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63
64화
-반전의 반전의 반전
뭔가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친구가 있는 장소를 알고 있었으면서 자기가 직접 가지 않았던 것도, 마을을 식민지화하려고 했던 것도 말이다.
“너를 보면 내 친우가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쓸데없는 인간들은 치우고 네가 오기를 기다렸지.”
내가 제물이었던 거구만.
어쩐지 마을을 식민지화시키려는 계획을 쉽게 포기하고 내 말을 따라준다 싶었다.
그런데 다른 인간들을 치웠다는 소리는, 설마 죽였다는 건 아니겠지?
용운도 멀쩡히 잘 있었으니 다른 사람들도 무사할 것 같긴 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질 않으니 걱정이 들었다.
“그런 것치고 일부러 떨어트린 것 같던데요?”
“그 정도도 해치우지 못한다면 친우에게 내놓기 부끄러웠을 테지.”
“테스트를 했다는 건가요?”
“그래, 네 녀석의 마나 흐름이 다른 녀석들과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지.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예상대로 오면서 더 강해진 것 같고.”
드래곤은 붉은 눈을 날카롭게 빛냈다. 눈이 붉어짐과 동시에 주변의 열기가 얼굴을 뜨겁게 달궜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지는 몰랐다.”
이게 무슨 소리지? 아까 지용운도 그렇고 왜 자꾸 늦었다는 식으로 말하는 거지?
최소 이틀 걸릴 시간을 하루를 꼬박 새서 왔다. 늦었다고 말하기엔 오히려 빨리 온 것이었다.
중간중간 만난 몬스터들까지 하면 보통 사람이었으면 닷새는 걸릴 시간이었을 것이다.
“네가 늦은 바람에 내 심장을 얻는 시간이 점점 뒤로 밀렸다.”
“신애 님과 민상 님은 어디 있죠?”
분노를 표출해내며 자신의 심장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드래곤을 뒤로하고 긴장하며 질문했다.
떨어져 있던 것이 24시간이 채 되지도 않았다. 그사이에 변을 당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흥…. 네 목숨이 위험한데 다른 인간을 신경 쓰는 것이냐.”
드래곤은 눈을 가늘게 뜨며 쳐다봤다. 그럼에도 나는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어차피 드래곤의 목적이 나인 이상 지금 당장 죽을 일은 없었다.
“어차피 저는 교환 대상 아닌가요? 심장과 교환하려면 저를 죽일 수 없으실 거란 것을 압니다.”
“겁도 없는 녀석.”
드래곤은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이 녀석을 지하감옥에 가둬놔라.”
뭐야, 질문에 대답은 안 해줘?
드래곤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대기타고 있던 경비병들이 다시 내 양팔을 붙잡고 지하감옥으로 질질 끌고 갔다.
쿵-!
“아야….”
“오늘 안에 넘겨질 예정이니 얌전히 있어!”
거칠게 감옥에 던져 놓은 경비병들은 유유히 사라졌다.
“아직 물어볼 게 많았는데.”
눅눅하고 습한 감옥은 상상보다 더 더러웠다.
철창에 손을 가져다대니 붉은 마법진이 생성되며 튕겨나갔다. 겉보기엔 평범한 철장 같았지만 마법이 걸려 있었다.
그래도 드래곤의 열기가 이곳까지 영향을 끼치는지 감옥 안이 춥진 않았다.
“얼어 죽을 일은 없겠네.”
덜컹-!
“…한설 님?”
혼잣말을 하고 있을 때 옆 감옥에서 희미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신애 님이세요?”
“하, 한설 님이 맞는…거죠?”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꺼질 듯 힘겹고 물기가 가득했다.
“흐윽….”
곧이어 신애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신애 님. 괜찮으세요?”
벽에 막혀 있었기에 신애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몰라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괜찮아요. 오실 거라 믿고 있었어요.”
금방 눈물을 그치고 희망에 찬 목소리가 감옥의 벽 너머로 들려왔다.
다들 상태가 이상했다.
