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49
50화
-대규모 레이드 (1)
결심하자마자 지완에게 연락을 했다.
“확실히 한설 님께서는 불리하겠군요. 제가 조치해 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
원리원칙을 중요시할 것 같은 이미지였으나 생각보다 지완은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긴 원리원칙을 최우선으로 여겼으면 나에게 스킬을 걸지도 않았을 것이고 자신의 스킬이 담긴 반지도 선물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번에 병원에서 명함을 받아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완과 전화를 끝내고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레이드는 이틀 뒤였다. 충분히 휴식을 취하는 것도 방법이었지만 쉴 생각은 없었다.
집으로 가는 이유는 새로 얻은 스킬을 확인하고 누워 있는 동안 못 돌았던 던전을 돌기 위함이었다.
다들 센터의 레이드 의뢰에 정신이 팔려 있으니 좋은 던전을 독차지할 기회다.
“이게 바로 꿩 먹고 알 먹고지.”
집 근처에 다다랐을 때였다.
“멈춰.”
“…예빈아?”
예빈이가 아파트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예빈이는 한심하다는 눈을 하며 아파트 입구로 들어가려는 나를 차가운 목소리로 불러 세웠다.
“정신 못 차리고 이번에 올라온 레이드에 지원할 생각은 아니겠지?”
뜨끔했다.
예빈이도 이번 레이드 의뢰글을 봤구나.
생각을 훤히 꿰뚫고 있는 것 같은 말투에 잠시 주춤거렸다. 아무렇지 않게 예빈이를 마주하고 있지만, 속이 불편했다.
“지원 안 할 거야.”
그래서 거짓말을 했다.
그게 우리 둘의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
“잘 생각했어. 또 쓸데없는 짓 벌여서 남한테 피해 주지 말고.”
의심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다 벽에 기대고 있던 몸을 세우는 예빈이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예빈이를 보고 있자니 거짓말한 것이 잘한 일인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차라도 한잔하고 갈래? 내 집 좋아졌는데 구경이라도 하고 가.”
자리를 뜨려고 하는 예빈이의 손을 붙잡고 뭐라도 내뱉었다. 집 주소는 어떻게 알아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빈이는 붙잡은 손을 매몰차게 쳐냈다.
“이 말 하러 온 거야. 내가 왜 너희 집을 구경해? 너 잘살고 있는 꼴 보고 배 아파하라고?”
“그런 뜻은 아니었어.”
날카로운 대꾸에 할 말이 없어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내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한 번 쳐다본 예빈이는 그대로 뒤돌아서 걸어갔다.
띠링.
[스킬이 사용되셨습니다.]“어, 왜 스킬이….”
당황하는 사이 만물의 소리는 기다려주지 않고 다음 메시지를 띄웠다.
‘저 말 진짜일까? 그래도 다행이다.’
“…….”
메시지를 읽으며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예빈이의 속마음이었다. 뭐라고 말하기도 조심스러웠다.
다행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의미인가?
그거 말고 다른 의미는 없었다.
그만큼 예빈이는 나를 증오하고 있었으니까.
겉으로는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으나 속으로는 의심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예빈이는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나는 거짓말을 했으니까.
사실대로 말했다면 예빈이는 화내며 레이드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확답을 받을 때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그렇게 하든 아니든 레이드에는 참여할 생각이었기에 괜한 싸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집으로 들어와 소파에 앉아 스킬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 있었을 때 오랜만에 신애에게 연락이 왔다.
[한설 님!! 이번 레이드 참여하실 거죠?]센터가 내건 레이드 의뢰가 확실히 많은 사람에게 각인된 것 같았다. 참여할 거라고 답장을 보내자마자 바로 다시 문자가 왔다.
[저도 지원하려고요! 안 될까 봐 조금 떨리네요ㅠ 만약 둘 다 서류 통과하면 그때 만나요!] [네, 기대하고 있을게요.]‘나는 센터장을 알고 있기에 빽으로 통과할 예정이다.’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지완에게 신애도 통과시켜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으나 신애까지는 무리일 것 같았다.
