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43
44화
-탈출
쿵-
“귀찮게 하고 있네.”
“한설!!”
오름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원명이 손을 털며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확인 사살하듯 배를 발로 찼다.
그대로 멀리 날아가 버린 몸뚱아리에서는 신음 하나 흘러나오지 않았다.
아니, 일부러 내지 않았다.
원명이 멀리 떨어지는 것을 노린 것이었다.
아마 원명의 ‘이미지 트레이닝’이라는 스킬은 특정 범위 안에 있으면 행동에 제한이 걸리는 스킬일 것이다.
그렇기에 원명이 그렇게 끈질기게 달라붙은 것이겠지.
명치를 맞을 때 정말 눈앞이 새까매지고 죽을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내가 완전히 기절한 것이라 생각한 원명은 뒤를 돌아 구명뗏목으로 내려가는 사다리를 바라봤다.
원명이 열심히 싸울 동안 그의 부하들은 손을 대지 않고 지켜만 보고 있었다.
원명은 항상 그랬다.
자신이 싸우는 것에 끼어드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나는 그가 싸움에 끼어드는 것을 왜 싫어하는지 알고 있었다.
부하들을 못 믿는 거다.
자신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부하들의 실력과 그들의 충성을.
“언젠가 그 지랄 맞은 성격 때문에 망할 거다.”
원명이 사다리를 타고 아이들에게 내려가려고 할 때 인벤토리에서 소환석을 꺼내 사용했다.
파삭-
띠링.
[소환석을 사용하셨습니다.사용 횟수: 0]
아까도 말했듯이 같은 B급이라고 해도 몬스터와 헌터에게는 큰 차이가 있었다.
울파란이 나원명을 이겨줄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없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될 것이었다. B급 몬스터를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크르르-
울파란은 소환되자마자 적이 누군지 눈치채고 원명에게 달려들었다.
“뭐야?”
원명은 갑자기 튀어나온 울파란에도 침착하게 대응하며 주먹을 날렸다.
퍽-
컹-!!
울파란은 신음을 흘리며 주먹에 나가떨어졌고 그 틈을 타 원명에게 레버를 휘둘렀다.
울파란에게 신경이 쏠려 있던 원명은 기습 공격에 허리를 그대로 내줄 수밖에 없었고 신음을 흘렸다.
“윽, …이 새끼. 기절한 척하고 있었구나.”
“형님! 괜찮으십니까!”
원명이 허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부하들이 소리쳤다. 원명은 사납게 부하들을 노려봤다.
“끼어들지 마!”
원명에게 달려가려던 부하들은 움찔거리며 자리에 멈춰 섰다. 역시 녀석의 허세는 알아줘야 했다.
울파란은 원명이 방심한 틈을 타 쉴 새 없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원명은 괜히 한 조직의 우두머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 손쉽게 울파란을 제압하고 말았다.
깨갱-!
띠링.
[울파란이 제압되어 소멸됩니다.]“이렇게 빨리?”
메시지가 울리더니 금세 울파란은 푸른빛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원명이 다른 B급 헌터들에 비해 월등히 강하다는 사실도 한몫하기는 했다.
그래도 울파란이 싸워주는 그 잠깐 동안 전투태세를 갖출 수 있었다.
저번에 얻은 아이템을 사용해서 소리 전달 스킬을 한 번 더 사용할 수 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녀석이 눈치채기 전에 상태창을 몰래 띄워 카리스마 스탯을 살폈다.
상태창을 본다고 카리스마 스탯이 달라지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테지만….
…어라?
이름: 한 설 (Lv.2)
직업: 소리 전달자
등급: C
칭호: ???
힘: 25
체력: 25
민첩: 20
지혜: 10
카리스마: 9
매력: 2
왜 기적이 일어났지?
분명 레벨을 올리고 나서 힘에 4스탯을 투자하고 매력에 4, 카리스마에 2를 투자했었다.
