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57
58화
-드래곤 장현지 (2)
“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장현지는 우리가 구출해야 할 인질이라고요!”
내 행동에 당황한 용운이 양 볼을 부여잡으며 기겁했다.
“그러다 드래곤이 빡치면 어쩌려고…!”
푸르륵-
뭔가 더 말을 하려던 용운이었지만 드래곤이 몸을 일으키며 날개를 활짝 펴는 모습에 혼이 나간 듯 입을 벌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공격하려는 건가 싶어 경계했다. 하지만 드래곤은 날개를 펼쳐 휘두르는 대신 자신의 몸에 감쌌다.
파아앗-!
그와 동시에 붉은 빛이 드래곤의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빛이 사그라들자 나보다 머리통 하나가 차이나는 작은 체구의 어린 여자애가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색과 구불거리는 긴 웨이브 머리의 여자아이였다. 나이는 많아봤자 15살 정도 되어 보였다.
“정답을 맞췄군.”
“어라? 머릿속에서 울리던 소리가….”
인간이 되니 말하는 방식도 인간처럼 변한 모양이었다.
신애가 신기한 듯 머리를 짚더니 눈앞의 여자애와 나를 한 번씩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대체 뭘 한 거냐고 묻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질문에 대답해 주기 전에 드래곤이 우선이었다.
“장현지 님, 촌장님이 기다리십니다.”
최대한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하여 존칭을 사용했다.
지금 모습은 어린애였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변신한 모습일 뿐이지, 속 내용물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놈이 나를 기다린다고? 몬스터를 보내는 장본인이 나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는군!”
드래곤은 코웃음을 치며 비아냥댔다.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던 나는 뻗었던 손을 움찔했다.
장현지가 드래곤이었다는 것을 눈치채고 나서부터 외면하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드래곤은 스스로 마을을 떠나 식민지로 삼기 위해 꾸준히 마을로 몬스터를 보내왔다.
제 발로 나온 녀석에게 순순히 같이 돌아가자고 말해봤자 통하지 않을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걸리는 것이 있어.’
애초에 장현지를 데려오는 게 불가능했다면 퀘스트가 뜨지 않는 것이 맞았다.
불가능해 보이는 난이도지만 어쨌든 마을로 데려갈 방도가 있다는 소리였다.
그나저나 드래곤을 마을로 데리고 가라니, 완전 악취미네.
속으로 꿍얼거렸지만 무사히 던전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드래곤을 말로 어떻게든 설득시켜야 했다.
“마을을 식민지화시키기 위해서는 어쨌든 마을 촌장을 만나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건방지구나, 왜 그렇게 생각한 거지?”
드래곤은 위험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이거, 말 한 번 잘못하면 다시 태초 마을행이겠는데?
이렇게 말한 것은 사실 도박이었다. 하지만 걸만한 도박이었기에 말을 꺼낸 것이었다.
마을에서 퀘스트를 받은 순간부터 위화감이 들던 것이 있었다.
어째서 마을 사람들은 그 강한 몬스터에게 침입을 받았으면서 상처 하나 없지?
마을 안은 어째서 침입의 흔적 하나 없었지?
그저 지나가는 작은 의심이었을 뿐이었다. 퀘스트가 우선이었으니 그 위화감을 쉽게 지나치려 했다.
그냥 던전 오류로 급하게 만들어져 설정에 오류가 났을 뿐이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설정 오류라고 치부하고 넘어가기엔 퀘스트의 흐름이나 스토리들이 탄탄하게 짜여져 있었다.
그리고 촌장이 건넨 검과 드래곤의 정보를 확인하면서 위화감은 극대화되었다.
마을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작은 마을에서 나온 최고급 수준의 아이템.
그리고 그 보잘것없는 마을을 식민지화시키기로 한 드래곤.
게다가 드래곤은 그 마을에 들어가기 위해 위장까지 했다.
이건 필시 그 마을에 뭔가가 있는 거였다.
“마을에 얻어야 할 것이 있는 것 아니었습니까?”
“…….”
드래곤은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싸늘했던 눈빛이 풀어지고 호기심이 담긴 표정으로 바뀌었다.
