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40
41화
-비둘기의 복주머니, 허공에 증발했습니다
[나원명을 피해 아이들을 구하고 배를 인천항으로 돌려라.]갑자기 머릿속에 맴도는 메시지를 듣고 나는 어리둥절했다.
이건 또 무슨 소리래?
“너 왜 그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인지한 오름이 내 눈앞에서 손바닥을 흔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오름의 정신 사나운 짓에도 태클을 걸 수가 없었다.
어떤 놈이 나한테 스킬을 건 거지?
내용을 보면 아무래도 나원명 패거리는 아니었다. 배신자가 있지 않은 이상 말이다.
아마 센터 쪽에서 뭔가 하기 위해 나를 이용하는 모양이었다.
“누가 나한테 스킬인지 뭔지를 건 모양인데.”
“뭐? 어떤 놈인데? 나원명 그 새끼인가!”
오름은 당장이라도 원명에게 달려가 싸움을 걸 태세로 흥분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진정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건 아닌 것 같고. 센터 쪽인가 본데?”
“센터가? 일찍도 쓴다. 근데 넌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데, 어떤 스킬을 쓴 거야?”
“몰라? 그냥 머릿속에서 계속 애들 구출하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데.”
“이상한 점은 없고?”
“그냥 머리가 좀 지끈거리는 정도?”
“그럼 그냥 무시해. 어차피 구할 생각이었잖아.”
오름은 ‘뭐야, 별것 아니었네.’라고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오름을 따라 일어나 사람들이 잘 오지 않을 것 같은 장소를 찾아 들어갔다.
“여기면 아무도 오지 않겠지.”
“나원명이 찾으러 오기 전에 빨리 해야 해.”
오름은 고개를 끄덕이고 아까와 마찬가지로 검지와 엄지를 마주치며 모습을 변신했다.
배불뚝이에 정리도 안 한 지저분한 머리를 가진 덕구의 외견에서 적당한 단발머리에 키가 크고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나원명의 외견으로 변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B급이라 그런지 10시간 제한 걸렸어. 그 안에 탈출해야 해.”
“그 시간이면 이미 장기가 털려 있거나 나원명에게 잡혀서 죽어 있거나 할걸.”
오름은 그건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변신 시간제한이 아니더라도 시간이 촉박했다.
나원명이 그 정도로 쓰러질 리가 없었다.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날 것이다. 이미 일어나 우리를 찾고 있는 중일 수도 있었다.
우리를 발견하기 전에 이곳을 탈출해야 했다.
게다가 아까 얼핏 듣기로 4시간 뒤에 거래가 이뤄진다고 했었다.
시계가 없어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으나 중국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나원명의 기억은?”
“잠깐 기다려 봐.”
오름은 덕구 때처럼 눈을 감고 기억을 읽기 시작했다.
“아! 아까 거기야. 어라? 열쇠 들고 어디로 가는 거지?”
오름은 실시간으로 원명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세하게 내뱉었다.
원명은 아까 우리와 함께 있었던 방에서 열쇠를 가지고 나와 조타실로 향한 모양이었다.
“젠장! 그 장발남한테 넘겨줬네! 어라? 잠시만…. 장발남 우리랑 마주치기 전에 조타실에 놓고 왔다!”
오름은 기억을 다 엿보고 눈을 번쩍 뜨더니 조타실로 향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나는 오름의 뒤를 따라가려고 했다.
“윽!”
[나원명을 피해 아이들을 구하고 배를 인천항으로 돌려라.]또다시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메시지 때문에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퍽퍽-
머리를 세게 몇 번 때리자 메시지는 그쳤다. 하지만 이대로 메시지가 멈출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령을 따를 때까지 말이다.
머리를 세차게 때리는 모습을 보고 오름이 이상한 걸 봤다는 듯이 인상을 썼다.
“너 진짜 왜 그래? 머릿속에 울린다는 메시지 때문에 그러는 거야?”
“응, 뭐 신경 쓸 건 아니야. 가자.”
“아니, 멈춰봐.”
머리를 한 번 흔들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했다. 그런데 오름이 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러고 나서 내 머리에 대고 손을 올렸다.
“거짓을 진실로. 거짓 진술. 너는 이제 머리가 아프지 않을 거야.”
