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45
46화
-재도전 (1)
“아뇨! 죄송할 필요 전혀 없습니다. 전혀요!!”
헤벌쭉한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만족하신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그럼요!”
당연한 소리였다. 내가 S급 마정석을 얻게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S급 마정석을 얻지 못하고 도깨비처럼 홀연히 사라져 버린 오름이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S급 마정석을 얻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땅을 치고 후회할 게 눈에 훤했다.
그 생각을 하니 마정석을 얻은 것보다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아이들을 구출하고 나서 보상을 바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이건 기대 이상이었다.
“그리고 이건 그냥 제안입니다만.”
지완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센터에 들어오실 생각 없으십니까?”
파격 제안이었다.
센터에 들어가는 일은 길드에 들어가는 일과는 또 다른 의미로 굉장히 힘들었다.
기본적으로 센터 사람들은 전부 공무원이었다.
공적인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길드보다 입사 조건이 훨씬 까다로웠다.
일단 센터는 무조건 추천제로만 이루어졌다.
높은 직급의 사람뿐만 아니라 일반 직원도 추천이 가능했고, 심지어 국민의 추천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추천이 됐다면 1단계를 통과하게 된 것이다.
그 다음은 인성 검사, 필기 시험, 실기 시험 등 굉장히 많은 단계를 통과해야만 센터에서 일하게 될 수 있다.
“죄송해요. 저는 그냥 지금이 좋아서.”
하지만 센터는 돈이 안 돼.
“그러시군요.”
지완은 거절의 말을 들어도 끈질기게 권유하지 않았다. 의견을 존중해 주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확실히 이익을 추구하는 길드들과는 다르다.
하지만 대의를 위해 쉽게 인간을 죽일 수 있는 집단이기도 하지.
“혹시, 제 정보는 얼마나 보셨나요?”
지완의 할 말이 끝났으니 내 차례였다. 아까 지완이 자신의 스킬을 설명하면서 계속 묻고 싶었던 부분이었다.
지완은 세린을 통해서 내가 E급의 실력이 아니라는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렴풋이 아는 것과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은 차이가 있었다.
눈앞의 남자가 함부로 남의 스킬이나 정보를 떠벌리고 다닐 위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 내 정보를 낱낱이 알고 있다는 사실은 약점을 낱낱이 알고 있다는 말의 동의어였다.
“걱정하시는 부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한설 님의 위치만 확인했을 뿐, 정보는 보지 않았습니다. 정보를 보는 것은 마력 소모가 심해서 잘 쓰지도 않아요. 게다가 볼 수 있는 것은 직업과 등급, 간략한 인적사항 정도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이었으면 의심했을 말이었다. 하지만 이 말을 한 사람이 지완이었기에 믿음이 갔다.
“알겠습니다. 근데 이 반지를 쓸 때도 마력이 소모되나요?”
“아뇨, 제 마력을 담아서 마력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물론 마력이 소모될 걱정은 하지 않았다. 혹시 마력이 없는 나는 사용하지 못할까 봐 걱정한 것이었다.
궁금증이 풀렸냐는 듯이 바라보던 지완은 잠시 망설이다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E급이 아니신 것, 맞죠? 말하기 싫으시다면 굳이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긋이 바라보는 지완을 나도 지긋이 바라봤다.
이 사람이라면 말해도 상관없을 것 같다. 어차피 어느 정도 짐작하고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네, E급은 아니에요.”
“제가 측정을 완전히 잘못했군요. 죄송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네요.”
죄송할 일투성이긴 하지.
지완의 말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의가 없었나 싶어 지완을 바라봤지만 그는 씁쓸한 미소만 지어 보일 뿐이었다.
뭐 틀린 말도 아니었으니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세린이는 잘 있나요?”
세린의 얘기에 경직되어 있던 지완의 표정이 빛나기 시작했다.
“덕분에 잘 회복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닌 척하고 있기는 하지만 충격을 받기는 한 모양이에요.”
“…세린이가 많이 어른스러워요.”
말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 무의식중에 튀어나왔다. 그래도 가장 예민할 것 같은 질문은 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예를 들면 나원명과 세린이는 어떤 관계냐는 것 같은.
