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41
42화
-각자의 역할
세린은 원명을 노려보고 있었다.
“세린아! 위험해!”
당황하며 애타게 불렀지만 세린이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런다고 잔인한 성정의 원명이 오름에게 공격하는 것을 멈출 리가 없었다. 어린애라고 봐줄 녀석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웬걸.
“세, 세린아. 비켜야지?”
원명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꽉 쥐고 있던 주먹을 휘두르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이었다.
“사람을 때리면 안 돼!”
“세린아, 그 언니 감싸고 있으면 다쳐.”
원명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지만 억지로 미소 짓고 있는 것이 티가 났다.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뭐지? 귀한 상품이라서 망설이는 건가? 아니면 센터장의 딸이라서 귀빈 대접?
이유를 몰라 어안이 벙벙했다. 천하의 나원명이 고작 어린애 한 명 때문에 쩔쩔매고 있는 모습은 인지부조화가 일어날 정도였다.
“사람을 해치는 삼촌은 싫어.”
“나, 나는 나쁜 짓을 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삼촌이라고?
세린이는 원명을 알고 있던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원명의 반응을 보니 실제로 서로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람.
“세린아, 저 사람 아는 사람이야?”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세린에게 질문했다.
“옛날에 아빠랑 같이 일했던 삼촌이야.”
하, 저 나원명이 센터에서 일을 했다고?
입이 떡 벌어졌다. 나조차 몰랐던 사실이었다.
내가 알고 지내던 시간 동안 나원명은 언제나 어둠의 세계에 몸을 담고 있었다.
적어도 7년 전 일이라는 소리였다.
어라, 그럼 왜 나원명의 인상착의를 김지완이 몰랐지?
“저 애새끼가 감히 형님이 제일 싫어하는 말을!!”
세린의 말에 흥분한 덕구가 손을 걷어 올리며 다가왔다.
퍽-!
“으헉!”
하지만 덕구는 손을 휘두르는 일 없이 바닥에 처박혔다. 덕구가 세린에게 다가가기 전에 원명이 발로 차 버린 것이다.
“손대지 마.”
원명의 목소리는 이제껏 들었던 목소리 중 가장 싸늘하고 차가웠다.
“크흑, 죄, 죄송합니다!”
덕구는 거하게 걷어차였음에도 벌떡 일어나 원명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의문이 들었다.
어차피 세린을 납치한 이유도 결국 거래를 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아이들에게 상처를 내면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 해도 세린에게 저렇게까지 저자세로 나올 필요가 있나 싶었다.
“나 미워하지 마, 세린아. 그럼 마음이 아파.”
“켁.”
눈물을 그렁거리는 원명을 보고 사레가 들렸다.
“윽, 징그러 이 미친놈아!”
원명의 한도가 넘는 약한 척을 보고 소름이 돋는 것을 참지 못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잽싸게 세린의 앞을 막았다. 원명에게 잡혀 있다가는 탈출이고 뭐고 아무것도 못 할 것이다.
“세린아, 애들 데리고 사다리 타고 내려가.”
원명을 바라본 채로 세린에게 말했다. 세린이는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며 애들을 한 명씩 사다리 아래로 내려보내기 시작했다.
“혀, 형님! 저 애…. 아니, 세린이가 애들을 탈출시키는데요!”
덕구는 세린이 애들을 구명뗏목으로 내려보내는 모습을 보고 발을 동동 굴렀다.
원명이 아무 조취도 취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명은 나를 싸늘히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세린이가 왜 네 말을 듣고 있지?”
날카로운 눈빛은 사람 하나 죽이겠다는 듯 싸늘했다. 그사이 아이들은 무사히 모두 구명뗏목에 탈 수 있었다.
남은 것은 세린이와 나, 일어나질 못하고 있는 오름 셋뿐이었다.
“세린아, 너도 빨리 내려가.”
“싫어! 오빠도 내려가야 나도 내려가!”
고집을 피우는 것도 이해가 갔다. 오름은 원명의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지고, 나는 원명보다 턱없이 약해 보였으니까.
못미더운 것이다.
고집을 피우며 버팅기는 세린을 보고 오름은 몸을 힘겹게 일으켰다.
