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66
67화
-개개인의 시간
“자네도 이들이 평범한 모험가가 아니라는 것은 눈치챘겠지?”
“그렇습니다. 기운이 남다르더군요.”
“그래, 그런데도 뭐 때문인지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더군. 하지만 저 눈빛 좀 보게. 원래는 열정이 있던 자들이야.”
“그래도 외부인에게 함부로 가르칠 만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선조의 뜻이, 강해지고자 하는 자에게 힘을 주라는 것이었네. 게다가 이분들은 현지를 데리고 와줄 은인의 동료들 아닌가. 그냥 모른 척할 수 없지.”
사내는 진중해 보이는 촌장의 얼굴을 보고 한숨을 내쉬며 더 이상의 말을 삼갔다.
벌써 그들이 떠난 지 3달째였다. 이쯤 되면 장현지를 데리고 오는 데 실패했다고 봐도 좋았을 것인데, 촌장은 현지가 돌아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마을에서 가장 강한 촌장의 말이었기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사람들이 베고 있는 나무는 마을에서만 나는, 마나가 담긴 희귀한 나무였다.
마력은 생명체가 태어날 때 체내에 지니고 있는 것이라면, 마나는 자연에 스며들어 있는 모든 흐름을 일컬었다.
둘은 엄연히 다른 형태의 물질이었다.
마나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사람만이 나무를 벨 수 있다.
촌장은 단순한 나무 베기인 척 30명의 모험가들에게 마나의 흐름을 읽는 기초 훈련을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몇 달 후.
대일을 포함한 30명의 헌터들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하앗!”
대일이 도끼를 한 번 내려치자, 나무는 여덟 갈래로 쩍 갈라지며 산산조각 났다.
“허허, 이젠 묘기까지 부리는구먼!”
촌장은 그런 대일을 보며 말했다.
“스승님, 오셨습니까!”
대일은 촌장을 발견하자마자 90도로 몸을 접고 깍듯이 인사를 했다.
“스승은 무슨, 그저 자세를 좀 봐준 것 가지고.”
“아닙니다! 스승님의 가르침에 저희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대명의 태도가 흡족했던 것인지 촌장은 입술을 씰룩이다가 턱에 자란 하얀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나저나 은인들이 소식이 깜깜무소식이구먼.”
대일은 촌장에 말에 몇 달간 수련 아닌 수련 때문에 꺼뒀던 추적 화면을 띄웠다.
“어?”
오랜만에 보게 된 화면에서 눈에 띄는 점이 있다면 신애의 체력이었다. 신애의 체력이 거의 밑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대일은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이대로 가다간 신애가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넷 모두 지난번과 위치가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도 이상했다.
여전히 한설은 제자리였다. 체력은 줄어들지 않은 것을 보니 죽은 것은 아니었다.
“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근육이 빵빵하게 붙은 어깨를 들썩이며 대일은 다른 사람들을 부르러 여관으로 향했다. 여관은 어느새 헌터들의 아지트처럼 여겨졌다.
“저희 떠난 일행들을 찾으러 가는 것은 어떤가요.”
대일이 여관 1층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이들에게 제안했다.
헌터들은 여관을 이용하는 대가로 훈련으로 키운 힘으로 힘든 일들을 대신 도맡아 왔다. 게다가 가끔 주변에 나타나는 몬스터를 사냥하기도 했다.
한 명이었으면 모를까, 30명이 한 번에 전략적으로 덤비니 몬스터도 별 수 없었다.
A급 던전 오류의 몬스터를 잡았다는 사실은 그들의 자신감을 충족하기에 충분했다.
촌장의 훈련으로 그들은 이미 평범한 D급 헌터들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대일의 제안에도 거절하기 바빴던 과거와 달리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다.
“저희 30명은 하나죠. 모두에게 말하고 떠납시다. 저도 어린 헌터들을 그렇게 떠나보낸 게 마음에 쓰였어요.”
“대일 님의 추적 스킬이 있으니 금방 갈 수 있겠군요.”
모두들 결의에 찬 표정으로 하나둘씩 짐을 싸기 시작했다.
