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58
59화
-드래곤 장현지 (3)
“…뭐 하는 것인가?”
당황한 목소리였다.
드래곤은 민상이 하는 행동을 멍청히 바라보고 있었다. 당황해서 쓰다듬는 손을 제지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 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민상은 답지 않게 쑥스러워하며 손을 치우려고 했다.
그러자 드래곤은 떨어져 나가는 민상의 팔을 홱 잡아챘다.
“그…. 뭐, 나쁘진 않았다.”
뭐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저게 정답이었던 거야?
입을 쩍 벌렸다.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드래곤을 잠재운 민상이 다시 보였다.
보통이면 화난 사람에게 가장 하면 안 될 짓이 아닌가?
“아, 그럼.”
몇 번의 쓰다듬이 더 이어졌다.
계속 하란다고 하고 있는 민상도 웃겼다. 우리는 멍하니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크흠, 그렇다고 그대의 무시를 그냥 넘어가는 것이 아니다.”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헛기침을 한 번 내뱉은 드래곤이 말을 이었다.
“그렇게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대단하다고 느꼈는걸요.”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정중하게 사과를 하자 드래곤이 눈을 빛내며 물어왔다. 그 와중에도 민상은 하염없이 드래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네, 다른 드래곤의 눈치도 보지 않고 인간과 사귄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그, 그렇지.”
드래곤은 자신의 행동을 긍정받자 기분이 좋아진 듯했다.
이 녀석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조금씩 감이 잡혔다.
그냥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춘기 드래곤이었던 것이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드래곤이라고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다.
“일단 방금 부탁하신 일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려주시겠어요?”
친절하게 웃으며 말하자 드래곤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니, 아까의 무례는 너그러운 내가 넘어가도록 하지.”
혼자 오해해 놓고 기분이 풀리니 선심 쓰듯이 이야기한다. 던전 오류만 아니었으면 이러고 있을 일도 없었을 텐데.
뭐, 드래곤 브레스에 맞아 죽는 것보다는 나았으니 다행인걸지도.
“내 친우를 찾아와 주면 마을 녀석들과 대화를 해보지. 식민지화도 그만두고 말이야.”
마을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식민지화도 그만두겠다는 말은 원하던 바였다.
하지만 친구를 찾아 달라는 것은 말만 쉬웠다.
이 끝이 어디인지도 알 길이 없는 던전 안에서 사람을 찾는 일이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였다.
고민하기가 무섭게 시스템 메시지가 알림을 보내왔다.
띠링.
[서브 퀘스트- 드래곤의 부탁]레드 드래곤은 자신의 인간 친구를 찾고 있다. 잠시 잠든 사이 자취를 감춘 자신의 친구가 ‘영웅의 마을’에 잠시 머물렀다는 소식을 듣고 잠입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친구가 강한 인간을 모으고 있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Yes / No]
아하, 그러니까 그 마을이 ‘영웅의 마을’이었다는 소리지?
이제야 위화감이 들었던 부분들에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드래곤이 찾는다는 인간 친구는 마을에서 강한 인간을 구하고 있다고 했다. 아마 그 마을에 갔던 이유도 강한 인간들이 많이 모여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강한 인간들이 있으니 몬스터도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었던 것이고.
서브 퀘스트이기에 수락하지 말까 싶다가도 거절했다간 무슨 짓을 당할지 몰라 얼른 수락을 선택했다.
띠링.
[수락 완료.] [서브 퀘스트- 드래곤의 부탁]드래곤의 친우를 찾아라.
보상: 던전 공략 힌트, 드래곤의 선물
던전 공략 힌트라니 어차피 드래곤을 데리고 가면 끝인 거 아닌가?
드래곤의 선물이라는 것도 의심이 갔다. 제멋대로인 드래곤 녀석이라면 자신이 살려주는 것이 선물이라고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친구에 대한 정보 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우선 친구라는 사람의 정보를 최대한 알아두는 것이 좋았다. 그래야 찾기 쉬워지니까.
“외형이라 하면 알려줄 수 있다.”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드래곤을 보며 기대감이 들었다.