용운도 그렇고, 지하감옥에서 만난 신애도 그렇고.
대체 하루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
내 질문에 신애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기절이라도 한 건가 싶어 벽을 콩콩 두드리자 나지막한 목소리로 신애가 말을 꺼냈다.
“한설 님, 저희는 이곳에서 지낸 지 1년이 지났어요….”
…뭐, 1년?
이번에는 내가 말문이 막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1년?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자, 잠시만요, 1년이 지났다고요? 저는 드래곤의 등에서 떨어지고 바로 온 거예요. 하루도 걸리지 않았어요.”
이것도 던전 오류의 영향인가.
당황한 것도 잠시, 신애는 이제껏 있었던 이야기를 천천히 늘어놓기 시작했다.
“드래곤은 벨라리에 도착하자마자 본색을 드러냈어요. 도시를 점령하고 백작도 감옥에 가둬 버렸죠. 그리고 이곳의 왕처럼 군림하기 시작했어요. 한설 님을 찾아오라 엄포를 놓으면서요.”
말하는 게 힘겨운지 신애는 조금 텀을 두고 다시 말을 이었다.
“용운 님은 저희를 배신하고 드래곤의 편에 섰어요. 그럴 줄 몰랐는데….”
“민상 님은 어디에 계세요?”
“민상 님이 마음에 들었는지 드래곤이 회유를 하려다 실패했어요. 그 대가로 아마 어딘가에 감금당해 있는 것 같아요.”
뭐가 됐든 신애의 처지보다는 낫다는 얘기였다. 그럼에도 신애는 걱정이 뚝뚝 묻어나오는 말투였다.
“용운 님은….”
신애가 용운의 이야기를 하려 말을 꺼냈다.
“됐어요. 안 봐도 알 것 같더라고요. 배신한 거죠?”
용운이 달고 다니던 치렁치렁한 장신구를 떠올리며 혀를 찼다.
“너무 원망하지는 마세요.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니까요.”
씁쓸한 말투가 감옥 안에 울렸다.
음, 벽에 대고 대화하는 거 좀 불편하네.
그렇게 생각하며 철장을 두 손으로 꽉 잡았다. 그러자 붉은 빛이 사납게 튀며 손을 공격했다.
마법진이 경고등처럼 번쩍였지만 사뿐히 무시했다.
왜냐면 나는 지금 무적 상태였기 때문이다.
‘무적’이란 단어가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단어인지 체감 중이었다.
붉은 빛이 손을 끊임없이 공격해댔지만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은 채로 멀쩡했다.
쨍-
그대로 감옥의 철장을 어그러트렸다. 그러자 마법진도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깨져 버렸다.
“어, 한설 님…. 지금 뭐 하신….”
그대로 신애가 갇혀 있는 감옥의 문도 부숴 버렸다.
감옥 안으로 들어가자 신애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게 무슨.”
신애의 모습을 확인하고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신애가 입고 있는 옷은 곰팡이가 슨 것인지 얼룩덜룩했다. 눈밑이 퀭하고 초췌한 것이, 진짜 1년 정도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 같았다.
게다가 팔목은 구속구로 묶여 있었다. 급히 다가가 묶여 있던 구속구를 파괴하자 신애는 힘없이 쓰러졌다.
“윽.”
쓰러지는 몸을 급히 붙잡자 신애가 인상을 찡그렸다. 잡힌 곳에는 고문을 당했는지 붉은 자국들이 보였다.
이 새끼가.
순간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손에 힘이 들어갈 뻔했다. 신애는 기절하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로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이 상태로는 움직이기도 힘들 텐데.
순간 던전에 들어오기 전, 이권에게 받았던 체력 포션이 떠올랐다.
망설임 없이 인벤토리에서 체력 포션을 꺼내 신애에게 먹였다. 옆으로 흘리는 양이 절반이었지만 목울대가 울렁이는 것을 보니 잘 받아 마신 것 같았다.
“쿨럭!”
