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73
74화
-처절한 싸움 (1)
이게 뭔 개소리야?
시스템에 적힌 글자를 몇 번이고 다시 봤다.
집에 돌아갈 수 있는데 단 30명만 나갈 수 있다고?
나는 조금 이해가 갔다. 이 던전 난이도가 왜 A-SS급으로 적혔는지.
처음에는 장현지를 데리고 가느냐, 드래곤과 싸우느냐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난이도가 정해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장현지가 드래곤이었고 마을에 장현지를 데리고 오지 않으면 퀘스트가 끝나지 않았던 것을 보면 처음부터 공략은 현지를 데리고 오는 것 하나였다.
그럼 왜 던전 난이도가 나눠진 건지 궁금했는데 의문이 풀렸다.
이 마지막 관문 때문이었다.
30명밖에 나가지 못한다면 결국 헌터끼리 서로 싸워서 생존한 사람이 나가게 되는 그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등급이 높은 헌터에게 유리한 일인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끝까지 이러기냐.
질 것 같아 이러는 건 아니었다. 신애가 상대라면 말이 달라지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질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1대 1이라면.
이 메시지는 나뿐만이 아니라 헌터들에게 모두 공유가 됐을 것이다.
나랑 가장 척을 지고 있는 구안이나 추환이라면 가장 먼저 나를 공격하려 들것이다.
A급 2명이 동시에 덤빈다면 이길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았다.
둘은 친해 보이기도 했고 같은 센터 인간들이었으니 힘을 합칠 가능성이 있었다.
뭐, 마지막엔 대차게 싸운 것 같았지만 목숨이 달린 일이었으니 싸운 게 중요할까.
“나도 빨리 신애 님에게로 가야겠다.”
아니지, 잠깐만.
…싸우지 않고 나갈 방법이 있잖아?
확실하지 않지만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했다.
갑자기 심각해진 나를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촌장을 버려두고 잰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왔다.
“신애 님!”
다급하게 내려온 아래의 상황은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쾅쾅-!!
촌장의 집 문을 두고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들어오지 마, 이 악마들아!!!”
“문 열어!! 어차피 독 안에 든 쥐야!!”
벌써 상황파악을 끝낸 A-B급 헌터들이 촌장 집에 몰려 들어간 낮은 등급의 헌터들을 사냥하기 위해 몰려온 것이었다.
“한설 님! 큰일 났어요. 지금 밖에 퀘스트를 본 헌터들이…!”
신애가 다급하게 말하며 빛의 검을 꺼내들고 있었다.
“저희 싸우지 않아도 돼요! 저한테 방법이…!”
우직-!
쾅!!
말을 마치기 전에 결국 나무로 만들어진 문이 부서지고 말았다. 헌터들은 각자의 무기를 들고 살벌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죽여!! 집에 가는 거야!!!!”
“와아악!!!”
그들의 눈은 정상이 아니었다.
이제껏 전투를 치르면서 동료의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봤을 것이다.
그럴수록 더욱 집에 대한 갈망이 커지고 원망도 함께 자라났을 것이다.
믿음직하지 못한 리더와 죽어가는 동료, 다음은 내 차례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지금 그 정신적 압박감이 모여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자신들이 더 강했으니 무서울 것이 없었다.
“크흑!”
“악!”
처음에는 열심히 버티던 일명 촌장의 제자들이 등급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밀렸다.
그것을 두고 볼 신애가 아니었다.
“수호자의 영역.”
금빛의 테두리가 촌장의 집을 감쌌다.
“다들 이 금빛 영역에서 나가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죽게 될 테니까.”
휘익-
아름답게 곡선을 그리는 빛의 검으로 경고를 하는 신애의 모습은 그녀의 직업대로 ‘정의의 수호자’ 같은 모습이었다.
“네,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맞아!! 겨우 D급 주제에!”
심상치 않아 보이는 스킬에 다들 주춤하면서도 깡으로 버티고 있었다.
누군가는 눈이 뒤집혀 앞뒤 재보지도 않고 신애에게 달려들었다.
“주제를 알아야지!! D급은 그냥 뒈지라고!!!”
촤악-!!
빛의 검은 말 그대로 은은하게 광을 내며 달려드는 헌터의 몸을 가볍게 해치웠다.
