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36
37화
-납치 (1)
“무슨 소리야? 자물쇠?”
오름은 습관적으로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덕구의 얼굴로 저렇게 행동하니 살짝 역한 기분이 들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단발머리 놈이 대장인 거 맞지?”
“맞아, 나원명이라고, 쓰레기 새끼 있어. 눈 하나 맛탱이 간. 근데 왜? 자물쇠는 무슨 얘기고.”
“말 그대로야. 구명 뗏목이 있는데 그걸 못 내리게 쇠사슬이랑 자물쇠를 걸어놨어. 열쇠는 나원명이 가지고 있고. 딱 보니까 아이템이야. 평범한 공격으로는 소용없을 거야.”
골치가 아파졌다. 덕구의 모습으로 변해서 차도가 있을 줄 알았더니 산 넘어 산이었다.
원명 녀석이 열쇠를 가지고 있다면 탈출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원명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적어도 열쇠가 원명에게 있는지, 아니면 다른 곳에 뒀는지만 알 수 있다면….
“너 이 스킬 하루에 몇 번 쓸 수 있어?”
“하루에 3번밖에 못 써. 여기 안 잡혀 오려고 발버둥 치느라 한 번 쓴 거까지 하면 이제 한 번밖에 못 써.”
그렇다면 신중하게 선택해야 했다. 누구로 변할지, 누구의 기억을 가지고 올 것인지.
“그럼 너 나원명으로 변할 수 있겠어?”
지금 가장 필요한 사람은 역시 나원명밖에 없었다.
“나원명 건드리질 못해서 못 해. 변하려면 옷깃이라도 스쳐야 한단 말이야. 근데 그놈을 무슨 수로 만지냐고.”
“근데 너 지금 덕구잖아.”
우리는 서로를 멍하니 바라봤다. 분명 오름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위험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을.
“나만 그렇게 큰 리스크를 감당하라고? 덕구 아닌 거 걸리면 어쩔 건데!”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오름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배가 그렇게 큰 것도 아닌데 좀만 돌아다니다 보면 금방 찾을 거야. 살짝만 터치하고 오는 거라고.”
“덕구 새끼도 멀쩡히 돌아다니고 있잖아. 걔한테 걸리면 어쩌려고!”
“너 덕구 정도도 못 해치워?”
오름은 내 말에 억울하다는 듯 입술을 잘근 씹어댔다.
“나 힘 약하다고.”
“B급이라며?”
“B급이 다 무식하게 힘만 센 줄 아냐?”
그런 거 아니었어?
오름이 어떤 직업인지 정확히 알 수 없어서 모르겠지만 보통은 아무리 힘이 약해도 B급 헌터가 D급한테 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걸 오름도 잘 알았는지 혀를 차며 말했다.
“내가 좀 특별한 직업이라서 그래.”
“특별한 직업?”
“아무튼!”
그래 봤자 나보다 특이한 직업이겠냐.
나는 오름이 여전히 허세를 부리며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숨을 푹 쉬며 오름의 말을 흘려들었다.
고민해 봐도 뾰족한 수가 없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러다가 진짜 장기 다 팔리겠어. 뭐라도 해야지, 나원명한테 가자.”
“뭐? 미쳤냐! 안 갈 거라고!”
“나도 같이 갈 테니까 나원명 만나러 가자고. 너 연기도 잘하더만. 충분히 속일 수 있어.”
오름은 같이 가겠다는 나의 말에 갈등하고 있었다. 어차피 이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 텐데도 계속 고민한다.
얼마 보지 않았지만 오름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자신만 손해 보는 짓은 절대 안 할 스타일이었다.
“좋아, 중간에 도망가지 마라.”
우리는 문을 열기 전에 밖에 아무도 없는지 신중하게 살폈다.
“우리 두고 가지 마요!”
문을 열려고 하는데 아이들이 애절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른인 우리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가려는 것을 보고 불안감에 외친 것이다.
아이들이 마음이 이해 가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지 않으면 영영 탈출할 수 없을 것이었다.