“…꼬맹이는 어른들 일에 끼어드는 거 아니야.”
“나 꼬맹이 아니야!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면서!”
세린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오름의 옷자락을 부여잡았다.
그때 만물의 소리가 마음대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나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거야. 괜히 살려 달라고 빌어서 언니랑 오빠가….’
세린이의 속마음이었다.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속마음을 들으니 확실해졌다.
지난번에 원명의 사무실에 쳐들어갔을 때 들었던 목소리였다.
살려 달라고 말했던 것이 덕구가 아니라 세린이었던 것이다.
아마 내가 있었을 그 당시에 세린이도 납치됐던 모양이다.
만약 주변을 제대로 살펴봤더라면 세린이도, 아이들도 바다로 나오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세린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저 새끼, 아니 삼촌이 우리한테 화난 게 있어서 저러는 거야. 그리고 우린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또래에 비해 많이 어른스러운 세린이를 보자니 마음이 욱신거렸다.
센터장은 굉장히 바쁜 자리였다. 아마 집에 들어가 있는 일수보다 밖에 나와 있는 일수가 훨씬 많겠지.
게다가 김지완은 아내가 없었다. 애초에 결혼했다는 정보조차 없었다.
세린이가 어떻게 자라왔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는 있었다.
외로움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었다. 어린애가 어른스러워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싫어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걱정하는 게 뭐 어때서! 나 다 컸어!”
세린이는 악착같이 자리를 떠나지 않으려고 했다. 오름이 세린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어린애면 어린애답게 굴어.”
“난….”
세린의 눈을 쳐다봤다. 세린의 눈에는 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툭 치면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내가 필요 없어지면 어떡하지?’
또다시 세린의 속마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 마음을 읽고 있다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필사적인 애한테 애들을 달래는 역할을 맡기고 사라졌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한숨을 쉬고 세린의 손을 잡고 사다리로 향했다.
“너 알고 보니 완전 겁쟁이구나? 딱히 뭘 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러니까 얼른 쟤네들이랑 같이 부둥켜서 울고 있어.”
“으아앙!”
등을 떠밀어주자 그제야 세린이는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그것도 배 전체가 떠나가라 엉엉 울면서.
휙-!
“윽.”
세린이가 사다리를 내려가자마자 원명의 발이 날아왔다. 급히 팔을 들어 원명의 공격을 받아냈지만 그럼에도 나오는 신음은 막지 못했다.
그만큼 원명의 공격은 강했다. 괜히 B급이 아니었다.
심지어 원명은 스킬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누가 세린이를 울려도 된다고 했지?”
원명의 눈에는 불꽃이 튀었다. 마치 자기 자식에게 해코지한 범인을 보는 부모처럼.
“내가 울렸냐?”
짜증이 치밀어 올라 사납게 대꾸했다. 그리고 똑같이 원명에게 발차기를 날렸다. 하지만 원명은 우습다는 듯이 가볍게 피해버렸다.
역시 맨몸으로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다못해 리코더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무기란 무기는 다 빼앗긴 상태라 최악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하, 바드가 악기도 없이 어떻게 날 상대하려고 그러지?”
이미 바드인 거 알고 있었구나?
하긴 몸수색을 해서 리코더가 나왔는데 바드인 것을 모르는 것도 웃긴 일이다.
원명은 내 실력을 다 파악한 듯 비웃으며 주먹을 내질렀다. 나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원명의 공격을 피하며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아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 아까 구명뗏목을 내리기 위해 당겼던 레버가 굴러다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가느다랗고 긴 것이, 무기로 이용해도 좋을 것 같았다.
투둑-
레버를 강한 힘으로 떼어내 손에 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이게 악기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버프야 목소리로도 줄 수가 있었지만 원명이 버프를 걸 시간 따위 내주지 않을 게 뻔했다.
하지만 버프를 못 써도 악기가 있으면 악기 공격 스킬을 사용할 수가 있었다.
리코더가 이렇게 그리웠던 적이 없었다.
잠깐…. 무생물한테도 소리 전달이 통하려나?
밑져야 본전이다.
