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55
56화
-다시
* * *
“잠시 휴식!”
추환의 명령에 헌터들은 걸음을 멈추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앓는 소리를 내며 널브러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추환 님, 대체 보스 몬스터는 언제 등장하는 거죠?”
오랜 시간의 행군으로 상당히 지친 모습의 헌터가 추환에게 말을 걸었다.
“불만을 가질 거라면 팀에서 빠져!”
추환은 신경질이 나는지 질문한 헌터를 노려보며 거칠게 대답했다. 질문한 헌터는 불만이 가득해 보였지만 별말 없이 자리로 돌아갔다.
무리에서 탈주하면 죽음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간 전부 죽을 겁니다. 애초에 한설 군에 대해 캐내려고 들어온 던전인데 왜 멋대로 리더를 맡은 겁니까?”
구안이 추환의 곁에 있다가 그의 행동을 보고 싸늘하게 일침을 날렸다.
추환도 처음에는 나름 한설에 대해 추궁하려고 시도하며 노력했다.
하지만 한순간, 이 던전을 클리어하게 되면 오게 될 명예와 영광에 눈이 멀어 버렸다.
던전을 공략할 자신이 있었다. 헌터들은 차고 넘쳤고, S급 헌터인 아버지를 따라 A급이나 S급 던전을 많이 경험해 봤었다.
무서워할 것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만이었다.
아무리 많은 던전을 돌아다녀봤다 하더라도 그것을 공략한 주역은 그의 아버지였고, 추환이 아니었다.
게다가 추환은 던전 오류를 경험해 본 것이 처음이었다.
그랬기에 던전 오류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예측하지 못했다.
추환은 헌터들을 둘러봤다.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확연히 줄어든 사람의 수에 점점 마음이 조급해져 갔다.
70명에서 시작한 사람들의 수는 겨우 30명밖에 남지 않았다.
게다가 이 많은 헌터들 중에 길잡이가 없어 길을 잃기 일쑤였고 간간히 나오는 몬스터들은 추환도 상대하기 벅찰 정도로 강했다.
거대한 토끼형 몬스터는 상대를 못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몇 번 공격을 당하면 예고도 없이 자폭해 버리기 일쑤였다.
그 폭발에 죽은 사람들이 40명이었다.
평범한 던전이었다면 많아봤자 5번의 전투로 끝날 공략이, 방금 마쳤던 전투를 포함하여 10번이 넘게 지속됐다.
상황은 점점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구안의 말대로 이대로 가다가는 살아남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남겨두고 왔던 한설과 그 무리가 떠올랐다.
“어차피 우리는 다 죽은 목숨이었어. 그 E급 놈이 설령 뭔가 있다고 해도 이미 옛날 옛적에 죽었겠지. 우리 살 길 찾으러 나선 지금이 옳은 일이라고!”
견해의 차이는 있었지만 추환의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기에 구안은 더 이상 추환에게 시비를 걸지 않았다.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추환의 말대로 한설네보다 이곳이 더 나은 상황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역시 구안은 한설 쪽에 남았어야 한다고 후회했다.
구안은 다른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것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죽게 되는 것보다 궁금한 것을 해결하는 쪽을 선택하는 사람이었다.
* * *
“사, 살았다.”
간신히 입 밖으로 나온 한 마디였다. 머릿속에서도 살았다는 안도감 하나밖에 맴돌지 않았다.
“자폭한 건가요?”
“그, 그런 것 같아요. 살았다!”
신애의 중얼거림에 용운이 대답하며 검 밖으로 기어 나갔다.
“어떻게 우리는 피해가 없었던 거죠?”
상고머리의 남자가 식은땀을 닦아내며 나를 바라봤다.
“촌장에게 받은 이 검의 능력을 최대로 활용한 거죠. 게다가 완전히 막지는 못했어요.”
설명하기 귀찮아서 대충 대답했더니 상고머리 남자는 집요하게 물어보지 않았다.
“한설 님 덕분에 살았네요.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예상하신 거죠?”
아까 폭발에 대한 얘기를 나눴던 것이 떠올랐는지 신애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어떻게 폭발하는 몬스터가 나타날 것이란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냐는 질문은 날아오지 않았다.
내가 무한 신뢰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예, 뭐…. 미리 대비했던 게 먹힌 거죠.”
물론 한 번 죽고 나서야 대비할 수 있었던 거지만.
