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68
69화
-드래곤 사냥 (2)
* * *
던전에 떨어지고 처음 눈을 떴을 때 예빈은 자신이 곧 죽을 거라 생각했다.
곤히 자고 있던 드래곤과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흡!!”
공포감에 눈물을 흘리며 출구를 찾기에 바빴다.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주변을 기어 다니며 던전 게이트를 찾았다.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았기에 필사적이었다. 스스로가 이 던전에 왜 발을 들였는지조차 깨닫지 못할 정도로 절박했다.
한참을 돌아다니며 게이트를 찾았지만 게이트는커녕 던전이 맞는지도 의심이 가기 시작했을 때, 예빈은 탈출을 포기했다.
자포자기 상태로 드래곤에게 잡아먹히는 결과를 받아드리려 노력했다.
하지만 드래곤은 생각보다 깊게 잠에 들었는지 깨지 않았다.
던전 공포증이 있었던 예빈이 할 수 있었던 다음 행동은 드래곤이 깨어나길 기다리며 공포에 떠는 것이었다.
하루 이틀이 지났다. 하지만 드래곤은 깨어나지 않았다.
깨어나길 기다린 지 한 달이 지났을 때, 예빈은 드래곤을 죽이고자 하는 시도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막 성인이 된 드래곤임에도 단단한 가죽과 강한 방어 마법을 두른 탓에 죽일 수 없다는 판단이 서기까지 다시 한 달이 걸렸다.
“오빠는 살아 있을까? 죽었겠지? 흑….”
석 달이 지나고 나서야 예빈은 자신이 던전에 발을 들였던 목적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었고, 수많은 가정 속에서 절망을 머릿속에 새겼다.
그리고 던전에 방치된 지 3년.
그제야 예빈은 드래곤이 눈을 뜬 모습과 마주할 수 있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라졌기에 드래곤이 자신을 죽인다고 해도 덤덤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드래곤은 눈을 뜨자마자 마주한 인간에게 죽음보단 호기심을 선사했다.
“신기한 인간이군. 나를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다니.”
드래곤이 눈을 뜨자마자 내뱉은 첫마디를 듣고 예빈은 드래곤이 3년 만에 눈을 떠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드래곤을 이용해 이곳을 탈출하자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제 막 성년이 된 드래곤이 심장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다시 잠에 들어야 한다는 말을 했을 때였다.
그 말을 듣기까지 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그 시간은 드래곤이 자신의 둥지에서 예빈을 나가지 못하게 막은 세월이기도 했다.
이기적인 드래곤이 잠이 들고, 봉인당한 마력이 풀리기까지 기다린 2년의 시간.
몸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예빈은 드래곤의 심장과 자신의 심장을 뒤바꿨다.
“물물교환.”
예빈은 물물교환 스킬을 쓰면서 각오를 다졌다.
물물교환은 비슷한 값어치여야만 교환이 성립된다.
자신의 심장이 드래곤의 심장과 맞먹을 정도로 값어치가 있을 거라는 교만을 부리지 않았다.
최소 신체의 어딘가가 교환의 대가로 사라질 것이었다. 다리만은 남아 있길 빌었다.
‘다리가 없어진다고 해도 어떻게든 기어 나갈 거지만….’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예빈은 사지가 멀쩡한 상태로 걸어 나갈 수 있었다.
‘…내 심장이 드래곤과 맞먹을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예빈은 드래곤과 함께 생활하며 느낀 것이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함과 질투심.
자신이 미워하려고 노력한 둘째 오빠의 마음을 처음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왜 그렇게 강해지고 싶었는지 말이다.
A급이었던 예빈은 웬만하면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만날 기회가 없었다. 던전 공포증까지 있던 터라 강한 몬스터를 상대할 일도 없었다.
던전에 들어가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족속들이 한심하다고 여기기까지 했다.
물론 가족을 위해 던전에 들어가는 큰 오빠는 언제나 예외였다.
그랬기에 드래곤과 함께하며, 언제 죽을지 몰라 음습해 오는 공포감과 함께 고개를 들이밀었던 질투심은 생소한 감정이었다.
“내가 녀석보다 강했다면…. 이런 일을 당할 일도 없었을 텐데.”
강함에 대한 열망은 예빈에게 생소한 감정이었지만 10년 동안 드래곤 곁에서 그 감정을 학습해 온 그녀는 둥지 밖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덤덤히 중얼거릴 수 있었다.
