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6
6화
-첫 던전 입장
“아, 이거 아닌가요?”
나는 리코더를 내리고 영진에게서 한 발짝 떨어졌다.
영진이 한숨을 쉬었다. 분명 채팅창에서도 내 욕이 올라오고 있을 것이다.
조금 머쓱해졌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나와 영진이 대화하는 것을 들은 현준이 손바닥을 보이게 번쩍 들더니 이내 검지를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 대고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촬영을 의식하고 하는 행동이 분명했다.
딱히 과한 제스처는 아니었지만, 굳이 손바닥을 들어 올리는 것처럼 과한 행동을 할 이유가 없었다.
멋진 척한다고 놀리고 싶었으나 그냥 얌전히 있기로 했다. 만약 현준이 독열 아저씨였다면 한마디 날렸을 것이다.
오글거리니까 하지 말라고.
“온다!”
그러든 말든 현준은 앞을 응시하며 우리에게 말했다.
사실 나는 아까 전부터 몬스터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현준이 알려주고 나서야 깨달은 것 같지만, 던전에 들어왔을 때부터 몬스터의 기척을 느낄 수가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공략은 철저하게 봐뒀으니까요.”
내가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자 겁을 먹은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영진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던전이 처음이었지만 공포나 떨림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이게 헌터가 되면 당연한 줄 알았다.
다른 헌터들도 던전에 들어가면 덤덤하게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영진이 들고 있는 스태프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보니 딱히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공사장을 전전하면서 몬스터처럼 직접적인 위험이 아니라도 위협적인 일들을 많이 겪어서 담이 커진 걸까.
“몬스터가 나타나면 제 뒤쪽으로 빠지세요. 그게 안전해요.”
겁은 내가 아니라 영진이 먹은 것 같았다. 그래도 굳이 말하지 않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제대로 된 전투도 치르지 못한 내가 믿을 건 이 파티밖에 없었으니까.
멀리서 작은 형체가 보였다. 아마 현준이 말한 몬스터일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 수가 많은 것이 느껴졌다.
아직 멀리 있었기에 작게 보였으나 꾸물거리는 모양새를 보니 한두 마리가 아닌 것 같았다.
일행들이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땅이 은은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던전이 어두워서 눈앞에 있는 형체는 하나로 보였지만 그게 아니었다.
멀리서 다가오는 것은 무리였다.
“저기 있는 게 몬스터지?”
“내가 도발 스킬을 쓸 테니까 버프랑 공격 스킬 써. 그리고 신애는 저게 가까이 다가오면 바로 선빵 스킬 쓰고.”
“응!”
“알겠어.”
“그리고 한설 님은….”
현준은 딱히 할 말이 없었는지 말을 하다가 멈칫했다.
“간간이 버프나 스킬 틈틈이 걸어줘요.”
“네.”
내가 무슨 스킬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현준은 그냥 얼버무리듯 말을 맺었다.
어차피 초보의 스킬이라고 해봤자 거기서 거기일 테니 굳이 물어보지도 않은 것이다.
영상이 켜진 것을 의식했는지 아까는 반말로 말하다가 이제는 존댓말을 섞어 쓰는 것이 느껴졌다.
참 이중적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독하겠다고 말했지만 아마 구독은 하지 않을 것 같다.
현준은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런 현준을 보고 앞에서 다가오고 있는 몬스터 무리에 대해 말을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이 끝나기도 전에 몬스터 무리가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멀리 있다고 생각했던 무리는 그저 몬스터의 크기가 작았던 것뿐이었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몬스터들은 거미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한 마리가 아니야!”
거미 무리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자 당황한 영진이 소리치듯 말했다.
“김영진, 배리어!”
쾅-!
현준은 영진에게 소리치며 들고 있던 큰 방패를 땅에 내리꽂으며 도발 스킬을 썼다.
도발을 쓰자마자 거미들은 일제히 현준을 향해 튀어 올랐다.
쉬쉬쉬쉭-
생각보다 수가 많았다. 영진이 간발의 차로 배리어를 쓰지 않았다면 타격이 꽤 컸을 것이다.
신애는 때를 놓칠세라 양손에 검을 들고 거미들을 썰어대기 시작했다.
그런 신애를 보고 영진이 주문을 외우며 날카로운 얼음들을 소환했다.
나도 공격 스킬을 시험해 보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파티원들이 잘 싸워 주고 있어서 차례가 오지 않았다.
“생각보다 약해! 독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조심하고, 광역 스킬 위주로 써!”
다들 분주해 보였다.
나는 뭘 해야 할지 몰라 멀뚱히 있다가 버프 스킬이라도 써야겠다 싶어 리코더를 입으로 가져다 댔다.
