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37
38화
-납치 (2)
덕구의 부하는 불신에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 맞아.”
오름은 당황하지 않은 척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이 새끼 데리고 어딜 가십니까?”
“신경 꺼, 새끼야! 원명 형님이 시키신 일이니까.”
“아, 그러십니까. 죄송합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오름은 마치 정말 덕구가 된 것처럼 능청스럽게 연기하기 시작했다.
하긴, 연기가 딸리면 사기 치는 일 따위 오래 해 먹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상한 곳에서 믿음직스러운 오름을 보며 한시름 놔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한시름 놓겠다 생각하자마자 오름은 대뜸 부하에게 질문을 던졌다.
“원명 형님 지금 어디 계시냐?”
오름의 뒤에 서서 그녀에게 있는 힘껏 눈치를 줬지만 오름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퍽-!
“왜 이렇게 꾸물대! 가만히 있어!”
오히려 가만히 있으라며 뒤통수를 때리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뒤통수를 맞는 것도 화나는데 반격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있어야 하는 상황에 이가 갈렸다.
두고 보자, 차오름.
“…원명 형님이야 항상 계시던 곳에 있지 않습니까?”
부하의 말을 듣고 오름이 작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원명이 있는 곳을 알아내는 것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게, 붙잡지 말고 빨리 자리를 뜨기나 할 것이지.
괜히 의심만 샀다.
부하의 눈빛이 왜 그걸 자기한테 묻고 있냐는 듯 의문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이번에 혀를 찬 것은 나였다.
들키기 직전이네, 잘하는 짓이다!
부하는 못 들은 것 같았으나 오름은 혀 차는 소리를 들었는지 내 발을 지그시 밟았다.
윽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있자, 오름은 침묵이 길어지지 않는 선에서 재빨리 부하의 말에 대답했다.
“그걸 내가 몰라서 묻냐? 아직 거기에 계시냐는 말이잖아!”
“아아…. 아까 선일 형님이 들어갔다 나오시는 것을 보니 거기 계시는 것 같습니다.”
선일이라고 한 사람은 아마 장발남일 것이다. 원명의 껌딱지로, 옛날부터 재수 없게 구는 놈이었다.
“선일이 놈은 어디로 갔는데?”
오름은 원명이 있는 곳을 알아내지 못해 초조한 듯 계속 질문을 던졌다.
여기서 더 물어보다가는 진짜 의심 살 것 같은데…. 덕구가 올지도 모르고.
“그야, 조타실로 가지 않으셨겠습니까? 근데 형님 오늘 좀 이상하십니다…?”
“그러니까….”
오름이 당황하며 말을 꺼내려고 할 때였다.
퍽!
나는 재빨리 녀석의 다리를 걷어찼다. 그리고 단단한 머리로 녀석의 얼굴을 내리쳤다.
“크헉!”
덕구의 부하 녀석은 내 공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뭐 하는 거야?”
말없이 냅다 녀석을 공격하자 오름이 당황한 듯했다.
오름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 대신 녀석의 얼굴을 몇 번 더 내려치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에서 피가 주륵 흘렀다. 물론 내 피는 아니었다. 녀석의 얼굴에서 나온 피였다.
으, 좀 기분 나쁜데.
“왜 갑자기 공격해?”
돌발 행동에 당황한 오름이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고 주춤대고 있었다. 아니면 머리에서 주륵 흐르는 피 때문일 수도 있었다.
좀 기괴할 것 같긴 하다.
“어쩔 수 없잖아, 들킬 뻔했으니까.”
오름도 선한 인간은 아니었기에 내 말에 설득당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새도 없이 쓰러진 부하 녀석을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질질 끌고 갔다.
그리고 그 위에 주변에서 주운 갖가지 쓰레기들로 덮어 버렸다. 이 정도 처리를 해놨으면 자세히 보지 않는 이상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오름은 연기로 어떻게든 수습을 해보려고 한 것 같았으나 의심하게 둘 바에야 그냥 해치우는 게 제일 나았다.
이놈이 수상한 점을 원명에게 그대로 일러바칠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사고는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제일이지.