식당에 없던 사람들에게도 말이 전달되어 여관 앞 연무장에는 한설 일행을 찾으러 떠나기 위한 인원이 모두 모였다.
“다들 떠나는 겐가.”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던 촌장은 조용히 말했다.
“스승님, 꼭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대일은 다른 사람들을 대표해서 촌장의 손을 단단히 잡으며 말했다. 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일의 등을 떠밀어줬다.
길을 나서는 헌터들의 얼굴에서는 더 이상 비관적인 표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 * *
민상과 신애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와 예빈이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고 있었다.
제대로 설명을 해주고 싶었지만 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어 울고 있는 예빈이의 눈물만 닦아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한설 님 가족인 거죠?”
신애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울음을 그친 예빈이는 한참 침묵을 유지하다가 입을 열었다.
“맞아요.”
“그리고 드래곤의 친구…이고요?”
“네.”
드래곤의 심장을 훔친 사람이 예빈이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곳의 시간선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드래곤의 친구라 해서 당연히 나이가 지긋한 노인을 예상하고 있었다.
“너 어떻게 이 던전에 들어온 거야?”
예빈이는 피곤해 보이는 눈으로 소파에 가서 앉았다.
“처음, 던전 모집을 했을 때…. 또 내 말 무시하고 던전에 들어갈까 봐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어.”
그때 예빈이의 목소리라고 생각했던 게 맞았던 것이다.
더 제대로 살펴볼걸….
“안 나타나길 바랐어. 근데 어김없이 던전에 나타나더라? 그래서 놓칠세라 뒤늦게 던전에 쫓아 들어왔어.”
“초반 인원은 딱 100명이었는데…?”
민상이 이상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민상의 말대로 던전 안으로 들어왔을 때 예빈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었다.
어느새 우리는 소파 앞에 모여 앉아 예빈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저도 알 길이 없지만 던전에 들어왔을 땐 저 혼자였어요. 게다가 드래곤의 둥지였죠. 거기서 지금의 레드 드래곤을 만났어요.”
레드 드래곤의 이야기가 나오자 신애와 민상이 흠칫거렸다. 예빈이는 두 사람의 반응을 조금 살피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처음 딱 봤을 때 알았어. 녀석을 죽이면 던전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걸. 하지만 내 직업은 공격형이 아니라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었지. 그래서 차라리 친해지기로 마음먹은 거야. 그리고 녀석이 방심했을 때 심장을 훔쳐서 달아났어.”
“대체 어떻게 드래곤의 심장을 훔친 거죠? 그보다, 심장을 훔친 순간 부숴 버리면 던전을 공략할 수 있을 텐데….”
신애가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예빈에게 질문했다.
그럴 만했다. 예빈이의 직업을 알고 있었던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심장을 파괴할 수 없었어요. 그게 가장 빠른 길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교환…한 거야?”
얼굴을 쓸어내리며 예빈이에게 말했다.
“응. 내 심장과 맞바꿨어.”
충격적인 발언에 신애와 민상이 입을 쩍 벌렸다.
예빈이의 직업은 ‘감정사’였다.
그리고 감정사의 직업 스킬 중에는 ‘물물교환’이라는 스킬이 존재했다.
말 그대로 가치가 비슷한 물질을 강제로 교환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예빈이는 자신의 심장과 드래곤의 심장을 맞바꾼 것이다.
지금 예빈이의 왼쪽 가슴 속에는 드래곤의 심장이 숨 쉬고 있을 거다.
이제야 최강의 생물이라 불리는 드래곤이 고작 인간에게 쩔쩔매고 협박당했는지 이해가 갔다.
예빈이가 죽으면 드래곤도 죽는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예빈이의 목숨도 결국 드래곤에게 달린 것이다.
“바보야, 그 스킬을 사용하면 어떡해!”
“…그럼 내가 거기서 어떻게 해야 했을까.”
내 외침에 예빈이는 공허한 눈빛을 하며 중얼거렸다.
나도 알았다. 그게 예빈이의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SS급 몬스터를 상대로 A급 헌터인 예빈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없었다.
그랬기에 드래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은 수준에서 계속 기회를 엿보다가 심장을 훔쳐 달아난 것이겠지.