과연 어떤 방식으로 알려주려나?
어릴 적 봤던 판타지 소설 속에서는 주문도 외우지 않고 마법을 부리는 생명체라고 표현하고는 했으니 마법을 이용해서 외형을 표현할지도 몰랐다.
드래곤은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그랬더니 공중에서 깃털이 달린 만년필과 종이가 나왔다.
아, 그냥 그림으로 그리는 거였어?
약간 실망스러웠지만 그려주는 것만큼 확실한 것도 없었다.
드래곤은 열심히 종이에 무언갈 그리기 시작했다.
“다 됐다.”
그리고 우리 눈앞에 펼친 그림은….
“대체 누굴 그린 거죠?”
허탈한 목소리로 용운이 중얼거렸다.
“쉿, 또 화낼지도 몰라요.”
그런 용운의 입을 막으며 신애가 속닥거렸다.
삐뚤빼뚤한 선과 눈인지 코인지 알아보기 힘든 그림이 그곳에 그려져 있었다.
4살짜리 어린애가 그려도 이것보다는 낫겠다….
엉망진창의 몽타주에 표정 관리가 힘들었지만 초인적인 능력으로 구겨진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림 실력이 출중하시군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주니 좋다고 팔짱을 끼며 미소 짓는 드래곤의 죽빵을 한대 때려주고 싶었다.
난이도가 SS급이라 표시된 것은 아마 저 그림이 한 몫 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림을 보고 알 수 있는 사실은 드래곤이 찾는 인간이 머리카락이 중단발 정도 되는 여자라는 사실이었다.
“그 정도면 찾기 어렵지 않겠지?”
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당연하죠.”
뿌듯해하는 드래곤을 보며 억지로 화를 누르며 말했다. 그러자 드래곤은 선심 썼다는 듯이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나도 함께 가마.”
“네?”
이게 무슨 소리야.
“어…. 저, 저희와 함께 가시면 불편하실 텐데요.”
갑작스러운 드래곤의 동행 요구에 말을 더듬었다.
내 말에 거세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용운이 보였다. 처음으로 의견이 일치했다.
“그런 건 상관없다. 나름 인간 생활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불편도 감수할 수 있지.”
네가 아니라 우리가 불편해서 그래.
목구멍에서 맴도는 말을 꾹 삼켰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드래곤 녀석을 데리고 다녔다간 기가 빨려 죽을 것이다.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같이 가죠.”
그때 민상이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안 돼요!!”
“드래곤님과 같이 가면 정말 좋겠지만 많이 힘드실 텐데….”
용운과 신애는 어떻게든 드래곤과의 동행을 피하기 위해 애썼다. 신애는 뒷말을 흘리면서 거들어 달라는 듯 눈짓했다.
“…같이 가죠, 뭐.”
약간의 침묵 끝에 나온 말이었다.
“그래요! 같이…. 네?!”
신애는 말을 하다 말고 놀라서 나를 쳐다봤다. 그렇게 말할 줄 몰랐다는 듯 놀란 얼굴이었다.
나도 같이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이 드넓은 던전 안에서 D급 길잡이인 용운만 믿고 얼굴도 모르는 드래곤의 친구를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차라리 얘를 이용해서 최대한 빨리 찾아내는 게 나았다.
던전을 공략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다.
던전이 생겨나고 일주일 이내에 공략을 완료하지 못하면 던전과 현실을 나눠주는 게이트의 연결이 강해져 몬스터들이 밖으로 빠져나오게 된다.
이렇게 자세히 던전 브레이크에 대해 알고 있는 이유는 과거에 일어난 던전 브레이크로 세상이 떠들썩했기 때문이다.
요즘이야 시스템이 잘되어 있어서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가 거의 없었지만 막 던전이 생겨나고 시스템이 정형화되어 있지 않았을 때는 달랐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던전 브레이크는 아니었으나 가장 발이 빨랐던 미국에서 터진 것이라 사람들의 충격이 컸다.
“저희가 빨리 던전을 공략하지 못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요.”