“크헉!!”
그대로 자리에 쓰러진 헌터는 게거품을 물고 기절해 있었다.
죽이진 않은 모양이었다. 신애다웠다.
“다음은 누구지?”
임팩트는 강력했다. 신애의 포스에 다들 물러났다.
“씨발! 저렇게 강한 헌터가 있다고는 안 했잖아!!”
“두고 봐라! 어차피 누군가는 죽어야 해!”
녀석들은 결국 문만 부수고 다시 밖으로 나가 버렸다.
집 안에는 싸늘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녀석들을 물린 것만으로 기뻐해도 좋을 텐데, 아무도 기뻐하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침울한 표정이었다.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크흑, 지금은 물러섰지만 결국 우린 죽임을 당하겠지.”
등급 차이를 확실히 체감해 버린 것이다.
“여러분, 저한테 방법이….”
“처져 있지 마세요! 죽긴 뭘 죽어요!”
자신감이 넘쳐 보이던 사람들이 기운이 빠져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 것을 보고 신애가 외쳤다.
나한테 방법이 있다니까. 서로 안 싸워도 된다니까….
“그러니까 저한테 방법….”
“자네들, 한 번 밀린 거 가지고 이렇게 포기할 텐가?”
이번엔 촌장이 등장해 말을 끊었다. 어느새 계단에서 내려온 촌장은 모두의 시선을 빼앗은 채 나무문을 들어 올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부서진 나무문을 억지로 문틀에 끼어 넣었다.
비실해 보이는 노인인 줄 알았는데 반전이다.
그나저나 계속 말할 타이밍을 놓치고 있다.
“스승님!! 저희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크흡, 다시 싸워 보겠습니다!!”
26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울부짖으니 귀가 따가웠다.
“하아, 방법이 있다니까….”
한숨을 푹 쉬며 중얼거리자 신애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녀를 쳐다보니 고개를 살포시 저었다.
“지금은 일단 두죠.”
“시간 낭비예요.”
“음…. 그렇긴 하지만.”
신애는 복잡해 보이는 눈으로 포효하는 헌터들을 바라봤다.
“솔직히 저도 한 번쯤은 그 녀석들이랑 싸워 보고 싶었거든요.”
검을 잡은 손에 힘줄이 올라온 것을 보니 진심이었다.
“한설 님은 그런 일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조심스럽지만요….”
잠시 망설이다가 신애는 말을 이어갔다.
“헌터 세계에서 저희의 위치와 대우는 상상 이상으로 심해요. 총알받이 취급에, 어떤 말을 해도 D급이니 입 닫고 시키는 대로 하라는 식이죠. 일반인들한테는 더 심해요. 어딜 가나 하급 인생 취급에 부조리한 일도 많이 당해요.”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그들의 대우가 심했던 것 같다.
신애는 덤덤하게 말을 다시 이어갔다.
“물론 돈을 많이 버니까 참고 견디는 거지만, 저런 인간들의 행패는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약하다는 게 죄라는 얘기, 제가 괜히 한 거 아니거든요.”
눈에 불을 켜고 포효를 하고 있는 헌터들만큼은 아니었지만 신애도 본능적으로 이 싸움을 원하고 있었다.
정말로 그들을 죽이고 싶다거나 생존을 위해서라기보단,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본능이었다.
‘이해가 안 되네.’
가장 빠른 방법이 있다는데도 굳이 어려운 길로 돌아가려는 그들이 이해가 안 된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도 벅찬 인생을 살아와서 그런가, 자신의 가치가 어쩌니 저쩌니 하는 것들은 등 따시고 배부른 자들의 특권처럼 여겨졌다.
“조금만 지켜봐 주세요. 제가 있으니 지진 않을 거예요.”
그건 안다. S급인 신애가 있는데 지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그래봐야 A급이 전부인 무리.
S급이 된 신애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뭐라 더 말하고 싶었지만 신애의 굳은 의지에 그냥 넘어갔다.
구속구의 제한시간이 걸려 있었기에 최대한 빨리 모든 것을 끝내야 했다.
그래도 3시간밖에 지나지 않아 7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결판이 그 전에 모두 나야 했다.
“남아 있는 시간이 별로 없어요.”