좋은 신호였다.
내 대답에 놀란 것은 드래곤이 아니라 주변인들이었다.
“한설 님, 그게 무슨 소리예요?”
“뭐, 뭐예요? 지금 무슨 대화가 오가고 있는 거죠?”
“…….”
민상은 굳이 입을 열지 않았지만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전부 알고 온 것이로군?”
흥미로워하는 드래곤의 붉은 눈이 번쩍였다.
“전부 알지는 못합니다. 그냥 그 마을에 뭔가 있다는 것만 알고 있죠.”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대답했다. 타이밍을 놓쳐서 계속 뻗고 있던 손이 점점 저려오기 시작했다.
드래곤은 그 모습을 잠시 보더니 손가락 하나를 들어 내 손을 슬쩍 내렸다.
“그래도 가지 않아.”
이런 말을 하면서.
뭐, 쉽게 가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때였다.
띠링.
[두 번째 정보가 열립니다.]이렇게 갑자기 메시지가 뜬다고?
뭔가 조건을 충족한 건가? 일단 정보부터….
드래곤들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지만 레드 드래곤은 자신의 오랜 친우를 찾고 있다.
공략법: 드래곤은 심장이 부서지면 죽는다.
오랜 친우라니? 드래곤에게도 친구라는 개념이 있나?
달랑 한 줄밖에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내용 자체는 쓸모가 있었지만 두 번에 나눠서 정보를 받을 정도로 알찬 것은 아니었다.
이럴 거면 그냥 한 번에 알려줄 것이지.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식민지화가 번번이 실패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 마을의 대표에게 원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게 가장 나을지도 모릅니다.”
주절대며 이야기하자 드래곤은 인상을 조금 찌푸렸다.
아, 너무 나불댔나?
긴장하며 드래곤의 눈치를 봤다.
“내가 그 마을에 뭘 원하는 줄 알고 그렇게 말하는 거지?”
역시 기분이 나빴나 보다. 말하지 않았는데 뭘 원하는지 어떻게 알아.
속으로는 불만을 터트렸지만 겉으로는 상냥한 미소를 띠었다.
“그저 저는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죽고 싶지 않으면 납작 엎드려야지, 뭐.
어떻게든 살살 굴려서 마을로 데려가기만 한다면 퀘스트를 깨고 던전을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 했다.
“처음 본 날 돕고 싶다고?”
“살려주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그것만으로도 한낱 미물인 인간이 드래곤님께서 원하는 것 정도는 다 갖다 바쳐야 할 이유죠.”
“그렇지, 드래곤의 약속은 절대적이다.”
비위를 살살 맞춰주자 드래곤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감탄했다.
“인간치고 마음에 드는 녀석이구나.”
“감사합니다.”
환하게 웃어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드래곤은 팔짱을 끼며 흡족해하다가 망설이듯 말했다.
“…혹시 그럼 내 청을 하나 들어주겠나?”
뭐야, 갑자기 왜 안 어울리게 망설이고 그러지?
“네, 무엇이든 말하세요.”
“내 친구….”
자신 없는 투로 말하는 모습이 아까 살벌했던 모습과 상반되어 어색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왜 저래? 그리고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지?
“죄송하지만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잘 안 들려서.”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드래곤은 눈을 질끈 감으며 입을 열었다.
“내 친구 좀 찾아다오.”
좀 깨긴 한다.
부끄러운 듯 양 볼에 홍조를 띄며 말하는 것이 많이 안 어울렸다.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겉모습만 봤을 때는 어색한 모양새가 아니었지만 속 내용물에는 흉악한 드래곤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입김 한 번으로 인간을 몰살시키고 바람 한 번에 날아가게 만든 장본인이 얼굴에 홍조를 띄우며 부탁하고 있다.
진짜 안 어울린다.
“친구라고 하면 어떤 드래곤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친구라고 했으니 당연히 같은 종족의 생명체를 떠올리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드래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외의 것이었다.
“…드래곤이 아니다. 이, 인간의 아이다.”