더 재볼 것도 없이 바로 레버에 대고 스킬을 사용했다.
“너는 악기다!”
띠링.
[스킬을 1명의 존재에게 사용하셨습니다. 형태 변화의 지속시간은 6시간입니다.]“좋았어!”
이게 되네.
점점 악기의 형태로 변화하고 있는 레버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말만 악기처럼 될 줄 알았는데, 실제로 모양이 변화하고 있었다.
리코더와 비슷한 관악기 형태가 되었다. 굳이 따지자면 플롯에 가까워 보이는 형태였다.
휘익-
입을 대서 불러보니 바람이 새는 소리가 났다.
소리 전달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형태 변화에 대해서는 최대한 ‘내가 바라는 효과’에 맞춰 변형을 일으키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이런 식으로 완벽하지 못한 물건이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괜찮았다. 쓸모없어져 버려졌을 운명인 레버를 새롭게 탄생시켰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게다가 나는 버프보다는 악기 공격이 절실히 필요했으니 오히려 좋았다.
“뭔가 이상한 스킬을 쓴 모양인데.”
원명이 이상한 형태가 되어 버린 레버를 보고 비웃었다. 그래봤자 자신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을 거라는 거겠지.
오름도 겨우 눈을 뜨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너도 숨기고 있었네, 스킬.”
오름의 눈을 피해 원명의 앞에 섰다. 피떡이 됐으면서 할 말은 다 하는 오름을 보며 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원명을 쓰러트리는 일이었다.
뒤에 있는 부하들도 숫자가 만만치 않아 곤란했지만 그 우두머리인 원명을 쓰러트리면 모두 한풀 기가 꺾일 것이다.
“각오하라고, 나원명.”
“하하, 무섭네.”
원명은 방어태세를 취할 시간도 주지 않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마치 복싱을 하듯 잽을 날려 턱을 강하게 쳤다.
퍽-
턱이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나원명의 주특기였다. 저 기술에 얼마나 많이 턱이 나갔는지 모른다. 옛날의 나였다면 한 대 맞고 기절했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빡-!
턱을 내주고 바로 원명의 팔에 레버를 휘둘렀다.
그러자 공격이 들어갔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공격에 성공하셨습니다! 공격력이 10% 증가합니다. 공격 시 상대의 방어력을 10% 무시합니다.]녀석은 팔을 털어 보이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쳐다봤지만 저 표정은 곧 일그러질 것이다.
원명의 팔을 연속해서 공격했다. 무기를 휘두르는 것이 전투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기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확실했다.
녀석은 팔로 방어태세를 취하며 공격을 전부 막아냈다.
하지만.
퍽-!!
띠링.
[공격력과 공격속도가 50% 증가합니다. 공격 시 상대의 방어력을 50% 무시합니다.]점점 빨라지고 강해지는 공격에 원명은 얼굴을 찌푸렸다.
거봐, 곧 일그러질 거라고 했지.
눈을 빛내며 공격을 가하고 있는 손을 더욱 빨리했다. 녀석이 스킬의 효과를 눈치채기 전에 끝내야 했다.
“공격이 점점 묵직해지는 걸 보니 중첩 효과가 있나 보군. 믿는 구석이 있긴 했네?”
원명 녀석의 싫은 점이었다. 눈치가 귀신같이 빠르다는 것.
혀를 차고 레버를 높이 들었다. 그러자 더 이상 원명은 공격을 손으로 받아내지 않았다. 팔을 털어내는 원명의 옷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헤져 있었다.
“내가 만만히 보고 있었다는 거 인정할게.”
“그걸 이제 알았냐? 너만 만만히 보고 있었어. 니 부하들은 알아서 사리고 있는 거 안 보여?”
지지않고 대꾸하자 원명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진짜 싸가지 없어. 몇 년을 봐도 변하질 않네.”
“7년을 봤는데 날 그렇게 모르냐.”
원명은 웃음을 그쳤다. 그리고 표정을 굳히더니 자세를 아까와 달리했다.
분위기가 달라졌다. 녀석은 복싱을 하듯이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특별히 스킬로 박살내 줄게.”
녀석이 스킬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