“…그러게 말입니다. 못난 아빠를 만나 세린이가 고생하고 있네요.”
선을 넘었다며 화를 낼 수도 있었으나 지완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이미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아버지의 표정이 지완의 얼굴에 떠올랐다.
이 이상은 내가 건드려도 되는 부분이 아님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언제 한번 놀러 오십시오. 세린이가 많이 보고 싶어 합니다.”
씁쓸하게 웃는 지완을 보며 나도 마주 웃었다.
“네, 언제 한번 놀러갈게요.”
* * *
“완전 영웅이 되셨네.”
아직 서울에 남아 있었던 추환은 핸드폰으로 기사를 보며 비꼬기 시작했다.
센터의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려고 했으나, 인기글로 뜬 기사 때문에 추환은 기분이 하강하기 시작했다.
[의문의 헌터 H, 인신매매 당할 뻔한 아이들을 구하다!]기사 제목만 봐도 배알이 꼴리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는 게 싫다며 익명을 요구한 것도 같잖은 허세처럼 보였다.
이 기사 제목에서 나온 ‘의문의 헌터 H’ 대신 자신의 이름이 걸렸어야 했다고 추환은 혼자 생각했다.
기세등등하게 등장해 나원명 그 또라이를 잡아 족치기 직전이었다. 그 공로를 전부 독차지해 스스로의 위상을 드높일 생각이었다.
“영웅까지는 모르겠지만 센터가 끙끙 앓고 있던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은 맞죠. 게다가 나원명까지 잡을 수 있었고. 그게 한설 씨가 한 일인지 홀연히 사라진 B급 헌터가 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더 짜증나는 거야! 겨우 E급 헌터가 뭘 했겠어! B급 헌터가 다 해결해 놓은 걸 그 녀석이 낼름 거저먹었겠지! 실체를 밝혀주겠어!”
추환의 옆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던 위구안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추환은 몇 년을 봐왔지만 구안의 저 냉정한 얼굴은 좋아지지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뭘 어쩌게요. 센터장이 가만히 두라고 했어요. 반항이라도 하게요?”
“그놈의 센터장, 센터장! 그게 뭐라고! 게다가 그 자리는 원래 우리 아버지의 자리였어야 했어!”
추환은 결국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들고 있던 캔커피를 찌그러트리고 말았다. 내용물이 터져 나와 주변이 엉망이 된 것은 물론이었다.
“적당히 해요. 그게 몇 년 전 일인데.”
추환의 분노에도 여전히 구안의 표정은 일관됐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인정 못 해. 김지완도 한설이라는 새끼도! 내가 직접 실력을 확인해야겠어.”
추환은 결심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구안은 그런 추환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로 책에만 집중했다.
“그러다 징계 먹습니다.”
“도와줄 거 아니면 신경 꺼!”
구안의 충고에도 추환의 결심은 변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문밖으로 나가려는 추환을 보며 책에서 눈을 뗀 구안이 한 마디를 툭 던지며 그를 멈춰 세웠다.
“도와줄까요?”
구안의 말에 놀란 추환이 고개를 홱 돌렸다.
“네가 도와준다고? 왜?”
“그 헌터에게 관심이 있어서요. 센터장이 그를 보호하려는 게 보이지 않나요? 호기심이 생기네요.”
말하는 구안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확실히 한설은 숨기는 게 너무 많았다. 어차피 이번 일로 지완은 징계를 받을 것이고, 행동에 제약이 생길 것이다.
뭔가를 알아보려면 지완이 제대로 활개 칠 수 없을 이때가 적기였다.
“한설, 그분이 어떤 헌터인지 알아보러 가죠.”
“크하하, 네가 도와주면 나야 고맙지. 재수 없는 줄만 알았는데 화끈할 때는 또 화끈하네!”
추환은 우렁차게 웃으며 구안의 어깨에 손을 올려 어깨동무를 했다.
스스럼없는 행동에 인상을 찌푸릴 법도 한데 구안은 별말 없이 책에 다시 눈을 돌렸다.