애초에 나는 세린이와 아이들을 구했다는 타이틀이 있었지만, 신애는 아니었으니까.
지완이 꽉 막힌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그건 자신의 딸과 관련된 일 한정이었다.
지완을 잘 모르지만 딸 이외의 일에는 그렇게까지 환영할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랬기에 신애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괜찮아, 신애 님이라면 분명 통과하겠지. 애초에 신혈 길드 빽이 있는 사람인데 뭐.”
그렇게 생각하며 계획했던 대로 낮은 등급의 던전을 돌기 위해 커뮤니티를 들어갔다.
* * *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레이드 확정 문자가 오기 전, 골렘과 싸워 경험치를 얻기 위해 비밀 던전에 들어갔다.
그런데 몬스터가 나오기는커녕 텅 빈 던전만이 반기는 것이 아닌가.
“몬스터가 없는데 이게 무슨 던전이야.”
비밀 던전은 아무 쓸모가 없었다. 1단계 던전을 마음대로 오갈 수 있다고 거창하게 말한 것치고는 시시한 결과물이었다.
그나마 게이트를 마음대로 생성할 수 있다는 점 덕분에 인벤토리로써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거대한 가방이 하나 생긴 셈이었다.
하지만 인벤토리가 꽉 찰 일이 뭐가 있겠는가.
“에휴, 내가 그럼 그렇지 뭐.”
쓸모는 없었으나 버리기엔 아까웠다. 계륵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쓸 일이 있겠지.”
몬스터가 없어서 그런가, 이권이 오는 일도 없었다.
조심해야 할 사람이 없었으니 잘 활용하면 언젠가 쓰일 곳이 있을 거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띵.
오, 드디어.
주머니에서 울리는 문자음에 기다리던 것이 왔음을 깨달았다.
지완의 힘을 빌렸기에 통과할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문자로 확인하니 기분이 좋았다.
확정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바로 신애에게서 문자가 날아왔다.
[저 붙었어요!! 한설님도 붙으셨나요?] [저도 붙었습니다. 레이드 날 봬요.]신애의 문자에는 환희에 찬 감정이 뚝뚝 묻어나 있었다.
혹시 신애가 떨어져 불편한 상황이 생길까 봐 걱정했는데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어차피 신애도 신혈 길드의 뒷배가 있었으니 떨어지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긴 했다.
보내진 시간과 장소에 맞춰서 가니 사람들이 득실득실했다. 장소는 탁 트인 공원이었다.
원래는 사람들이 잘 지나다니던 공원이었는데 지금은 헌터로 바글대는 게 먼 거리에서부터 잘 보였다.
아무렴 헌터가 100명이나 됐으니 그럴 만했다.
가까이 다가가니 센터 직원들이 일반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통제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받았던 문자를 보여주고 확인을 받은 후에야 바글대는 인원에 합류할 수 있었다.
“한설 님! 여기에요!”
주변을 휙 둘러보고 있으니 나를 부르는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신애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흔들어 대고 있었다.
툭.
신애의 행동을 따라 손을 들어 보이며 가까이 다가가려고 할 때 누군가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엇, 죄송….”
반사적으로 사과를 하려고 했다.
“참나, 급도 안 되는 것들이 설치고 있네.”
하지만 중얼거리는 사내의 말을 듣고 사과의 말이 쏙 들어가 버렸다.
전에도 이런 식으로 욕 얻어먹었던 것 같은데….
데자뷔를 잠시 느끼다 정신을 차렸다.
어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어깨를 치고 간 남자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서로를 경계하고 있었다.
“야, 여기 E급도 있대. 아무리 궁해도 그렇지, 어떻게 E급을 부르냐. 아무것도 안 하고 경험치나 가져갈 거 생각하니 역겹네.”
나 들으라고 한 소리는 아니었다.
