달래기 시작했다.
세린이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어서 아이들이 하나둘 세린의 말에 집중하느라 울음을 그쳐가고 있었다.
“세린이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세린이의 연설에 감동을 하며 은근슬쩍 아이들의 시야에서 오름을 가려 버렸다.
“이래서 애들은 싫어. 뭐만 하면 징징대고 난리야.”
“거울 좀 봐라, 안 울게 생겼나.”
틱틱대는 오름을 뒤로하고 덕구로 변한 가장 중요한 이유에 집중했다.
오름이 덕구로 변한 이유는 결국 그놈의 기억을 훔쳐읽기 위함이었으니까.
“그래서. 뭐 알아낸 건 없어?”
“기다려 봐.”
오름은 덕구의 얼굴로 인상을 쓰며 눈을 감았다.
“우리를 들쳐 메고 배로 옮겼다가…. 아, X발! 이 새끼 내 속옷 훔쳐봤어! 뒤졌다, 진짜. 어…? 이 단발머리는 뭐지. 어! 구명 뗏목!”
덕구의 기억을 읽는 듯한 오름은 욕설을 내뱉더니 뭔가를 발견한 듯 눈을 번쩍 떴다.
“뭔데? 구명보트가 있어?”
구명보트가 있다면 말이 달라진다. 탈출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런데 오름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근데 그거 못 타겠는데.”
“왜? 뭐가 문제인데?”
내가 대답을 재촉하자 오름이 인상을 찌푸리며 툭 대답을 내놓았다.
“그거 단발머리 놈이 자물쇠로 묶어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