“걱정 마. 언니 오빠는 우리 구해주려고 나가는 거야.”
세린이가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세린이의 단단한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어른 두 사람이 동시에 사라지니 어른스러운 척하려 해도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세린이가 있으니 막연히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잘못 생각했다.
또래에 비해 성숙하다고 해도 어린애는 어린애였다.
“역시 애들을 두고 가는 건 좀 그런가.”
내가 중얼거리자 오름은 세모눈이 되어 멱살을 잡아 자신을 보게 했다.
“장난하냐? 이랬다저랬다 하지 마. 쟤네를 빨리 구하는 방법이야, 이게.”
덕구의 얼굴이 쑥 들이밀어지자 PTSD가 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오름의 얼굴을 손으로 밀어내고 세린의 앞으로 다가갔다.
“세린아, 우리가 꼭 너희들을 탈출시켜 줄게. 걱정하지 마. 잠시 떨어져 있는 것뿐이니까.”
“응…. 알아.”
세린이는 밝게 말했지만 목소리에는 떨림이 느껴졌다.
나는 세린이를 한 번 꼭 안아주고 오름의 곁으로 다가가 문고리를 잡았다.
어린애들을 두고 가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서는 오름의 말이 백번 옳았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우리 둘은 조용히 갇혀있던 곳을 빠져나왔다.
도망가지 못하게 단단히 문을 잠가놨을 줄 알았는데 문은 쉽게 열렸다.
바다라 도망가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뭐 졸병들도 없냐. 이렇게 경비가 허술해도 되는 거야?”
오름도 똑같이 생각한 것인지 어이없다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경비가 허술하면 우리야 좋지.”
불법을 저지르고 있으니 당연히 낡은 어선으로 이동하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가 타고 있는 배는 크기가 꽤 있는 여객선이었다.
“아니, 뭐 이렇게 넓어? 그냥 깡패 새끼들 아니었어?”
“내 말이 그 말이다.”
원명이 돈이 어디서 나서 이렇게 큰 여객선을 모는지 모르겠다.
아마 거래처에서 돈을 꽤나 벌어들인 모양이었다.
선금이니 뭐니 해서 거액을 받았을 수도 있고, 이 여객선 자체가 거래처에서 빌려준 것일 수도 있었다.
그래 봤자 위장용이겠지만.
“그런데 과거를 볼 수 있으면 나원명이 어딨는지도 알아야 하는 거 아니야? 덕구 놈이라면 나원명이 어디 있는지 알 거 같은데.”
“알긴 알아. 근데 문이 다 똑같이 생겨서 어디로 들어간 건지 모르겠어. 일단 3층인 건 확실한데, 애초에 덕구 놈이 빡대가리라서 길도 제대로 기억 못 해.”
주변을 둘러봤다. 객실은 모두 같은 색,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문 옆에 작게 적혀 있는 숫자만이 이곳이 어딘지 구분할 수 있는 지표였다.
헷갈릴 만하긴 했다.
“일단 한 층 더 올라가야겠네.”
우리는 올라가는 계단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아까 끊어 버렸던 밧줄을 다시 몸에 두르고 그 밧줄을 오름이 쥐게 했다.
누가 본다면 덕구가 나를 끌고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말도 다 맞춰 놨다.
문제는 연기였다. 우리가 잘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오름은 그동안 사기 친 경력이 있으니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내가 문제였다.
원명을 찾으러 돌아다니는 동안 아무하고도 마주치지 않는 것이 베스트였다.
“근데 너는 왜 잡혀 온 거야?”
“내가 잡히고 싶어서 잡힌 거냐? 웃기는 소리 하고 있어.”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질문이긴 했다. 하지만 의구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너 나원명이랑 싸워서 진 거야?”
그렇다고 하기에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긴 한데.
“뭔 나원명이야? 걘 너 잡으러 갔잖아.”
그럼 더 이상하다.
나원명에게 져서 들어왔다면 이해가 간다. 그 녀석은 전투에 미친놈이니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최소 C-D급인 녀석들에게 졌다는 건데, 아무리 힘이 약한 직업이라고 해도 B급이 지는 건 말이 안 됐다.