그런데 지금 정확히 30 스탯이 올라 있었다.
혹시 아까 머릿속에서 울려댔던 메시지와 관련이 있는 건가?
카리스마도 2나 올라서 9가 됐다. 하지만 아쉽게도 스탯이 모자랐다. 스탯이 하나만 더 있었다면…!
잠깐, 카리스마 스탯을 올려주는 아이템?
머릿속에 번뜩 떠오르는 아이템이 있었다.
사기당하고 영영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아이템, 거대 거미 아카란의 심장이.
심지어 지금 그 아이템을 들고 튀었던 사기꾼와 함께 있었다.
“야, 차오름. 너 그 아이템 아직 있지?”
“뭐?”
오름은 몸을 겨우 가누고 있는 와중에도 무슨 소리냐는 듯이 되물었다.
“원래 내 아이템, ‘거대 거미 아카란의 심장’ 말이야! 설마 며칠 지났다고 홀랑 쓰진 않았겠지? 그거 빨리 내놔.”
“하, 내가 왜…!”
오름은 어이없다는 듯 인상을 팍 썼다.
“너 나원명 이길 수 있어? 다 같이 죽고 싶은 거 아니면 빨리.”
“씨….”
원래 자기 물건도 아니었으면서 마치 자신의 물건을 빼앗기는 사람처럼 온 힘을 다해 아쉬워하는 오름을 보며 헛웃음이 나왔다.
지금이 위급한 상황만 아니었다면 또 대판 싸웠을 것이다.
오름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빠르게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꺼내 건넸다.
원명은 우리가 뭔가를 하려는 것을 눈치채고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혀왔다.
하지만 행동은 이쪽이 좀 더 빨랐다.
[아이템이 사용되셨습니다.] [영구적으로 힘과 카리스마가 1씩 올라갑니다.] [아이템의 효과로 ‘소리 전달’의 재사용 시간이 사라집니다.] [스킬의 쿨타임을 조건 없이 초기화할 수 있습니다. 사용 횟수: 1/2]“스킬 ‘금강불괴’를 깨부술 수 있는 힘을!”
아이템 2개를 동시에 사용해 버린 나는 소리 전달에게 매달리듯 외쳤다.
띠링.
[스킬이 사용되셨습니다.] [스킬을 1명의 존재에게 사용하셨습니다. 형태 변화의 지속시간은 1분입니다.]1분.
스킬이 좋을수록, 상대 등급이 높을수록, 능력치를 훨씬 웃도는 형태변화를 원할수록 소리 전달의 지속시간이 짧아졌다.
D급이었을 때 S급 몬스터를 30초밖에 붙잡아 두지 못했던 것이 떠올랐다.
지금은 C급이었고 원명의 등급이 B급이었는데도 겨우 1분밖에 되지 않았다.
금강불괴가 그만큼 엄청난 스킬이라는 거겠지.
레버를 단단히 잡았다.
변화는 느껴졌다. 온몸에 힘이 넘쳤다. 원명 정도는 순살시킬 수 있을 만한 힘이 느껴졌다.
급격한 변화에 몸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저번처럼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무기를 망가트려 버리지 않도록 힘을 조절했다.
“너…. 무, 무슨 스킬을 쓴 거야?”
오름이 변화를 느낀 것인지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꽤나 놀란 눈치였다.
“…말하는 대로 이뤄주는 스킬인가? 그래 봤자 네 수준에서는 몇 초가 전부겠지.”
원명이 상황 파악을 하며 달려들었다.
말하는 대로 이뤄주는 스킬 같은 것은 아니었지만,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었다.
스킬 지속시간이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 또한 얼추 맞았다.
역시 방심할 수 없는 상대였다.
“어디 금강불괴를 깰 수 있으면 깨보시지!”
광인처럼 달려드는 원명은 상대방이 강해지든 말든 별로 상관없어 보였다.