모포는 1회용이라는 설명답게 제 할일을 마치고 부스러기가 되어 날아가 버렸다.
“앗! 모포가…!”
용운은 모포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달려가 붙잡기 위해 애를 썼다.
“포기하세요. 어차피 그거 1회용이라 못 써요.”
용운은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바람에 날아가는 모포를 끝까지 쳐다봤다.
“그럼 어떡하죠? 또 아까 같은 몬스터를 만나게 되면….”
신애는 모포가 1회용이었다는 얘기를 듣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요.”
나는 마을에서 떠나기 전, 챙겨왔던 가방을 열어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그 안에는 대량의 모포들이 억지로 밀어 넣어지느라 잔뜩 구겨진 상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헉, 이걸 다 언제 챙기셨어요?”
“와, 걱정할 필요 없겠네요. 이게 다 몇 개야?”
용운과 신애가 가방 안을 보더니 놀라며 물었다.
“한 20개 정도 될걸요?”
촌장에게 공짜로 뜯어내느라 애를 좀 먹었다.
한국 돈으로 치면 100만 원 정도 뜯긴 셈이었으니 촌장은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돈을 낼 때 덜덜 떨리던 손을 모른 척하느라 힘들었다.
우리는 다시 용운이 알려주는 대로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가면서 3번의 토끼 몬스터를 더 만났다. 그때마다 모포와 빛의 검으로 어떻게든 위기를 넘기기는 했다.
하지만 몬스터가 처음부터 자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대미지를 줘야 자폭을 했기 때문에 이쪽도 피해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특히 아까 피를 토해냈던 상고머리 남자가 걱정이었다.
조용한 성격에 비해 상당히 저돌적인 공격을 하는 사람이라 피해가 가장 컸다.
게다가 C급 헌터라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괜찮으세요?”
3마리째를 처치하고 힘들어하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괜찮습니다.”
“그러고 보니 통성명도 안했네요. 저는 한설입니다.”
“김민상입니다.”
나이가 조금 있어 보이는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덤덤히 말했다.
“양손에 무기를 들고 있는 거 보니 검사나 뭐 그런 건가 봐요?”
“아뇨, 힐러입니다.”
“…네?”
순간 당황했다.
당연히 딜러 직업일 줄 알았는데 힐러? 그럼 지금까지 덤볐던 것은 그냥 C급이라서 그랬던 건가?
힐러면 힐을 쓰면 되는데 피를 질질 흘리고 있는데도 왜 스킬을 쓰지 않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쩐지 신애보다 더 크게 다치는 것 같더라니…. 힐러여서 그런 거였구나.
“힐러면 스킬은 왜 안 쓰시는 거죠?”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었지만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힐러인데 왜 마체테를 휘두르고 있는 건지도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건, 제가 몬스터를 죽여야 그만큼 힐을 쓸 수 있는 이상한 스킬을 가지고 있어서요.”
이건 또 무슨 소리람.
생각보다 세상에는 이상한 직업과 스킬이 많이 있는 것 같다. 몬스터를 죽여야 힐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니.
“그래서 이제껏 힐을 못 쓰신 거군요?”
민상은 뼈를 맞은 듯 숙연해졌다. 아차 싶었으나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가만히 있었다.
어차피 틀린 말도 아니었다. 우리가 몬스터를 잡았다기보다는 자결하도록 만든 게 전부였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레벨이나 경험치도 오르지 않았다.
토끼 몬스터는 A급 몬스터에 버금가는 레벨이었다.
이 정도 수준의 몬스터를 해치우면 보통 레벨 하나는 오르는 것이 정상이었는데 메시지는 울릴 생각이 없었다.
“여러분, 도착했어요! 저기가 드래곤 레어예요!”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용운의 환희와 공포가 섞여 있는 외침이 들려왔다.
용운이 가리킨 곳에는 거대한 동굴의 입구가 존재하고 있었다.
울창한 나무숲 뒤로 거대한 절벽이 솟아올라 있었고 그 절벽의 아래, 거대한 나무의 크기만 한 동굴 입구가 나있었다.
“저희 괜찮은 걸까요?”
신애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긴장되기는 다들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소미의 스킬이 있었으니 다른 사람들만큼 무섭거나 두렵지 않았다.
아니, 소미의 스킬이 없었어도 사실 처음부터 그랬다.
전투에 대한 긴장은 항상 하고 있었지만 몬스터를 마주했을 때 오는 공포 따위는 없었다.