신애는 몇 번 기침을 하더니 눈을 감았다. 신애의 몸에서 푸른빛이 일렁이더니 몸의 상처가 점점 아물었다.
퀭하던 눈에도 생기가 돌았다.
“뭘 먹인 거예요?”
“체력 포션이요.”
신애는 신기해하는 두 눈을 깜박이고 텅 빈 병을 바라봤다.
“말도 안 돼요. 이게 체력 포션이라고요? 이렇게 효과가 좋은 건 처음 마셔보는데….”
“신혈 길드장이 줬어요.”
그러자 신애는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권의 빽이 좋긴 좋다. 솔직히 조금 아까운 마음도 들었지만 눈앞에서 죽어가는 신애를 모르는 척할 수는 없었다.
이권에게 입 털어서 또 받아내지 뭐.
“근데 이제 어쩌죠?”
신애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드래곤을 죽이죠.”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화나셨군요. 그래도 드래곤이에요. 이길 수 있을 리가….”
신애답지 않았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도 희망을 잃지 않던 그녀의 입에서 부정의 말이 튀어나왔다.
그녀도 그것을 알고 있는지 분한 듯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1년은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결코 짧은 시간도 아니었다.
이곳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못한 무력함에 지배당하기 좋은 시간이었다.
“걱정 마세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에요.”
분노에 찬 것은 사실이었다. 신애는 이제껏 생사를 함께한 동료였다.
화나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허튼 소리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제 퀘스트 내용이 추가됐어요. 드래곤이 찾는 그 친구를 찾아 드래곤의 심장을 부수면 그 녀석도 죽을 겁니다.”
신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론 퀘스트 내용이 추가됐다는 사실은 거짓말이었지만 그것까지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그, 그럼 그 친구라는 사람만 찾으면…!”
“아까 경비병이 말하는 것을 보면 친구라는 사람이 성으로 찾아오는 것일 겁니다.”
오늘 넘겨진다고 했으니 친구라는 사람을 성으로 부를 셈인 것이다.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았다.
그 전까지 민상을 찾고 친구라는 사람을 만나야 했다.
용운은…. 알아서 하겠지.
“그렇다고 해도…. 그 친구라는 사람이 얌전히 드래곤의 심장을 넘길까요?”
“넘기지 않으면 죽일 겁니다.”
결연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신애가 몸을 움찔댔다. 죽인다는 선택지는 생각도 안 한 모양이었다.
신애는 본성이 선한 사람이라 내 결정이 망설여지는 것도 이해가 갔다.
하지만 이쪽도 분노가 차 있는 상태였다. 어차피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는 이곳 인간들의 생사 따위 알 바 아니었다.
드래곤을 죽여 이 거지 같은 던전을 탈출한다면 작은 희생 따위가 대수겠나.
순간 김지완이 나를 이용하는 것을 선택했던 일이 떠올랐다.
이해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의 선택이 이해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죽이는 게 걸리시나요?”
“아뇨.”
신애의 눈빛이 변했다. 살기를 띄우고 있는 싸늘한 표정은 누구를 죽이는 것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어 보였다.
내가 뭔가 오해하고 있던 것이다.
1년 동안 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기에 신애의 눈에서 복수의 불길이 일게 만들었을까.
“전 용서할 수 없어요. 드래곤은 심판대에 서야 해요. 다만….”
신애는 말끝을 흐리며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전, 전 힘이 없어요….”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신애의 눈동자에는 고요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강해지고 싶으세요?”
신애는 놀란 듯했지만 다시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신이 들 때까지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신애의 표정을 보니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쓰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 작곡’.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느낌이라 꺼림칙해서 쓰지 않고 있던 스킬이었다. 그리고 나에겐 득 되는 일이 전혀 없는데 뭐 하러 쓰나 싶었다.
하지만 신애를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지금 신애에게 이 스킬을 사용해 주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어차피 스킬 효과를 확인해 보기는 해야 했고.
결심을 마치고 나는 조용히 이제껏 사용하기를 망설였던 스킬의 이름을 내뱉었다.
“인간 작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