말을 내뱉은 사람은 옆 사람과 대화하는 것뿐이었다. 옆 사람도 공감한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씨, A급이긴 해도 적당히 뽑아야지. 활약도 못 해보고 끝나겠네.”
“내 말이. 스킬 수련도 안 되고!”
살얼음판을 걷듯 날 선 분위기였다.
자칫 하다가는 던전 안이 아니라 여기서 한바탕 난리가 날 것 같았다.
“어휴, 사람이 많으니까 별 이상한 사람들도 많네요. 5명이 모이면 1명은 이상한 사람이라던데, 딱 그 꼴이야.”
겨우 신애 앞으로 도착하자 인파에 질린 신애가 한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그러게요. 뭐 때문에 이렇게 사람을 많이 모집한 걸까요? 저야 좋지만.”
“아마 센터장이 던전에 못 들어가서 그럴걸요?”
신애는 덤덤히 이야기했다.
“아, 센터장이 못 들어가요? 바쁜 일이 있나 보죠?”
“그게 아니라 저번 납치 사건 때문에 징계 먹어서 그래요. 귀한 S급 인력을 한 달이나 낭비하다니, 진짜 머리 안 돌아가나 봐.”
신랄한 신애의 말에 얌전히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그 납치 사건에 연루되어 있었기 때문일까, 괜히 지완이 징계 먹은 것이 나와도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을 꾹 다물었다.
“전 그 애들을 구해준 헌터가 누군지나 밝혀졌으면 좋겠어요. 완전 히어로 같고 멋있잖아요! 그런 사람은 널리 소문나서 칭찬받아야 해.”
“…소문나는 게 싫을 수도 있죠.”
“그런가요? 저는 좋을 것 같은데.”
신애는 그 장본인이 나라는 사실을 모르고 말하는 것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소문이라니, 끔찍했다.
신애는 소문의 무서움을 모르고 있었다. 좋은 소문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입방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 평가당한다는 것 자체가 토가 나올 정도로 역한 일일 뿐이다.
하지만 굳이 이 말을 해서 신애와의 좋은 관계를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하하.”
최대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여러분! 이제 곧 던전 공략에 들어갑니다. 주의사항을 숙지해 주시고 열에 맞춰 서주십시오!”
우렁찬 목소리가 이 넓은 곳에 울렸다. 소란스럽던 사람들의 시선이 말을 내뱉은 센터 직원에게 집중됐다.
“보수는 원래 책정된 대로 주는 거죠?”
맨 앞자리에 있던 헌터가 센터 직원을 향해 질문했다.
센터에서 의뢰하는 레이드는 보수가 센 편이었다.
낮은 등급의 레이드는 그저 그랬는데 등급이 높은 B급 던전 이상부터는 금액이 몇 배로 뛰었다.
C-D급 던전이 100-200만 원 정도의 일당을 가져갈 수 있다고 한다면 B급부터는 1000만 원 단위였다.
위험도나 까다로움 정도에 따라서 금액이 더 올라가기도 하니 나쁘지 않은 금액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인원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졌을 때도 평소와 똑같이 보수를 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A급 던전은 적어도 4000만 원부터 보수가 책정되어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맞아요! 정말 주는 거 맞죠?”
다들 그 부분이 걱정이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보수를 못 가져가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당당히 말하는 센터 직원을 보고 더 이상 따질 수 없었던 사람들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무기와 마력을 재정비하고 이제 들어가도록 하겠다. 이번 선봉을 맡은 박추환이라고 한다.”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던 센터의 직원 옆에 거대한 몸집의 사내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리더를 맡을 정도이니 꽤 등급이 높은 사람인 모양이다.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하고?
쓸데없는 생각을 떨쳐 버리고 앞줄부터 던전에 입장하기 시작하는 대열을 따라 던전 안으로 진입했다.
막 게이트를 밟았을 때 뒤에서 누군가의 희미한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거짓말쟁이!”
익숙한 목소리였다. 언뜻 들었을 때 예빈이의 목소리와도 닮았다.
에이,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