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65
66화
-가장 큰 반전
“컥!”
신애의 악력에 민상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신애 님 그만하세요!”
물론 지금까지 탱자탱자 놀고먹은 것 같은 민상이 아니꼽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이렇게 감정적으로 나와서 좋을 것 없었다.
문고리에 마법이 걸렸던 것을 생각해 보면 민상도 그리 편안한 생활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괘씸한 것은 괘씸한 거고, 지금은 힐러인 민상이 필요했다.
힐러 때문이 아니더라도 동료가 절실히 필요한 상태였으니 괜히 불화를 일으켜서 좋을 것이 없었다.
신애의 팔을 거칠게 잡았더니 분노를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설 님. 이거 놓으세요.”
“먼저 상황을 들어보죠.”
지금 신애는 S급 헌터였기에 흘러나오는 기백이 예전과 달랐다.
사실 조금 쫄았다.
그래도 나에 대한 신뢰는 사라지지 않았는지 강하게 쥐고 있던 민상의 어깨를 얌전히 놓았다.
“민상 님.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그게….”
민상을 향해 덤덤히 질문하자 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민상의 말을 요약하자면 드래곤은 지하감옥에 처박히는 대신 사탕을 만들어내는 대가로 이곳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줬다는 것이다.
“사탕을 만들 줄 아세요?”
“네, 제가 수제 사탕가게도 겸업을 하고 있어서요.”
주머니에 그 많은 사탕들을 어디서 났나 했더니 사탕가게 사장이었던 것이다. 험악한 인상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었다.
어쩐지 방에서 단내가 풍기더라니, 향초 냄새가 아니라 사탕 냄새였나 보다.
“사탕을 만들고 있었다고요….”
그 말에 어이없어 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눈이 차갑게 가라앉은 신애의 눈빛에 움찔해서 민상이 급히 눈을 내리깔았다.
“입이 10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신애 님이 그런 일을 겪고 있는 동안 편히 지낸 것은 맞으니까요.”
고개를 푹 숙이고 사죄의 말을 꺼내는 민상은 신애가 무서운 것을 떠나 진심인 것 같았다.
그것을 느꼈는지 신애도 민상을 뒤로하고 근처에 있던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선 복잡해 보이는 표정으로 칼 손잡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마음이 복잡할 것이다.
자신은 혼자 지하 감옥에서 썩으며 다른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실시간으로 목격했는데 용운은 배신을 해 떵떵거리며 지내고 있고, 믿었던 민상마저 잘 먹고 잘 자서 살이 오른 모습이었으니.
배신감이 안 드는 것이 이상했다.
“그런데 여기 있어도 괜찮은 겁니까? 현지 님이 알기라도 하면….”
“그딴 드래곤 새끼 신경 안 써요.”
역시 성격이 좀 바뀐 것 같은데….
거칠게 말하는 신애의 반응에 민상이 다시 움찔했다. 아직도 ‘현지 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니 신애만큼 드래곤을 증오하는 것은 아닌 듯했다.
“저희는 드래곤을 죽일 겁니다. 그 전에 민상 님을 구하러 온 거고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저희와 함께 가시죠.”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면 안 되겠다 싶어 민상에게 우리의 목적을 이야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지 님을 죽인다고요?! 불가능해요, 죽고 싶습니까?”
민상이 경악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SS급인 드래곤을 잡는다는데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이 얼토당토 않는 얘기가 E급 헌터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으니까.
그가 왜 이런 반응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일일이 설명하기 귀찮았기에 민상이 윗옷을 챙겨 입자마자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아니, 이렇게 무작정 간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쫓아오면서 민상이 열심히 호소했다. 퀘스트의 내용을 말해줘야 하나 고민이 들기도 했지만 신애가 고생을 한 것을 생각하면 괘씸했으니 말해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드래곤을 죽일 방법을 찾았어요.”
그러나 조용히 있던 나 대신 신애가 민상에게 대답했다. 아무리 성격이 변했다 해도 천성은 버리지 못하나 보다.
신애는 그 후로도 자신이 각성했다는 사실과 드래곤의 심장을 찾아야 하는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 이야기를 얌전히 듣던 민상의 얼굴은 점점 경악으로 물드는 것 같았지만 아까같이 불가능하다느니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솔직히 과묵하고 조용했던 캐릭터라고 확신하고 있었는데, 저런 표정을 여러 번 보게 되니 사람을 잘못 판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1년이 지나서 다들 성격이 조금 바뀌었나?