그래, 무려 금강불괴를 얻은 사내인데 상대가 강해졌다고 주춤대는 것이 오히려 웃긴 일이었다.
소리 전달로 금강불괴를 아예 사용 못 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저 높이 치솟아 올라있는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나원명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스킬들을 전부 보는 앞에서 박살내 주고 싶었다.
다시는 건들 생각도 하지 못하게.
얼굴로 날아드는 주먹을 가볍게 피해준 후 레버를 원명의 머리에 후려갈겼다.
퍼억-!
쾅–!!!
“크학-!”
벽에 부딪친 원명의 입에서는 피가 섞인 침이 흘렀다. 아무리 공격해도 인상만 조금 쓰던 원명이 단 한 방에 피를 토하며 날아가 버린 것이다.
“형님!!”
이번에야말로 부하 녀석들은 기겁을 하며 원명에게로 달려가려 했다.
“꼼짝 마. 네 녀석들은 한 발자국도 못 움직여.”
오름이 피투성이인 채로 부하 녀석들의 앞을 막았다. 힘도 약한 녀석이 뭘 하려고 하는지 몰랐지만 녀석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스킬이 종료되기 전에 원명 녀석의 숨통을 끊어놔야 했다.
철퍽-!
오름은 상당한 수의 이상한 액체를 녀석들에게 흩뿌리기 시작했다.
“윽, 이게 뭐야!”
“뭐야! 끈적거려! 몸이 안 움직이잖아!!”
“이걸로 얘네들은 한동안 못 움직일 거야! 저거 비싼 거니까 나중에 청구한다!!”
오름이 나에게 소리쳤다.
그 말을 들으며 피식 웃었다. 오름다웠다.
천천히 나원명에게 다가갔다.
비교 안 될 정도로 빨라진 공격 속도로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원명을 무자비하게 후려쳤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녀석이 정신을 못 차릴 때까지 계속해서 후려쳤다.
퍽, 퍼벅-!
“으어….”
녀석의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듯했으나 작은 신음밖에 흘리지 못했다.
“금강불괴, 무시무시한 스킬인 것은 잘 알았어. 하지만 내 스킬이 한 수 위인 것 같네.”
말을 마치자마자 원명은 고개를 떨궜다.
기절한 것이다.
“형님!!!!”
꼼짝달싹 못 하는 덕구과 선일의 목소리에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띠링.
[스킬의 적용이 해제되었습니다. 재사용 시간: 3일]타이밍 맞게 소리 전달 스킬도 끝이 났다.
그런데 스킬이 끝나고도 몸에서 연기가 계속 났다. 마치 몸이 고장 난 것처럼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윽….”
과부하가 온 듯했다.
몸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능력치 차이가 심했던 모양이다.
아니면 신체를 이 정도까지 변하게 했던 적이 거의 없어서 이제껏 몰랐던 리스크였을 수도 있다.
“뭐야, 너 왜 그래.”
오름이 이상하다는 듯 나를 부축하려 했다.
이거 좀 위험한데.
다리에 힘이 풀려 무너지듯 앞으로 고꾸라졌다.
“야! 한설!!”
모든 게 끝났고 이제 사다리를 타고 탈출하기만 하면 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눈치도 없이 레벨이 올랐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몬스터도 아니고 헌터와 싸웠는데 레벨이 오르다니….
기뻐서 날뛰든지 놀라서 날뛰든지 어떤 반응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몸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씨, 얘 왜 이래. 말하는 대로 이뤄주는 스킬이라더니, 리스크가 너무 크잖아!”
오름은 자신도 온전치 못한 몸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질질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뭐야, 겉보기에는 말라 보이는데 왤케 무거워!”
등에 나를 겨우 업은 오름은 느릿하게 사다리를 하나씩 내려갔다.
“쿨럭, …좀 달라 보이지?”
잘 움직이지 않는 입으로 한 문장을 겨우 내뱉었다. 오름은 거기에 어떤 대답도 하지 않다가 툭 한 마디 했다.