하지만 막상 연주하려니 아는 노래가 없었다.
뭐라도 부르자는 생각에 익숙하고도 쉬운 노래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맑은 리코더의 선율이 흘러나왔다.
생각해 보면 초등학생 때 리코더 시험을 봤을 때마다 항상 괜찮은 점수를 받았던 기억이 났다
“이 노래는…. 나비야?”
물론 노래 종류를 당황할 정도로 쉬운 곡을 고른 이유도 있긴 했지만.
내가 연주하고 있는 노래에 파티원들이 당황한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완곡을 할 수 있는 노래가 이것밖에 없는걸?
원곡이 짧은 만큼 노래는 금방 끝났다.
파티원들은 나를 어이없어하는 눈으로 바라봤지만 이내 다시 몰려오는 거미들을 처리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노래를 마쳤기에 리코더를 입에서 뗐다. 그러자 메시지가 눈앞에 떴다.
띠링.
[연주 완료. 스킬이 적용됩니다. 적용 시간: 1시간]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 [틀리지 않고 완곡 완료. 시전 대상의 공격력과 공격 속도가 10% 증가합니다.]“어?”
다들 메시지가 뜬 것을 본 모양이었다. 놀란 눈치였다. 물론 나도 놀랐다.
보통 버프 스킬은 공격력이면 공격력, 공속이면 공속, 이런 식으로 한 개만 적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2개가 적용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초보인 바드의 버프가 10%나 적용해 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신애가 조금 더 빨라진 속도에 신나서 거미들을 해치웠다. 물론 현준과 영진도 마찬가지였다.
10%는 미미한 수준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커뮤니티에서 본 바로는 10%부터 체감상의 변화가 느껴진다는 얘기가 많았다.
그러니 아마 저들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미미할지는 모르나 공격력과 속도가 빨라진 것을.
나는 다들 정신없는 틈을 타 뒤쪽으로 들어오려던 거미를 발견했다.
이제 내 공격 스킬을 확인할 시간이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단번에 처치할 순 없겠지만 여러 번 내려친다면 한 마리 정도는 잡을 수 있을 터였다.
들고 있던 리코더를 다가오는 거미를 향해 강하게 내리쳤다.
[힘과 민첩성이 스킬의 레벨을 뛰어넘었습니다.] [스킬 ‘악기 공격’ 레벨 업.]끼에엑-!
[첫 몬스터를 처치했습니다!]몇 개의 메시지가 뜨더니 사라졌다. 그리고 눈앞에는 처참히 죽어 있는 거미가 있었다.
단 한 방에 몬스터를 해치운 것이었다.
내가 해놓고도 놀라서 멍하니 리코더를 바라봤다.
“윽….”
리코더에는 거미를 내려치면서 묻은 진액 같은 것들이 기분 나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 몰래 가방에 진액을 슥 닦아냈다.
“한설 님, 괜찮으세요?”
내 쪽으로 거미가 다가온 것을 본 모양이었는지 신애가 검을 들고 급하게 다가왔다.
그러다 이내 내 앞에 죽어 있는 거미를 보고 걸음을 늦췄다.
“어…? 한설 님이 죽인 거예요?”
“네. 그런 것 같은데요?”
너무 쉽게 죽어 당황하던 차였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사실 바드도 레벨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다른 스탯들도 높아지긴 한다.
그래서 이런 E급 던전에 나오는 몬스터들은 한 방에 죽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오늘 막 던전에 들어온 초보 중에서도 초보인 바드였다.
당연히 고전할 거라 예상하고 도와주러 달려왔을 텐데, 의외의 결과에 잠시 멈춘 신애였다.
“바드 맞으신 것 같은데….”
그러고는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신애가 나를 보며 어떻게 한 거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아마 힘 스탯이 높은 덕에 스킬 효과를 쓸 때 시너지 효과가 난 것 같은데, 확신할 수는 없었다.
이럴 때는 주의를 돌리는 게 최고지.
“또 와요!”
다들 열심히 몬스터를 처치한 덕분에 거미의 수는 점점 줄어들어 거의 남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아직 덤벼드는 거미들이 있었기에 방심하기에는 일렀다.
E급 던전에서 나오는 몬스터의 양치고는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파티원들은 정신없이 몬스터들을 해치우기 시작했다.
나도 그들 사이에 간간이 끼어들어 리코더를 휘둘러댔다. 휘두르는 족족 한 방에 쓰러져 가는 거미들을 보니 절로 뿌듯함이 느껴졌다.
한참 있다가 때리고 또 한참 뒤에 몬스터를 때리다 보니 중첩 효과는 걸리지 않았다.