생각해 보면 용운도 누군가를 배신하고 남의 편에 서는 것을 선택할 만큼 간교한 성격처럼 보이지 않았다.
용운도 처음부터 배신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히 불가능해 보이는 것은 아니군요. 현지 님을 죽이는 것은 반대하지만, 친구분이 어디로 올지는 압니다.”
민상은 침착한 표정으로 돌아가더니 응접실로 우리를 안내했다.
중간에 돌아다니는 경비병들이나 기사들을 마주쳐 곤란할 뻔했지만 신애의 마력 민감도가 올라가서인지 금방 사람들의 위치를 파악해 마주치지 않을 수 있었다.
한참을 걷자, 민상이 어느 화려한 문 앞에 멈춰 섰다.
“여기가 응접실입니다.”
“근데 여길 어떻게 아셨어요?”
방에 마법이 걸려 있던 것을 생각하면 성 안을 돌아다닐 수도 없었을 텐데, 민상은 한 번도 길을 틀리지 않고 응접실로 왔다.
“사탕을 전달할 때마다 응접실에서 현지 님을 만났거든요.”
그래서 이곳을 잘 알고 있었던 거군.
문에 귀를 대고 인기척이 나진 않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아무도 없는지 응접실 안은 조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붉은빛으로 도배된 방이 등장했다.
붉은 커튼과 붉은 바닥, 그리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소파도 전부 붉은색이었다.
“이쯤 되면 눈이 아픈데요.”
눈을 깜박이며 말하자 민상이 익숙한 듯 검붉은색의 벨벳 러그 위로 발을 들였다.
좋은 러그인지 발소리가 하나도 나지 않았다. 벽의 구조도 그렇고 여러모로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해놓은 장치들이 엿보였다.
“만드느라 고생 좀 했겠는데.”
공사장 시절이 잠깐 떠올라 방을 조금 더 꼼꼼히 보게 됐다.
건축 쪽으로 계속 몸을 담을 거면 공부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던 적도 있다.
뭘 배우려면 전부 돈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금방 포기했지만.
독열 아저씨는 배울 거면 건축이 아니라 음악이나 배우라고 꼬셨었다.
그때는 콧방귀를 뀌며 돈도 안 되는 거 배워서 뭐 하냐고 무시했지만 지금에 와선 조금 후회가 됐다.
아, 바드가 될 줄 알았냐고.
“어딘가 숨어 있을까요?”
신애의 말에 금방 회상에서 깨어났다. 이리 저리 숨을 곳을 찾는 신애를 보면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D급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다.
내가 아는 S급들은 숨는다는 선택지 따위 취급하지 않았다.
왜냐면, 상대가 누구든 이길 자신과 힘이 있었으니까.
“어차피 숨어봤자 마력 때문에 들킬 거예요. 드래곤의 심장도 훔친 사람이라면 등급도 높겠죠. 그냥 정면 돌파하죠.”
신애는 그제야 자신이 S급이라는 사실을 다시 상기한 것 같다.
나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밤새 쉴 틈 없이 걸어왔더니 피곤해 죽을 것 같았다.
피곤해서 앉은 건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한 것인지 비장한 얼굴로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그렇죠, 저희가 협박해야 하는 입장이니까 여유롭게 보여야 하겠죠.”
신애는 그렇다 치는데 민상도 잔뜩 표정이 굳히고 있었다. 표정을 굳히니 안 그래도 험상궂은 얼굴이 더 험악해 보였다.
이 사람들 진심이구나.
나도 조금은 험악한 표정을 지어볼까 고민하고 있을 때 신애가 자신의 두 손을 꽉 잡으며 눈을 빛냈다.
“누가 왔어요.”
응접실로 올 사람이라고는 드래곤을 제외하면 역시 그의 친구일 것이다.
소파에서 문이 잘 보였기에 열심히 노려봤다.
들어오자마자 아무 말도 못 하게 강한 인상을 남겨야지.
벌컥-
신애의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로브를 뒤집어쓴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와 중단발 정도 되는 머리카락이 모자 사이로 튀어나와 있었다.
드래곤이 성의 없게 그린 그림과 일치했다.
“당신이 드래곤의 심장을 가지고 있는 걸 알고 있습니다.”