“…방법이 없을까요?”
곤란해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에 입술을 깨물었다.
애써 입 밖으로 꺼내진 않고 있지만 다들 드래곤의 심장을 부수는 것이 가장 간결하고 쉬운 선택임을 알고 있었다.
그게 누구든, 소의 희생을 감수하겠다고 말한 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신애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신애도 단단히 각오하고 있던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인 가족의 목숨이 달린 일이 되어 버렸으니 혼란스러울 것이다.
아무튼…. 지금은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상황을 정확히 알아야 퀘스트를 깨든 드래곤을 물리칠 방법을 생각하든 할 수 있을 테니까.
“강한 인간을 요구한 건 왜 그런 거야?”
“‘영웅의 마을’이라고 알아?”
“알아, 우린 그곳에서 출발한 거야.”
영웅의 마을이라면 우리가 떠나왔던 장소였다. 모르는 게 이상했다.
“나도 나름 도망치면서 드래곤을 해치울 방법을 생각했어. 수소문 끝에 영웅의 마을 이야기를 들었지. 그곳은 드래곤을 물리쳤던 영웅이 살았던 곳이라더라.”
“그 마을 사람들이…?”
“예상대로 마을 사람들은 강했지. 하지만 드래곤을 죽일 수 있을지는 확신 못 했어. 그러다 그곳에서 드래곤을 마주친 거야. 드래곤이 마을 사람들의 목숨을 가지고 협박을 하더라고. 그래서 드래곤과 협상한 거야. 내가 목숨을 끊으면 죽는 건 그쪽이었으니까.”
그래서 드래곤이 마을 사람들을 식민지화하려고 노력했던 것인가? 예빈이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협상을 한 것이고….
“드래곤이 억지로 사람들을 굴복시켰을 수도 있는데 잘도 안 그랬네요.”
신애가 시니컬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을 사람들이 생각보다 강했던 탓이죠. 마을 사람들이 드래곤을 상대하는 동안 저는 다른 마을로 도망친 거고요. …큭!”
열심히 설명하던 예빈이는 갑자기 심장을 부여잡고 괴로운 신음을 흘렸다.
“예빈아, 왜 그래!”
깜짝 놀라 예빈이를 부축하다 로브 안으로 목까지 올라온 시커먼 줄기를 발견했다.
황급히 로브를 벗기자 예빈이의 팔과 다리, 목주변이 모두 시커먼 줄기로 뒤덮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검은 줄기는 마치 예빈이를 집어삼키려는 듯이 심장에서부터 퍼져나가고 있었다.
“너…. 이거 설마 드래곤 심장 때문이야?”
평범한 인간이 드래곤의 심장을 가질 일이 있겠는가.
무려 드래곤의 심장이었다. 리스크 없이 멀쩡한 게 이상했다.
“너 이거 언제부터 이랬어?”
“…한 10년 전부터였나?”
“…뭐?”
내 재촉에 예빈이는 까마득한 먼 옛일을 떠올리듯 허공을 쳐다봤다.
10년.
시간의 뒤틀림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드래곤이 잠에서 깨어나 마을 사람들을 식민지화시키려고 했던 것을 따져보면 시간이 꽤 지났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0년이라니….
“드래곤의 심장 때문인지 죽어가고 있으면서 늙지는 않더라. 하하, 웃기지?”
건조한 목소리와 말투에 심장이 쓰렸다.
“오늘 결판내려고 했어…. 도망 다니면서 혹시 헌터들이 있을까 싶어서 찾아다녔어. 적어도 가족 생사는 알고 죽고 싶어서. 근데 심장을 훔쳐 달아나니 녀석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더라고. 드래곤을 끌고 오빠를 만나느니, 그냥 오늘 전부 끝내려고 했어.”
예빈이의 건조한 눈가에 다시 물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죽기 전에 만나서 다행이야.”
“네가 죽긴 왜 죽어!”
죽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쓸쓸해 보이는 예빈이를 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러분, 죄송하지만 드래곤을 잡아야겠습니다.”
선전포고를 하듯 결연한 얼굴로 신애와 민상을 돌아봤다.
절대로 내 여동생을 죽게 둘 수 없다.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