오름이 말하자마자 머리가 맑아지면서 지끈거리던 것이 사라져 버렸다. 메시지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오름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전에 먼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야, 너! 다른 스킬도 있었잖아!”
“씨, 도와줘도 지랄이네!”
방금 ‘거짓 진술’을 쓰기 전 ‘거짓을 진실로’라는 스킬을 사용했다. 아마 직업 스킬인 모양이다.
대충 보니 ‘거짓 진술’의 확률을 높여주는 스킬인 것 같았다.
스킬을 숨긴 것을 보니 확실한 때 사용하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마치 내 소리 전달 스킬처럼 말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이런 스킬이 있는데도 말하지 않고 숨겼다는 것이다.
“그건 고마운데 그런 스킬이 있었으면 나한테 쓰면 안 되지! 애들한테 쓰거나 나원명한테 써야 할 거 아냐!”
오름은 트레이드마크라고 해도 좋을 인상 쓰기를 시전했다.
“그냥 쓰지 말 걸 그랬어.”
고개를 홱 돌리는 오름을 보고 뜨끔했다.
“아니, 너 그 스킬 쿨타임도 길 거 아니야. 그렇게 중요한 걸 왜 나한테 쓰냐는 거지.”
“어차피 열쇠만 찾으면 탈출할 수 있잖아! 자꾸 아프다고 징징대서 탈출에 방해 될까 봐 써줬더니 적반하장이네?”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도와준 것이 맞았으니 내가 화낼 처지는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싸우는 것보다 탈출이 우선이었다.
우리는 말없이 선일이 열쇠를 두고 갔다는 조타실에 도착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당연히 조타실에 선일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좋아, 열쇠만 가지고 빨리 나오자.”
내가 말하자 오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름은 열쇠가 어딨는지 알고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안으로 들어가 작은 탁상 쪽으로 걸어갔다.
작고 새것처럼 반짝이는 열쇠가 탁상 위에 놓여 있었다.
“바보들 아냐, 중요한 거면 잘 들고 다녀야지.”
오름이 열쇠를 집어 들며 비웃듯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들이 갇혀 있는 장소로 다시 돌아갔다. 오면서 다행히 마주친 사람들은 없었다.
오히려 그 점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고 문을 활짝 열었다.
“어! 언니 오빠다!!”
“와아!”
“얘들아, 쉿!”
아이들은 다행히 무사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여섯 명 되는 아이들이 한꺼번에 소리치니 꽤 시끌시끌했다.
입술에 검지를 대고 조심스럽게 행동하자 아이들은 나를 따라하며 목소리를 죽였다.
“이제 탈출해야 해. 들키지 않게 조심히 가자.”
아이들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름도 별말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
구명보트가 있는 장소는 오직 오름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앞장서서 우리를 인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갑판이 나왔고, 오름은 선측 옆에 나 있는 계단 위로 올라갔다.
그곳에 도착한 나는 어리둥절했다.
“구명보트가 어디 있어?”
길게 나 있는 복도 옆에는 구명보트 대신 커다란 캡슐 같은 것이 몇 개 달려 있었다. 게다가 그 캡슐은 쇠사슬로 칭칭 감겨 있었다.
분명 오름이 말하길 원명이 사슬로 구명보트를 못 쓰게 막아놨다고 했으니 오름이 말한 구명보트는 이 캡슐이라는 소리였다.
“너 배 한 번도 안 타봤어? 이게 그거잖아. 정확히 말하면 구명 뗏목이긴 한데.”
오름은 캡슐을 막고 있는 쇠사슬을 열쇠로 풀어내 바다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익숙하다는 듯이 캡슐 아래에 있던 안전핀을 빼내고 레버를 끌어당겼다.
그러자 캡슐이 바다로 쑥하고 빠졌다. 배 아래를 보니 주황색의 천이 바다 물결에 따라 흐물거리고 있었다.
“배 타본 건 이번이 처음인데. 타봤어도 이런 게 있는 줄 몰랐을 거 같아. 넌 어떻게 이렇게 잘 알아?”
“그냥…. 옛날에 좀.”
오름은 말하기 싫었는지 말을 얼버무렸다.
더 이상 오름의 과거를 캐묻지 않고 그녀가 하는 행동을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다.