* * *
일주일은 병원에서 꼼짝도 말라던 힐러의 말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몰래 탈출한 상태였다.
지완의 방문 이후 바로 뛰쳐나왔다. 눈을 떴을 때가 이미 이틀이 지난 후였다는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완전히 시간을 낭비했다.
나원명을 상대한 직후에는 이렇게 죽는 건가 했으나 지금은 완전 멀쩡했다.
당장 던전에 들어가도 상처 하나 없이 나올 자신이 있었다.
오히려 전보다 상태가 좋은 것 같았다. 원명을 이기고 나서 올라간 레벨 스탯을 전부 체력과 힘에 투자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비둘기 뭐시기 아이템의 효과로 올라 있었던 스탯들은 한여름 밤의 꿈처럼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원래 그 스탯들은 내 것이 아니었으니 아쉽지 않았다.
…정말, 아쉽지…않았다.
“여기인 것 같은데.”
띠링.
[스킬이 사용되셨습니다.]끼에엑-
레벨을 올리고 던전을 도는 것도 좋았지만 내가 병원에서 뛰쳐나온 가장 큰 이유는 이거였다.
비밀 던전의 재등장.
벌써 30일이 지났나 싶다가도 날짜를 세어보니 얼추 맞았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다고?”
납치되는 동안 돌지 못해 낭비된 시간과 던전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비밀 던전의 등장은 그 눈물도 쏙 들어가게 만들었다.
병원을 탈출하려고 시동을 거는 순간 얼마 안 있어 들려오던 이 소리는 마치 내가 깨어나기를 가다렸다는 듯이 선명히 들려왔다.
왠지 지금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등급이 올랐다는 근거 있는 자신감도 있었다.
무엇보다 내 자신감을 올려주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던 나원명과의 전투였다.
그 녀석만큼 잘 싸울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나원명을 쓰러트릴 수 있었던 이유는 뛰어난 전투센스가 아니라 그냥 아이템과 스킬이 사기였기 때문이다.
그게 나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오히려 이기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강한 상대와의 전투 자체였다.
“짜증나긴 해도 강하긴 했지.”
백이권같이 아예 넘보지도 못할 상대가 아니었다.
원명은 내가 상대할 수 있는 선에서 가장 강한 상대였다.
그런 상대를 이긴 것이다.
그러다 보니 웬만한 수준의 전투에도 자신감이 붙은 것이다.
이 자신감이 그저 자만일지 실제일지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끼에에엑–!
“그나저나 대체 어디인 거야?”
몇 바퀴째 같은 장소를 빙빙 돌고 있었다.
저번처럼 근처 폐건물인가 싶어서 빈 건물들을 기웃거렸지만 던전 게이트가 생성되는 일은 없었다.
“뭐가 문제냐.”
혼자 인고의 시간을 보내다 지쳐 근처 놀이터에 들어가 쉬려고 할 때였다.
끼에에엑—!!
여기구나.
쉬러 들어온 장소에서 딱 알맞게 던전 게이트가 생성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지난번처럼 작은 바람이 일면서 검은색 게이트가 눈앞에 펼쳐졌다.
놀이터에는 사람이 없었다.
원래 사람이 잘 안 오는 놀이터인 것인지 아니면 놀 시간대가 아닌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잘된 일이었다.
지금 눈에 띄어서 좋을 것이 하나 없었다.
소리 전달 스킬의 쿨타임을 다 채우고 들어가는 게 좋을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권을 떠올리고는 생각을 접었다.
“이권이 올 수도 있는데 빨리 들어가야지.”
세계 최고라도 해도 좋을 백이권의 마력 민감도라면 이번에도 이 던전의 마력을 인지했을 것이다.
이권이 이 던전의 존재를 알게 해서는 안 됐다.
이건 내 던전이다.
굳게 마음을 먹고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띠링.
[비밀 던전이 오픈되었습니다. 비밀 던전의 주인이 되기 위한 시험을 치르시겠습니까?yes / no]
던전에 들어서자마자 메시지가 뜨며 비밀 던전의 시험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엔 좀 다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