던전 게이트가 사라졌기에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던전 오류이기에 조심해야 했다.
“그렇긴 하죠.”
신애도 던전 브레이크를 떠올렸는지 마지못해 수긍했다.
“저희가 던전을 공략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냥 다른 팀한테 공략 맡기고 저희는 그냥 마을로 돌아가요.”
용운은 아무래도 납득이 안 되는지 울먹이며 드래곤과의 동행을 거부했다.
그래서 나는 드래곤이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소리로 용운에게 말했다.
“진심으로 박추환이 이끄는 레이드 팀이 저 드래곤을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처음으로 정색한 얼굴을 본 용운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웃기지 말라 그래요. 저건 S급 헌터가 와도 될까 말까야. 정신 차리세요. 누군 같이 가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요? 그렇게 겁이 나면 마을로 돌아가.”
조금 진심을 내비치니 용운도 더 이상 징징대지 않았다. 울망거리는 눈망울은 여전했지만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그럼 마을로 돌아가도….”
눈치 없이 그냥 해본 소리에 덥썩 마을로 돌아가겠다는 용운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지끈 거렸다.
얘는 진짜 답이 없구나.
“드래곤님, 혹시 이 던전…, 아니 이 나라에 대해 잘 아시나요?”
용운을 내버려 두고 드래곤에게 다가갔다.
던전이라고 말하면 못 알아들을 가능성이 컸으니 말을 바꿔 질문했다.
아무래도 친구를 찾느라 여기저기 다녀봤을 테니 이곳에 대해 알고 있을 확률이 컸다.
항상 한정적인 장소만 등장했던 던전에서 유일하게 마을과 숲과, 드래곤 레어까지 등장했다. 던전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어쩌면 던전이라는 것 자체도 어느 판타지 세계의 불특정한 장소를 끌고 들어온 것일 수도 있었다.
“당연하다. 나는 몇백 년 동안 이 나라를 지켜봐 왔으니까.”
역시, 녀석이라면 알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저희와 동행하는 동안 길안내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희 같은 미개한 인간들은 길을 잃기가 쉽습니다.”
“좋다.”
한껏 꼬리를 내리며 부탁하자 드래곤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흔쾌히 수락했다.
쉽다, 쉬워. 고등의 생물이라면서 이렇게 쉽게 넘어와 줘도 되는 거야?
“원한다면 인간들이 자주 애용하는 ‘지도’라는 것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
드래곤은 그것에 멈추지 않고 눈을 빛내며 지도를 만들어 주겠다 제안했다.
이런 건 당연히 땡큐지. 고등 생물인지 뭔지는 모르겠으나 센스는 있네. 근데 설마 또 그려주겠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그래주시면 감사할 따름이죠.”
드래곤은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두루마리처럼 잘 말려 있는 갈색의 지도가 등장했다.
조심스레 펴보자 장소들이 깔끔하게 그려져 있는 지도가 나타났다.
지도를 살펴보니 구역이 크게 5개로 나눠져 있었다. 나라 자체도 그렇게 크지 않은 것 같았다.
문제는….
“이거 대체 뭐라 써 있는 거죠?”
지도에 써 있는 글씨들을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난관에 당혹스러웠다.
한국 이름에 한국 돈을 쓰길래 당연히 글자도 한글일 거라 생각했다.
왜 이상한 부분에서 갑자기 중세 판타지인 척하는 건데?
“글씨를 읽을 줄 모르는가?”
당황하는 모습을 본 드래곤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어왔다.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지 고민하다가 그냥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저희가 다른 나라에서 건너와 이 나라의 언어는 알지 못합니다.”
“그렇군. 어쩐지 생김새가 다른 인간들과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친우와 비슷한 외관이라 세월이 흘러 인간들이 통합된 줄 알았지.”
떠올려 보면 마을 사람들도 전부 서구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그들의 생김새와 달랐기에 내 거짓말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하, 수명이 긴 드래곤이시니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군요. 그나저나 친구분이 저희와 닮았다니, 신기하네요.”
어라, 잠깐만. 친구가 한국인의 외모와 닮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