“그래서 원명이 놈은 어디 있다는 거야? 그냥 장소를 말하면 좀 좋아?”
오름은 짜증을 내며 기절시킨 녀석을 욕했다.
나원명의 입장에서 보자면 잘한 행동이었지만 우리가 그런 것까지 고려할 만큼 마음이 넓은 사람들은 아니었다.
오름의 말에 동의하며 한숨을 푹 쉬었다.
“후, 지도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슬슬 지치기 시작하는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이 넓은 공간을 계속 돌아다니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애들이 기다릴 텐데….
애초에 오름이 덕구의 기억을 헷갈려 하지 않았으면 됐을 일이었다.
오름의 스킬이 어디까지 기억을 엿볼 수 있는 것인지 몰랐으나 과거를 엿본다고 해도 정보를 전부 알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덕구의 기억력도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았고.
“지도? 이런 여객선이면 안내도 같은 거 있지 않아?”
오름은 잘 생각했다는 듯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근데 그 안내도는 또 어딨는지 찾아봐야 하잖아.”
그래 놓곤 한숨을 푹 쉬더니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무슨 지가 거대 조직의 보스도 아니고 뭔 여객선을 빌려?!”
“야, 누가 들으니까 조용히 하라며.”
오름은 아까 전 핀잔을 주었던 것을 새까맣게 잊은 것인지 주변을 생각하지 않고 막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벌컥-
우리가 서 있던 곳의 문이 예고도 없이 열렸다.
우리는 깜짝 놀라 얼어 버렸고 그곳에서 나온 것은 조타실로 향했다고 말했던 장발남, 이선일이 있었다.
“…X발, 너 지금 형님 뒷담화 까는 거냐, 김덕구?”
그리고 녀석은 얼굴이 새빨개질 정도로 잔뜩 화가 나있는 상태였다.
문 주변을 살펴보니 ‘조타실’이라고 쓰여 있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방황하다 보니 어느새 조타실까지 오게 된 것이다.
생긴 게 다른 객실이랑 별다를 바 없어서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크게 떠들고 있었으니….
선일이 우리의 대화를 전부 듣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머리털이 삐쭉 곤두서는 것이 느껴졌다.
어디서부터 들은 거지? 덕구가 오름인 것을 모르는 걸 보니 처음부터 들은 건 아닌 것 같고.
이번엔 진짜로 망했다.
“김덕구, 할 말이 있으면 말해 보라고, 이 새끼야!!”
이선일이 화를 내며 한 대 때릴 듯이 오름에게 다가왔다.
“잘못 들었겠지! 내가 왜 형님 욕을 해!”
오름은 이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하며 녀석의 분노를 받아내고 있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딱 그짝이었다.
나는 그런 오름을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당했을 땐 홧병으로 죽는 줄 알았는데 남에게 하는 것을 보니 좀 고소하기도 했다.
제발 이선일이 그냥 넘어가 주길.
“그럼 이 새끼랑 시시덕거리며 대화 나눈 건 뭔데! 내가 못 들었을 거라고 생각해?”
선일이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침을 튀기면서까지 말하자 오름은 할 말이 없었는지 잠시 침묵했다.
“난 얘랑 시시덕거린 적 없는데.”
얼굴에 철판이라도 깔았는지 뻔뻔한 변명이었다. 하지만 선일이 그런 것에 넘어갈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너는 단단히 각오해야 할 거다. 지금 당장 형님한테 보고할 거니까!”
“무슨 개소리야!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뻔뻔한 오름의 말에 기가 차는지 선일이 헛웃음을 흘렸다.
아, 차오름이 저러는 거 진짜 빡치지.
“하, 너 이런 놈이었냐? 너는 예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누구는 마음에 든 줄 아냐? 형님이 오냐오냐해 주니까 같은 급인 줄 알고 있어!”
오름은 마치 자기 자신이 정말로 덕구라도 된 양 선일에게 화를 버럭 냈다.