신애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 인간에게로 다가갔다. 인상을 구기고 최대한 무서워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나도 그 노력에 승차하여 표정을 구기며 로브 쓴 녀석을 노려봤다.
민상에게 눈짓하니 마지못해 눈을 질끈 감으며 로브 쓴 녀석의 뒤로 돌아 길을 막았다.
누군가 보면 다구리라도 하는 줄 알겠네. 틀린 건 아니지만.
“드래곤의 심장을 넘기시죠. 그러면 무사히 보내드리겠습니다.”
로브를 쓴 여성은 침묵을 지키다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이렇게 멀쩡한 줄 알았으면 걱정도 안 하는 건데.”
어라,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
“어어, 우, 울어요?”
신애는 유지하고 있던 표정을 확 풀며 당황하고 있었다. 후드 아래로 슬쩍 보이는 볼에는 물방울 같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얼굴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지만 그대로 달려가 여자의 눈물을 닦아줬다.
여기 있으면 안 되는데, 얘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눈물을 닦아주자 자연스럽게 여자의 후드가 스르륵 벗겨졌다.
눈물로 얼룩진 하얀 피부와 비죽 올라간 고양이 눈, 익숙한 얼굴이 드러났다.
드래곤의 친구는 내 여동생, 예빈이었다.
* * *
37세 D급 헌터, 최대일은 눈앞에 떠 있는 화면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죄책감이라고 불리는 것이 파도처럼 밀려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대일보다 한참은 어려 보였던 한설 일행이 장현지를 구출하러 떠나는 것을 보고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던 것이다.
본능적으로 드는 공포를 이길 정도로 용기가 없었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만 대일은 드물게 양심적인 사람이었다.
대일은 추적 스킬이 있었기에 떠나려는 한설 일행에게 스킬을 미리 걸어뒀었다.
게임 화면처럼 그들의 위치와 체력이 보였다.
“이렇게 편리한 스킬이 있으니 더 죄책감이 느껴진다고….”
그들의 체력바에 변화가 없었다면 이 정도로 걱정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된 게 한설의 위치는 다른 일행들과 떨어져 꿈쩍할 생각도 하지 않았고, 신애의 체력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하아, 죽더라도 따라갈 걸 그랬나. 아니, 나 같은 D급이 뭘 할 수 있다고….”
그렇게 대일이 걱정이 담긴 한숨을 내뱉고 있을 때 마을 촌장이 나타났다.
“할 일 없으면 나 좀 도와주겠나?”
지나가던 촌장의 뜬금없는 부탁에 대일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할 일이 없었던 것도 맞기에, 기분 전환이라도 할 겸 흔쾌히 수락했다.
튼튼한 도끼로 나무 땔감을 만드는 일이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아 대일은 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분명 평범한 나무라고 생각했는데 도끼로 서너 번을 내려쳤음에도 작은 흠집만 났다.
아무리 등급이 D급이라고 해도 힘에는 자신이 있었다. 몬스터도 아니고 고작 나무일 뿐이었다.
“이거 왜 이렇게 안 돼? 할아범이 대체 뭘 준 거야?”
“껄걸. 이 늙은이가 시범을 먼저 보여도 되겠소?”
뒤에서 기척도 없이 나타난 촌장 덕에 깜짝 놀란 대일은 들고 있던 도끼를 놓치고 말았다.
촌장은 대일이 놓친 도끼를 들어 두 손도 아니고 한 손으로 가볍게 나무를 내려찍었다.
쩌적-
그러자 그렇게 내리쳐도 꼼짝도 하지 않던 나무가 두 갈래로 쪼개져 버렸다.
“헉, 어, 어떻게 하셨어요?”
“젊은 사람이 이렇게 비리비리해서 되겠소? 다들 놀지만 말고 도끼 하나씩 들어요.”
촌장은 여관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이까지 불러 모아 도끼질을 할 것을 요구했다.
처음에는 귀찮아하며 짜증을 부리던 헌터들은 나무 쪼개기가 만만치 않음을 깨닫고 나무질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할 일 없이 빈둥대고 있던 찰나에 힘을 쓸 일이 생기니 다들 눈에 생기가 돌았다.
“촌장님, 이걸 이 모험가들에게 시켜도 되는 걸까요?”
촌장이 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던 마을 사내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허허, 안 될 건 뭔가?”
“그래도 우리 마을 대대로 내려오는 기초 강화 훈련법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