“작은 오빠가 보고 싶어.”
10년 만에 둥지 밖으로 나온 예빈은 그리운 목소리로 말했다.
원망도 많이 했다.
자신을 속이고 던전에 들어온 한설 때문에 내가 이 고생을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던전에 들어온 것을 선택한 것은 스스로였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드래곤의 심장이 숨을 턱턱 막히게 하고 죽음을 재촉하듯 타올랐지만 그것은 중요한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원망하고 증오하는 시간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어쨌든 가족이었다. 정말로 미워할 리가 없었다.
만약 아직 한설이 살아 있다면 다시 한번만 더 그 모습을 눈으로 새기고 싶었다.
* * *
[생체 리듬 10% 분석 완료.] [공격에 성공하셨습니다! 공격력이 60%(+10) 증가합니다. 공격 시 상대방의 방어력을 60%(+10) 무시합니다.]디버프를 때려 박아도 SS급 몬스터라 이건가.
분석도가 겨우 10%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드래곤 머리에 두 개의 움푹 파인 모양을 보면 마냥 아쉽지도 않았다.
디버프를 많이 먹은 놈의 방어력은 평소의 반도 되지 않을 것이다.
“크아악!! 네 녀석, 죽여 버리겠다!”
다시 드럼채를 들어 올렸을 때 분노한 드래곤이 포효하며 뒤를 돌았다.
거대한 몸집 때문에 뒤로 도는 간단한 동작임에도 작은 바람이 일어났다.
아까 같은 날갯짓이 아니었으니 밀릴 일도 없었다. 기세가 대단했지만 처음 만났을 때만큼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그저 두렵기만 했으나 약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 두려움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게다가 녀석이 화가 난 것보다 내가 화가 났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했다.
다른 건 몰라도 가족을 건드려 화나지 않는 사람은 없으리라.
“할 수 있으면 죽여보시지.”
녀석이 다음 공격을 준비할 때 성 안에 있던 신애와 눈이 마주쳤다.
“정의의 심판.”
눈치 빠르게 신애는 스킬을 사용했다.
“‘악’은 드래곤, ‘선’은 한설.”
신애가 악과 선을 지정하더니 나를 바라봤다.
“한설 님, 버프 드렸어요!”
“네? 신애 님은요?!”
“각각 한 명밖에 지정을 못 해요!”
띠링.
[심판대에 올라 ‘선’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방어력이 44% 증가합니다.]방어력이 올랐다. 신애가 스스로에게 스킬을 거는 대신 당장 공격을 받게 생긴 나에게 양보한 것이다.
‘효과 좋네.’
어차피 무적 상태라 의미 없는 선택이었지만 조금 감동이었다. 자신보다 내 목숨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었으니까.
이 스킬의 최대 강점은 방어력보다 ‘심판자의 표식’이었다. 이제 20% 미만으로 체력을 떨어트리기만 하면 된다.
콰아악-!!
아까와 같은 붉은 구가 정통으로 쏘아졌지만 의미 없는 공격이었다.
“이게 전부냐?”
비아냥거리며 녀석을 도발했다.
“수호자의 영역.”
신애는 멈추지 않고 바로 다음 스킬을 사용했다.
거대한 금빛이 신애의 주변을 감싸다 퍼져 나갔다. 돔 형태로 경계선이 생겨나며 우리도 그 영역 안에 포함되었다.
“버러지들이 애를 쓰는구나!!”
“여기서 끝이 아니거든!”
힘차게 외치며 자리에서 뛰어오른 신애의 모습이 찰나의 순간, 사라졌다. 성안에 있던 그녀는 어느새 드래곤의 등 위에 서 있었다.
수호자의 영역이 사기인 이유 중 하나였다.
원하는 영역으로 순간이동이 가능하다는 것.
지금과 같은 공중전에서는 유용하게 쓰일 수 있었다. 게다가 어떤 제약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영역 안에서라면 어디든, 얼마든 이동이 가능한 것이다.
“연속 찌르기!”
신애가 스킬을 외치며 드래곤의 등을 공격했다.
뭐야, 내가 모르는 스킬이잖아? 설마 각성 이전에 가지고 있던 스킬도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는 건가?