“이, 이제 어쩔 거예요? 정말 저 동굴에 들어갈 거예요?”
용운이 겁을 잔뜩 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하죠. 그러려고 왔잖아요.”
“무, 무슨 방법이라도 있는 거예요? 무작정 따라오긴 했지만 저희 공략법도, 브리핑 같은 것도 전혀 안 했잖아요!”
덤덤히 말하자 불안한 목소리로 용운이 소리쳤다. 신애와 민상도 용운의 말에 동의하는지 나를 말없이 쳐다봤다.
갑자기 집중된 시선이 부담스러웠지만 침착하게 사람들에게 계획을 말해주려고 할 때였다.
부스럭-
“헉, 뭐지?”
인기척 소리에 놀란 용운이 펄쩍 뛰며 뒤를 돌아봤다.
“뭐야, 너희들…!”
“어라, 당신들은?”
우리가 왔던 방향과는 다른 방향에서 나타난 것은 우리를 두고 떠났던 레이드 무리였다.
“어떻게 너희가 여기에 있는 거지!?”
가장 앞에서 팀을 이끌고 있던 추환이 놀란 얼굴로 우리를 쳐다봤다.
놀란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그 많던 사람들이 다 어디 간 건지 지금 추환이 이끌고 있는 팀은 마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헌터의 숫자와 비슷해 보였다.
그렇게 자신만만해하더니, 귀중한 헌터들을 전부 죽음으로 내몰았네.
추환을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물론 팀을 이끄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만약 소미가 아니었다면 나도 이미 시체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70명이나 되던 헌터의 수가 이 정도로 줄어 있는 것은 문제가 심각했다.
어느 정도의 희생은 불가피했겠지만 추환이나 구안은 A급 헌터였다. 이 둘을 제외하고서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A급, B급 헌터였다.
아직 보스를 마주한 것도 아닌데 이 정도라니.
그냥 이건 안일함이 불러온 최악의 결과였다.
그런 주제에 추환은 뭐가 그리 놀라고 억울한 것인지 얼굴이 불긋불긋해졌다.
“무슨 짓을 한 거냐!!”
냅다 버럭 소리를 치는 추환을 보면서 우리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저기요! 무슨 말을 하시려는 건지는 몰라도 난데없이 왜 호통을 치세요?”
이런 상황을 얌전히 넘어가 줄 신애가 아니었다. 앞으로 나서서 추환에게 따지는 그녀의 모습은 용맹하다고도 느껴졌다.
“D급 나부랭이 따위는 끼어들지 마!”
퍽.
추환은 그런 신애를 거칠게 밀어냈다. 그리고는 거대한 몸집을 위협적으로 흔들며 나에게 다가왔다.
신애가 밀쳐지는 모습을 보며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대체 무슨 꼼수를 써서 여기까지 온 거냐, 한설!”
“무슨 말이 하고 싶으신 거죠?”
어쩜 A급 헌터들은 하나같이 앞뒤 짤라먹고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분명 너는 E급 헌터잖아! 지난번에 멀쩡하게 살아 돌아온 것도 그렇고, 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거지?”
추환의 말에 뒤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던 구안이 제재를 가하는 것이 보였다.
분명 그 일은 철저하게 비밀로 해 달라고 말했을 텐데….
센터의 사람이 이렇게 쉽게 약속을 어겨 버리다니.
추환을 싸늘하게 한 번 쳐다봐 주고 밀쳐진 신애를 일으켰다.
신애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힘으로 밀린 것보다 신애에게는 D급 나부랭이라고 불려진 것이 더 기분 상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무시하는 거냐!!”
분노하는 추환은 숲이 떠나가라 크게 고함을 내질렀다.
“목소리 크면 다인 줄 아나.”
결국 참지 못하고 나서려고 할 때였다.
쿠궁-
“어, 어?”
동굴 입구에서 거대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거 기분이 쎄한데.
쿠구궁-
땅이 울리고 진동했다. 점점 소리가 커지더니 동굴 안에서 까만 그림자가 보였다.
“허, 허억!!”
용운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주르륵 흘리기 시작했다.
다들 그 그림자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동굴 입구 안으로 살짝 보이는 팔은 붉은 핏비늘이었다.
크아아악—!
피웅–!!!
동굴에서 거대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그 빛에 감싸여졌다.
그렇게 우리는 두 번째 죽음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