아마 중첩 효과를 보려면 일정 시간 안에 몬스터를 계속 공격해야 하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한 방에 죽인 것 때문일 수도 있었고.
“마지막!”
현준이 소리치며 마지막 거미를 썰어냈다.
주변에는 거미의 시체가 작은 언덕을 만들어 낼 만큼 쌓여 있었다.
“다들 수고했어. 거미가 갑자기 나올 줄은 몰랐네. 끽해 봐야 슬라임 정도일 줄 알았는데.”
영진이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수가 많아서 스킬을 막 썼더니 마력 좀 채우고 가야 할 것 같아요.”
영진은 지쳤는지 근처 바위에 앉아서 가방을 뒤적거렸다. 그러더니 푸른색을 띠는 물약을 꺼내서 마시기 시작했다.
실물로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아마 저게 마력을 채워주는 포션인 것 같았다.
직업에 따라서 마력이 생성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보통 힐이나 버프 같은 마법을 쓰는 직업군은 마력이 생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마력이 생기는 게 불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만큼 효과나 타격이 강하다는 의미도 됐다.
거미들은 상대적으로 약한 축에 속해서 강력한 공격은 필요 없었지만 몬스터가 너무 많아 마법을 남발한 모양이었다.
“아, 한설 씨도 드릴까요? 체력 포션도 있어요.”
포션은 마법사가 직업인 사람들 사이에서 필수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생각보다 엄청 고가에 팔린다고 들었다.
그런데 고민 없이 나에게 포션을 들이미는 영진.
생각보다 돈이 많은가 보다.
“고맙습니다.”
얼른 감사 인사를 하며 포션을 받았다. 그러고는 먹는 척하면서 포션을 따로 챙겼다.
나는 마력을 보충할 필요가 없었다. 마력이 생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기는 했다.
보통 바드들도 힐이나 버프를 주는 직업이기 때문에 마력이 생성되는 것이 정석인데, 내 스킬들은 마력 없이도 그냥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딱히 마력을 채워주는 포션도 필요 없었다.
하지만 나중에 비싼 가격에 팔면 돈이 되는데 주겠다는 것을 안 받는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내가 몰래 주머니에 포션을 챙기고 있을 때 신애가 슬금슬금 나에게 다가왔다.
혹시 포션 챙긴 것을 들킨 건가 싶어 순간 긴장했다.
“직업, 바드 맞아요?”
다행히 신애가 물어본 것은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긴장할 필요가 전혀 없어져서 태연하게 대처했다. 사실 숨길 것도 없었다.
“네. 헌터센터에서 그랬어요. 헌터증에도 적혀 있는데, 보실래요?”
“흠, 아니에요. 악기로 버프 주신 거 보면 맞는 거 같으니까. 그럼 초보라고 한 거. 뻥이죠?”
“오늘 처음 맞는데요.”
“그럼 어떻게 한 거예요? 스킬이 진짜 좋은 건가? 아닌데. 그냥 버프만 줬는데.”
혼자 자문자답을 하는 신애에게 그냥 웃어 보이며 대답을 어물쩍 넘겼다.
신애가 궁금해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나도 놀랐으니까.
놈들 체력이 얼마나 적길래 한 방에 죽었는진 모르겠지만 내 스탯이 높아질수록 악기 공격 스킬은 더 강해질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올리기 힘들다던 스킬 레벨 업까지 해버렸으니.
그러면 E급에 나오는 몬스터만이 아니라 더 높은 등급의 몬스터도 한 방에 죽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내가 거미를 처치한 것을 보지 못한 영진이 자신이 설치한 기기를 살피러 갔다.
“저희 현준 님과 신애 님 덕분에 무사히 거미 떼를 해치울 수 있었네요. 물론, 한설 님의 버프도 도움이 됐습니다! 거미가 여기서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영진이 설치한 각도는 거의 현준만 나오는 위치였기에 아마 내가 거미를 죽이는 모습이 찍히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대신에 의외의 반응이 있었다.
“아~ 아까 그 노래요? 다들 아시는 동요죠? ‘나비야’였습니다. 한설 님이 개그 센스가 있으셔요.”
아마 채팅창에 내가 리코더로 연주한 것이 화두가 된 것 같았다.
별로 눈에 띄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사람들한테도 ‘나비야’가 충격이긴 충격인 모양이었다.
바드의 타이틀을 달고 ‘나비야’를 부르는 게 웃긴 일이긴 했다. 바드가 아닌 사람이 불러도 나보다는 더 잘 불렀을 것이다.
나는 채팅으로 욕이 계속 올라왔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사람들 반응이 괜찮았는지 영진이 멘트를 치다가 다가와 소곤거리며 말했다.
“한설 님, 나중에 다시 한번 ‘나비야’ 부탁드려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