“뭐? 너 아직도 내가 늦게 들어왔는데 간부가 된 거 신경 쓰고 있었냐? 형님한테 그렇게 처맞아 놓고 아직도 이 소리네? X발, 자꾸 봐주니까 눈에 뵈는 게 없어?!”
“나는 형님이 이 조직을 처음 만드셨을 때부터 있었고, 넌 그냥 굴러들어온 돌이잖아! 누가 누굴 봐주고 있는데!”
선일의 약점이었는지 눈썹을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오름이 이렇게 조직 내부의 일을 자세히 알고 있는 것도 그녀의 스킬 덕분일 것이다.
…잠깐만.
변신했던 상대의 과거를 볼 수 있는 거라면, 내 과거도 엿봤다는 얘기도 된다.
오름이 사기를 칠 때 나로 변한 적이 있으니까.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과거를 낱낱이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속이 울렁거렸다.
오름의 뒷모습을 바라볼수록 울렁거림이 심해지는 것 같았다. 더는 바라보기가 힘들어 고개를 돌려 바다를 바라봤다.
그러자 바다에 비친 달빛이 마치 카메라 셔터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왜 일반인인 주제에 던전에 들어가셨죠?’
‘형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습니까?’
환청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배멀미인지, 덕구 얼굴을 옆에서 계속 지켜봤던 탓인지 아까부터 계속 울렁거렸던 속도 더욱 심해졌다.
“우에엑-”
결국 참지 못하고 배 선채에 몸을 기댄 채 바다를 향해 냅다 토를 게워냈다.
“썅, 이 새끼는 왜 이래?”
“뭐, 뭐야!”
둘의 당황한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어떤 대꾸도 하지 못한 채 한 번 더 토를 게워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우엑-”
두 번 정도 토를 더 게워내자 속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 두 사람을 바라보자 더러운 것을 봤다는 눈빛과 마주할 수 있었다.
“배멀미 한번 더럽게 하네.”
선일이 더럽다는 듯 인상을 쓰며 나에게서 멀어졌다. 입가에 묻은 침을 닦아내고 싶었지만 묶여 있는 상태였기에 손이 자유롭지 못했다.
오름은 눈빛으로 내가 괜찮은지 살피고 있었으나 선일이 앞에 있었기에 도움의 손길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난 괜찮으니까 싸우던 거 마저 해.”
살짝 흐리멍덩해진 눈으로 신경 쓰지 말고 계속 싸우라고 말하자, 두 사람은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잠시 당황했던 선일과 오름은 내가 배멀미에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헛구역질을 시작한 나를 거들떠보지 않고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댔다.
퍽-!
쿠당탕!
“아, 씨…!”
선일은 오름을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 선빵을 날렸다.
싸우라고 해서 정말로 주먹다짐을 하라는 소리는 아니었는데….
오름은 그 주먹에 나가떨어져 문 쪽에 몸을 부딪히며 큰 소음을 냈다.
흐리멍덩했던 정신이 번쩍 뜨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 오름을 걱정하는 발언이나 행동을 할 수 없었기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오름은 아무리 생각해도 B급이라고 하기엔 너무 약골이었다.
선일은 오름을 한 대 치고 소리나게 뒤돌아 어딘가로 향했다.
“야! 어디 가!”
오름이 당황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선일을 불러 세웠지만 선일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선일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어서 당황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대답 없이 성큼성큼 어딘가로 향하는 녀석을 우리는 급하게 쫓아갔다.
선일에 비해 턱없이 다리 길이가 짧은 덕구의 신체 탓에 열심히 발을 놀리는 오름이었다.
오름이 붙잡고 있는 밧줄에 매여 있던 나도 마찬가지로 불편한 걸음으로 두 사람을 쫓아갔다.
욕이 새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얘들아, 속도 안 좋은데 천천히 좀 가자!
“아씨, 어디 가냐고!”
오름이 겨우 선일의 걸음을 따라잡고 그의 어깨를 잡아챘다. 선일은 잡힌 어깨를 금세 쳐냈다.
“형님한테 간다!”
어라, 나원명에게 간다고?
선일은 버럭 소리를 치고는 다시 성큼성큼 걸어갔다.
우리 둘은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이건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