“구속구 시간 말씀하시는 거죠?”
신애에게만 드래곤을 어떻게 다룰 수 있었는지 설명을 했다. 그래서 신애도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맞아요, 약 7시간 남았어요. 그전에 끝낼 수 있겠어요?”
“네, 그전에 끝낼게요.”
신애는 빛의 검을 들어 올리고 자신의 소매를 찢었다. 그리고 이제는 허리까지 길어진 머리카락을 질끈 동여맸다.
신애는 헌터들을 돌아봤다. 이제는 헌터보단 촌장의 수제자들이라고 하는 편이 더 옳을 것이다.
쿵.
그들은 심상치 않은 모습으로 검집을 바닥에 내리찍는 신애의 모습을 바라봤다.
“여러분, 전 재각성을 해서 S급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원하게 밝혀 버린다고?
신애의 발언에 당황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헌터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웅성댔다.
그럴 만도 했다. 재각성이라는 것이 쉽게 일어나는 것도 아니었고, D급이 S급으로 각성하는 일도 없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지?”
“우리를 놀릴 셈인가?!”
“어떻게 재각성을 했다는 거야!”
“믿지 못하는 것도 이해합니다. 말보다는 이게 빠르겠죠.”
신애의 눈이 번뜩였다.
기운이 달라졌다. 다른 헌터들도 움찔대며 땀을 흘리는 것을 보니 S급의 마력을 방출한 것이 틀림없었다.
어떻게 각성을 하게 됐는지 나는 알려줄 생각이 없었고, 신애도 함부로 떠벌리는 사람이 아니었으니 그들은 영영 그 비밀을 모를 것이다.
하지만 방금 신애가 방출한 마력으로 더 이상 거짓말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은 사라졌다.
“진짜인가 봐….”
“어떻게 재각성을 한 거지?”
“이것도 던전 오류의 영향인가?”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눈빛 사이로 다시 한번 신애의 외침이 울렸다.
“여러분, 그놈들이 더 이상 우릴 무시하지 못하게 만들어야죠. 이길 수 있어요. 이깁시다!”
주춤대던 사람들이 신애의 외침을 듣고 희망에 찬 목소리로 목소리를 높였다.
“워어어!!”
“우리한테 S급 헌터가 있다!!”
그냥 평범한 D급 헌터일 때의 연설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물론 상황이나 그들의 입장이 많이 달라진 것도 있었지만 S급 헌터의 영향력은 이 정도로 남다른 것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도 열심히 싸울 생각이었다.
다들 내 말에 귀 기울일 생각도 없어 보이니, 차라리 헌터들을 잡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나원명 때처럼 레벨이 오를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신애를 선봉으로 촌장 집을 나오니 A-B급 헌터들도 자기들끼리 팀을 만든 것인지 전투태세를 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팀의 맨 앞에는 역시나 추환과 구안이 있었다.
언제는 목숨을 살려 달라고 빌빌 기었으면서 손바닥 뒤집듯이 태세 전환해 버린다.
“한설 님, 이쪽으로 오시죠.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입니다.”
구안이 안경을 고쳐 쓰며 나에게 말했다.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던 모양인지 공격을 하기 전에 제안을 해왔다.
근데 이미 늦었어, 인마.
“지금 그쪽이 이길 거라고 확신하는 말투네요?”
“당연한 얘기 아닙니까? 저희는 20명이니 한설 님을 포함해서 10명까지 사정을 봐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괜히 피 보는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
“진짜 웃기는 놈이네.”
콧방귀를 뀌며 구안에게 말했다.
“E급 주제에 감히 구안 님께 무슨 말버릇이야!”
어느새 추환보다 다들 구안을 리더로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추환이 그런 행패를 부렸으니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거절의 의미로 받아드리겠습니다. 후회하셔도 소용없습니다.”
구안이 내 대답을 좋을 대로 해석하고 뒤로 물러났다. 올바른 해석이었지만, 후회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아니었다.
칼을 높이 들고 앞장서 있던 덩치 좋은 헌터가 구안이 뒤로 빠지자마자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챙-!!
“큭!”
그리고 나가떨어진 것은 덩치 큰 헌터였다.
신애가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내 앞을 방패처럼 막아서고 있었다.