“그래 이 멍청아!”
겨우 구명뗏목 위에 올랐다. 오름은 안에 있던 구조물품 가방을 뒤지더니 칼 같은 것을 꺼내 연결되어 있던 줄을 끊어냈다.
뚝.
줄이 끊어지고, 오름이 바다로 줄을 던지려고 할 때였다.
턱-!
“……!!”
나원명의 손이 선체에서 튀어나와 끊어낸 줄을 잡아챘다.
“…못…가.”
“나원명!”
원명의 신음처럼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다.
원명은 흰자만 보인 채 아슬아슬하게 밧줄을 잡고 있었다.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굉장한 집착이었다.
열이 올라 정신이 없는 상태임에도 원명의 강한 집념에 소름이 돋았다.
“…하! 다 죽어가는 주제에 입만 살았네!”
콰직!
하지만 오름은 원명이 우습다는 듯 그의 손을 발로 짓이겨 버렸다.
그 반동으로 원명은 줄을 놓치고 말았고, 선체에 몸을 축 늘어진 채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겨우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탈출 한 번 더럽게 어렵네.
아무리 B급이라지만 모두 원명 같지는 않다.
미친 것 같은 정신력과 전투 실력. 그는 B급 중에서도 가장 A급에 가까운 녀석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A급들도 나원명한테 질지도….
“헉, 헉.”
오름도 많이 지쳤는지 원명의 손을 발로 짓이겨 놓고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배는 점점 멀어져 갔다.
“누가 저 새끼들 좀 잡아!”
“쟤네가 얼마짜린 줄 알아!”
“형님 챙겨!!”
멀리서 부하들의 우왕좌왕거리는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하하, X신들. 반나절은 아무것도 못 할 거다!”
통쾌하다는 듯이 오름이 웃어제끼며 드러누웠다. 하지만 금방 다시 일어나 구조물품 가방을 뒤지더니 노를 꺼내 열심히 젓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불안했던 모양이다.
오름은 배가 점점 작아져 사라질 때까지 노를 젓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배가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자, 다음으로 분주히 바다에 신호탄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 일까지 끝나자 안심이 됐는지 한숨 돌리기 시작했다.
“어, 언니이…. 오빠아….”
오름이 한숨을 쉬고 몸을 늘어트리고 있을 때 아이들이 울먹이며 다가왔다.
그제야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세린이를 포함한 아이들은 모두 눈이 새빨개진 채로 우리를 껴안았다.
말을 할 기운도 없었던 나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대로 뒀다. 열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얘들아, 많이 무서웠지? 이제 괜찮아. 우린 안전해.”
오름은 아이들을 부둥켜 껴안아 주면서 안심시키기 시작했다.
“으아아앙!!”
그 말에 아이들은 다시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안도의 눈물인가 싶었다.
“하지만 언니 오빠가…!”
아이들의 울음은 안도의 눈물이 아니었다. 다친 우리를 걱정한 눈물이었다.
하긴 몰골이 장난 아닐 것이다. 피떡이 된 우리 둘을 보며 겁에 질린 것도 이해가 갔다.
이대로 구출되지 못하면 시체 두 구가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괜찮아. 뭐, 이 오빠는 잘 모르겠지만.”
“나도 괜…. 윽.”
어떻게든 아이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말을 하려고 했으나 극심한 통증에 실패하고 말았다.
“역시 안 괜찮은가 보다.”
오름은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무심하게 툭 내뱉었다.
“헉, 어, 어떡해!”
그 말에 아이들은 더욱 걱정하며 울먹이기 시작했으나 오름은 피곤했는지 더 이상 뭐라 설명하지 않았다.
역시 오름은 오름이었다.
저렇게 말할 거면 그냥 말을 하지 말지.
부아앙-!
그때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자세히 들어보니 보트의 엔진소리 같았다.
그 소리에 밖을 바라보던 세린이 희망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