‘연속 찌르기’는 등급이 낮은 검사 계열 헌터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초급 스킬이었다.
내가 볼 수 있는 부분은 각성 이후의 정보들뿐이었던 건가?
파파박!!
화려한 선을 그려내며 쫓기 힘든 속도로 드래곤의 등을 찌르는 빛의 검을 보며 부러움에 입안 살을 콱 깨물었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아니, 차라리 연속 찌르기 같은 걸 저장할 수 있게 해주지!
나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차가운 눈동자처럼 사용 조건이 걸려 있는 스킬보단 저런 기본 공격 스킬이었다.
허구한 날 버프와 디버프를 걸어놓고 패는 것밖에 하지 못하니 모양새가 빠졌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일반인이었던 시절을 잠시 회상하며 멋진 부분은 다 가져간 신애를 질투하는 것을 멈췄다.
생각해 보면 나름 소리 전달자도 좋은 직업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버프와 디버프로 상대의 공격력을 깎아놓고 무지막지한 공격 중첩 스킬로 패 버리는 직업이 어딨을까.
퍽!!
“크악!!”
띠링.
[공격력과 공격속도가 110%(+10) 증가합니다. 공격 시 상대의 방어력을 110%(+10) 무시합니다.]이렇게 말이다.
아직까지는 버틸만 한지 드래곤이 비늘을 바짝 세워 올리며 용암이 끓어오르는 것 같은 형상을 내보였다.
큰 게 오겠군.
“신애 님 조심하세요!”
비늘을 세우니 등에 서 있기 곤란해진 신애를 보고 외쳤다. 드래곤은 사나운 눈을 하고 우리를 바라봤다.
“이 녀석들 각오…!!”
뭔가를 외치려던 드래곤은 갑자기 세웠던 비늘을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려 놓았다. 그리고 붉게 타오르던 눈동자도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
뭐야, 왜 저래?
“…하아, 너무 우울하군.”
심각해 보이는 표정 사이로 나온 한 마디는 우리를 얼빠지게 만들었다.
이게 디버프로 걸었던 우울 상태의 진정한 효과인가?
상대의 의욕을 상실시키는 버프였다니.
“지금이에요!”
신애와 나는 동시에 녀석에게 공격했다.
퍽!!
정수리 부분에 드럼채가 꽂히듯 정확히 들어갔다.
손에 감기는 타격감이 좋았다. 마치 골렘을 상대했을 때 약점을 타격하던 그 감각이었다.
본능적으로 녀석의 약점을 공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헉!! 더 이상 봐주지 않겠다!”
녀석의 정수리에서 피가 흘렀다. 체력이 많이 깎여 나간 것인지 마력이 부족함에도 큰 기술을 쓰려는 낌새가 보였다.
등에 올라가 있던 신애를 앞발로 잡고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신애가 바닥으로 추락해 다치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으나 수호자의 영역을 사용해 바닥으로 순간이동을 해 안전히 착지할 수 있었다.
오, 저렇게 사용할 수도 있구나.
드래곤은 신애가 멀쩡한 것을 보고 혀를 한 번 차더니 다시 비늘을 세우고 입 안에 거대한 구를 생성했다.
아까 붉은 구체와는 다른 하얀 빛이었다.
이거 브레스 아니야?
신애가 다시 순간이동하려고 했으나, 드래곤이 손가락을 휘저었다. 브레스 같은 거대 기술을 사용하면서도 다른 스킬을 동시에 쓰는 모습이 능숙해 보였다.
곧 죽어도 드래곤이군.
신애는 무슨 마법에 걸린 것인지 바닥에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것 같았고, 드래곤은 자신의 입보다 더 거대한 빛을 만들어냈다.
“이 방향이면, 신애 님까지 같이 말려들겠는데.”
40% 확률로 우울 상태가 되는 행운은 일어나지 않았다.
노리고 한 것이 분명한 방향 설정에 혀를 내두르며 손을 쩍 뻗었다.
솔직히 내 몸뚱이 하나로 신애까지 지킬 자신이 없었다.
거리도 거리지만 저번 회차 때 나를 포함한 그 많은 인원수가 단 한 방에 가루가 되어 버렸다.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눈을 감고 운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있었을 때였다.
“여러분 갑시다!!”
“우워어!!”
익숙한 무리가 신애의 발 근처를 거대한 도끼로 내려치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