오름이 구명 뗏목에 연결되어 있던 밧줄을 힘껏 당기자 완전히 형태를 갖춘 구명 뗏목이 되었다.
“이제 다 됐어! 아래로 내려가면 사다리가 있을 거야. 그걸 타고 내려가면 돼!”
오름은 밝은 얼굴로 앞장서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오름의 말대로 사다리는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사다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와, 정말 나랑 똑같이 생겼잖아?”
사다리 앞에는 원명과 그 부하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감히 형님 행세를 해?! 게다가 형님과 내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했겠다!”
화나서 우리에게 달려들 것처럼 씩씩대는 것은 어디 갔었던 것인지 모를 덕구였다.
덕구나 선일 말고도 사람들이 여기 다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부하들이 득시글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데 사람을 마주치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빨리 정신을 차릴 줄은 몰랐다. 게다가 우리가 올 곳을 미리 예측하고 기다릴 줄은….
“꽤 아팠어.”
원명이 오른쪽 볼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아팠다고 말하는 것치고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저렇게까지 멀쩡하니 조금 억울한데.
원명이 씩 웃어 보이며 한 발자국 다가왔다. 원명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던 오름은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우리 귀한 아이들을 어디로 데려가려고?”
원명은 그런 오름의 팔을 낚아챘다.
“우와, 나 이렇게 생겼구나. 진짜 신기하다.”
오름은 팔을 뿌리치려고 했으나 원명의 악력에 제대로 반항조차 하지 못했다.
“속 내용물까지는 카피 못 하는 모양이네.”
퍽-!
“윽!!”
비릿하게 웃는 원명의 표정이 싸늘하다고 생각하자마자 오름이 원명에게 맞고 떨어져 나갔다.
이번이 두 번째였다.
오름이 원명에게 맞은 횟수가 말이다.
“히익-!”
“흐윽, 으아앙!!”
원명의 폭력에 결국 아이들의 울음이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어라, 애들이 울잖아. 겨우 진정시켜 놨었는데. 어떻게 책임질래?”
원명은 마치 오름의 잘못인 듯 인상을 찌푸렸다. 오름은 맞은 배를 부여잡고 원명을 사납게 노려봤다.
“그래, 애들이 울음을 그칠 때까지 맞는 거야. 애들을 때려서 상품가치를 떨어트릴 수는 없으니까, 알겠지?”
말투만 들으면 한없이 상냥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물은 역겹기 그지없었다.
오름은 원명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살벌한 눈빛으로 그를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앙다문 입술에는 차마 닦지 못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유 없는 폭력이 시작됐다. 마치 그들은 이게 당연한 일인 양 죄책감도 없었다.
그게 너무 짜증났다. 그들의 사고방식과 행동들이.
오름은 조금의 신음도 흘리지 않았다. 신음을 흘리는 것은 그들에게 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오름이 맞는 모습을 보자 과거의 내 자신이 떠올랐다.
더 이상 그 꼴을 견딜 수 없어 그 앞을 막아서기 위해 몸을 내던졌다.
퍽!
오름에게 향하던 주먹을 대신 맞았다.
알싸한 고통이 얼굴에 퍼져 나갔다. 주먹을 지나쳐 원명을 사납게 노려봤다.
내가 맞았던 것은 아까 갚았으니 이제 오름이 당했던 것을 갚아줄 때였다.
나원명이 존재하는 이상 어차피 얌전히 탈출하기는 글렀다.
가장 얌전히 탈출하는 방법은 나원명을 쓰러트리는 일이었다.
빨리 깨닫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었다.
사실 무의식중에 나원명과의 전투를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두려움이 컸다.
악마 같은 나원명의 폭력에 또다시 노출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그래서 다시 그 캄캄했던 과거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떨쳐내야 할 때였다.
내 실력이 어디까지 통하는지 확인도 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원명을 쓰러트린다면 그제야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강하다는 사실을.
앞을 가로막은 것이 우습다는 듯 원명은 주먹을 들어 올렸고, 나 또한 주먹을 피가 나도록 쥐었다.
“그만!!!”
그때 작은 인형이 튀어나와 앞을 가렸다.
두 팔을 쭉 뻗어 나와 오름의 앞을 당당히 막아서고 있는 것은 세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