말을 하면서도 부끄러워하는 것이 썩 보기 좋은 것은 아니었다.
“인간 친구요?”
그냥 생각 없이 되물은 질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레드 드래곤은 장현지로 변신해 인간 무리에 들어갔을 정도이니 인간과 친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드래곤은 말을 왜곡해서 들은 모양이었다.
“드래곤이면서 인간과 친구라고 하는 내가 한심해 보이나?!”
“네? 그게 아니고….”
갑자기 급발진하며 버럭 소리를 지르는 드래곤을 보며 오히려 당황했다.
게다가 화를 내는 녀석의 주위로 붉은 빛이 일렁이더니 공기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태도가 너무 자주 바뀌잖아.
“한낱 미물인 인간 주제에 위대한 드래곤을 무시하는가!!”
그냥 질문한 것뿐인데 왜이래.
“한설 님! 어떡하죠?”
옆을 지키며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신애가 당황하며 말했다. 이마에 땀이 맺힌 것을 보니 눈앞의 열기는 나만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으허엉!! 죽기 싫어요! 어떻게 좀 해보세요!!”
용운은 분노한 드래곤을 보더니 결국 눈물을 왈칵 쏟고 있었다.
틈만 나면 징징댄다. 길 찾는 것만 아니었으면 절대 안 데려왔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점점 열기는 거세지고 드래곤의 눈도 점점 검붉게 변하고 있었다.
이러다 또 죽게 생겼네.
대체 뭐 때문에 화가 난 거지? 인간들이랑 사이좋게 지냈다고 누가 흉이라도 봤나?
그렇다고 이렇게 무분별하게 화를 내고 그러나? 아까 드래곤의 약속은 절대적이라더니!
그러다 문득 눈앞의 레드 드래곤의 정보가 떠올랐다.
정확히는 이제 막 성인이 되었다는 정보가….
그러니까 정신은 아직 성인이라고 하기에는 미숙한 상태일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으, 너무 뜨거워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역시 드래곤이라는 건가.”
“흐엉!!”
다들 뜨거운 열기를 참지 못하고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뜨거운 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여기까지 와서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처음부터 이 과정을 또 반복하라니, 죽어도 싫다.
“건방진 인간 녀석들!! 감히 우월한 드래곤을, 아무도 나를 무시하지 못한다!! 그게 설령 부모라도 말이지!!”
웬 부모 타령?
그리고 애초에 인간을 친구로 둔 녀석이 할 소리는 아니었다.
일단 이 분노 조절 장애 드래곤을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저는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상황을 무마하려고 간사한 혀를 놀리지 마라!”
이건 안 되겠다. 어떡하지?
분노에 삼켜져 어떤 말도 제대로 듣지 못하는 녀석을 보고 점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오는 것이 느껴졌다.
사춘기 소녀를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사춘기 소녀? 어떻게 보면 사춘기가 늦게 온 아이의 모습 같기도 했다.
말투만 어른스러웠지, 영락없이 피해망상에 빠진 사춘기 소녀의 모습 아닌가.
이 나이대 여자애들을 달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문득 이제는 다 커버린 예빈이가 떠올랐다. 예빈이와 아직 사이가 나쁘지 않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래, 예빈이는 이렇게 화가 났을 때….
어땠더라?
백지가 된 듯 머리가 하얘졌다.
생각해 보려고 해도 그 당시 예빈이의 화난 모습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예빈이와의 사이가 단단히 벌어진 지금은, 무슨 말만 하면 예빈이의 화를 돋구기만 했다.
그런 내가 어떻게 이 드래곤의 화를 잠재울 수 있을까.
그때였다.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나 대신 뒤에서 땀을 뻘뻘 흘리던 민상이 갑자기 드래곤의 앞으로 다가갔다.
“민상 님! 위험해요!”
신애가 기겁하며 외쳤다. 하지만 민상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민상은 드래곤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뭐, 뭐 하시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누가 분노에 찬 드래곤의 머리에 손을 얹는단 말인가.
심지어 민상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드래곤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봐.
죽음을 예감하고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었다.
거짓말처럼 뜨거운 열기가 뚝 멈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