“너 B급이라며. 어떻게 쫄따구들한테 지냐?”
생각해 보면 오름은 처음 만났을 때도 나원명의 부하들에게 맞아서 아이템을 가지고 돌아오지 못한 전적이 있었다.
“니가 그 수를 봤어야 해. 쪽수에는 못 당한다니까?”
“아무리 수가 많다고 해도 그렇지. 그리고 너. 센터에 대해 잘 아는 것도 그렇고 뭔가 수상한 게 한둘이 아닌데.”
“아, 뭔 말이 그렇게 많아? 조용히 하라니까!”
조용히 하라며 고함을 지르는 오름은 자신이 더 시끄럽게 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네가 더 시끄러워, 인마.
우리 사이에는 정막이 감돌았다. 입을 먼저 뗀 것은 오름이었다. 그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예상외의 것들이었다.
“…예전에 센터에 신세를 진 적이 있어. 그때 거기에서 기술도 좀 배웠지. 지난번에 해킹해서 정보 지운 것도 거기서 배운 거야.”
생각하지도 못한 오름의 과거였다.
“어, 근데 왜….”
그러다 문득 센터에 대해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던 오름의 발언들이 떠올랐다.
센터를 속일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거라고 말했던 오름이었다.
“센터 놈들이 그렇게 깨끗해 보여? 기술을 가르쳐 놓고 별짓을 다 시켰었어. 못 하겠다 그러면 협박하기나 하고 말이야.”
“센터장이 그랬다고?”
어린애한테 그럴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김지완이 직접 명령을 내렸는지 아닌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윗대가리 놈들이 그 짓거리를 시킨 거였으니 센터장이 몰랐을 리가 있겠어? 뭐, 나도 그동안 먹고 잘 곳 얻었으니 그거에 불만은 없지만.”
“그럼 센터를 속이고 뭘 하려고 하는 건데?”
“…센터가 내 약점을 쥐고 있어. 그걸 없애려면 김지완의 진실의 눈을 속여야 해. 그러면 나는 완전히 센터에서 벗어날 수 있어.”
터지기 전의 용암처럼 조용히 이글거리는 오름의 눈은 허공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그곳에 자신의 원수가 있기라도 하듯.
“어렸을 때부터 밖에 나와 살았던 거야?”
오름의 분노를 돌리기 위해 어렸을 때 일에 대해 질문했다. 여기에도 무슨 사연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등학생 되자마자 독립한 거니까 그리 어리지도 않았지.”
“엥? 너 지금 몇 살인데?”
고등학생 때 일을 예전이라고 말할 정도의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몇 살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너 나 만나자마자 급식이라고 하지 않았냐?”
“너 끽해 봐야 이제 20 아니야?”
“나 25살인데.”
“엥?!”
오름의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녀의 얼굴을 가까이가 쳐다봤다. 그러자 오름의 얼굴이 아닌 덕구의 얼굴이 나타나 기분을 수직 하강했다.
맞다, 지금 덕구 얼굴이지. 덕구 얼굴을 가까이 봐서 속이 울렁거렸다.
“너 진짜 동안이다.”
못 볼 것을 본 듯 고개를 다시 제자리로 돌리며 말했다. 오름은 그런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덕구의 얼굴은 존재 자체만으로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마법 같은 얼굴이었다.
찌푸리는 오름의 표정을 봐도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덕구 형님!”
오름이 입을 뗀 순간이었다. 그와 동시에 뒤에서 우릴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 얼어붙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곳에는 머리를 빡빡 밀어 인상이 험악해 보이는 녀석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역시 수다를 열심히 떨었던 게 문제였을까, 얼마 걷지 않아서 나타나는 덕구의 부하를 보고 우리는 멈칫했다.
당황한 표정을 최대한 숨기며 고개를 숙이자 부하 녀석이 다가오며 오름을 한 번, 나를 한 번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뒤에는…? 한설 그 새끼 아닙니까?”
아씨, 망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